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4 / 0923 ----------------------------------------------
3장
미국의 추가 파병군이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듣게 된 진우였지만, 이미 노예들의 파워 슈츠 업그레이드는 모두 끝내둔 상태였다.
하지만, 모두 일반적인 금속이나 재료를 사용한 탓에 방어력 개선과 내장 무기의 추가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진우는 노아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약간씩 모양이 달라진 노예들의 파워 슈츠를 보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나중에 레어 메탈이나 괴수의 껍질을 얻게 되면 제대로 업그레이드 해줘야지.'
그보다 중요한것은 손바닥 모양이 있는 패널이다.
혹시나 싶어서 자신의 손바닥을 올려보았지만 결론은 감감무소식.
한 눈에…아니, 누가봐도 살라딘의 유산과 관계가 있어 보이는 패널을 어떻게 해서든 작동시켜야만 했기에, 진우는 고민끝에 한가지 편법을 생각했었다.
패널을 분해하여 등록된 유전자 정보를 자신의 것으로 교체한다는 것이다.
패널의 껍데기 부분을 분해하여 안의 내용물을 차근차근 확인해나간 진우는, 이내 절망적인 메세지 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전자 정보를 바꾸기 위해선 생물학 지식 10 등급이 필요합니다.-
대체 그 살라딘이라는 놈은 뭐하던 작자란 말인가!
10등급의 염동력자인데다가 10등급 생물학 지식을 가진 과학자라고!? 뭐 그딴 개사기 캐릭터가 다 있단 말…….
…생각해보니 그 개사기 캐릭터중 하나가 자신이였기에 열폭하던 진우는 분노를 거기까지만 토해낼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는 패널에 사용될 유전자 정보가 들어간 손바닥을 찾아낼 궁리를 하고 있었다.
'사용도 못하는 아이템이 그냥 놓여져있을리가 없어. 분명히 상호작용이 가능한 무언가가 셋트로 존재하고 있을거야.'
아마 그 셋트는 최소한 살라딘의 연구실에는 없었을 것이다.
비록, 기술력이 낮다지만 쿠르드 독립군도 바보는 아닐거다. 분명히 연구실 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사용해서 이 손바닥 모양과 비슷한 것들을 찾아봤을 터.
그렇다면 지하드의 잔당들이 살라딘의 유산으로 향하는 마지막 열쇠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뜻인데…….
'더이상 이 땅에 남아있는건 의미가 없어.'
자신의 목적은 살라딘의 유산이지, 쿠르드 독립군과의 협력이 아니다.
더이상 빨아먹을게 없다는것이 판명된 이상, 그들과 더이상 관계를 맺는건 무의미하였다.
혹시나 몰라 노예들을 모아서 상황을 설명하니, 한 명의 반대 의견없이 전원 모두 그의 의견에 찬성하였다.
그녀들 또한 쿠르드 독립군과 더이상 깊은 커넥션을 만들어 두는건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어떻게 보자면 중동 국가 전체와 싸움을 거는듯한 모양새인데다 미국으로부터 적성 국가로 분류되어 있다.
이스라엘처럼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으며 최강의 국가인 미국을 등에 업고 있으면 또 모를까, 기술력도 낮고 물량으로도 밀리며, 유일하게 유리한 부분은 지리적 이점뿐이다.
선과 악을 따지기 이전의 문제인 셈이다.
모든 노예들의 의견 덕분에 자신의 판단이 이상한게 아니라는것을 확신한 진우는 파워 슈츠를 만들어달라고 사정 하면서 넘겨준 쿠르드 독립군이 바친 자원으로 수송용 트럭을 2대, 험비 1대로 만들었고, 이 때를 위해 '성능 시험을 하기 위한' 이라는 목적으로 상당한 양의 기름을 얻어뒀기 때문에 연료가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냥 가기엔 양심(?!)이 조금 찔리는지, 진우는 '시간과 예산을 조금만 더 주신다면' 스킬로 만들어진 5대 파워 슈츠를 만들어두었다.
