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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미국 동부와 서부에서 하나씩 등장한 행성 포식자의 숙주는 빠른 속도로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영국이 라운드 나이츠 전원을 출동시켜 초전박살을 냈다는 보고를 듣고선 별거 아니라 생각했었던 군부측은 아무리 무기를 쏟아부어도, 폭격을 가해도 멀쩡하게 살아 움직이는 행성 포식자의 모습에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였다.
거기다가 이능력자에 대한 저항력까진 개체들이 나오면서, 전황은 압도적으로 불리해져갔다.
물론, 몸이 불이나 물로 만들 수 있다거나, 화염을 다룰 수 있는 염화계 능력자같은 특수계 능력은 통하였지만, 그렇지 못한 일반적인 능력자들은 거의 손도 못대면서 일방적인 공격을 당해야만 하였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위기가 SF물 영화마냥 외계 괴물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이 미국 역사상 최악의 위기는 누군가에게 기회이기도 하였다.
쾅!
"어째서인가요! 어째서 출동을 금지하는거죠!"
네크로맨서를 처리하기 위해 오하이오 주에 도착한 이벨은 자신의 출동뿐만 아니라, 오하이오 주 지부의 이능력자들까지 멈춘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듯이 항의를 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출동을 막은 장본인인 그리핀은 화상 연결된 통신을 통해, 그녀와 얼굴을 마주하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정부는 우리측의 인원들을 공격하면서 체포하려 하고 있네. 그 문제로 히어로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이들이 환멸감을 느끼면서 하나둘씩 이 바닥을 떠나고 있지.-
"하지만!"
-처음엔 나도 계속해서 정부의 압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을 도우면 우리의 진심을 알아줄거라 생각하고 있었네. 하지만, 정부측에 삼태극의 입김이 닿게 되면서 그들의 전력을 강화시켜주는 이유가 뭐라고 보는가?-
이렇게까지 말하면 바보라도 알 수 있다.
"우리들의…공멸을 원하는거겠죠……."
그렇다.
공멸까진 무리더라도 서로의 전력을 깍아먹기만 하면 삼태극으로선 어떤 방향으로든 이득이다.
거기다가 삼태극이 어디까지 정부측에게 힘을 더해줄진 몰라도, 그들이 강화시켜준 전력에는 반드시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어떤 수단을 사용하고 있을것이 분명하다.
-중간 간부들의 보고에 의하면 이딴식으로 대우받을 줄 알았으면 히어로고 뭐고 안했을거라며 불만을 토해내는 이들의 숫자가 많아지고 있다 하네. 더이상 그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순 없는 노릇이야. 더러운건 알고 있지만…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부측에서 우리와 손을 잡을 일은 까마득한 일이 되어버리겠지.-
"……."
알고는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이상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외계 생물체를 처리하는데 힘들다는 것을 깨닫은 정부측에서 펜타곤과 손을 잡고자 할 것임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녀의 선한 성품은 '그 때' 까지 죽어야만 하는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었다.
그리핀 또한 그녀의 그런 성품을 알고 있었기에, 약간 침울한 음성으로 끝을 맺었다.
-이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내가 지도록 하지. 욕을 하겠다면 언제든지 받아주겠네.-
그렇게 말을 끝낸 그리핀은 통신을 끝냈고, 이벨은 힘없이 주저앉으며 한 숨을 내쉬었다.
'삼태극…그들만 아니였다면……!'
삼태극, 그리고 치우만 아니였다면 자신들은 큰 고난을 겪었겠지만 칼리 제국을 상대하기 위해 모두가 힘을 합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 의해 최초의 예언은 뿌리부터 어긋나게 되어버렸고, 그만큼 마음 고생이 심한 이벨은 그레이스의 예언을 뒤틀리게 만든 장본인인 치우를 향해 나아갈 길이 없는 분노를 표출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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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펜타곤이 아직도 출동하지 않은 것으로 예상됩니다."
"헤에, 그렇단 말이지?"
지하드의 함교에서 무장을 마친채로 함장석에 앉아있던 진우는, 왜 펜타곤의 히어로들이 보이지 않냐는 자신의 질문에 답해준 페리샤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미국과 펜타곤을 영원히 갈라놓을 순 없습니다. 그들도 바보는 아니니 칼리 제국이 직접 모습을 드러낸다면 서로의 가치관 차이는 접어두고 힘을 합칠게 분명하니까요. 문제는……."
