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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4화 〉 내 매니저였다



〈 224화 〉 내 매니저였다

* * *

내 이마 위에 떠 있는 불길한 블랙홀을 보고 불안했는지 제임스가 나를 가리키며 명령했다.

“가서 저 녀석을 생포해! 팔다리는 없어도 된다.”

“으아아아!!”

거친 함성을 내지르며 다가오는 병사들, 언데드, 몬스터.

수적 우위를 믿고 덤비는 놈들.

나는 처음으로 다수를 향해 심상세계의 힘을 사용해보았다.

파아악!!

흑색의 연기가 마치 독무처럼 퍼지면서 나를 감쌌다.

일제히 날아오는 화살은 연기에 닿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저 연기의 정체가 뭐지? 그게 네 비장의 수냐?”

엄청난 방어력을 본 제임스가 심기불편한 목소리로 나를 매도했으나, 나도 이게 뭔질 모르니 지금부터 알아보려고 한다.

“한 번 네 멋대로 날뛰어봐.”

나는 처음 이 힘을 접했을 때부터 이것이 단순한 흑무(??)가 아니라 스스로 의지를 가진 무언가라고 느꼈다.

굳이 비유하자면 아귀(??)와 같이 굶주려 있는 맹수랄까.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고삐를 풀어주니 연기가 스스로 모양을 변형시켜 달려드는 놈들을 하나씩 감싼다.

“꺼져라!”

“이익!”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느낀 적들이 무기를 휘둘렀지만, 그때마다 슬쩍 흩어져 타격을 피해낸 암무(??)가 재차 녀석들의 몸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어어? 하, 하지 마!!”

첫 번째로 잡힌 놈이 비명을 질렀으나 뒤늦은 감이 있었다.

콰지직!!

섬뜩함 파육음 소리.

이어서 식사가 진행되는 듯한 우적거리는 소리.

10초도 채 지나지 않았다.

연기가 흩어지고 한 생명체였던 녀석은 말 그대로 ‘삭제’됐다.

“저게 뭐야?”

실로 두려운 장면이다.

내가 봐도 섬뜩했으니 당하는 사람은 오죽할까.

정체를 알 수 없는 심연귀(???)는 이제 넓게 퍼져 만찬을 즐기기 시작했다.

레벨이 1이든 30이든 정체불명의 힘 앞에서는 모두 평등했다.

사방에서 덮쳐오는 재해(災?)는 저항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콰직! 콰지직!!

여기저기서 씹고 씹히는 소리가 들렸다.

인지를 넘어선 광역기에 수적 우세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오히려 심연귀가 더 신나서 날뛰게 해줄 뿐이었다.

“이건 반칙이다! 어째서 마계 쪽에서는 저놈에게만 저런 사기적인 후보자 스킬을 준단 말이냐!”

제임스의 고함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했지만, 현재 나는 거기에 집중할 여력이 없었다.

지금 나는 계속해서 몸집을 불려가며 통제를 벗어나려고 하는 녀석에게 목줄을 채우느라 바빴다.

“크윽!”

크래스 폴리스를 건설하던 2년.

나는 그동안 수련을 계속하고 있었다.

육체적 수련도 꾸준히 했지만 주된 수련은 역시 심상세계 힘의 컨트롤이었다.

날마다 섹스하던 시간을 빼면 가부좌를 틀고 우주를 구경하곤 했는데.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이 난폭한 야생마를 진정시키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들어와라. 그 정도면 충분하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억지로 균열 안으로 심연귀를 집어넣으려고 했지만, 녀석은 저항하면서 그 와중에도 게걸스럽게 모든 것을 삼켜댔다.

인간만 삼키는 게 아니다.

몬스터와 언데드까지 긁어먹고.

생명체가 없으니 이젠 성벽의 돌과 바닥에 나 있는 민들레까지 씹어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왜 이 힘이 우주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유폐되어 있었는지 알만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삼키고, 부족하다면 자신 또한 잡아먹는 답이 없는 놈이었다.

저 안에 먹힌 놈들이 어떤 고통을 받게 될지는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주르르륵

과도한 정신력을 사용해서인지 코피가 흘러 앞섶을 붉게 물들였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놈은 이제 족쇄를 불편해하면서 나에게 이를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감히!!”

스텟 따위로는 진정시킬 수 없다.

어디까지나 영혼의 본질.

내면의 사악함.

그 누구보다도 깊고 끈적한 순수악으로 이 녀석들을 통제해야 한다.

심상세계에 들어가자마자 나 스스로를 매개체로 삼아 포식을 마친 심연귀를 끌어들였다.

