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BER

MENU

〈 229화 〉 든든한 기둥서방



〈 229화 〉 든든한 기둥서방

* * *

사지가 잘린 첫째 엄마를 보고 있으니 갑자기 허기가 졌다.

옆으로 슬쩍 시선을 돌렸더니 제임스는 아직도 206개의 관절에 박힌 유리조각과 돌조각과 싸우고 있었다.

고통스러워서 나와 자기 엄마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링링.”

“나 불렀냐멍!”

“배고프니까 모닥불 좀 피워라.”

내 말에 수인녀의 귀여운 동물귀가 쫑긋했다.

“여기 큰 성이다멍. 굳이 모닥불 피울 것 없이 찾아보면 먹을 거 많을 거다멍.”

내 여자들도 나와 오래지내다 보니 꼭 하라는 거에 딴지를 하나씩 건다.

언제부터 이렇게 말이 많아졌는지.

나중에 날잡아서 자지로 보지교육 좀 해줘야 얌전해지려나.

“말이 많다. 피우라면 피워.”

“알았다멍.”

투덜대던 수인녀가 민첩한 몸놀림으로 땔감으로 쓸 장작들을 구해와서 베르너 성 한복판에 모닥불을 피워올렸다.

그동안 첫째 엄마는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이따금씩 날 보면서 뭐라고 말하긴 하는데 약을 먹여서 그런지 목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고 말 그대로 입만 뻥긋거렸다.

“조용하니까 훨씬 낫군.”

어차피 저년의 성대가 온전했어도 나올 말은 욕이랑 저주밖에 없었을 거다.

탁! 타탁!

모닥불은 바람을 타고 금세 몸집을 불렸다.

옆에 있던 메이가 나에게 제안했다.

“주인님, 야외식을 즐기고 싶은 건가요? 성을 뒤져서 생고기라도 좀 가져올까요?”

“무슨 소리야. 먹을 건 저기 있잖아.”

내가 가리킨 곳에는 아까 첫째 엄마에게 잘라놓은 팔과 다리가 각각 한 짝씩 있었다.

내 의도를 파악한 메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그래, 그 설마다.”

거침없이 첫째 엄마의 잘린 다리 하나를 들어서 모닥불 위에 얹었다.

희고 창백했던 살결이 금세 갈색으로 변하면서 고기 타는 냄새가 사방을 진동시켰다.

“음, 괜찮군.”

중요한 건 지금 이 광경을 팔다리가 다 잘린 첫째 엄마가 보고 있다는 사실.

그녀는 모닥불 위에 놓인 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자기 다리를 보고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고온에서 단백질은 그 세포 구성이 변해버리지. 한번 변하면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 반응을 일으켜. 한마디로 단백질로 이루어진 네년의 다리살은 인제 와서 다시 붙여준다 해도 소용없단 소리다.”

친절하게 설명해 줬는데도 왜인지 첫째 엄마의 표정이 좋지 않다.

입술을 연신 뻥긋거리는데 성대가 녹아버려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입 모양을 집중해서 들은 다음에 나름의 의미를 유추해보았다.

“아, 추우시다고요? 얘들아, 어머니 불 좀 쬐게 해드려라.”

이런 말은 또 잘 듣는 셰릴이 냉큼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붙잡고 모닥불 앞에 위치시켰다.

불에 익어서 기름기 좔좔 흐르는 팔다리가 아주 잘 보이는 명당이었다.

“다리 하나 가지곤 어림도 없겠는걸? 다른 팔하고 다리도 얹어.”

삽겹살 파티하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맛있는 냄새가 제법 퍼졌다.

그리고 내 여자들은 조금 전에 목숨을 오가는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부상자도 많았다.

몇 명의 여자들이 노릇노릇한 고기를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고 화들짝 놀라서 괜히 주위의 눈치를 보았다.

“원한다면 한 입 정도는 줄 수 있다.”

짤막하게 말하고 가장 먼저 올려놓았던 다리의 발목 부분을 잡았다.

첫째 엄마가 마른 체형이어서 그런지 종아리 부분은 무척 얇았으나 그 위의 허벅지 부분은 살이 제법 많았다.

“그래도 장유유서가 있으니. 연장자를 앞에 두고 음식을 먼저 먹을 순 없지. 어머니, 드시지요.”

솔직히 허벅지살이 제일 야들야들하고 맛있는데.

쓰린 속을 부여잡으며 눈물의 효심을 보였다.

만약 이전 생에서 유교 사상이 뿌리 깊게 내려있던 한국에 있지 않았더라면 이런 배려 따윈 해주지 않았을 거다.

아무튼 나는 효(?)가 뭔질 아는 악당이니까.

