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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진짜 망나니가 뭔지 보여주지





〈 2화 〉진짜 망나니가 뭔지 보여주지

눈을 떠보니 낯선 천장이 보였다.
어리둥절한 나는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침대보만 해도 화려한 금실이 수놓아져 있었고 고급스러운 휘장이 들어간 커튼, 벽에 늘어선 전시물들이 고풍스러우면서도 이 방의 주인이 결코 지위가 낮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뭐지? 이곳은 죽어서 천국인 건가?”

내 마지막이 분명히 기억난다.
교도소에서 간수들로 위장한 유족들에게 맞아죽었다.
그런데 지금은 멀쩡히 살아있으니 사실 내가 마약을 해서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큭큭큭, 그럴 리가 없지. 마약 따위는 비교도 안 되는 더 자극적이고 중독적인 취미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내 취미 생활은 그야말로 역동적이었다.
사실 본드하는 놈들은 내 취미생활을 현실에 구현할 자신이 없어서 머릿속으로만 공상질하는 패배자들이다.
그나마 한국에서는 조금이라도  좀 있는 놈들이 약을 하지만 세계 굴지 기업의 회장이었던 나에겐 1억 가진 놈이나 100억 가진 놈이나 그 놈이 그 놈이었다.

‘일단 여기가 어디인지 알아야겠군.’

나는 손을 펴서 보았다.
약간 이상한 점이 느껴졌다.
내 손은 이렇게 부드럽지 않다.

어렸을 때부터 온갖 일을 다 해본 내 손은 굳은살이 가득 박혀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손은 태어나서  하나 제대로  잡아본 손이었다.
그때,  머리 위로 기형의 불타는 글자들이 떠올랐다.

[평행세계 판타지아 대륙에 오신  환영합니다. 당신은 악마연합에 선택된 인간으로 평행세계의 인간에게 무작위로 빙의되었습니다.]

“뭐지? 약을 너무 많이 했나?”

난 눈을 비비면서 다시 한번 눈앞의 글씨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역시 글자는 흔들릴 뿐 사라지지 않았다.

“넌 누구지?”

[전 악마연합소속이자 송길준 수습악인님의 도우미인 새롬이라고 합니다.]

조금 혼란스러웠다.
악마연합은 뭐고 수습악인은  뭐란 말인가?
다행히도 새롬이라고 불리는 기묘한 글씨는 내 궁금증을 어떻게 또 알고 이를 풀어주었다.

[악마연합은 마신님을 섬기는 마왕님들이 만든 단체입니다. 이 연합의 주요 목적은 악마의 자질이 보이는 인간들을 타락하거나 회유시킨 후에 연합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고위 마족으로 양성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은 당신들의 도움을 받고 후에 일을 해주면 된다는 말인가?”

[이해력이 빠르시군요. 맞습니다.]

별다른 것은 없었다.
칠룡노블즈를 위해서 일할 때도 처음에는 남을 위해서 일했다.
결국, 그 윗놈들 것을 모조리 뺏어서 내 것으로 만들긴 했지만 말이다.

특히나 자신의 친우이자 전 대표였던 녀석의 아내를 침대에 눕혀서 범했을 때는 너무나도 짜릿했다.
 생각만 하자 벌써 고간이 벌떡 서는 것이 느껴졌다.

“그건 그렇고, 수습악인은  뭐야? 굉장히 촌스러운데?”

[수습악인이란 현재 송길준님을 칭호를 나타냅니다.빠른 이해를 위해서 상태창을 먼저 공개하겠습니다.]

-상태창-
이름: 송길준
칭호: 수습악인(최하)
직업: 무직
LEVEL: 1
힘: 6 민첩: 5 지력: 4 운: 1
보너스 스탯: 0
카르마 수치: 0
스킬: 악마의 눈
상태: 평행세계에 빙의

이거 무슨 게임 같은 것인가?
스텟이니 상태창이니 했던 것들을 모르는  아니다.
대한민국의 제1 웹소설 기업 회장이 이걸 모르면 당장 직업 때려치워야 한다.
게다가 칠룡노블즈는 게임회사도 자회사로 하나 가지고 있다.