이마 위에 갈라진 균열에서 소용돌이가 생기더니 강력한 흡입력이 발생했다.

파아아아!!!

흑무로 이루어진 심연귀는 오랜만에 맛본 자유를 포기하기 싫었는지 마지막까지도 거칠게 저항했다.

꿀렁대던 녀석은 한참을 나와 씨름하다가 균열 안으로 스며들었고 이때다 싶어 냉큼 대문을 닫았다.

“만만치 않구나.”

이마에 땀이 뚝뚝 떨어졌다.

심연귀 녀석들이 너무 제멋대로인 이유도 있었으나.

심상세계의 힘을 쓰자마자 안쪽에 웅크리고 있던 미지의 존재.

편의상 심연왕이라 부르는 존재가 나를 찾고 있음이 느껴져서였다.

이 힘은 어찌 보면 마약과 같았다.

한 번 쓰기 시작하면 머릿속에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되며 미칠듯한 쾌감에 사로잡힌다.

계속해서 힘에 중독되고 이 힘을 이용해서 최강이 될 수 있겠다는 유혹이 끊임없이 들었다.

혼란과 혼돈. 탐욕과 절망.

온갖 더러운 찌꺼기들이 나를 감쌀 때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나 또한 그들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내 위치가 심연왕에게 노출된다는 말이다.

이번에는 내 특유의 순수한 사악함으로 심연귀의 압박을 견뎌냈고 심연왕으로부터 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에도 이럴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분명한 건 심연으로 이루어진 블랙홀은 광활한 심상세계 속에서 내가 직접 선택했고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힘이란 사실.

벌써 방금 사용한 만큼의 심연력은 다음에도 손쉽게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

좀도둑이 도둑이 되고 도둑이 대도(大?)가 되는 건 한순간이다.

“너…정체가 뭐냐? 정말 나와 같은 악마후보자가 맞아?”

상념에 잠긴 나를 제임스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끄집어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주변이 초토화되어 있었다.

수많은 머릿수를 자랑하던 그의 부하들은 온데간데없었고 성벽도 한쪽이 완전히 무너져 있다.

“말도 안 돼! 이건 반칙이다! 같은 후보자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른 기술을 줄 수가 있어!”

“제임스, 침착하렴.”

역시나 첫째 엄마는 공황에 빠진 제임스를 빠르게 진정시키고 신중한 눈빛으로 나를 관찰했다.

“아무래도 후보자 스킬이 아닌 모양이야. 그리고 저 녀석도 낯빛이 좋지 않아. 저런 힘을 자주 꺼내쓰지는 못할 거다.”

사실에 근접한 추리를 해내는 계집.

누누이 얘기하지만, 후보자에 어울리는 사람은 바로 저 여자다.

“어머니의 말이 맞습니다. 분명 리스크가 있는 힘이지요. 하지만 당신의 부하들은 모조리 제압당했습니다. 이제 어쩌실 겁니까?”

“여기서 널 잡아버리면 모든 게 끝날 일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지.”

결국, 대장전을 신청한다.

진작에 이렇게 됐으면 좋았을걸.

꼭 수하 놈들이 다 당한 뒤에 나서는 건 저런 놈들 특징이다.

“자신이 있나 보군요.”

“너야말로 우리 둘을 상대로 이길 거라고 보니?”

아, 대장전이 아니었구나.

대놓고 다굴을 치겠다는 뻔뻔한 태도에 나조차도 순간 할 말을 잃을 뻔했다.

“치사하군요. 하지만 2대1 못할 것도 없습니다.”

“누가 2대1이래?”

그 말과 함께 제임스가 엄지와 검지를 입 속에 넣고 어딘가를 향해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익!!

부르자마자 베르너 성 꼭대기에서 뭔가가 날아왔다.

바다를 연상시키는 푸른 머리가 무척이나 예쁜 여인이었다.

하지만 머리색보다도 그 크기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굴곡진 몸매와 빵빵한 미드는 분명 성인에게서나 볼법하건만.

내 팔뚝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키와 등 뒤에서 파르르 떨리는 날개를 보니 누군가가 떠올랐다.

“푸루루?”

달걀인 줄 알고 루나의 자궁에 넣었다가 운 좋게 세상의 빛을 본 요정.

푸루루와 똑 닮은 여인이었다.

루나와 링링이 도맡아서 키우고 있다고 하던데.

관심이 없어서 2년 동안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른다.

“크아아아!!!”

근데 상태가 정상이 아닌 것 같다.

