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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붉은색의 탄력있는 피부와 눈의 흰자 부위가 검은색을 띄고 있지만, 거기에 대조되는 금색의 묘안을 가진 여성은 울퉁불퉁하게 생긴 초록색의 과일을 씹어먹으며 입을 열었다.
"기이하군. 지구로 보낸 첨병들이 슬슬 연락을 할 때가 되었건만, 어째서 아직도 소식이 없는거지?"
칼리 제국의 여제는 딱히 외모 단장에 관심이 없는듯, 검은 머리칼을 뒤쪽으로 대충 넘기면서 지구로 보낸 첨병들의 연락이 없다는 것에 의아함을 나타냈다.
자신이 보낸 다섯 첨병들은 지구의 생태계에 살아갈 수 있는 존재들로 이뤄져 있지만, 그 이전에 칼리 제국에서도 중위권의 이능력자들였기에 아예 연락이 끊긴것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들 수준이라면 작은 변방 행성 따위의 전사들에게 전멸당할 수준은 아니였기 때문이다.
"…감찰 부장."
"예, 부르셨습니까."
잠시 무언가를 생각한 여제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누군가의 직위명을 말하자, 그녀의 머리 위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정보부 녀석들을 족쳐보도록. 이렇게까지 연락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예."
감찰 부장이라는 직위를 가진 자는 짧게 대답하였으나, 인기척이 사라지는 낌새도, 아주 미세하게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십여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철퍽-
갑작스래 천장에서 점성높은 액체가 떨어지더니, 키가 130cm로 작고 뭉툭하며, 여기저기 반짝이는듯한 슈츠를 착용한 외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보부 쪽이 정찰선에서 온 보고를 막고 있었습니다."
"어째서?"
제국 내의 모든 일을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칼리 제국은 정보부가 왜 그런짓을 하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 말로는 여제님께 보여드릴 수 없는 내용이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중이였다고 합니다."
"호오. 나에게 보일 수 없는 내용이라? 더더욱 보고 싶어지는구나. 재생하도록."
제국 정보부는 여제를 위해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공개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정보는 당연히 호기심이 생길 수 밖에 없었고, 과연 어떤 영상이길래 반쯤 기대하였다.
작은 키의 감찰 부장은 검지 손가락 크기의 물건을 꺼내들면서 무언가를 만지작 거리자, 홀로그램 형식으로 정찰선에서 보낸 보고의 내용이 나타났다.
-됐어? 이제 말하면 돼?-
=예. 제대로 작동중입니다.=
영상에서는 만능 순양함, 쿠오젝 급에서 보낸 인간에 대한 정보와 일치한 생김새를 지닌 지구인이 익숙해보이는 머리를 깔고 앉아있었다.
-할로? 안녕하신가, 칼리 제국의 여제님. 나는 지구의 조직인 삼태극의 수장, 치우라고 한다.-
꿈틀-
작은 키의 감찰 부장은 천박하다고 밖에 표현이 안되는, 치우라고 자신을 소개한 지구인의 말투에 자신도 모르게 꿈틀거렸지만, 여제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있었기에 주제넘게 나서지 않았다.
-니가 이 새끼랑 저 새끼를 지구로 보낸 장본인이라며?-
치우는 '이 새끼' 부분에서 자신이 깔고앉은 쿠르트의 머리를, '저 새끼' 부분에선 모스크바를 초토화 시킨 후에 정찰선으로 복귀한 외계인의 시체를 가리켰다.
-감히 이 몸이 정복하려는 지구를 냠냠 하려는 버르장머리가 영 거시기 하더구만. 니가 얼마나 살았는진 몰라도 세상엔 상도덕이라는게 있는 법이다. 내가 먼저 침발라놨는데 뒤늦게 냠냠 하겠다는 심보는 니 어미 뱃속에서 배워쳐먹은 버르장머리냐?-
꿈틀-
그리고 다시 한번 자신도 모르게 꿈틀거린 감찰 부장.
그는 왜 정보부가 이 내용을 숨기고 영상 조작을 하고 있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자신같아도 감히 거대한 제국을 만들어낸 여제께 이딴 말투를 사용하는 영상을 보고해야만 한다면, 이걸 이대로 내놔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될 정도의 내용이였으니까.
하지만, 모든 정보를 여제를 위해 모으고 보고해야 하는 정보부다.
겨우 이정도 수준의 모욕이라면 잔뜩 쫄긴 했어도 일단 내놓긴 내놓았을 것이다.
그들이 여제에게 이 영상을 내놓지 못한 이유는 뒤로 갈수록 비난과 욕설의 강도가 점점 강해졌기 때문이다.
감히 여제께 상도덕이 어쩌고 저쩌고 설교조로 말을 늘어놓던 치우란 지구인은 한참을 투덜거리다가 다음 내용으로 넘어갔다.
-'이 새끼' 입에서 나온 칼리 제국의 전력은 나조차 살짝 찔끔할 수준인건 분명해. 하지만, 칼리 제국의 주인이 '여제' 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내 승리라고 소리치고 말았지.-
칼리 제국의 전력에 쫄았으면서 여제 폐하의 소식을 듣자마자 내 승리라고 외쳤다?