첫입을 어머니에게 양보했다.

“어머니, 배부르세요?”

이상하다.

어머니가 밥을 드시지 않는다.

입을 꾹 닫고 날 노려보기만 한다.

어디가 아프신 걸까?

“아플 땐 뭐라도 먹어야 하는 법입니다. 이 아들이 직접 먹여드릴게요.”

허벅지 살을 손으로 떼자 뜨거운 김이 올라왔다.

보기만 해도 위장이 꼬르륵거리게 만드는 광경.

나도 배가 무척 고팠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에 주저하지 않고 그녀의 입에 다릿살을 돌진시켰다.

“읍! 으으읍! 으읍! 읍!”

“왜 이렇게 앙탈이실까? 아들이 밥 먹여준다고 쑥스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어머니들이 다 그렇다.

어렸을 적부터 자식에게 뭔가를 해주는 게 익숙하신 분들인데.

자식이 이렇게 밥을 차려서 먹여주니 적응이 안 돼서 괜히 사양하시는 거다.

이럴 때는 부모님이 거절했다고 눈치 없이 빼지 말고 끝까지 먹여줘야지 나중에 부모님이 자식 잘 키웠다고 감동하신다.

“자자, 따뜻할 때 먹어야 해요. 입 벌려요. 아~”

끝까지 입을 안 벌리시는데 뭐.

나에겐 두 손이 있고 어머니에겐 두 손이 없다.

한 손으로 입을 벌리고 다른 한 손으로 다릿살을 억지로 처넣었다.

“옳지, 잘 드시면서.”

“웁! 우우웁!”

성대가 망가져서 뭐라 하는지는 안 들렸지만 대충 맛있다는 말인 듯하다.

첫째 엄마의 식성은 대단했다.

나와 싸우느라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었는지 다리 한 짝을 거의 다 드셨다.

“어머니가 잘 드시니 아들도 뿌듯하네요.”

그녀의 눈앞에는 살코기 하나 없는 뼈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넙다리뼈와 무릎뼈, 정강이뼈와 종아리뼈, 발목뼈.

심지어 발가락뼈조차 없었는데, 첫째 어머니의 식성이 얼마나 좋으신지 지구에서 닭발 드시는 것처럼 발뼈를 꼭꼭 씹어 드셨다.

“으으…”

물론 어머니가 치아가 좀 약하셔서 내가 좀 도와드렸다.

양볼을 잡고 강제로 위아래로 씹게 했더니 이빨이 몇 개 정도 빠지긴 했지만, 무난히 씹어 드실 수 있었다.

첫째 엄마가 식사를 마치는 동안 다른 팔다리가 제법 잘 익었다.

제일 연장자도 다 먹었으니 이젠 거리낌 없이 먹으면 된다.

“다른 쪽 다리는 내 거다. 팔은 특별히 양보하지. 먹을 사람?”

육림대와 월랑대, 귀녀대원들이 살짝 물러나면서 손을 들지 않는다.

조금 자극이 심한 음식이란 건 인정한다.

하지만 이런 류의 음식이 없어서 못 먹는 놈들이 있다.

“취익! 주인님! 나 달라! 실내생활 주로 하는 인간암컷, 살 부드러워서 맛있다! 취익!”

몬스터 출신 티모 대위가 있었구나.

오늘 싸움에서 고생했으니 팔 하나를 던져준다.

“고맙다, 주군.”

“그래, 그러면 나머지 다른 팔은 중갑대주 트런들에게…”

“저한테 주세요, 주인님.”

내 말을 끊고 들어오는 사람은 바로 셰릴.

무언가를 각오한 눈빛에 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확실히 내 여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좋아. 여기 왼팔 하나 주마.”

왼팔을 던졌고 손목 부분을 잡은 셰릴이 망설임 없이 팔뚝살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쿰척!

질 수 없지.

나도 허벅지 살을 크게 한 입 뜯었다.

쿰척쿰척!

모닥불의 뜨거운 열기와 적절한 육즙, 부드러운 살코기의 식감이 삼위일체가 되어 혀 위에서 뛰놀았다.

“예전 지구에서는 동영상을 보면서 밥을 먹곤 했는데.”

“네?”

“아무 것도 아니다.”

여기는 TV가 없으니 그 대신 사지가 잘린 첫째 엄마의 표정을 시청하면서 맛있게 다릿살을 시식했다.

우적우적

“취익! 맛있다! 이 정도면 상등품이다! 충성하겠다!”

“그래, 많이 충성해라. 셰릴은?”

내 말을 들은 셰릴은 일부러 반쯤 먹어서 뼈가 드러난 왼팔을 첫째 엄마의 눈앞에 대고 흔들며 말했다.

