〈 211화 〉 사상 최악의 주인공
* * *
셰릴에게 질내사정한 순간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무너져서 눈물을 쏟다니.
솔직히 로이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만큼 그녀를 향한 사랑이 깊었다는 얘긴가.
뭐가 됐든 상관없다.
어차피 로이놈이 무슨 마음을 가지고 있든 셰릴을 품을 일은 없었을 테니 말이다.
“셰릴, 일어나라.”
”네, 주인님.”
보지에서 좆을 빼내 주자 드디어 자유를 찾은 그녀가 하복부에서 올라오는 통증 때문인지 일어나다가 휘청였다.
뽀얀 허벅지를 타고 내려오는 투명하고 찐득찐득한 액체가 그녀가 정복당한 암컷임을 보여주었다.
“많이 아팠나?”
“아뇨, 주인님의 물건은 언제나 저를 황홀하게 하는걸요. 다른 남자들의 실좆에 느낌도 안 오는 것보다는 조금 아프더라도 배 속을 꽉 채우는 대물이 더 좋아요.”
모르는 여자였다면 나에 대한 공포심으로 저런 말을 하는 거라고 여기겠으나, 셰릴이라면 100% 진심이다.
저 루비 눈동자를 봐라.
한 번 더하고 싶다는 갈망이 문신처럼 아로새겨져 있으니.
본래라면 바로 자빠트려서 해가 뜰 때까지 보짓구멍을 넓혀주겠지.
하지만 오늘은 할 일이 있으니 여기까지 하기로 한다.
“옷 입어.”
내가 진심으로 하는 말임을 깨달은 그녀가 아쉬워하며 아직도 달궈진 몸을 어쩌지 못했다.
아쉬운 대로 균열 사이로 살짝 흐른 정액을 손으로 닦아낸 후 이를 입속에 넣고 쪽쪽 빨며 말한다.
“헤헷♥주인님 씨앗은 맛있어요♥”
여자로서 수치스럽지도 않은지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아마 로이도 이제는 알 거다.
인제 와서 셰릴을 붙잡기엔 그녀가 너무 멀리 가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충 옷을 걸친 후 로이의 앞에 섰다.
둘째 형님은 나와 셰릴이 보여준 IMAX 4D 영화에 감동했는지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셰릴이 손을 들어 올리더니만 망설임 없이 로이의 뺨을 갈겼다.
철썩
“사내 놈이 꼴사납게 질질 짜고 있네. 넌 어디가서 남자라고 하지고 말렴.”
무시와 경멸, 비웃음과 조롱의 눈길이 로이의 가슴을 사정없이 헤집어 놓는다.
다른 누구도 아닌 셰릴이다.
몇 년 동안 저 남자가 오매불망 그리워했던 귀족 영애다.
그는 자신이 원했던 여인에게 남자 취급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이거 어쩌나? 형은 셰릴을 좋아하는데 셰릴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훅, 후욱…”
꽉 물린 재갈 사이로 거친 숨만을 토해내는 로이의 턱에 가느다란 혈선이 또다시 모습을 보였다.
토혈하는 로이의 귀에 대고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여줬다.
“로이, 잘 들어. 지금부터 내가 널 어떻게 할지 친절하게 설명해줄게.”
“읍!”
눈빛으로 온갖 욕을 하는 둘째 형의 허벅지를 꽉 눌렀다.
“너는 내가 만만하다는 이유로 내 모든 걸 가져가려고 했다. 나에게 특별히 원한이 있지도 않았었지. 그러니 나 또한 너의 모든 걸 가져가겠다. 너의 성, 너의 영지, 너의 영지민, 너의 병사, 마지막으로 너의 여자. 아, 이건 이미 가져갔구나. 어쨌든 간에.”
셰릴이 어느새 날이 짧은 단검을 하나 꺼내서 나에게 넘겼다.
“무슨 수로 그렇게 할 수 있냐고 묻고 싶을 거 같은데. 그냥 가만히 있어. 저절로 깨닫게 될 테니까.”
말이 끝나자마자 단검을 천천히 그의 얼굴에 갖다 댔다.
당연히 공포에 질린 놈은 의자에 묶인 채로 지랄발광을 한다.
“쉬이, 가만히 있어야지? 괜히 움직이면 더 아파.”
마침내 비수가 얼굴의 표피를 파고들기 시작하고,
“웁! 우우웁! 우웁! 우웁!”
