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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8화 〉 진짜 어머니처럼 말이다



〈 228화 〉 진짜 어머니처럼 말이다

* * *

붉은 머리에 밀가루를 바른 듯한 창백한 살결.

나이에 맞지 않게 주름살 하나 없이 20살이라 해도 믿을 만한 피부.

왜소할 뿐 아니라 병약하기도 해서 남자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체형.

무엇보다 어딘가 멍하지만 또 뇌쇄적인 미모.

나는 첫째 계모가 성적(??)으로도 제법 상등품임을 인지하고 나도 모르게 씩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말해서 저 정도면 내 거대한 좆으로 휘둘러도 아깝지 않을만한 여자지만.

아쉽게도(?) 내게 근친 취향은 없다.

건드렸다간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판타지아 대륙 전체가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꿩 대신 닭이라고.

건드릴 순 없어도 괴롭힐 방법은 많다.

특히 나는 저년처럼 앞에서는 도도한 척하고 뒷구멍으로는 온갖 파렴치한 짓은 다 저지르는 자존심 덩어리 계집을 한두 번 상대해본 게 아니다.

“어머니, 할 말 있으십니까?”

그래도 법적 어머니이니 존칭은 써준다.

그리고 존칭을 써주는 게 오히려 이 여자에게는 더 굴욕일 거다.

“당연히 있지. 네 망나니 같은 성격에 베르너 백작가는 10년을 채 못 갈 것이다. 그리고 네가 악마와 결탁했다는 사실 또한 언젠가 전 대륙인이 알게 될 거야. 너는 홀리엔 법국뿐만 아니라 전 대륙의 용사와 성녀들에게 토벌당하고 역사상 최악의 악인으로 기록될 거다.”

충혈된 눈으로 나에게 저주를 퍼붓는 첫째 엄마를 보면서 나는 약간 소름이 돋았다.

그녀가 무서워서 소름이 돋았다는 말이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꽤 정확해서였다.

“어머니, 당신 말이 하나 빼고는 다 맞습니다.”

갑자기 내가 그녀의 말을 긍정해버리자 말싸움이라도 이기려던 첫째 엄마가 멈칫했다.

“뭐라고?”

“나이가 드니까 귀가 안 들리십니까? 하나 빼고 다 맞다고요.”

나는 묶여있는 그녀 앞에 쪼그려 앉아서 손바닥을 폈다.

그리고 손가락을 일일이 하나씩 접으면서 상세히 설명했다.

“첫째, 베르너 백작가? 10년이 아니라 즉시 무너트릴 겁니다. 어차피 아버지를 제외하고 전부가 날 무시했던 가문은 하루라도 빨리 없어지는 게 낫습니다.”

난 첫째 엄마의 눈동자가 이렇게 큰지 오늘 처음 알았다.

여태껏 가주 승계를 위해 싸워왔는데 내가 너무 쿨하게 포기해버리니 의아해하는 거다.

“베르너 영지는 크래스 폴리스를 이어서 제2의 자유도시로 거듭날 겁니다. 전 작위 대신 자유도시 연합장을 맡을 거고요. 연합장은 당신들처럼 혈족 승계가 아닌 투표 승계로 할 생각입니다.”

그래도 나름 죽기 전에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아왔으니 기본적인 정치 구조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갑작스러운 변화는 다른 세력들의 견제를 받을 위험이 있지만.

난 힘이 세니까 거슬리는 놈들은 치우면 된다.

고민 끝.

“두 번째로 제가 악마와 결탁했다는 사실 말입니다. 언젠가는 제 쪽에서 먼저 알릴 생각입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음지 세력들이 홀리엔 법국의 입김이 강하고 용사와 성녀들의 무력에 두려움을 느껴서 고개를 처박고 있죠. 하지만 제가 선두에 나서서 깃발을 세우면 알아서 들어올 세력들은 많습니다.”

나는 가주 승계전에 뛰어들기 전에 소피아를 통해서 홀리엔 법국의 지하 감옥에 마녀들이 상당히 많이 갇혀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녀들을 제외하고서도 음지에는 빛의 질서에 불만을 가진 존재들이 항상 있으니.

그들에게 아주 자그만 불씨만 제공할 수 있다면 굳이 내가 더 뭘 하지 않아도 활활 타오를 거다.

“마지막으로 세계 최고의 악인으로 기록될 거라고요? 첫째 형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악마후보자들의 최종목표가 바로 그겁니다. 추하게 패배했으면서도 제 목표가 이루어질 거라고 덕담을 날려주시니 이거 몸둘 바를 모르겠군요.”