이건 마치 100명의 일반 병사에겐 겁먹었으면서 1000명을 상대할 수 있는 전사를 상대로 승리를 장담하는것과 같지 않은가?
감찰 부장은 치우의 의자용으로 목이 잘려나간 쿠르트를 향해 눈쌀을 찌푸렸다.
대체 여제 폐하를 얼마나 대충 설명했길래 저런식으로 반응을 한단 말인가.
-일단 듣기론 칼리 제국에서 가장 강한 이능력자라고 소개하긴 했지만…결국 '여제' 라는것은 암컷이라는 뜻이잖아? 단순히 육체적인 강함을 따지자면 암컷도 수컷보다 더 강해질 수 있지. 하지만, 암컷은 결국 암컷일 뿐이다.-
이쯤되면 이 지구인이 무슨 말을 하는건지, 이제는 아예 감조차 잡히지가 않는다.
수컷이니, 암컷이니, 마치 짐승들을 구분하는 것처럼 말하는 치우의 모습은 지구인들은 여성, 남성을 암컷, 수컷으로 따지는게 아닐까, 라는 착각이 일어날 정도다.
-즉, 암컷이 아무리 강해봤자 수컷이 일단 가랑이를 벌리고 쑤셔 박으면 게임 셋! 이라는 말씀이지! 크크큭!-
불안하다.
감찰 부장은 자신의 모든 감이 '이 놈이 더이상 말하게 내버려두면 안된다' 라고 비명을 질러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제께서 영상에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영상쪽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으니, 자신이 함부로 영상을 꺼버릴 수도 없는 상황이였기에 답답해 하면서도 움직일 틈을 찾지 못하였다.
-이 자리에서 네 년에게 선전포고를 하…아니, 예언을 하지! 나는 네 년을 깔아뭉개고, 입에서 짐승처럼 울부짖을때까지 교미하고 교미해서, 네 년을 내 노예로 만들거다! 이 몸의 씨앗을 잉태하게 만들고, 네 년을 노예로 앞장세워서 칼리 제국까지 모조리 먹어치워주지! 어째서 이렇게 호언장담하냐고? 암컷이 아무리 강해봤자 수컷을 이길 수 없으니까! 수컷이 일단 쑤셔박으면 암컷은 자지러지게 울부짖으며 받아들일 수 밖에 없으니까! 이건 지구, 아니, 전 우주 공통의 법칙이다! 크하하하하핫!-
미쳤다.
자신은 지구인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 지구인은 명백하게 미쳤다.
감히 은하 전체를 정복하고 있는 위대한 전사이자 지배자인 여제께 한다는 말이 '암컷은 수컷을 이길 수 없다' '네 년과 교미해서 내 씨앗을 잉태시키겠다' '네 년을 노예로 삼아서 칼리 제국을 삼키겠다' 라는 망언 연타!
처음엔 여제 폐하의 위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쿠르트의 모습에 눈쌀을 찌푸렸으나, 치우란 놈이 지껄이는 대사에 의하면 쿠르트가 제대로 설명했음에도 단지 여제 폐하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인 자신이 이겼다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것을 알 수 있었다.
-음……. 이정도로는 이 몸의 위대함이 잘 표현이 안되는데……. 이럴줄 알았으면 한 놈이라도 몸 성히 죽일걸 그랬네.-
치우가 예전에 지구의 세력중 정무맹의 대사부들을 도발하고자, 부부관계인 대사부들의 딸의 모든 관절을 박살내고, 기절한 그녀를 이용하여 협박 영상을 보냈던 것을 당연히 모를 수 밖에 없는 감찰 부장은 저 놈이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려고 몸성한 시체를 찾는가, 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네 년이 선택할 수 있는건 2가지다. 첫째, 지구쪽으로 아예 시선조차 돌리지 않는다. 이걸 선택한다면 네 년은 진짜 현명한 년이라고 칭찬해주마. 감히 위대한 수컷을 미천한 암컷의 몸으로 덤비겠다는 생각을 일찌감치 포기한 그 영리함을 소중히 여기도록.-
이제는 입조차 제대로 열리지가 않는다.
너무나 허무맹랑해서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그는 여제 폐하를 두고 고개를 돌리는 짓은 하지 못하였다.
-둘째, 이건 진짜~ 아주아주아주 지이이이인~~~짜! 무식한 방법인데……. 지구를 공격해오는 것이다. 일단 지구로 왔다 하면 네 년은 내 노예가 될 운명이 될테니, 네 년의 보잘것 없는 제국이 무너지고 싶지 않으면 첫번째를 선택하는게 신상에 이로울거야. 나는 지금까지 나와 비슷하거나, 혹은 더 강한 암컷들을 상대로 언제나 이겨왔고, 가랑이를 벌리게 만들어 앙앙 거리게끔 쑤셔박아왔지. 만약, 두번째를 선택하겠다면 몸을 깨끗하게 정돈해두는게 좋을거다. 그래야 따먹기 좋을테니까 말이지! 크하하하핫!-
부들부들부들……
감찰 부장은 당장이라도 이 지구인놈을 난도질하고 싶어서 온 몸이 분노로 부들부들 거렸지만, 영상의 존재인 치우를 공격해봤자 안개를 때리겠다고 주먹을 휘두르는것과 같았고, 무엇보다 여제가 가만히 있었기에 주제 넘게 나설 순 없었다.