"이 외계 괴물놈들 때문에 서로 손을 잡는 시기가 더 빨라진다는 건가?"
"예. 비록, 영국에서는 퇴치당했다지만, 미국에 모습을 드러낸 놈들은 아직까지도 살아남아 빠른 속도로 괴물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이능력에 대한 저항력을 갖춘 괴물들까지 튀어나오고 있다고 하니, 예상만큼은 아니더라도 양쪽 모두 상당한 피해를 입은 후가 되겠지요."
그 때, 페리샤의 계획이 궁금해져서 함교로 모였던 노예들 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릴리야였다.
"하지만 듣자하니 세력 확대 속도가 평범치 않던데? 거기다가 이능력에 대한 저항력을 갖추고 있다면 최악의 상황엔 우리들로서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잖아?"
그녀의 말대로였다.
만약,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면서 미국이 오히려 괴물들에 의해 잡아먹히게 된다면, 그 후폭풍은 고스란히 삼태극이 받아들여야만 한다.
삼태극 내에서는 신호기의 증강현실을 통해 일종의 뉴스같은 것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데, 그 뉴스같은 것은 마스지드가 전 세계의 정보를 모아서 분류해놓은 것으로, 삼태극의 누구라도 이 정보를 통해 세계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괴물들의 속도가 너무 빨리 증대되어가는 것을 느낀 릴리야의 의문은 다른 노예들도 가지고 있었기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가 흘렀다.
"미국의 저력은 우습게 볼 일이 아닙니다. 미국인 자체의 숫자를 충분히 줄여놓아야 나중에 일이 더 편해집니다. 막말로 중국처럼 시민들에게 총 쥐어놓고서 우리와 싸우라고 등떠밀면 순식간에 수백만의 보병이 태어나니까요. 그나마 중국은 계속된 계책과 함정에 빠뜨려서 전차, 다연장 미사일, 헬기 같은 무기의 숫자를 줄여놨기에 그나마 상대할 수 있는 편이지만, 미국에는 아직도 수많은 무기들이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소수인 우리들로선 저들의 무기가 하나라도 더 감소하는쪽이 더 이득입니다."
즉, 페리샤는 미국의 시민 하나하나 조차 총만 쥐어주면 보병으로 태어난다는 주장아래 민간인들의 숫자를 철저히 줄여놓을 계획인 것이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손쉽게 처리한 외계 괴물을 미국이 애먹는 이유도 조금은 어렴풋이 알것도 같습니다. 영국이 이 괴물들을 너무 단시간에 박살내서 객관적인 전투 데이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제 예상대로라면 의외로 이 괴물들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게 될겁니다. 미국이 이 사실을 알기 전까지 최대한 놈들의 몸집을 불려놔야만 합니다. 그래야 공략법을 알아도 전력의 손실을 조금이라도 더 넓힐 수 있으니까요."
"그 예상이 뭔가요?"
영국의 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실리아는, 왜 영국이 미국보다 더 빨리 외계 괴물들을 박살냈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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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슬럼가의 골목 거리.
일반적으로 슬럼가는 빈민들이 모여사는 지역이다보니, 빛이라곤 조금도 들지 않는 좁은 골목과 어지러운 내부가 일반적이다.
투쾅!!
"끄아아아악!!"
"켐리!"
그리고, 그 슬럼가 안에서 폭발음과 함께 누군가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젠장! 제기랄!!"
"끄으으윽!"
켐리라는 동료의 오른쪽 발목이 폭발에 의해 터져나가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한 흑인 남성은, 자신의 발목을 부여잡으며 괴로워하는 동료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모든것을 털어 지혈부터 하기 시작하였다.
네크로맨서가 남긴 흔적을 쫓아서 슬럼가 골목길까지 들어온것은 좋았다.
"어지러운 골목길을 이용하여 숨었다면 100% 확률로 함정이 있다는 뜻이군. 다들 조심해라."
문제는 그 함정.
일반적인 함정이라 하면 적외선 탐지기, 피아노 줄을 이용한 트랩, 이런식으로 어떤 물체를 만지거나 닿으면 함정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그렇기에 이능력자들은 초감각을 이용하여 함정이 있을법한 장소를 탐색한 뒤에 전진하였으나, 조심하라면서 팀원들에게 주의를 하던 남자는 갑자기 일어난 폭발에 의해 머리통이 날아가고 말았다.
