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화 〉 많이 드십시오 어머니
* * *
그 일이 일어나고 며칠이 지났다.
캘리알 성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로이 백작이 어린 나이에 광증이 왔다느니 여자 하나에 홀라당 넘어갔다느니 말이 많았다.
저택의 분위기는 더했다.
오늘도 저택의 마당에는 시체가 놓여있었는데, 지하 감옥에 갇혀있는 베르너 전 백작 부인을 사면해달라고 왔다가 철퇴를 맞은 놈들이었다.
“바퀴벌레들도 아니고 계속 잡아도 끝도 없이 나오는군.”
“그래도 이제 잡을 놈들은 다 잡은 것 같아요.”
아닌 게 아니라 확실히 저택에 와서 탄원하는 사람들의 머릿수가 확실히 줄었다.
첫날에 저택 앞에서 몰려든 인원만 수십 명인데 오늘은 겨우 세 명뿐이다.
“셰릴, 이러다 너 암살이라도 당하는 거 아냐?”
현재 셰릴은 캘리알의 요녀라고 불리면서 이미지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어제는 밥에 벌레가 나왔다가 실수라고 하는 하녀의 혀를 뽑아버렸다.
아마 하녀가 넣은 건 아니었을 것이다.
멍청이도 아니고 그랬다간 자신이 독박을 뒤집어쓰니 말이다.
다른 놈이 하녀가 한눈파는 사이에 몰래 넣었겠지.
하지만 한눈을 팔았다는 것 자체가 책임감이 없었다는 뜻이니 본보기로 처벌했다.
“벌레라니 정말 치사한 놈들이죠.”
독약이 아니라 벌레라는 게 더 역겨웠다는 셰릴의 말이다.
켈리알 성의 인간들도 셰릴이 왜 필요한지는 인지하고 있어서 죽일 수는 없고 이런 식으로 압박을 했다.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지.”
내 말에 셰릴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그녀의 침실에는 아이스박스가 아직도 놓여있었다.
며칠 동안 하녀에게서 얼음을 받아서 주기적으로 냉동실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던 아이스박스.
거기 안에는 로이를 해체한 부산물들이 가득했다.
한 손으로 아이스박스를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어머, 백작님? 여긴 무슨 일로?”
“잠시 셰릴과 이곳에서 놀기로 했다. 그녀가 알고 보니 음식 솜씨가 뛰어나다는 말을 들어서. 그러니 주방을 모두 비워라.”
“하지만…”
“안 비워? 10분 줄 테니 싹 비워놔.”
백작이 비우라는데 어쩌겠나.
까라면 까야지.
일부러 식사 시간이 아닌 한적한 시간대에 방문했기에 셰프를 비롯한 주방 인원들이 모두 빠졌다.
“들어오지 마라. 나와 셰릴의 시간을 방해한다면 엄벌에 처할 거다.”
불과 며칠 전에 혀가 뽑혀 죽은 하녀를 본 고용인들은 겁을 먹고 얼씬도 하지 않았다.
기사들도 반쯤 포기했는지 우리에게 딱히 접근하지 않았다.
덜컥
아이스박스를 열자 그렇게 온도를 신경 써서 유지했는데도 맛이 가기 직전인 부위들이 있었다.
“셰릴, 필요 없거나 이미 썩어버린 부위들은 버린다.”
주방 한편에는 음식물을 버려두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에 돼지 창자부터 시작해서 온갖동물들의 신체 부위를 쌓아뒀길래 로이 녀석의 몇몇 부분들을 갖다버렸다.
막상 뒤섞이니까 로이와 동물들의 사체가 자연스럽게 섞여서 구분이 불가능했다.
“우욱!”
셰릴이 갖다버리다가 구역질이 났는지 그대로 토를 해버렸다.
하긴, 고결한 여기사가 언제 인간 백정이나 할 짓을 해보겠는가?
그동안 내 행보에 적응이 되었던 계집인데도 새로운 영역을 맛보니 또 신선한가 보다.
“셰릴, 역겨운가?”
“아, 아뇨. 주인님이 하시는 일이니까 괜찮아요.”
애써 안색을 가라앉히는 셰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미 내 소유가 되고 정신적으로 굴복한 년이라도 이런 행동 하나에 또 마음이 바뀔 수 있는 노릇이니 배신의 가능성을 진단하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행하는 습관의 일종이다.
“로이 그놈은 왜 주인님의 심기를 거슬러 가자고. 정말 한심해.”
셰릴은 정말로 징그럽다는 생각만 할 뿐 그 이상의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사람은 오래 사귀면 변한다는 말이 셰릴을 보면 딱 맞다.
근묵자흑이라고 이미 셰릴과 메이같이 평범한 기사이고 순한 하녀들도 나를 닮아 도덕관이 많이 망가졌다.
