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제일 약해 보이길래 뽑았어
눈부신 백갑의 여인은 단연코 사내들 사이에서도 군계일학.
역시 기사 히로인답게 가슴까지 내려오는 머리가 찰랑거리면서 빛을 뿌리고 다녔다.
분명 야외 활동을 많이 해서 여기사들은 피부가 거칠 것 같았는데 보니깐 그것도 아니었다.
관리를 많이 하는 건가?
피부가 뽀얗다.
이쪽 세계에는 선크림 같은 게 있나?
있어도 저러지는 못할 것 같은데.
여인의 머리는 특이하게도 은발이었다.
오호라, 메이는 전형적인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백인 미녀다.
반면에 요 년은 은발이네.
더더욱 마음에 든다.
내가 여태까지 읽어 본 웹소설에서 난 괜스레 히로인들의 머리카락 색이 겹치면 구분하기 어렵고 짜증이 났었다.
메이랑도 머리카락 색이 다르니 영입할 마음이 두 배로 치솟는다.
눈동자는 붉은색, 머리카락이랑 잘 어울린다.
몸매는 플레이트 아머 때문에 잘은 보이지 않지만 착 달라붙은 갑옷의형태로 미루어보아서 분명 슬림한 타입이 분명하다.
가슴 쪽도 따로 넓게 패인 갑옷이긴 한데 조금 마른 체형인 것으로 보아 가슴은 A컵일 확률이 높다.
저렇게 말랐는데도 가슴이 크면 오히려 기이해 보인다.
예전에 포르노 배우를 작업 친 적이 있었다.
허리는 19인치.
개미허리라서 두 손으로 허리가 전부 잡히는데 가슴이 E컵이었다.
수박 덩어리를 두 개 달고 있었는데 솔직히 이상했다.
아무리 가슴 크고 허리 얇은 여자가 남자들의 이상형이라도 과유불급.
기분이 나빠져서 그년은 특별히 더 섬세하게 작업을 해주었다.
그래도 야동 배우라 그런지 비명 하나는 예술이더라.
각설하고, 내가 해본 수많은 작업의 결과로 여자는 대충 훑어보기만 해도 가슴 사이즈는 견적 나온다.
저 기사년은 빈유는 아니고 꽉 찬 A컵.
마을에서 만나서 사랑을 나누었던 그 유부녀 년보다는 살짝 작지만 어찌 보면 딱 우리나라 평균 여성 가슴 정도?
오히려 기사 캐릭터인데 가슴 크면 움직이는 데 불편해서 난 저 정도가 딱 맞다고 생각한다.
바로 악마의 눈을 발동한다.
-상태창-
이름: 셰릴 몬두르
칭호: 3급 소드 유저
직업: 기사
LEVEL: 20
힘: 20 민첩: 70 지력: 6 운: 5
보너스 스탯: 0
카르마 수치: 0
스킬: 대쉬 소드, 일루젼 소드
상태: 무관심
와, 설마 도적도 아니고 민첩캐였니?
힘 스텟 딱 20 찍어놓고 올민 찍었네.
하긴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1렙 힘스텟이 현저히 낮았을 테니 민첩 올인도 이해가 된다.
스킬도 뭔가 빠른 공격 위주의 공격인 것 같고, 들고 있는 무기도 지금 보니 쇠꼬챙이처럼 생긴 레이피어다.
예전에는 레이피어로 무슨 싸움을 하느냐고 생각했는데 눈앞에서 무섭게 찔러대는 그녀의 검을 보니 저 정도로 검을 잘 다룬다면 충분히 사용해도 될만한 무기 같다.
그리고 이름을 보니까 셰릴 몬두르?
몬두르?
기사단장이랑 성이 같네?
그럼 저 여자는 저 괴물 같은 기사단장의 딸?
큭큭큭, 계속해서 저 셰릴이라는 년을 데려갈 이유가 늘어난다.
아까 내 말 무시했었지? 기사단장아.
곧 피눈물 흘릴 준비해라.
빠악
그때 또 뒤통수가 화끈해진다.
짜증이 나서 욕설을 내뱉으려다가 둘째 형 로이가 날 노려보고 있길래 일단은 한 번 참는다.
강약약강 해줘야지, 아직은.
“너 지금 어디 보냐? 설마 셰릴 본 거냐?”
“좀 보면 안 됩니까?”
“하 참!”
아무리 고개를 숙여도 아까 뒤통수 맞은 것 때문에 화가 나서 말이 곱게 나가지 않는다.
어이가 없다고 혀를 차는 로이.
아니, 그러면 보는 것도 안 되냐?
“야, 잘 들어. 저 여자는 너 같은 망나니 놈이 감히 쳐다도 보지 못할 산이야. 맨날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일 없이 빈둥대다가 지들 같은 년들끼리 모여 차 마시면서 남 뒷담이나 까는 엉덩이 무거운 년들이랑은 질적으로 다른 여자라고.”