“맛있네요. 소금간이라도 됐으면 더 맛있었을 거예요.”

“……”

첫째 엄마가 초점 없는 멍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솔직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여기 굵은 소금 있으니까 원하시는 분들은 더 뿌려 드세요.”

다만 준비성 좋은 메이가 풍만한 젖가슴 사이에서 굵은 소금이 든 주머니를 꺼내서 다들 한 번씩 고기에 소금을 뿌려 먹었을 뿐이다.

식사는 금세 끝났다.

애초에 첫째 엄마는 큰 체구가 아니었기에 얇았던 팔다리가 금세 뼈가 되어 바닥에 굴러다녔다.

“잘 먹었다. 어머니 맛있었나요?”

후기를 물어보고 별 개수도 물어보려 했는데 생각해보니 말도 못 하고 손가락도 없으니 생략.

셰릴이랑 티모는 뼈까지 씹어먹으려던 것을 말렸으니 따로 질문할 필요도 없겠지.

“꺼억~”

나오는 트름을 참지 않고 공기 중에 흩뿌렸다.

옆에서 내 식사를 지켜보던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전투는 끝났다.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생존자들을 동원해서 성 내를 안정시켜라. 언데드는 대부분 불태우되 몇 개는 남겨서 표본화시켜. 나중에 법국에서 성녀 오면 증거물 넘겨야 하니까. 아, 그리고 밥들 먹어라. 알아서 먹어.”

“네, 주인님!”

명령이 떨어지자 이때다 싶은 부하들이 일제히 흩어졌다.

그러자 공터에 남은 건 나와 메이, 셰릴, 늑대로 변신한 루나, 멍하니 모닥불을 응시하고 있는 올리비아.

아직도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제임스와 눈앞에서 자기 팔다리가 적에게 먹힌 모습을 본 첫째 엄마.

마지막으로 멀뚱히 서 있는 중갑대주 트런들이었다.

…응? 트런들?

“트런들, 너는 왜 안 가.”

“쿠워쿠워!”

몹시 불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녀석.

이유를 알아버렸다.

“혹시 아까 내가 먹을 거 안 줘서 그런 거냐?”

“쿠워!”

말은 쿠워밖에 못하는 놈이 내 말은 다 알아들으니 제법 똑똑한 놈이다.

아니면 몬스터 로드의 부가효과일지도.

아무튼, 5m가 넘는 트롤이 배고프다고 난동을 부리면 나로서도 골치가 아프니 옆에 셰릴을 보았다.

“셰릴.”

“그냥 저놈 먹이면 안 돼요?”

은발적안의 여기사가 가리키는 곳에는 제임스가 있었으나.

그놈은 내 여자들을 다치게 했으니 몬스터 먹이로 생을 편안히 끝내줄 순 없다.

“근처 숲속에서 큰 멧돼지라도 두 마리 잡아 오도록. 빵으로 저놈 배 채우려면 한도 끝도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셰릴이 사라지고 나서 나는 트런들을 보았다.

이번 공성전에서 가장 선두에 나서서 모든 집중 공격을 받았던 용맹한 전사는 이곳저곳에 흉터가 남아있었다.

트롤의 괴랄한 재생력으로도 흉이 질 정도면 오늘 거의 중상에 가까운 충격을 받았다는 뜻.

비록 악마후보자 스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움직인다고는 하나, 그래도 나를 위해 일해준 용맹한 전사를 푸대접할 생각은 없다.

“트런들, 오늘 수고 많았다.”

“쿠워쿠워!”

그리고 용맹한 전사에게 있어서 최고의 전리품이란,

“그런 의미에서 너에게 섹스를 허락하지.”

바로 여자다.

나는 사지가 없어서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첫째 엄마를 가리켰다.

“저년을 너에게 하사한다. 오늘 밤에 한해서 마음껏 가지고 놀아라.”

“쿠워?”

내 말을 알아들은 거대한 덩치의 트롤의 깜짝 놀라더니 이내 두 눈에 욕망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바지를 뚫고 금세 부풀어 오른 그곳은 어림짐작해도 나와 크게 밀리지 않는다.

귀가 망가진 게 아니라서 내가 무슨 명령을 내렸는지 들은 첫째 엄마가 애타게 뭐라고 부르짖었다.

대충 유추해보자면 그동안 많이 외로웠는데 대물남(?) 하나 구해줘서 고맙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든든한 기둥서방 하나 구해드렸으니 좋은 밤 보내십쇼.”

너무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조금 쑥스러웠다.



사상 최악의 주인공〈 229화 〉 든든한 기둥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