“새롬이라고 했나? 그러면 무슨 몬스터를 잡고 레벨업해서 강해지면 되는가?”

[그렇습니다. 판타지아 대륙의 몬스터들을 잡거나 개인수련을 하면 당신의 경험치가 증가하고 레벨이 오르면 보너스스텟을 얻게 됩니다. 그걸 원하는 항목에 찍어서 강해지시면 됩니다.]

무슨 말인지는 안다.
예전에 자회사 칠룡게임즈에서 가끔 대박을 내면  게임에 대한 사항도 보고가 올라왔는데 죄다 이런 식이었다.

몬스터 잡고 열렙하고 강해져서 휩쓸고 다니는 것.
뻔하디뻔한 스토린데 매번 젊은이들은 그 똑같은 레퍼토리에 겉모습만 다른 게임들을 하며 돈을 갖다 바쳤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군. 너희는 그렇다면 사람을 잘못 선택한 것이 아닌가?”

내가 게임에 대해 알고 있기는 하지만 전문가는 아니었다.
선택받았다고 했는데  의미는 나에게서 뭔가 성장 가능성이나 잠재력을 보았다는 것.

하지만 난 게임 쪽보다는 소설회사사장님이니까 경영인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성장 방식이 열렙 노가다라면 나보다는 훨씬 젊고 게임감각이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면 왜 날 선택한 것이지?”

[상태창에 카르마수치라는 것이 보이십니까?]

다시 눈을 내려 허공에 떠 있는 글자를 살펴보니 정말로 상태창 사이에 카르마 수치라는 항목이 보였고 아직은 0이었다.

[카르마 수치는 송길준님이 악행이나 업보를 쌓을 때마다 증가하는 것입니다. 현재 수습악인이신 송길준님은 악행을 쌓을 때마다 그 정도에 따라 카르마가 차등 지급됩니다. 후에 카르마가 100이상 쌓이신다면 그것은 보너스스탯 포인트 4가 됩니다.]

인제야  날 선택했는지 이해했다.
한마디로 나쁜 짓을 하면 내가 더 강해진다는  아닌가?
이 세계가 나쁜짓만 해서 강해질  있다면 날 따라올 자는 없다.
내 행동 하나하나는 다른 사람의 행복을 갉아먹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좋아  날 선택했는지는 알겠군. 그러면 난 이제 수습악인으로서 행동하면 되는 건가?”

[그렇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새롬과의 교신이 끊겼다.
잠깐 일어나서 거울을 보았다.
거울에는 내 모습이 보였다.
탱탱한 피부와 주름살 하나 없는 앳된 얼굴.

나이는 20살쯤 되었을까?
아쉬운 건 외국인이라는 점이었다.
백인종처럼 허여멀겋게 창백한 얼굴인 것을 보니깐 빙의되기 전 이 육체의 주인은 요새 좀 산다는 백인들은 무조건 한다는 태닝이 전혀 안 되어 있었다.

“몸도 그렇고 얼굴도그렇고 루저가 따로 없군.”

깡말랐고 키도 작은 데다가 얼굴은 주근깨가 가득하고 근육 하나 없는  몸은 이전세계에서 전문적인 케어를 받으며 근육을 유지했던  몸과는 많이 달랐다.
검은색 머리카락이 눈을 가릴 만큼 길게 자란 이 남자는 운동에는 관심이 없던 모양이었다.

‘보통 빙의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처음 시작할 때 자신의 몸부터 단련시키곤 하지.’

그렇지만 난 몸 단련을 할 생각이 없다.
카르마 쌓아서 스탯 채우면 저절로 강해지는  몸 단련을 왜 한단 말인가?
거울을 바라보고 있을 때 방문 밖에서 누군가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똑

“도련님,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와.”

