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7화 〉 꼭 관람해야지
* * *
베샤로 땀을 뺀 나는 급하게 모닝똥을 싸러 화장실로 갔다.
꾸르르륵!!
계속해서 배가 요동을 친다.
원래 바로 갔어야 하는데 괜히 하녀장 계집 뱃속에 씨앗을 남기는 바람에 조금 시간이 지체되었다.
“후, 똥 한 번 싸기 힘드네.”
덜컹!!
문을 열고 들어가자 구리구리한 냄새가 변기구멍 아래에서부터 올라온다.
판타지아 대륙은 다른 건 다 좋은데 이런 기초적인 편의시설이 정말 엉망이다.
지구에서 화장실만큼은 정말 끝내줬는데 말이지.
어쩔 수 없지.
바지를 걷고 변기 양쪽으로 주저앉아서 용변을 보려는 찰나,
아래쪽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보여서 나도 모르게 변기 아랫쪽을 보았다.
“어휴.”
해놓으라니까 정말 해놨네.
푸세식 변기.
별도의 물 없이 그냥 구멍통에다 똥을 싸는 화장실.
그 아래에 가득 쌓인 인분(人?) 속에서 벌거벗은 살색 대왕 애벌레가 꿈틀대고 있었다.
사실 애벌레는 아니고 사람이었다.
한때는 내 형이었던 제임스.
근데 눈 없고 귀 없고 코 없는 상태로 똥통 속을 꼼지락거리니 그게 애벌레가 아니면 뭐겠는가.
“형, 거기는 살만해?”
이상하다.
내가 혀는 안 잘랐는데.
대답이 없다.
일단 배가 아프니 똥부터 싸자.
“흡!”
후드드득!!
후드득!!
어제 섹스도 많이 하고 밥도 많이 먹었더니 똥이 끝없이 나온다.
구멍 안으로 들어간 똥들이 한때 날 죽이려고 했던 첫째 형의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래도 오늘도 쾌변이네.
빙의했던 데이몬이 변비가 없어서 다행이다.
상큼한 마음으로 대충 뒤를 닦고 일어서니 귓가에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사, 살려줘…내가 잘못했어…”
흠, 이건 좀 마음이 약해지는데.
내가 예상한 그림이랑은 조금 다르다.
나는 똥통에 처박혀서도 나에게 저주를 퍼붓고 나는 그런 형의 얼굴에 똥을 퍼붓는.
그런 재밌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말이야.
“왜 그래? 날 무시했었잖아? 사람 취급도 안 하고 벌레 취급했잖아. 너무 형답지 않은걸?”
“다 잘못했다…그러니 이곳에서 꺼내만 다오. 동생아…아니면 차라리 죽여줘…흐윽.”
꼴사납게 울기까지.
참, 그래도 나름 빙의된 몸의 이복형제인데 인정을 베풀어야 하나.
고민이 많이 된다.
내가 섣불리 화장실을 나가지 않고 선 채로 생각에 잠기자 희망을 봐서인가?
똥통 아래에서 전해지는 똥냄새와 함께 형의 말이 섞여 들어왔다.
“부탁한다…이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야.”
“거기 잘 살아있잖아?”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지경이다. 제발…”
“괜찮아. 사람의 생존력은 놀라워. 그리고 형 오른팔도 쓸 수 있으니까 뭐라도 해보든가.”
죽여달라고 하지 말고 본인이 오른손으로 죽거나 혀를 깨물면 될걸.
나름 살고 싶으니까 저러는 거다.
“난 모든 걸 잃었으니 더는 네 위협이 되지 못한다. 그러니 용서해다오.”
“악마후보자가 같은 후보자한테 그러는 거. 조금 추하다고 보는데? 그래도 같은 경쟁자로서 조금 그렇네.”
내 말에 첫째 형이 잠시 간의 침묵 후 다시 입을 연다.
“난 이제 악마후보자가 아니다.”
“그게 형이 아니라고 해서 벗어날 수 있는 거였던가?”
“정말이다. 상태창이 뜨지 않고 있다. 날 담당하던 마족도 나와 연락이 끊겼어.”
“…정말?”
저건 조금 흥미로운 소식이다.
“너랑 나만 후보자가 아니다. 난 예전부터 루카 왕국 내 악마후보자로 의심되는 녀석들을 끊임없이 제거했어.”
몰랐던 비하인드 스토리.
어쩐지 악마후보자를 발견하기 어렵더라니.
나름의 사정이 있었던 건가.
“그래서?”
“많은 수는 아니었다. 약 세 명. 첫 번째는 죽이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놈을 데리고 실험했어.”
“계속 말해봐.”