거기다가 '갑옷 제작자' 라는 특성까지 더해서 거기서 소모되는 재료의 30%까지 절약하면서 최대한 알뜰하게 제작한 진우는 그것들을 자재를 모아두던 막사 안에다가 모아두었다.
아마 기지 안을 수색하다보면 알아서 발견하리라.
수송용 트럭 한쪽에는 모래 바람을 막아줄 막사와 자신들이 누워서 수면을 취할 수 있는 간이 침대를 챙기고, 다른 트럭에는 온갖 재료들을 모조리 챙겨두었다.
"주인님! 적재 끝났어요!"
이사 준비를 모두 끝낸 노아가 소리치자, 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패널을 가지고 수송 트럭의 운전석에 탑승하였다.
참고로 말하자면 진우와 노아가 각각 수송용을 하나씩 운전하고, 선두로 달리는 험비는 지도를 볼 줄 아는 페리샤가 운전한다.
마침 딱 이렇게 3명이 운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머지 인원은 각각 나뉘어 탑승하면서 기지를 버릴 준비를 마쳤다.
"뭐 안챙긴건 없지?"
"챙길게 있어야 챙기든 말든 하죠."
진우의 옆자리에 앉은 하린은 자신의 손을 펼치면서 대답하였고, 그는 자신이 생각해봐도 바보같은 질문이라고 생각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부우우우웅--!
험비가 선두로 나서자, 그 뒤를 이어 두 대의 수송용 트럭이 그 뒤를 따라갔고, 방금전까지 인덕 인기척은 완전히 사라지면서 진우가 설치한 터렛들만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로부터 십수시간이 흐른 후,
한치 앞만 겨우 보이는 어둠속에서 삼태극이 임시로 사용한 기지에서 갑작스럽게 사격 소리가 울려퍼졌다.
총 소리와 함께 폭발음 또한 계속해서 울려퍼졌고, 완전히 잠잠하게 되었을땐 기지 전체는 진우가 설치한 터렛이 모두 파괴된 상태였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이 기지에서 사이클론과 레드 토이가 나왔다고 하지 않았어?"
군인스러운 짧은 헤어스타일의 아프리카계 흑인이 이상하다는 듯이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그 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그와 같은 의견이였다.
"어디서 비밀이 새어나갈리가 없는데 이 상황은 뭐야!?"
모히칸 스타일의 머리를 기른 난잡한 분위기의 백인 남자도 거기에 호응하듯이 투덜거리고, 그들의 다른 동료들도 기지를 확인해봐도 대충 만든듯한 5개의 파워 슈츠와 자신들이 파괴한 자동 터렛이 전부였다.
이들은 미국에서 파견한 X-Force의 대원들로, 아직 활동 영역이 명확하지 않은 스펙터보단 확실하게 위치가 판명된 레드 토이와 사이클론을 처단하는 작전을 수행하고자 어둠을 틈타 기습 공격을 가한 것이다.
이 작전은 칼 소장과 5명의 대원들로만 이루어진 작전으로, 맥켄 중령조차 '만약' 이라는 이유로 이 작전 회의에는 낄 수 없었다.
어쨌든간에 전원 S랭크 이상의 이능력을 가진 정예 요원들로만 이루어진 기습 작전이였는데, 처리해야 할 대상이 없어졌으니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의 대장인 브레이브 워리어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대원들을 향해 명령 하였다.
"우리의 작전이 어디론가 세어나갈리가 없다. 아마 우연찮게 이 기지를 버려야만 하는 이유가 생겼고, 우리들은 재수없게 비워진 기지를 공격한것에 불과하겠지. 기지를 제대로 다시 한번 수색한다."