아, 그래서 어쩌라고요.
난 이미 저 계집을 찜했는데 말이야.
그러는 너는 되냐?
아까 악마의 눈을 발동해 보니까 기사단장인 제 아버지 닮아서 젊은 나이에 벌써 괴물같이 성장했더라.
레벨 20에 1급 소드 유저면 둘째 형인 당신보다 센 거잖아?
넌 레벨 15에 2급 소드 유저니깐 말이야.
피차 급 안 맞는 건 똑같은데 왜 나한테 X랄인거지?
게다가 저 여자보다 로이 네가 더 나이도 많은 것 같은데 말이야.
할 말은 많은데 괜히 머리 나쁜 놈에게 이 말 해봐야 소 귀에 경 읽기니 참는다.
“형님, 저는 누가 뭐라 해도 저 여자를 크래스 장원으로 데려가겠습니다.”
“큭큭, 네가 그럼 그렇지. 또 반반하다고 혹해서 데려가서 자빠트릴 생각인가 본데, 한번 해봐라. 아주 반 죽어봐야 정신을 차리지.”
아, 그거 경험담이구나?
딱 봐도 이 로이라는 녀석, 영주 아들이라는 지위믿고 셰릴이라는 여기사한테 들이댔다가 된통 당했나 보네.
뒤에 기사단장 핀돌프가 딱 버티고 있으니 뒷수작도 못 부렸겠고, 속으로만 애타게 부르짖고 있었겠지.
큭큭큭, 못난 놈아.
네가 실패했다고 다른 놈들도 다 실패했다는 고정관념을 버려.
“마침 기사들의 훈련이 끝났군요. 그럼 전 영입을 제안하러 가보겠습니다.”
“큭큭, 그래. 그 셰릴이라는 녀석한테 한번 꼭 말을 해봐라.”
왜, 너처럼 처맞으라고?
미안한데 난 너 같이 뇌까지 근육으로 된 놈이랑은 근본부터 다르시다.
이미 영입 계획은 다 세워두었다고.
난 핀돌프에게 다가갔다.
핀돌프는 여전히 불쾌한 티를 숨기지 않고 나를 본다.
조금 있다가 저 늙은이 표정이 불쾌에서 절망으로 변할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엔돌핀이 솟구치네.
“기사 훈련이 끝난 것 같군요. 그럼 제 용건을 말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셔도 상관은 없습니다만,아까 잠깐 제가 지원자를 받았으나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당사자가 직접 말하는 것과 대리자가 말하는 것은 다르지요.”
그러면서 기사들을 불러모은다.
아주 싫은 티들을 팍팍 내는구나.
어쭈, 몇몇 놈들은 벌써 내가 어떤 X소리를 할지 기대하면서 보기도 한다.
“크흠흠, 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난 아버지의 명으로 크래스 장원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곳은 기사도 없이 평민들과 농노로만 이루어진 땅. 그러니 나와 같이 그곳을 운영할 동지이자 친구를 구하려고 한다.”
“도련님, 죄송하지만 저희는 굳이 그런 외지까지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찾아보시죠!”
“마녀들린 땅으로 미쳤다고 누가 갑니까! 갈려면 혼자 가십시오!”
“크하하하!”
기사들 가운데 누군가 한 명이 던진 조롱에 단체로 폭소를 터트린다.
오, 그러니까 날 광대로 세우고 아주 제대로 놀려먹겠다는 심산이구나?
옆에 핀돌프 기사단장을 힐끗 보니 예상했다는 듯이 내 쪽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한다.
그럼 슬슬 시동을 걸어봐야겠군.
“너희들이 나와 같이 가지 않겠다는 이유가 크래스 장원이 구석지고 마녀가 나온다는 소문 때문인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물론 아닐 것이다.
만약에 첫째 형이나 둘째 형이 간다고 했으면 엄마들이 극성을 떨어서 어떻게든 기사 몇 명을 딸려 보냈겠지.
그렇다고 대놓고 ‘네가 병X이라서 안 따라가는 거야’ 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건 정말로 선을 넘는 것이기 때문에 순간 침묵이 찾아온 것이다.
“베르너 백작가의 우수한 기사들이 단지 마녀가 나온다는 소문에꼬리를 만 강아지가 되어서 가지 않는다는 말을 내가 믿어야 한다는 말이냐!”
“그렇게 기사들을 도발하셔봐야 소용없습니다. 그만 물러가시죠. 도련님.”
옆에서 기사단장 핀돌프가 점잖게 나한테 브레이크를 건다.
하지만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원래 한국어는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이라고.
물론 여기가 한국은 아니지만 말이야.
“이쯤되니 난 이곳 기사들의 자질이 조금 의심스러워진다. 맨날 훈련은 하는 척만 하고 실제로는 마녀는커녕 고블린 하나 못 이기는 약골들일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도련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그러니 내가제안하겠다. 내기를 하나 하지. 내가 지목하는 기사는 나와서 나랑 팔씨름을 해보자. 그래서 너희가 이기면 난 깨끗이 영입을 포기하겠다. 대신에 내가 이기면 나한테 진 기사는 하늘이 두 쪽이 날지라도 날 따라와야 한다. 어떠한가?”