“그런데 나한테 잡히고 무력화되는 순간 마계 쪽에서 탈락처리를 하는지 더는 상태창이 보이지 않고 연락도 끊겼다고 하더군. 서로 연고가 없던 둘째와 셋째 악마후보자에게 동일진술을 받았으니 믿을 만한 정보다.”
나도 더는 상태창이 보이지 않고 말이다라며 말을 마친 첫째 형 제임스.
그의 어조에서 거짓은 딱히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로도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마계가 자선단체도 아니고 이미 글러 먹은 놈들까지 챙길 이유는 없으니까.
‘나도 조금만 수틀린다 싶으면 새롬이 바로 연락을 끊겠네.’
다 그런 법이다.
마계는 우리에게 ‘투자’를 하는 거지 ‘기부’를 하는 게 아니다.
그 점을 명확히 하고 항상 움직여야 한다.
“그러니 나는 이제 너에게 더는 위협이 되지 못한다. 제발 살려다오. 어머니와 구석진 곳에서 숨도 안 쉬고 여생을 보내겠다.”
딱 하나만 물어봐야지.
“제임스, 네가 나라면 넌 날 살려주겠어?”
“당연하다.”
“정말로? 세상 모든 걸 다 걸고 그럴 수 있어?”
절대 그럴 리 없지.
우리가 대화를 나눈 시간은 많지 않아도 서로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만약 내가 졌으면 저 형은 날 똥통에 처박진 않았겠지만 아무리 살려달라 했어도 죽이거나 실험체로 썼을 형이다.
당장 다른 악마후보자들을 잡아서 실험해봤다고 하지 않았던가.
“……”
“확답 못 하겠지? 당연하겠지.”
“미안하다, 염치없지만 살려다오.”
“그래, 살려줄게.”
첫째 형은 날 죽이려고 했지만 난 첫째 형을 살려준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제 슬슬 후각이 마비되는 느낌이라 똥 냄새가 한결 덜하다.
저 아래서 정말로 놀란 듯 목소리 톤이 올라간 첫째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이냐?”
“내가 이런 거로 장난질 치는 놈은 아니야.”
“넌 충분히 칠 놈이다.”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이번엔 진짜다.”
잠시 호흡을 끊고 다시 이어나갔다.
“하지만 조건이 있어.”
“당연하겠지. 조건을 말해. 내가 들어줄 수 있는 조건이면 뭐든지 들어주마.”
역시 첫째 형은 이런 면에선 빠릿빠릿해서 좋다.
“집무실에서 미약을 발견했어.”
“벌써 그것까지 알아냈단 말이냐? 그러면 편지도 다 읽었겠군.”
“자꾸 당연한 소리하면 그냥 갈 거야.”
“알았다! 말해라.”
다급해하는 제임스와 당근을 줄 듯 말 듯 하는 나.
갑질하는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며 그에게 조건을 제시했다.
“미약이 상당하던데? 제조법은 복잡하고.”
“…제조법을 달라는 거냐?”
“단순히 달라는 게 아니야. 내 여자 한 명의 노예 조수가 되어서 그녀가 원하는 대로 연구 보조를 해라.”
제조법만으로는 너무 싸다.
모든 걸 토해내고 제조까지 도우라는 말.
거의 날강도나 다름없는 조건이었으나,
“그거면 되겠나?”
첫째 형 처지에선 그것조차 감지덕지다.
“물론이지. 실험체는 충분히 준비해줄 테니 지금만큼의 미약, 아니면 그 이상의 효과를 주는 미약, 그리고 미약을 제외하고도 다른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고 조종할 수 있는 물약이라면 아무거나 다 만들어봐.”
제임스를 데이몬 제약회사의 노예연구원으로 만들려는 셈이다.
“날 어떻게 믿지?”
“넌 눈도 없고 코도 없고 귀도 없는데. 거기서 뭘 더 할 수 있는데? 당장 관절에 쇳조각 안 빼주면 시체처럼 누워만 있어야 하는데.”
저 말이 맞다.
똥통에 하루 밖에 안 있었으나 저 정도로 지독한 곳이면 진작에 관절 사이에 염증이란 염증은 죄다 생겼을 게 분명하다.
아마 포션으로도 치료가 되지 않는 영구적인 상해를 입은 곳도 있겠지.
내가 비록 의사는 아니지만 하도 인간들을 많이 작업하다 보니 이런 방면에선 웬만한 의사보다 더 빠삭하다.
“어때? 딜?”
“…알겠다. 자비를 베풀어줘서 고맙다.”
“뭘 또 그렇게. 사람 민망하게시리.”
덜컹!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하인들을 불러서 제임스를 꺼내라고 명령했다.