끼이익

문이 열리면서 전통적인 하녀복을 입은 미녀가 들어온다.
뽀얀 피부에 커다란 눈은 상대의 시선을 묘하게 잡아끄는 힘이 있었고, 성인 여자의 발육 좋은 젖이 가슴 위로 봉긋이 솟아있었다.
그에 비해 팔다리는 얇고 허리는 가늘어서 나올 곳 나오고 들어갈 곳 들어간 여성스러운 몸매였다.

“흐음, 네가 내 시종  담당하녀 같은 건가?”

다 알고 물어보는 것이다.
딱 봐도 화려한 방에 나 혼자 있는데 있는  자식일 것이고 내 방에 단독으로 들어올 여성 하녀라면 당연히 담당이겠지.
역시나 눈앞에 탱탱한 가슴을 자랑하는 그녀는 내가 말을 걸자 화들짝 놀라며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늘 당번은 메이잖아요.”

이름을 스스로 3인칭으로 불렀다.
 저렇게 자기 이름 스스로 부르는 여자를 혐오한다.
어쩌면 좋아할지도.

싫었다가 좋았다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귀척 떠는 여자는 싫은데 귀척하는 여자를 부수는 건 2배의 쾌락을 갖다 주니 양면성이 있다는 얘기다.

“근데 내가 불렀는데 왜 이렇게 놀라지?”

갑자기 질문한 것도 아니고 작정하고 방안에 들어온 하녀에게 말을 건 것뿐인데 반응이 조금 과했다.
메이는 내 질문에 식은땀까지 흘리며 안절부절못한다.

“죄송해요! 놀라서 죄송해요! 잘못했습니다.”

느닷없이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메이.
이건 좀 이상한데.

“지금 즉시 왜 나한테 사과하는지 10초 안에 말해. 그렇지 않으면 네가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 일어날 거야.”

내 말에 메이의 동그랗고 커다란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무릎을 꿇은 채로 탐스러운 금발이 어깨까지 내려온 모습은 사내의 정욕을 자극했지만, 난 연극이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바지를 내리는 멋없는 관객은 아니다.

“저번에 제가 음식을 전달해드리다가 물을 조금 쏟아서 도련님께 뺨을 맞았잖아요. 그것 때문에 영주님에게한 말씀 들으셨다고 들었어요. 절 질책하시려는 줄 알고 겁이 나서 깜짝 놀랐던 거예요. 신경이 쓰였다면 죄송해요.”

아하, 나한테 실수로 물을 쏟은 하녀한테 내가 뺨을 날렸구나.
그리고 내 아버지로 추측되는 영주는 날 혼내고 그것 때문에 내리 갈굼 당할까 봐 겁이 났다?

“야, 솔직히 묻자. 내가 이 저택에서 평판이 좋은 편이냐?”

메이가 우물쭈물하더니 대답한다.

“그… 영주님께서는 언젠가는 도련님이 큰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계세요. 저희 하녀들에게도 언젠가는 상냥하게 대해주실 거라고 믿고 있고요.”
“그 말을 반대로 해석하면 지금 쥐뿔도 한 게 없어서 아버지는 기대만 하는 실정이고 너희한테는 평소에  대했다는 얘기네?”
“그, 그런 뜻은 아니고요…”

메이가 놀라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그녀의 고개가 도리도리 저을 때마다 곱게 땋은 황금빛 밀밭과 같은 머리카락도 같이 흔들린다.

“야, 이 집에서 내가 불리는 별명 같은 거 있냐?”
“아니요! 그런 건 절대 없어요!”

강한 부정.
있네. 있어.
사실 없으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섭섭하지.

“내 별명이 뭐지? 참고로 다른 하녀들한테도 다 물어볼 거야. 그런데 너만 다른 별명을 얘기하면 어떻게 될지는 너 스스로 생각해.”

메이는 이제 얼굴이 벌게지다 못해 창백하게 질렸다.
그녀의 왼쪽 눈에는 아직 눈물이 고여있지만, 오른쪽 눈에는 눈물이 떨어져서 바닥에 자국을 남겼다.
병신 같은 남자들은 그 모습을 보고 동정심을 가지고 안절부절못하겠지만, 난 이럴 때 여자를 더 몰아붙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빨리 안 말해? 뺨 한 대 더 맞고 싶냐?”
“망나니! 다는 아니고 몇몇 사람들이 도련님을 망나니라고 했던 걸 들은 것 같아요. 잘못 들은 것일 수도 있어요.”