“셰릴, 와서 이놈의 못난 얼굴을 붙잡아라. 고개를 하도 틀어대니까 짜증나는군.”
“네, 주인님.”
셰릴이 명령대로 로이를 고정시켜서 그의 마지막 저항을 짓밟는다.
그러고 나서 침실에는 과도로 사과껍질을 깎는 듯한 소리가 방 안에 퍼졌다.
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
언제 들어도 듣기 좋은 소리다.
모나스 시티 검투장에서도 그렇고 페이튼 영지에서도 그렇고, 나는 인간 피부를 벗기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수많은 실험체가 필요했다.
지구에서 납치한 인간들의 얼굴 껍질을 벗기다가 칼이 엇나가서 과다출혈로 죽은 놈들만 쌓아놔도 아파트 10층 높이는 될 거다.
제발 죽여달라고 애원하는 연놈들을 끝까지 죽이지 않고 고문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실수로 죽여버린 그 시절들은 나에게도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순간들이다.
아무튼, 그런 경험치가 모이고 모여서 나는 전문가가 됐다.
지금도 봐라.
피부가 말끔히 벗겨져서 얼굴 근육이 그대로 드러난 로이가 극심한 공포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나를 보고 있다.
“킥, 키킥! 킥킥킥킥킥!”
숨을 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근육.
그 틈 사이로 선명하게 보이는 모세혈관.
툭 튀어나와 강조되는 건강한 치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란 말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여인이 벗은 모습보다 더 시선을 잡아끌었다.
“로이, 로이, 로이.”
원래라면 뺨을 툭툭 치면서 얘기를 하지만 지금 치면 극심한 고통으로 내 말을 듣지도 못할 것 같아 쳐다보기만 하고 말했다.
“왜 그랬어? 왜 그랬냐고.”
“재갈 풀까요?”
“풀어. 소리 못 지르게 하고.”
“알겠습니다.”
셰릴 또한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로이의 입에 물린 재갈을 풀었다.
만약에 잘못하다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로이 녀석은 자지러질 거다.
다행히 셰릴도 레벨 높은 고수라서 능숙하게 재갈을 벗겼다.
“이제 말을 할 수 있으니 좀 편해?”
“아…악마…넌 악마야…”
“첫마디가 악마라는 건 너무 식상한데? 맨날 듣던 말이라서.”
지긋이 그와 눈을 맞췄다.
눈동자 속을 파헤칠 것처럼 쳐다보았다.
이유는 별거 아니다.
그가 정말로 굴복했는지, 혹은 아직 마지막 불씨를 숨기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예전부터 사람들의 심리를 알아내는데 재능이 있어서인지 금세 로이의 심리상태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이런, 그래도 처음에 주먹 몇 방은 버티길래 뭐라도 할 줄 알았건만. 여기까진가.”
이미 혼탁해진 눈동자.
정확히 말하면 셰릴의 자궁 속에 질내사정했을 때부터였다.
이미 거기서 이 남자는 내가 규격 외의 무언가라고 여긴 것이다.
“대체 네 정체가 뭐지? 넌 데이몬이 아니다. 난 내 동생을 알아. 절대 너 같은 놈이 아니다.”
호오라? 그래도 바로 위에 형이라고 나름 관심 있게 지켜봤었나 보군.
“그게 무슨 소리야? 나 데이몬이야. 로이형의 사랑스러운 하나뿐인 동생. 동생이 하도 만만하니까 동생으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아?”
“그럴 리가 없어. 지금 네 모습을 봐. 내 동생은 한심한 머저리였지, 너 같이 인간 같지도 않은 놈은 아니었어. 너 누구야! 누구냐고!”
목소리가 조금 올라갔다.
셰릴이 즉시 그의 목을 졸라서 바깥으로 소리가 새 나가는 걸 막았다.
“꺽! 꺼억!”
“경고야. 소리 지르면 바로 혀 자른다.”
살포시 다시 손을 놓자 로이 놈이 격하게 기침을 했다.
피부가 없는 상태에서 기침하니 금세 혈관 하나가 터져서 핏줄기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크윽!”
“너무 무리하지 마. 화내면 화낼수록 형이 살 수 있는 시간은 더 짧아져.”
“이미 내가 죽은 목숨이란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캘리알 성에는 나에게 충성하는 수많은 기사가 있어. 넌 죽은 목숨이야.”