그의 지시에 다른 대원들도 수색 방향을 잡으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기지 내부에서 이어진 타이어 자국이 기지 밖으로 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방향은 쿠르디스탄이 아닌 이라크 서부. 게다가 이미 최소 10시간 이상이 지났다는것을 알게 되면서 추적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물론, 그들의 이능력을 사용하여 쫓아간다면 따라잡을 순 있지만, 너무 급하게 간다면 적과 조우할때는 이미 상당한 체력이 소모된 상태일테고, 체력을 최대한 보존한채로 따라가면 날이 밝으면서 기습으로서의 메리트가 사라지고 만다.
결국 레드 토이와 사이클론을 기습 공격하여 처리한다는 임무는 뜬금없이 모습을 감추면서 실패하게 되었다.
이 부분은 진우 일행에게 운으로 작용하였는데, S랭크 이상으로 이루어진 5명의 이능력자 팀에게 기습받았다면 아무리 진우가 있더라도 초기에 상당한 피해를 받았을 것이다.
아마 이능력이 없기에 가장 전투력이 낮은 페리샤가 1순위로 사망하였을 확률이 높았으리라.
만약, 그렇게 됐다면 X-Force의 요원들 또한 진우의 분노를 받아 잔인하게 전멸당하였을테니, 어찌보자면 양쪽 모두에게 행운으로 작용되었을지도 모른다.
--------
그러한 사정을 알기엔 이미 멀리 가버린 진우 일행은 밤이 되자, 천막을 설치하여 바람을 막고 간이 침대로 어느정도 푹 쉴 수 있었다.
아침을 적당히 때운 일행은 다시 원래의 차량으로 돌아가서 계속하여 이동을 하였다.
"그건 그렇고 요즘 얼굴이 꽤나 밝아진것 같은데."
"그래보이시나요?"
전날에 트럭을 몰면서 잡담을 나눴을때도 느꼈지만, 요즘 하린의 모습은 뭔가 큰 장막같은게 걷힌듯이 얼굴 자체에서 빛이 나는것만 같았다.
"게다가 뭐랄까…예전과 달리 이능력의 힘이 더 쎄졌다고나 할까나? 아마 그 힘을 개방했다면 너를 산채로 붙잡는건 아무리 나라도 힘들었을거야."
"당연히 주인님 덕분이죠."
"응? 내가?"
진우는 자신이 그녀에게 응원이라던가 뭔가 했었나 싶어서 자신이 했던 말들을 곰곰히 생각해봤지만, 결과는 전무였다.
"만약, 주인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저는 영원히 빌딩의 숲인 서울에서 인명 피해를 계산해가며 힘을 쓰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을거예요."
잠시 목을 쉰 그녀는 다시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젠 달라요. 사람을 구해야 하는 영웅이 아니라 제가 원하는 만큼 마음껏 힘을 써도, 사람들이 휩쓸려도 상관없는 입장이 되었으니까요."
그는 하린이 가진 억압이 중동에 온 일을 계기로 완전히 풀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자로서 이런 말을 한다는건 충분히 이상하다는건 알지만…저를 능욕해주셔서 감사해요, 주인님."
"훗. 그거 다행이군. 난 또 네가 사람들을 못 죽인다고 징징 대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심했거든."
진우는 자신의 노예로 삼는 여성들은 모두 자신의 행보에 도움이 될만한, 능력있고 가치있는 이들로만 골라 뽑는다.
단지 예쁘기만 한 애물단지는 1회용 군것질일뿐, 도움이 될만한 능력이 없다면 가차없이 한 입만 먹고 버린다.
솔직히 말해서 하린은 얼마전까지 한국을 지키던 정부 소속의 영웅이였기에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에 반발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그 굴레를 벗어나게 되면서 오히려 전보다 능력이 상승된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요즘 리엘루스랑 같이 잘 노는것 같던데?"
"예. 리엘루스도 타인의 손에 잡혀와서 타인의 손에 의해 마음대로 농락당하던 입장이였으니까요. 자유가 속박받는 삶을 살아야 했던 제가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나 봐요."