망나니.
좋은 별명이다.
한마디로 난 이 저택에서 문제아란 소리 아닌가?

소설에서 빙의되는 주인공들이 망나니인 소설은  많이 읽었다.
내가 읽었던 빙의소설은 주인공이 모두 기존에 문제가 있었다.
난 그걸 확인차 물어보았다.
그리고 확신을 얻었다.

“메이라고 했냐?”

메이는 덜덜 떨며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히 긴장되겠지.
지가 모시는 도련님을 망나니라고 불렀는데.
이제 난 그 벌을 줘야 될 시간이다.

“잠깐 와봐라.”

내 말에 메이가 쭈뼛 쭈뼛거리며 나한테 다가온다.
그때  눈앞에 또 기묘한 불타는 글씨가 나타난다.

[스킬 악마의 눈을 발동하시겠습니까? 스킬을 발동시키면 상대의 상태창을 확인할  있습니다.]

아하, 탐지스킬.
모든 빙의 소설에서 주인공이 무조건 가지고 시작하는 스킬이다.
나만 너희 정보 다 알아식 소설을 많이 읽었기에 난 능숙하게 그녀의 스테이터스를 확인한다.

-상태창-
이름: 메이
칭호: 
직업: 하녀
LEVEL: 2
힘: 6 민첩: 4 지력: 1 운: 3
보너스 스탯: 0
카르마 수치: 0
스킬: 설거지 빨리하기, 졸면서 바느질하기, 혀 인중에 갖다 붙이기
상태: 혼란, 두려움

요년 봐라?
건방진 게 나보다 스킬을  개나 더 갖고 있네.
속에서 짜증이 솟구친다.

특히나 혀 인중에 갖다 붙이기라니.
내가 그걸 살면서 얼마나 하고 싶었는데.
전생에 나는 혀가 짧아서 그게 불가능했다.

그리고 이번 생도 글러 먹은 것 같다.
왜냐하면, 방금 해봤는데 안됐거든.
더더욱 메이에 대한 적개심이 불타오른다.

“빨리  와?”

호통을 버럭 지르자 메이가 화들짝 놀라며 침대에 앉아있는 내 옆에 다가온다.
그녀가 다가오자마자 난 거칠게 그녀의 희고 고운 손목을 잡아서 침대로내동댕이친다.

“꺄아악!”

메이는 자신도 모르게 침대로 던져지자 놀라서 비명을 지른다.
솔직히 스텟보니까 힘이 6으로 똑같다.
오히려 레벨은 내가 하나 아래.
저 여자가 보너스 스탯을 받아힘에 투자한 것이겠지.

잡일해주는 여자랑 힘이 똑같다니, 빙의된 몸이 얼마나 약한지 알  있는 사안이다.
그렇지만 기세가 중요한 법.
이미  년의 뇌는 신분제에 절여진 뇌다.
 힘스텟이 6이 아니라 그 이하였어도 끌려왔을 거다.

“왜,  그러세요? 도련님, 이러지 마세요. 영주님이 알면 어쩌시려고 이래요.”

메이의 말에 내가 미소를 짓는다.
전생에 송길준이 취미생활할  주로 짓는 바로 그 비열한 미소.

“킥킥킥, 어차피 성안에내 별명이 파다할 정도면 아버지도  행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거잖아? 망나니가 망나니짓  거겠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빙의되기 전 녀석은 너무 어리숙하다.
하녀가 물을 흘렸는데 고작 뺨을 때려?

그건 하수 중의 하수다.
진정한 망나니는 그러지 않아.

지금부터 진짜 망나니가 뭔지 보여주지.
 



사상 최악의 주인공〈 2화 〉진짜 망나니가 뭔지 보여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