반대로 생각하면 나도 요년들을 만나서 변한 점이 없잖아 있었다.
적어도 이전 세계에서 모든 여자를 작업 대상으로 여겼는데 판타지아 대륙에서는 메이와 셰릴 등 내 아내들에 한해서만큼은 작업할 생각이 없었다.
나름 아끼는 장난감이라는 게 생긴 셈이다.
“셰릴, 지금부터 내가 달라는 양념장과 조미료들을 가져와.”
“네.”
즐거운 요리 시간이었다.
물론 셰릴은 양념장과 조미료들을 찾지 못해서 사실상 내가 혼자 다 만들어야 했다.
캘리알 저택의 주방은 상당히 넓었고 지구에서 못 보던 것도 많아서 조리하는데 나도 조금 헷갈리긴 했지만 원래 고기만 좋으면 어지간하면 실패하지 않는 법이다.
“이게…뭐죠?”
“만두야.”
아마 판타지아 대륙에는 만두가 없을 거다.
대충 밀가루로 반죽한 뒤에 로이 녀석을 나무절구로 잘게 빻은 다음 각종 조미료와 양념, 야채를 안에 넣고 오븐에 쪘다.
오븐에 나온 최종 결과물은 영락없는 찐만두였다.
“겉보기에는 그럴싸하네요.”
“맛도 있을 거야. 하나 먹을래?”
셰릴은 서둘러 뒷정리를 하러 갔다.
이것까지 먹이면 그렇지 않아도 요새 제정신이 아닌 셰릴이 완전히 맛이 가버릴 게 분명하기에 그만뒀다.
만두를 들고 지하 감옥으로 가는 길.
입구를 지키고 있던 기사들은 내가 물과 음식을 들고 방문한 걸 보고 얼굴이 환해졌다.
“백작님! 부인께 가시는 겁니까?”
“그래.”
“잘 생각하셨습니다.”
“응. 어머니 상태는 어때?”
“별로 좋지 않습니다.”
“알았다.”
감옥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어두침침했다.
나는 일부러 셰릴을 계단 쪽에 숨겨두고 나만 먼저 모습을 보였다.
둘째 엄마의 경계심을 낮추기 위해서였다.
“어머니, 저 왔습니다.”
기사들이 배려해준 건지 지하 감옥에는 다른 죄수 없이 둘째 엄마 홀로 있었다.
오늘로써 투옥된 지 3일째.
그녀는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있어서인지 상당히 초췌해 보였다.
그런데도 아들이 모습을 보이자 눈을 반짝이며 애써 떼지지 않는 입술을 떼며 나에게 다가온다.
“배…백작…오셨습니까…”
그래도 자기 아들은 끔찍이 생각하는군.
솔직히 첫째 엄마나 둘째 엄마나 모성애만큼은 의심할 이유가 없다.
내가 이 집구석 막내아들이 아니었고 단순히 기사거나 고용인이었다면 둘째 엄마를 존경했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둘째 엄마는 자식을 낳고 나이가 많은데도 철저한 관리를 통해서 빼어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인데도 상당히 글래머한 젖통과 빵빵한 엉덩이를 자랑하고 있고, 무엇보다 나잇살을 상징하는 뱃살이 전혀 없다.
치렁치렁한 금발에는 흰머리 하나 섞이지 않았고 눈주름이 전혀 없었다.
농사짓는 농노녀들은 저 나이쯤 되면 폭삭 늙어서 60살이 넘어 보일 때도 있는데, 저 어머니는 아무리 높게 쳐줘도 20대 후반이다.
여기까지가 둘째 엄마가 예쁘다는 말이었다.
가족 관계가 아니었다면 바로 자빠트려서 먹고 싶을 만큼 말이다.
하지만 저 여인은 결국 나에게 이빨을 드러냈다.
나를 죽이고 셰릴을 육변기 만들기 위해서 크래스 장원에 첫째 엄마와 함께 독약을 보냈다.
정말로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거의 확신하고 있는 상태.
혹시 모르니까 마지막 확인을 해보려고 한다.
“많이 힘드십니까?”
“백작, 지금이라도 날 풀어주세요. 셰릴이 우리에게 필요한 여인은 맞습니다. 이 어미도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든 사이좋게 지내볼 테니…”
“풉!”
아차, 나도 모르게 비웃어버렸다.
난 둘째 엄마의 성격을 안다.
셰릴과 사이좋게 지낸다고?
사이좋게 지내는 척을 하는 거겠지.
“죄송합니다, 어머니. 너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셔서요. 그냥 솔직히 말해주세요. 일단 물 좀 마시세요.”
물을 건네자 둘째 엄마가 황급히 다가와서 주전자째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2L에 달하는 물로 목을 축이고 나서야 조금 생기가 도는 목소리로 그녀가 입을 열었다.
“백작, 제 의견을 들어보세요. 셰릴이 젊고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유능하기도 하지요.”