고용인들은 똥통의 문을 열고 코를 부여잡으며 장갑 낀 손으로 제임스를 꺼냈다.
몸에 덕지덕지 묻은 똥은 양반이다.
들끓는 구더기가 그의 텅빈 동공에서 헤엄치고 있었고 콧구멍과 귓구멍을 제 집 안방처럼 들락날락하고 있다.
“우욱! 우웨에엑!!”
하인 한 명이 그 참혹한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하고 구역질을 했다.
다른 놈들도 거진 마찬가지인데 나한테 밉보일까 봐 간신히 참고 있는 기색.
“뭐해? 사람처럼 만들어서 내 집무실로 보내.”
알아서 잘하겠지.
난 명령만 내리고 바로 복귀했다.
집무실에는 깃털 잉크 펜으로 하얀 양피지를 까맣게 채우고 있는 녹색 머리 마녀 올리비아가 있었다.
“오셨어요? 흥!”
잔뜩 뾰로통해진 그녀가 양 볼을 크게 부풀렸다.
다른 여자가 나한테 저따위 행동을 보였다간 다시는 안 그러겠다면서 스스로 보지를 열 때까지 참교육시키지만.
적어도 내 정실부인들에 한해서 저 정도 땡깡은 용서된다.
그리고 실제로 올리비아가 삐진 이유는 명확하다.
내가 어제 싫다고 했음에도 강제로 미약을 퍼먹였기 때문.
최초 임상 실험자라 그런지 양 조절을 제대로 못 했고, 올리비아는 어제 내 침실에 든 여자들보다 거의 두 배는 많은 양을 섭취했다.
그녀가 고레벨에 마법 면역도 상당한 마녀여서 살았지, 다른 여자였으면 미약에 미쳐버려서 평생 자지만 갈구하는 요녀가 됐을지도 모른다.
“미안해, 올리비아.”
내 사과는 천금과 같다.
대부분 내 휘하에 있는 여자들이 내가 미안이란 말을 꺼낼 수나 있을지 의문으로 생각한다.
그걸 알기에 올리비아도 내 정식 사과를 듣고 빵빵했던 양 볼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알았어요. 용서해줄게요. 다음엔 그러지 마세요. 다음부터 그 미약은 제가 원하는 만큼만 섭취할 거예요.”
“알아서 해. 그보다 너에게 소개해줄 조수가 한 명 있어.”
“누군데요?”
마침 밖에 인기척이 들린다.
엄지와 중지를 부딪쳐 딱! 소리를 냈다.
“들어와.”
드르륵!
문소리와 함께 들어온 사람.
아까보다는 한결 나은 상태가 된 제임스였다.
“이 녀석이요?”
처음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마녀도 머리가 좋아서인지 금세 내 의도를 파악한다.
“미약 때문이군요.”
“맞아. 알아서 잘 굴리도록 해. 어차피 관절 마디마다 조각이 박혀있어서 도망도 못 칠 놈이야.”
“연구 활동이 가능한 만큼만 빼내 줘야겠군요. 눈이 저래서야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요.”
역시 마녀 출신이라 그런지 제임스의 모습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그래도 지식은 꽤 쓸만할 거야.”
“알겠습니다.”
“워프 게이트를 열어줄 테니 마녀의 숲 연구실로 바로 복귀해서 미약 연구에 힘쓰도록.”
그러면서 악마의 문을 열려는 순간, 내 머릿속에 까먹고 있던 무언가가 떠올랐다.
“아, 맞다.”
“왜요?”
“실험체도 챙겨가야지.”
“실험체요? 실험체는 마녀의 숲에도 많은데?”
“아냐, 난 네가 꼭 그 실험체를 썼으면 좋겠어.”
그리고는 냉큼 밖에 나가서 하인을 부린다.
명령받은 하인은 사라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겁에 질린 얼굴로 돌아왔다.
그의 옆에는 거구의 트롤왕 트런들이 흉측한 이를 드러내며 날 맞이했다.
“좋은 아침이야. 트런들.”
“쿠워쿠어.”
“어제 잘 즐겼나?”
말할 것도 없다.
사지가 잘린 채 그의 장난감이 되었던 첫째 엄마.
조금 전까지도 당하고 있었던 듯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파괴된 자궁이 질 바깥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완전히 정신이 나갔는지 눈에 초점이 없이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보고만 있는 그녀.
올리비아마저 얼굴을 찡그릴 정도로 망가진 그녀를 보며 씩 웃으며 말했다.
“저년이 실험체니까 대충 치료한 뒤에 마음껏 쓰도록.”
제임스가 제 어머니에게 미약 주사를 놓는 광경.
명장면이 될 테니 나중에라도 꼭 들러서 관람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