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화 〉 실시!
* * *
둘째 엄마는 정말 잘 먹었다.
자신이 먹고 있는 고기가 제 자식으로 만든 음식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원래도 식탐이 없는 편이 아니었는지 고기 부스러기 하나 남기지 않았다.
“잘 먹었습니다. 백작.”
“맛은 어땠습니까?”
“맛있었습니다.”
제 아들이 맛있었다니 뭐.
“잘 드셔서 저도 보기 좋았습니다.”
“그보다 이제 저를 꺼내주시지요.”
그녀의 입가에 번들거리는 기름이 지하 감옥을 은은하게 밝히는 램프 빛에 반사되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지금이 타이밍이다.
셰릴도 이때다 싶어서 계단에서 모습을 보였다.
그녀의 모습을 보자마자 둘째 엄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쥐새끼처럼 숨어있었군요. 하는 짓이 제 아비와 다를 바가 없네요.”
셰릴도 패드립을 당했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크래스 장원에서 보내주신 독약은 잘 받았습니다. 하마터면 농노들의 씨받이가 될 뻔했죠.”
“아쉽네요. 거기서 씨받이가 되지 그러셨습니까? 제 아들 홀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던데. 혹시 이미 농노 놈들에게 당해서 기술이 좋아진 건가요?”
역시 아줌마가 작심하고 말하니까 그 수위가 보통이 아니다.
서로 이빨을 드러내고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둘을 보니 알겠다.
설사 로이가 죽지 않고 내가 죽었더라도 고부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을 것이고, 끝까지 거리를 좁히지 못하다가 공멸했을 게 분명했다.
“그만.”
내 말에 두 여자가 말을 멈추고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일단 아쉬운 게 많은 둘째 엄마가 창살 너머에서 나에게 사정을 했다.
“아들, 어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키워준 어미란 말입니다. 어찌 20년을 같이 살아온 어미를 배반하고 만난 지 하루밖에 안 된 저런 젊은 년을 택한단 말입니까?”
나름 애절하네.
내가 진짜 로이였으면 마음이 흔들렸을 수도.
하지만 난 로이가 아니니 별다른 데미지가 없다.
더 끌면 재미없어지니까 정체를 공개하기로 했다.
“참 이상하군요. 당신이 언제부터 절 20년간 키워줬다고요?”
“그게 무슨…”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 둘째 엄마에게 계속 말했다.
“사사건건 절 비난하고 조롱하고, 인간 대접도 안 해주셨죠.”
“백작?”
“자기 아들을 아끼는 마음 자체는 이해합니다. 당연하겠죠. 제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인데. 하지만 그렇다고 이복 아들을 죽일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닙니다.”
뭔가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하다고 여겼는지 그녀의 입이 다물렸다.
“사실 예전부터 궁금했습니다. 데이몬의 친엄마는 자기 방에서 갑자기 사라졌다면서요? 갑작스러운 실종? 그게 말이 된다고 보십니까? 그것도 당신 짓이겠지요. 아닙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예전부터 궁금해하던 질문이었기 때문.
하지만 입을 꽉 다물고 묵비권을 행사하기 시작하는 도로시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뭐, 말하려고 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물어볼 사람은 또 있으니깐요.”
“너 누구야.”
역시나 눈치채는구나.
모전자전이라고 죽기 전 자기 아들이랑 똑같은 말을 내뱉고 있다.
하지만 그 결말은 다를 거다.
로이 녀석에게는 적어도 안식을 줬지만, 이 나이 든 계집에게 똑같은 선물을 줄 생각은 없다.
“내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답해주는 게 인지상정.”
만화에서나 나올만한 대사를 하며 드디어 가면을 벗었다.
스르르륵
얼굴 껍질이 벗겨지면서 내 본연의 얼굴이 드러났다.
교정해놨던 골격도 다시 뼈를 맞춰서 다시 원상복구 해놨다.
이제야 내 몸을 찾은 것 같아서 개운했다.
그런데 눈앞에 둘째 엄마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너…너…뭐냐! 내 아들은! 내 아들은 어떻게 된 것이야!!”
잠깐 저년이 암퇘지처럼 꿀꿀대는 소리가 바깥의 호위에게 들릴 가능성을 점쳐봤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하 감옥은 계단 아래로 한참을 내려가야 했기에 청각이 예민한 사람이 아닌 이상, 들을 가능성은 없었다.