“잘 알고 계시는군요.”
“그러나 결국은 몬두르의 핏줄이라는 건 달라지지 않아요.”
역시나 이 엄마는 세릴의 아버지를 잊지 않고 있다.
록펠을 통해서 들어보니 그녀의 친정댁 오빠들이 기사단장에게 목숨을 잃은 모양이다.
로이 녀석의 삼촌들 말이다.
“어미의 제안을 잘 들어보세요. 지금은 셰릴에게 잘해주세요. 제임스를 물리칠 때까지요.”
어디까지 말하나 궁금해서 팔짱을 끼고 묵묵히 들어줬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백작 위를 공고히 다질 때쯤 그녀를 처리하는 겁니다. 독을 먹이든 무슨 수를 써서든 말입니다. 안타까운 죽음으로 포장하고 새로운 배필은 제가 셰릴보다 훨씬 좋은 영애로 골라드리겠습니다.”
내가 영 반응이 없자 불안했는지 그녀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백작, 잘 생각해보세요. 백작 위 승계를 확정 짓는 순간 백작의 가치는 엄청나게 올라갑니다. 심지어 북쪽의 거대도시도 생겼다면서요. 고작 내지의 기사 가문 딸내미로 만족하실 겁니까?”
“그 말은 다른 배필을 구할 수 있다는 말씀 같은데요.”
“당연한 말씀입니다. 바넨 후작가나 프리우스 공작가 쪽으로 줄을 댈 수도 있는 겁니다. 윌렛 왕국의 두 축이라 일컬어지는 두 가문 말입니다.”
바넨 후작가.
프리우스 공작가.
이런 소국에도 나름대로 실권을 잡은 가문이 있는 모양이다.
머리 한켠에 두 이름을 기억해두면서 계속해서 대화했다.
“이런 식으로 독을 먹여서 데이몬을 죽이려고 했었습니까? 셰릴도요? 크래스 장원 얘기하는 겁니다.”
로이가 독살 계획을 몰랐음을 확신했기에 은근슬쩍 떠보았다.
내 말을 듣는 즉시 눈동자가 커진 둘째 엄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도대체 그걸 어찌 안 겁니까?”
역시나 이 엄마 짓이었군.
뭐 이럴 줄은 알고 있었지만, 마지막 확인 과정이었다.
“셰릴이 알려주었습니다.”
“그럴 수도 있었겠군요. 하지만 백작,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깟 패배자 새끼는 제가 언제든지 죽일 수 있었습니다.”
“조금의 변수도 남기고 싶지 않은 어미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첫째 엄마도 이에 동참했습니까?”
자, 이제 이것만 확인하면 된다.
이게 둘째 엄마의 단독인지 첫째 엄마까지 같이 한 일인지 말이다.
“그 여자가 먼저 제안한 겁니다. 저도 딱히 손해는 아닐 거라 생각했고요.”
주동자 첫째 엄마.
공범 둘째 엄마.
로이는 몰랐고. 확인.
이런 말을 하면 웃길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버지를 제외하면 가족 중에서 로이 녀석이 가장 좋았다.
비록 셰릴에게 치근덕거리고 날 대놓고 무시하고 조롱했지만, 그래도 앞뒤가 다른 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눈앞에 이 역겨운 년처럼 뒤로 독약을 보내거나 첫째 엄마처럼 잘해주는 척을 해주진 않았단 이야기다.
현재 나에게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게 하는 여러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이 녀석에게 적어도 죽음을 허락해준 이유가 여기 있었다.
범죄사실을 자백했으니 이제 판결을 내릴 때다.
그 전에 배고플 테니 뭐라도 좀 먹이자.
“어머니, 새로운 결혼 얘기는 너무 앞서나간 것 같으니 나중에 생각해보겠습니다. 며칠 동안 밥을 먹지 않으셨으니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절 풀어주지 않을 생각입니까? 백작?”
“식사를 마치시면 풀어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계단에 숨어있는 셰릴에게서 로이만두를 받아서 쇠창살 사이로 집어넣었다.
“…처음 보는 음식이군요.”
“오랜 기간 굶은 사람에게 좋은 음식이라고 주방장이 추천해주더군요. 한 번 드셔보세요.”
로이의 모습을 한 내 제안을 거절할 리가 있나.
전 베르너 백작 부인, 이름 도로시.
망설이지 않고 아들의 피륙으로 만들어진 만두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아그작
우물우물
“어떻습니까? 맛있습니까?”
말이 필요 없나보다.
한번 음식물이 위장을 넘나들자 3일 동안의 공복이 체감되었는지 대답조차 하지 않고 엎드려서 만두를 흡입한다.
아그작 아그작
한동안 지하 감옥에는 어미가 그 아들을 씹어먹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중얼거렸다.
“많이 드십시오.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