-아, 그리고 올 때 메로나.-
뚝.
그 대사를 마지막으로 영상은 끝이 났다.
"이…이 미개한 지구인놈이……!"
"풋…푸훗…푸하하하하!!"
"폐…폐하……?"
그 때, 감찰 부장의 눈에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지금까지 언제나 무료함으로 얼룩져있던 여제의 얼굴에서 웃음이 터져나온 것이다.
그 어떤 강적과의 싸움도 여제 앞에선 재롱 잔치나 마찬가지였고, 강적과의 싸움을 즐기는 성격인터라 제국에서 웃기는 재주가 뛰어난 이들도 여제의 입꼬리조차 올리지 못하였다.
그래서 제국민들과 전사들은 '여제 폐하는 태어나서 단 한번도 웃은적이 없다' 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미소를 짓지 않았고, 감찰 부장도 여제 폐하의 주변에서 오랫동안 보좌하였으나 이토록 웃는 모습은 생전 처음이였다.
"대단하다! 대단하구나, 지구인! 내가 태어난 이후로 지금까지중에서 가장 재미난 선전 포고였도다! 푸크크크큭!-
여제는 조금도 기분이 상하지 않았는지, 치우를 향해 순수한 웃음만을 터트렸다.
"지금까지 그 누가 감히 내게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미개하고 제국에 대해서 모르는 변방의 행성이라지만 나를 상대로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용기지!"
그렇게 몇분동안 미친듯이 웃어재끼던 여제는 그동안 웃지 못한 것을 한꺼번에 쏟아냈는지, 크게 한 숨을 내쉬면서 숨을 골라냈다.
"지구를 공격해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더 생겼도다. 저 치우라는 인간과 반드시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싶구나."
"폐…폐하. 저런 미개한 야만인 따위를 폐하께서 직접 만나시다니요?"
"아니다. 나를 직접 만나고서도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 원래는 천천히 지구를 침략한 함대를 준비하려 했는데 생각을 바꿔야겠군. 지금 당장 지구의 대기에서 활동이 가능한 전사들을 소환하도록. 중력권 밖에서의 궤도 폭격으로 끝내면 재미 없으니까 함대의 무장은 방어 목적으로 최소한만 탑재한다."
"예!"
왜 지구를 침공할거면서 아직도 함대를 만들지 않았냐, 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만큼 칼리 제국이 지구를 우습게 보고 있다는 반증이다.
지구 따위를 공격하고자 미리 부지런하게 함대를 꾸며둘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감찰 부장은 여제께서 내리신 명령을 이행하고자 통신을 연결하며 어디론가 뛰어갔고, 그와 동시에 여제 주변에서 수많은 인기척들이 사라졌다.
여제 주변에는 그녀의 신변 보호 보단, 그녀의 명령을 곧바로 이행하고 전달할 심부름꾼들이 존재하고 있었기에,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인기척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것이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인기척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움직인 소리, 그리고 모습은 단 한 명분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치우…라……. 아직 우주에 너같은 존재가 남아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너를 상대하면 최소한 조금이라도 지금의 이 무료함이 사라지겠지. 최대한 많은 기회를 줄터이니 나를 강제로 깔아뭉개서 범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거라. 쿡쿡쿡!"
지구는 문명이나 과학 자체는 칼리 제국보다 낮다는건 알고 있지만, 분명한건 사회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짐승같은 마인드를 지닌 남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꽤나 신기한 일이였고, 무엇보다 그 누구도 자신의 강력함에 성욕은 커녕, 감히 손가락 까딱이는것 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는데도 자신에게 씨앗을 잉태시키겠다는 치우의 발언은 지금까지 무료했던 칼리 제국의 여제에게 강렬한 호기심을 가져다 주었다.
"생각했던것보다 지구 정복은 꽤나 즐거운 유흥거리가 될 것 같군."
자신을 직접 만난다면 치우란 작자는 과연 어떻게 대꾸할까?
자신의 강력함을 직접적으로 느낀다면 저 자신만만해 하던 얼굴과 말투가 얼마나 형편없이 일그러질까?
자신에게 감히 그런 말을 사용한 치우와 하루 빨리 대면하고 싶어진 여제는 그가 자신이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받을만한 가치를 지닌 전사이길 간절히 기원하였다.
그렇게 해서 칼리 제국의 움직임은 예언보다 더 빨리 움직이게 되었다.
치우라는 이레귤러의 존재로 인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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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기
...슬슬 이미지 세탁을 하고 싶어서 최대한 깨끗한척을 했지만 독자들이 '개구라치면 손목 날라간다' 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이래뵈도 나는 작가 후기글에다가 거짓말을 한적이 없었는데도 신뢰도가 0%다.
나는 어디서부터 잘 못 한 것일까.
PS : 아...연참하면 사람들이 연참을 계속 더 원할텐데...그래도 가끔씩은 이런날도 있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