“어떻게 되긴.”
바닥에 쓰레기처럼 버려진 아들의 얼굴가죽을 들고 어미의 눈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이렇게 됐잖아? 눈 없어?”
“그, 그럴 리가 없다! 백작을 불러라! 감히 어디서 사생아 놈이 이런 장난질을 친단 말이냐!”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발악하는 계집년에게 냉혹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부르고 싶어도 못 부른다. 네년의 배 속에 있는 놈을 어떻게 부른다는 거냐.”
“…뭐?”
순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멈춰있는 여자에게 다시 한번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아까 먹었던 음식. 네놈 아들의 시체로 만든 음식이다. 맛있었냐?”
둘째 엄마의 눈빛이 크게 흔들린다.
그래, 아직은 현실 부정의 단계.
여기서 셰릴이 옆에서 거들어준다.
“죽기 전에 눈물을 줄줄 흘리는 꼴이란. 정말 꼴사나웠지요. 그런 놈에게 베르너 백작 가는 과분합니다. 역시 가주에 어울리는 사람은 데이몬 주인님뿐이예요.”
“그럴 리가…”
“창자의 절반은 상해서 버렸습니다. 그래도 간은 아직 싱싱해서 잘게 부숴서 넣었으니 씹는 맛이 있었을 겁니다. 뼈를 바르는 게 귀찮아서 대충 다 넣어서 구웠는데 씹다가 딱딱한 건 없었습니까?”
내 말이 끝나자마자 둘째 엄마가 엎드렸다.
입에서 토사물이 그대로 뿜어져 나왔다.
“우웨에엑! 우웨엑!”
평생에 한 번밖에 먹지 못할 저 아까운 만두를 토해버리다니.
둘째 엄마는 성격도 나쁘지만 음식에 대한 예의도 없는 여자다.
“별로 맛이 없었나 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게 다 장난인 거 안다. 백작을 불러라.”
영 못 믿는 거 같길래 다시 로이의 얼굴 가죽을 뒤집어썼다.
골격을 로이의 것으로 바꾸고 목소리를 변조했다.
내가 영락없이 로이의 모습으로 변신하자 둘째 엄마가 그대로 발작한다.
“아아악! 쓰지 마! 쓰지 말라고! 빨리 백작을 불러오란 말이다!”
“흐흐흐, 여기 있지 않습니까? 어머니, 당신의 백작이 여기 있습니다.”
“사생아 놈아! 당장 내 아들을 불러오란 말이다.”
“제가 백작입니다. 어머니가 기억하던 그놈은 바로 저기 있지 않습니까?
바닥에 토해놓은 부침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너무 자극이 심했던 걸까?
둘째 엄마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계속해서 현실을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다…그럴 리가 없다고…그럴 리가…”
난 저 상태를 안다.
내심 마음 한구석에는 이렇게 됐다는 걸 이해하는데 또 그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다.
저런 년들이 나중에 정신분열증을 겪고 미쳐버린다.
하지만 난 둘째 엄마가 오래오래 건강한 정신으로 살길 원하기에 감옥 안으로 들어가서 그녀의 뒷목을 쳤다.
퍼억
실신한 그녀가 눈을 까뒤집고 쓰러졌다.
친엄마도 아닌 계모의 정신건강까지 생각해 주다니.
정말 이런 아들 어디 가서 못 찾는다.
“셰릴, 받아라.”
기절한 둘째 엄마를 공 던지듯 던졌지만 셰릴도 워낙 스텟이 높았기에 무난히 잘 받았다.
로이 녀석과 둘째 엄마를 처리했으니 이곳에서의 은원은 얼추 끝낸 셈이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저년을 데리고 크래스 폴리스로 복귀해.”
“주인님은요?”
“나는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
여기서 셰릴과 갈라서기로 했다.
그녀에게 명령했다.
“가서 군사를 일으켜라. 뉴몬 성부터 점령해.”
둘째를 처리했으니 이제는 첫째를 처리할 시간이다.
이미 폴리스의 전력은 육림대와 귀녀대 같은 정예부대들을 빼놓고서라도 백작가 전체와 맞붙어도 밀리지 않을 수준이다.
“드디어 움직이는군요.”
“그래, 할 수 있으면 베르너 성까지 진격해라. 나는 이곳에서 몬두르 성을 처리하겠다.”