결국 그녀의 주장 중에 현실성 없는 건 내가 토벌당한다는 말.

그것 하나뿐이다.

왜냐하면 난 성녀나 용사 따위에게 토벌당할 정도로 약하지 않으니까.

내 말을 들은 첫째 엄마는 화가 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실소를 지으며 나를 비웃었다.

“넌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윌렛왕국의 귀족들이 네가 그 짓을 하는 걸 두고 보겠니? 게다가 우리 뒤에 갈리아 제국의 실권자 피에른 대공까지 있는 건 알고 있고? 심지어 그의 아내는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성녀야.”

어쩌라는 건지.

“장담컨데 넌 얼마 가지도 못할 거란다. 네가 크래스 폴리스라는 도시를 키울 수 있었던 것도 네가 백작령 안에 그 짓을 했기 때문이야. 이상한 짓을 했어도 어차피 가문 안의 일이라 여긴 거지.”

계속해서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런데 네가 가주 승계인으로 확정이 나고 그 이상의 것을 탐하려고 한다? 윌렛 왕국의 귀족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며 우리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던 피에른 대공이 사정을 알아보려 할 것이다. 제국의 조사관이 파견되면 네가 악마와 결탁한 사실이 드러나는 건 순식간이야.”

패배한 주제에 기세등등하게 소리치는 첫째 엄마의 말은 아예 근거가 없진 않다.

그래서 더욱 저년만큼은 죽이지 않고 살려서 절망의 순간을 보여주고 싶었다.

“셰릴.”

“네, 주인님.”

아까부터 첫째 엄마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은발의 여기사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런 셰릴을 바라보다가 묶여있는 첫째 엄마의 양 어깨선을 손으로 짚었다.

“여기, 그리고 여기.”

그리고 연상 특유의 농염한 허벅지의 절반 부분을 또 손으로 짚었다.

첫째 엄마는 자기 신체에 내 손이 닿자마자 밧줄에 묶인 채로 버둥거렸다.

“어딜 만지는 게냐? 아무리 그래도 너와 나는 모자(?子) 관계다. 정말 짐승 새끼가 따로 없구나.”

“여기, 마지막으로 여기.”

개소리는 말끔하게 무시해주면서 셰릴에게 말했다.

“내가 정확하게 어디 짚었는지 기억해?”

“물론입니다.”

“그럼 뭐해? 잘라.”

쿨하게 말하고 몸을 돌리자 등 뒤에서 들리는 첫째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 아무리 그래도 난 귀족이고 네 어머니다!”

“어떤 어머니가 아들에게 독약을 보내? 너 잘 걸렸다.”

셰릴이 이때다 싶어서 검을 뽑아서 망설임 없이 달려든다.

그리고 베르너 성을 가득 울리는 여인의 처절한 비명.

“아아아아아악!!!”

서걱서걱

작정하고 덤벼든 셰릴은 그녀의 사지를 한 번에 잘라줄 자비 따윈 베풀지 않았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내가 하던 것처럼 세심하게 첫째 엄마의 가녀린 양어깨와 허벅지를 조금씩 잘라나갔다.

왼쪽 어깨 1cm 정도 잘랐다가 오른쪽 허벅지를 1cm 자르고.

왼쪽 무릎뼈를 툭툭 건드렸다가 오른쪽 어깨에 칼을 쑤셔 넣는다.

“아악! 아아악! 아악! 그만! 그만해!”

첫째 엄마가 온몸을 퍼덕거리며 고통에 겨워하는 모습이 물 밖에 나온 물고기 같아서 내 눈을 즐겁게 했다.

입술을 어찌나 꽉 깨물었는지 입가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눈에는 피눈물이 흐르고 있다.

게다가 잘린 절단면에서 흐르는 상당한 출혈량.

저러다가는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메이에게 시켜 포션을 들이부었다.

상처가 아물면 다시 셰릴이 그곳을 짓이기고.

다시 메이가 치료하고.

이 과정이 반복되는 동안 첫째 엄마는 자신이 태어난 이래로 가장 많이 소리를 질렀다.

“올리비아.”

“네, 주인님.”

여자들 틈바구니에서 부상자 치료에 몰두하고 있던 녹색머리 마녀가 모습을 보였다.

“크래스 폴리스에서 범죄자들 가지고 놀 때 사용하는 약물들 가져왔지?”