대체 어떤식으로 함정을 운용하는건지, 그 매커니즘을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은, 부상자와 부상자를 돌봐야 하는 이들을 뒤로 하고선 몸이 단단한 신체 강화자들을 앞세워서 네크로맨서의 흔적을 찾아다닐 수 밖에 없었다.
지잉-!
순간, 앞서서 나가던 신체 강화자는 꺼림칙한 검붉은 빛에 둘러쌓였다.
'환영!'
이 함정은 상대를 깜짝 놀래켜서 다른 방향으로 도주하게 만들어, 또다른 함정에 빠뜨리는 연계라 생각한 신체 강화자는 오히려 자세를 굳히면서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검붉은 빛 안에 있었다.
슈웅-
그렇게 잠시간의 시간 후, 빛은 아무렇지 않게 사그라들었다.
"앞쪽에 함정이 또 있을지 모르니 다들 주의…헉!?"
검붉은 빛에 휩쌓였던 남자는 뒤를 돌아보면서 함정의 탐색을 요청하려 하였지만, 뒤에 있는 존재들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뒤를 지켜주던 동료들 대신, 하나같이 피와 살점이 뒤엉켜 괴물같은 존재들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르으윽!"
"끼케에엑!"
괴물들은 자신을 향해 괴성을 내지르며 다가왔고, 그 모습에 남자는 자신이 손에 쥐고 있던 군용 나이프를 힘있게 휘둘렀다.
푸욱!
"키에에엑!"
"크캬아아!"
"으아아!!"
가까이 있던 괴물의 목덜미를 찔러서 상처를 크게 만든 남자는 혼자 남았다는 당혹감과 괴물들이 자신을 향해 공격해오면서 고립되었다는 공포감에 비명을 내지르며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가하였다.
하지만, 괴물들은 영리했다.
남자가 휘두르는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다가, 두 마리의 괴물이 달려들면서 남자의 팔과 어깨를 잡아 강제로 꿇리려 하였고, 남자는 보기만 해도 토악질 나오는 괴물들에게 붙잡히면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미친듯이 저항하였다.
"어이! 대체 왜 그래!"
"칼 놔! 칼 놓으라고!"
"놔! 저리 꺼져! 으아아아아!!"
붉은 빛에 휩쌓였던 남자를 지켜보던 동료들은 갑자기 미친듯이 괴성을 내지르며 아군을 공격해오는 모습에 당황하면서 그를 제압하려 하였다.
동공은 마구잡이로 흔들리고, 입은 거품을 물면서 미친듯이 칼을 휘두른다.
누가봐도 미쳐버린듯한 모습.
"젠장! 이대로라면 네크로맨서에게 끌려다닐 뿐이야!"
한 염동력자는 이 좁은 골목길을 오가는건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는지, 공중으로 날아오르면서 따로 이탈하였다.
하지만,
쨍그랑!!
푸컥!
"께헥!?"
하늘로 날아오르던 염동력자는 창문을 깨면서 날아온 일본도에 목이 꿰뚫린채로 벽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었다.
카창!
촤아악!
그리고 뒤이어 창문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고, 그대로 일본도의 손잡이를 붙잡고 힘있게 아래로 그어내면서 지상으로 향하였다.
도윤의 한 팔로서 활약하기 위해 함께 하고 있었던 전력, 혈강시가 된 아이리였다.
목 아래로 몸통이 그어지면서 피와 잘려진 내장과 함께 추락한 아이리의 뒤로,
쾅! 쾅! 쾅!
도윤이 만들었던 플레시 골렘들이 정육점에서 사용할법한 도살용 칼을 들면서 아래로 추락해왔고,
"카아앗!"
"젠장! 뒤에도…크헉!"
마법의 힘으로 기척과 모습을 감추고 있던 아수라가 뒤쪽에 위치한 이능력자가 능력을 발동하기도 전에 주먹으로 후려치면서 순식간에 난전으로 돌입하였다.
============================ 작품 후기 ============================
음...확실히 요즘 진우가 전투에 나서지 않다보니 진우의 활약상을 보고 싶은 분들이 많더군요.
원래는 좀 더 RTS적인 부분을 강조해서 스토리를 나아가려 했지만, 노선을 변경해서 짧고 굵게 가도록 하겠습니다.
하긴, 고렙들 싸움 보다가 쪼렙들 싸움 보니까 좀 심심하기도 하겠네요.
아니면 진우는 전투를 하면서 꼭 똘추짓을 하다보니 정상적인 전투에서 흥분을 느끼지 못하실지도 모르구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