내 제안은 제법 타당하다.
기사들에게는 이렇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난 네놈들이 X라게 약해 보여.
그러니까 팔씨름 한판 하자.
“지금 진심으로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럼 내가 장난하는 것으로 보여?”
핀돌프 기사단장이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날 본다.
큭큭큭, 이해한다.
이 세계는 레벨이 보이는 세계다.
그리고 머리 위에 뜬 내 레벨은 1.
레벨 1짜리 망나니가 기사 상대로 팔씨름을 하자고 하니 미친놈처럼 보이겠지.
특히나 일반인도 아니고 여기는 기사집단이다.
여기서 젤 힘스텟 딸리는 놈도 적어도 스텟 20은 된다.
레벨 1짜리가 선천적으로 힘을 타고났어도 받을 수 있는 맥시멈 스텟은 10.
힘스텟 10 차이가 나는 사람들 간의 팔씨름 대결은 상대가 일부러 져주지 않는 한, 무슨 기술을 써도 이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혹시라도 엄청난 확률을 뚫고 내가 힘스텟 10을 타고났다고 치자.
그랬으면 지금쯤 검을 잡았겠지, 이렇게 망나니로 살았겠어?
기사들이 문사들과 비교하면 검만 잡아서 머리가 나쁘다는 평을 종종 받는다.
그러나 그건 귀족 기준으로 무식한 것일 뿐.
기초교육은 받기 때문에 웬만한 평민들보다는 똑똑하다.
그런 녀석들이 내가 방금 한 정도의 셈을 못할 리가 없다.
그냥 또라이라고 여기겠지.
핀돌프 기사단장도 같은 생각인 듯, 이번 내 제안에는 딱히 태클을 걸지 않는다.
“도련님의 생각이 정 그리하다면 그렇게 하시지요. 너희는 불만이 있는가?”
“없습니다!”
연무장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기사들이 외쳤다.
저들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을 보라.
약골 아니냐는 내 도발이 아주 정확히 먹혀들어간 것 같았다.
아주 하나같이 눈빛으로 나를 뽑아달라고 아우성들을 친다.
만약에 뽑으면 레벨 1짜리 망나니 도련님, 팔씨름한다는 명목으로 손목 하나 ‘사고’로 부러트릴 생각이겠지.
다 예상이 됩니다. 예상이 되어요.
어이, 시커먼 남자들아.
그렇게 애타는 눈빛으로 날 쳐다봐도 소용없어요.
내가 뽑을 놈은, 아니 년은 이미 내정되어 있다고.
내정자 뽑아놓고 공채 걸어놨다고 욕하지 마라.
너희도 어차피 지원 안 하려고 했잖냐?
“나는 저 기사를 지목하고 싶군.”
내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당연하게도 셰릴 몬두르가 있다.
순간 모두가 셰릴을 쳐다본다.
셰릴의 작고 예쁜 얼굴이 내 지목을 받는 순간 일그러진다.
“셰릴?”
“셰릴을 뽑았네?”
그와 함께 옆에서 엄청난 기세가 느껴진다.
결코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기세.
순간 나는 숨이 막혀서 호흡곤란이 올 뻔했다.
옆을 쳐다보니 기사단장 핀돌프 몬두르가 날 노려보고 있다.
와, 지금 자기 딸 지목했다고 살기를 쏘아 보낸 거야?
소드 마스터가?
그런데 살기가 좀 험악하긴 하네.
역시 왕국 최강자의 기운은 쉽게 견딜만한 것이 아닌 것 같다.
방금은 그래도 분명 이성을 가지고 조절해서 나한테 기운을 보낸 것일 텐데도 이정도면, 실제로 마음먹고 살기를 쏘아 보내면 지금 내 스텟으로는 제정신을 유지할지도 의문이다.
“도련님, 신중하게 생각하고 뽑으시길 바랍니다. 단순히 여기사라고 가벼이 여기신 거라면…”
“충분히 생각하고 뽑은 거다. 셰릴이라고 했나? 앞으로 나오도록.”
저벅 저벅
셰릴이 기사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온다.
고개를 살짝 숙여서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린다.
그래서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녀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는 충분히 예상되었다.
내 앞에 선 셰릴의 입이 열린다.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것으로 봐선 어지간히 열이 받았나 보다.
이거 제법 가지고 노는 맛이 있겠는걸.
“도련님,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질문을 허락한다.”
“저를 지목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까 생각하시고 뽑은 거라고 하셨는데 그 생각이 무엇인지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뭐, 못 알려줄 것 없지.
난 친절한 남자니깐 말이야.
“너만 여기서 여자잖아, 제일 약해 보이길래 뽑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