이것도 저것도 안 되니 최후의 발악으로 협박.
뭐 흔한 패턴이긴 하다.
“무슨 수로 셰릴의 레벨이 저리 올랐는지는 모르겠다만. 소드마스터라도 상관없다. 내가 침실에서 죽은 걸 발견한다면 모든 기사가 너희 둘을 잡으려들 테고, 너희는 내 어머니가 그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최후를 맞이하게 해줄 거다.”
결국 여기서 엄마 찬스를 쓰네.
마마보이 새끼를 참교육할 때가 왔다.
“로이, 미안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다.”
그 말과 함께 나는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방금 로이에게서 깔끔하게 벗긴 얼굴가죽이 내 손에 쥐여져 있었다.
그리고…망설이지 않고 그 얼굴가죽을 내 얼굴에 덮었다.
“무, 무슨 짓이냐?”
“주인님?”
셰릴마저도 내 기이한 행동에 의아해하지만, 나에게는 익숙한 일이다.
인피면구(人???).
사람의 얼굴가죽으로 만들어진 가면이란 뜻으로 무협지에서는 종종 나오는 물건이다.
웹소설광이었던 나는 이전부터 인피면구에 대해서 상당한 호기심이 있었고, 여러 번의 연습을 통해서 이를 만들어내는 기술을 익혔다.
원래라면 추가적인 약품 처리로 오랜 기간 쓸 수 있는 상등품의 인피면구를 만들 수도 있지만.
어차피 이런 불쾌한 놈의 얼굴을 오래 쓸 이유가 없기에 난 별다른 처리 없이 그대로 인피면구를 뒤집어썼다.
“어때? 로이 같아?”
“보기가 좀 불편하긴 하지만 얼굴은 감쪽같네요.”
“몸은?”
“몸은 주인님 몸이죠.”
그래, 맞다.
얼굴은 감쪽같지만 체형은 속이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체형 차이가 두드러진다면 어쩔 수 없으나, 로이와 나는 키가 비슷하다.
환골탈태 이후 나는 몸이 급격히 커졌고, 로이도 원래 피지컬 하나만큼은 봐줄 만했기 때문.
우드득 우드득
일부러 뼈를 탈골시켜서 체형을 바꾸었다.
팔이 짧아졌고 어깨도 좁아졌다.
로이가 약간 거북목이라 목뼈 쪽도 교정했다.
수많은 인간을 작업하면서 인체의 세부적인 구조를 외과 의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취할 수 있는 수법이다.
얼굴가죽까지 뒤집어쓰고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는 내가 지독히도 싫어했던 둘째 형의 모습이 그대로 비춰 보였다.
몸을 돌리자 일그러진 표정의 로이와 너무 놀라서 몸이 뻣뻣이 굳은 셰릴이 있다.
“어때? 감쪽같지?”
“완전 똑같아요. 주인님.”
목소리까지 일부러 로이를 흉내 냈으니 들킬 일은 없다.
완벽하게 그와 똑같은 모습을 한 채 로이에게 다가가서 눈을 마주쳤다.
이젠 얼굴가죽이 벗겨져서 누가 로이인지도 모를 지경.
“대체 어떻게…”
“내가 말했잖아. 네 모든 걸 뺏어주겠다고.”
난 내가 할 말은 지키는 편이거든.
이제 네 모든 걸 뺏어주마.
네가 내 모든 걸 강탈하려 했듯이.
이것이 바로 인과응보라는 거다.
물론 난 여태껏 살면서 인과만 쌓고 응보를 당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인과를 쌓지 않았지만 응보를 해버린 적은 많다.
뭐 그게 무슨 상관이랴.
그저 로이가 절망과 고통에 가득 차 죽어가는 걸 구경하면 될 뿐이다.
주저 없이 비수를 로이의 심장에 박아넣었다.
푸욱
“커헉!”
“로이, 짧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웠다. 저승에서 내가 백작가를 꿀꺽하는 걸 지켜보도록.”
바닥에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로이의 눈에서 점점 생명의 빛이 꺼져갔다.
그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한 단말마는 이 말이었다.
“넌…누구냐…”
그래도 죽기 직전이니 의문은 해결해주도록 하자.
심장에서 분수처럼 치솟는 피를 슬쩍 피하면서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사상 최악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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