“물론이죠. 챙겨오라 하셨잖아요.”

“내놔 봐.”

올리비아의 가방을 건네받은 나는 가방 가득히 쌓인 포션들 중 묵빛을 띄는 삼각플라스크 유리병을 꺼내 들었다.

약을 챙기고 고개를 들어보니 셰릴의 작업이 끝나 있었다.

팔 두 개와 다리 두 개가 몸에서 분리되어서 몸통만 덩그러니 남겨진 그녀.

어깨와 허벅지의 절단면은 메이의 꼼꼼한 치료 덕분에 완전히 아물어 있었다.

이제는 혼자서 걷지도 먹지도 못할 첫째 엄마가 원한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꽤나 고통스러웠을 텐데도 아직도 기세가 꺾이지 않는 점이 꽤 마음에 든다.

“데이몬, 용서하지 않을 거다.”

“메이, 옷을 벗겨.”

“네.”

이제 인간 대우를 해줄 필요도 없기에 그녀의 옷을 벗겼다.

잘린 팔다리에 걸치고 있던 거적때기도 모조리 벗겨냈다.

희고 뽀얀 속살이 모두에게 드러났다.

시퍼런 핏줄이 보일 만큼 창백한 피부로 이루어진 젖가슴과 잘린 허벅지 사이에 보이는 일자 균열이 보였다.

“오, 보지가 깨끗하네?”

계모의 성기 부분을 양아들이 자세히 들여다보며 평가하는 이 상황.

누가 보면 말세라고 할지도 모르겠다만.

이곳이 바로 판타지아 대륙이다.

“데이몬, 귀족에게 이런 수모를 주고도 네가 무사할 것 같아?”

“아 거참, 시끄럽네.”

나는 첫째 엄마에게 다가갔다.

안 그래도 작은 체형이었던 첫째 엄마는 팔다리가 잘리자 앉거나 서 있을 수가 없어서 등과 머리를 바닥에 대고 있었는데.

솔직히 사람보다는 말하는 마네킹 같은 느낌이 더 들었다.

“야.”

“야? 어떻게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은 있어?”

내 말에 급격히 조용해진 첫째 엄마.

한참 있다가 입을 뗀다.

“나를 죽일 생각이냐?”

“아니?”

“그런데 왜 유언을 물어보는 거지?”

“그게 마지막 말이야?”

하여간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딱 질색이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라…결국 똑같은 말이겠네. 데이몬, 너는 결국…”

보나 마나 또 저주를 퍼부을 것 같길래 들고 있던 묵빛플라스크의 뚜껑을 열고 그 안에 있는 액체를 그녀의 입에 흘려보냈다.

당연히 그녀는 입을 닫으려 했으나,

“메이, 셰릴. 입 못 닫게 붙잡아.”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렇게 흑색의 액체가 그녀의 목구멍으로 넘어갔고.

이내 또다시 울리는 처절한 비명이 내 고막을 즐겁게 했다.

“아아아악!! 아악! 이거 뭐야!”

이게 팔다리를 더 자르는 것보다 더 아플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약은 인간의 성대를 녹여버리는 약이기 때문이다.

염산 베이스로 만들어진 이 화학약품은 올리비아가 크래스 폴리스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범죄자를 위해서 만든 약이다.

혹시 몰라서 챙겨두라고 했었는데 첫째 엄마가 너무 말이 많아서 이 약을 처방해줬다.

“악! 아아악! 악! 꺽! 꺼억!”

비명이 점점 잦아들고 하이 옥타브의 고음이 점점 꺽꺽대는 소리로 변하더니만,

“…억……억”

뭔가에 막힌 듯 소리가 나오지 않고.

“……”

마침내 입을 벙긋거려도 그녀의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하도 눈물을 흘려서 충혈된 첫째 엄마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씩 웃었다.

“어머니, 목소리를 잃은 기분이 어때요?”

“……”

벙긋대며 뭐라고 말하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눈빛은 분명 욕하는 눈빛인데.

눈알도 파낼까?

순간 충동이 들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다른 데는 몰라도 눈만큼은 남겨둬야 했다.

그녀에게는 봐야 할 의무가 있다.

내가 제임스를 짓밟고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얼마나 사악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는지.

끝까지 지켜봐 줘야 했다.

마치 진짜 어머니처럼 말이다.



사상 최악의 주인공〈 228화 〉 진짜 어머니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