단지 그 외에도 뭔가 다른 이유도 있는것 같지만, 확실한건 노아도 꺼리는 리엘루스의 본모습을 꺼리낌없이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정도로 사이가 좋아진것 같았다.
주로 리엘루스가 툴툴거리듯이 단답형으로 대답하고, 하린이 이것저것 설명해주거나 질문하는게 전부지만.
"그런데 주인님, 전부터 궁금했었는데 주인님의 목적은 무엇이예요?"
"내 목적?"
"예. 이실리아 님에게 들었는데, 주인님은 평범한 세계 정복이 아닌, 그 이상의 무언가를 노리는것 같다고 하시더라구요."
'…이거 노예들간의 대화도 어느정도 신경 써야 하나?'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노예들끼리 그런 대화가 오간다고는 상상도 못한 진우는 앞으론 노예들과의 대화에 좀 더 신경 쓰기로 결정하며 입을 열었다.
"맞아. 단지 세계를 파괴한다거나 '평범하게' 정복하는거라면 다른 수단을 사용했겠지."
어차피 노예들도 조만간 알게 되야 할 사실이였기에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였다.
"내 목적은 단 하나. 영웅도, 악당도,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국가들이 쓰러뜨려야 하는 최종 보스다."
"…예……?"
영웅과 국가까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악당들까지라니?
"한마디로 지구에 존재하는 유일한 절대 악이랄까. 나는 어릴때부터 이상하게 게임을 하면 주인공들에게 이입하는게 아니라 주인공이 싸우는 악당들에게 감정이 잘 이입되더라구. 내가 악당이라면 이렇게 했을텐데, 내가 저 보스라면 좀 더 다른 방법을 강구했을텐데, 라는 식으로."
그 때, 과속 방지턱처럼 살짝 솟아오른 봉우리 때문에 속도를 살짝 늦추고, 덜컹 하며 차체가 위아래로 들썩인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계속 악당들에게 이입되다보니까 계속해서 멍청한 계획을 세우다 뒤지는 게임의 보스들을 한심하게 여기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거야. '다른 악당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내가 그 놈들도 다 복종시켜서 최강 최고의 악당이 되고 싶어.' 라고 말이야. 크크큭. 그땐 나도 참 어렸지."
그 때가 13살이였다고 말한다면 하린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만 해도 꽤나 경악한듯 싶기에 그 이상의 짖궂은 말은 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살라딘의 유산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얻은 후에는 지금까지와 달리 제대로 된 영웅들과 악당 녀석들과 다툼을 벌이게 될거야. 그러니 제대로 각오해두라고."
"평범한 세계 정복이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악의 정점에 군림한다……. 오히려 이 쪽이 주인님다워서 오히려 위화감이 느껴지질 않네요."
지금까지 진우라는 인간을 겪어온 하린은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였고, 그렇게 잡담을 나누며 세계 정복을 하면 한국 땅을 자신에게 달라고 졸라댔다.
어째서냐고 물어보니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을 모조리 잡아 족쳐버릴거라는 폭력적인 발언에, 그녀 또한 자신과 사상이 비슷해지는 것을 느끼며 즐겁게 수락하였다.
그 모습은 마치 일본의 거품 경제 시절때 원조교제 하는 여고생이 집한채 달라며 조르고, 그것을 웃으며 가볍게 받아들이는 중견 기업 사장처럼 승낙하는 분위기랄까.
쿠르드 독립군을 버린 삼태극 일행의 이라크 서부를 향한 이동은 계속 되었다.
============================ 작품 후기 ============================
얻을거 다 얻고 튀는 진우 일행.
이제 불가사리 회수와 X-Force와의 대결, 그리고 페리샤에게 던져진 떡밥 회수와 살라딘의 유산까지 얻으면 끝나니까 꽤나 걸릴것 같지만, 생각보다 그리 길게 질질 끌 생각은 없습니다 -_-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