눈이 시뻘겋게 충혈돼서 머리를 붙잡고 있는 걸 보니 뭔가에 당한 건가.

“내 후보자 스킬 [테이머]로 붙잡아둔 전설의 종족이다.”

판타지아 대륙에 저런 종족이 있는지는 나도 몰랐다.

예전에 푸루루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 뭐든지 알고 있는 귀녀대원과 올리비아에게 물어봤었는데.

그녀들조차 정확한 답을 주지 못했으니 전설의 종족이 맞긴 하다.

“희귀한 건 알겠는데 그런 조그만 요정으로 뭘 하겠다는 거지?”

“큭큭큭, 넌 이 종족의 이름이 뭔지 아느냐?”

보통 저런 놈들은 내가 모른다고 해도 알려준다.

“아니. 잘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

“바로 페어리 드래곤이다. 무슨 뜻인지 알겠지?”

역시나 제 입으로 저 녀석의 정체를 나불댄다.

그나저나 페어리 드래곤이라니.

요정+드래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으나,

“변신해라.”

제임스의 한마디에 갑자기 커지는 녀석을 보고 이해하고 싶지 않아도 이해하게 되었다.

스스슷

어여쁜 여인 형태의 요정이 사라지고 어느새 그 자리에는 집채만 한 크기의 커다란 드래곤이 등장했다.

한눈에 봐도 단단해 보이는 몸통과 스치기만 해도 베일 것 같은 비늘.

태양을 가릴 법한 드넓은 날개.

찌르기와 휘두르기에 적합한 꼬리.

무엇보다 이마를 뚫고 우뚝 솟은 뇌기(?) 가득한 두 개의 뿔까지.

평상시엔 요정 모습인데 본체는 드래곤이라니.

판타지아 대륙은 양파껍질처럼 벗길 때마다 매번 새로운 게 나온다.

“캬오오오!!!”

웅혼한 울음소리가 베르너 성을 진동시켰다.

서 있던 땅이 흔들릴 정도의 진동이 발끝을 타고 심장까지 영향을 미치길래 황급히 내공을 올려 몸을 보호했다.

“확실히 대단한 생명체군. 저런 걸 어디서 구한 거지?”

“네게 알려줄 이유는 없다. 혹시 모르지. 순순히 항복한다면 알려줄 수 있을지도.”

“마음에도 없는 소릴.”

어쨌든 1대 2가 아니라 1대 3.

상황이 애매하게 되었다.

물론 셰릴을 위시한 부하들이 내가 성 안에 뛰어들자마자 달려오고는 있었지만.

심연귀에서 살아남은 몇몇 고렙 기사들이 마중을 나갔으니 시간이 좀 걸릴 듯하다.

“굳이 당해봐야 알겠다면 어쩔 수 없지.”

제임스 형의 양손에 날카로운 돌로 만든 창이 떠올랐고, 첫째 엄마의 옆에는 어둠마나를 사용한 검붉은 화염구가 떠올랐다.

이제 보니 첫째 엄마는 단순한 마법사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암계열 마법은 일반적인 마탑의 마법사는 사용할 수 없고 악마와 계약한 마녀만 쓸 수 있으니.

그녀가 비정상적으로 강했던 이유가 있었다.

“마녀였군.”

“새삼스럽게. 제임스의 마법적 재능이 누구 닮아서라고 생각한 거야?”

“네년이 아버지 몰래 바람피운 웬 놈팡이가 마법산 줄 알았지.”

“…곱게 죽고 싶진 않다는 말로 알아들을게.”

정말로 다굴이 시작되려는 낌새가 보이자, 나도 주저 없이 내 패를 모두 공개했다.

악마후보자 스킬

분신술 1개

일단 나와 동일한 스텟의 분신을 하나 소환해서 첫째 엄마에게 붙이고.

악마후보자 스킬

강림

바로 강림을 썼다.

이번에도 아유나가 나오진 않겠지.

상위서열 마왕의 등장 때문에 천마대전이 일어날 뻔했으니 이번만큼은 그보다 급수가 훨씬 낮은 마족이 나오리라 짐작된다.

쩌저저적!!

차원에 또다시 균열이 가자 제임스 모자(?子)가 내가 또 심연귀를 사용하는 줄 알고 잔뜩 긴장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건 정체불명의 흑색 연기가 아니었다.

늘씬한 몸매에 C컵은 충분히 될만한 풍만한 젖통을 자랑하며 나오는 보라빛 머리의 여인은 바로…

“새롬?”

내 매니저였다.

* * *



사상 최악의 주인공〈 224화 〉 내 매니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