나는 캘리알 성의 전력으로 몬두르 성을 함락시키고 폴리스의 전력으로는 베르너 성을 압박하겠다는 맨투맨, 아니 캐슬투캐슬 전략을 펼칠 계획이었다.
“지휘권은 너에게 맡기마. 마녀와 몬스터 전력이 노출되지 않는 선에서만 움직이도록.”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 여자는 어찌할까요?”
어깨에 매달려있는 둘째 엄마를 가리키는 셰릴.
빵빵한 엉덩이와 출렁대는 젖가슴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저 정도면 따먹을만한 여자다.
“너는 어쩌고 싶지?”
“로이처럼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습니다.”
아직 셰릴은 순진하다.
때로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있는 걸 모른다.
특히나 아들을 잃은 저년이 앞으로 사는 게 사는 게 아닐진대.
죽이는 건 그녀를 편안하게 해줄 뿐이다.
“TS창관으로 보내. 팔다리와 혀를 잘라서 자살을 막아라.”
“…존명.”
내 의도를 파악한 셰릴이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둘째 엄마는 팔다리를 잘려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로 수없이 몰려드는 크래스 폴리스 남자들에게 보지 뚫리는 신세가 될 것이다.
인간 남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는 고블린과 오크들도 저년의 자궁을 무참히 망가트릴 게 분명하다.
보짓값조차 받지 못하고 평생 육변기로 쓰이다 죽을 운명이겠지.
사실 저 운명은 셰릴과 메이의 운명이었는데, 인과의 화살이 데이몬이라는 역풍을 맞고 되돌아가서 본인에게 꽂히는 순간이었다.
“무리하지는 마. 다른 놈들은 몇 명이 죽던 상관이 없지만 내 여자들은 죽으면 안 돼. 한 명이라도 죽으면 너에게 책임을 물을 거야.”
“알겠어요. 서방님.”
“그럼 움직이자.”
감옥 안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방향을 정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환한 빛이 나와 셰릴을 비췄다.
셰릴의 어깨에 기절한 채로 매달려있는 둘째 엄마를 본 기사들이 대경하며 나에게 말했다.
“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비켜라! 어머니가 위독하시다!”
셰릴이 전력으로 달려서 저택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이미 바깥으로 나가는데 필요한 준비는 어제 다 해두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록펠을 비롯한 중진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나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백작님,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어머니가 감옥에서 지낸 삼일 동안 지병이 도지셨는지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지셨다. 마침 크래스 폴리스에 용한 의원이 있다 해서 셰릴이 직접 어머니를 모시고 폴리스로 복귀했다.”
머리가 있다면 이게 말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 거다.
당연히 기사들이 아우성을 쳤다.
“아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 아닙니까? 저택에 주치의도 있으신 분입니다. 어찌 그러실 수가 있습니까?”
“난 셰릴을 믿는다. 그녀는 어머니를 잘 치료해서 다시 캘리알 성으로 데려올 것이다.”
“아니…”
“뭘 자꾸 아니아니거려. 저세상에서 아니거리고 싶어?”
기사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것보다 모두 회의실로 모여. 중대 발표가 있으니까.”
“……”
아직도 녀석들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움직이질 않길래 검을 뽑았다.
스르릉
“해보자는 거냐?”
“…아닙니다.”
“모여라.”
어차피 로이 녀석에게 충성을 바친 기사들을 내 쪽으로 돌릴 생각은 없었다.
이런 전력들은 최대한 빨리 처분하는 게 좋을 일이다.
모두가 모인 회의실.
소식을 들은 기사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있었고, 회의실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유일하게 밝은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쩝, 쩝쩝. 야, 이거 맛있다야.”
지구로 치면 꽈배기 빵 같은 음식이었다.
손가락에 묻은 설탕을 쪽쪽 빨면서 말했다.
“나만 먹기 좀 미안하네. 빵 먹고 싶은 사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하긴 몸 쓰는 기사들이 이렇게 달콤한 거 많이 먹는 것도 좋지 않다.
“베르너 전 백작부인께서는…”
“그 얘기는 그만.”
아직도 둘째 엄마 얘기를 꺼내네.
어차피 그년은 이제 농노와 평민, 몬스터에게 가리지 않고 보지를 헌납할 테니 귀족으로 대우할 필요도 없다.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면 될 일이다.
“내가 너희들을 소집한 이유를 말하겠다. 지금부터 전 병력. 몬두르 성을 향해 출격한다. 실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