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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화 〉세상엔 이런 주인공도 있겠지





〈 13화 〉세상엔 이런 주인공도 있겠지

으드드득

오우, 그렇게 이를 빠드득 갈면 치과 가야 된다.
셰릴이란  여기사는 얼마나 화가 났는지 칠공에서 김을 뿜을 것만 같다.

주전자에  넣고 끓였냐?
왜 몸에서 증기가 그렇게 나냐.

“자세히 보지않아도 여자인 데다가 몸도 말랐고 심지어 가슴조차 크지 않은데… 내가 너를 선택하는 게 가장 이길 확률이 높지 않을까?”

이쯤 돼서 신체 발언 한번 해준다.
일부러 해줬다.
이성을 잃어줘야 내가 이 상황을 주도하기 편한 것 아니겠어?
그렇다고 칼을 뽑으란 얘기는 아니었는데.

스르르릉

칼집에서 레이피어를 반쯤 꺼내려다 불굴의 의지로 참은 셰릴.
아깝다.
꺼냈으면 오히려 일이 더 쉬워졌을 텐데.
너무 열이 받았는지 이제는 창백해진 안색으로 그녀가 말한다.

“좋습니다. 도련님이 절 선택하신 이유는 알았으니 저도 하나 제안을 해도 되겠습니까?”
“응? 역으로 제안하겠다고?”
“그렇습니다.”

고개를 갸웃한다.

얘가 나한테 뭘 제안할지 감이 잘 안 잡힌다.
슬쩍 옆을 돌아보니 핀두르 기사단장은 자기 딸 희롱한 것 때문에 내가 영주 아들만 아니면 벌써 오체분시할 기세.
진짜 죽을  같으니까 제안은 일단 받자.

“그래, 허락한다.”
“제가 이기면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제게 무릎을 꿇고 엎드린 다음에 지금의 모욕적인 발언에 대해서 사죄하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저를 포함한 다른 여기사를 무시하지 않겠다는 말을 72대천사들 앞에서 맹세해주시지요.”

뭐?
무릎을 꿇고 엎드리라고?
넌 어찌 되었든 현재는 봉지도 없는 수습기사고 난 영주의 아들인데?

내가  시대의 위계질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중세유럽 기준으로 판단하면 이건 말도  되는 일이다.
엄연히 군신 관계라는 쌍무적 계약을 맺었는데 역으로 무릎을 꿇으라니 말이야.
회사 회식에서 야자타임 했다 하더라도 부장님 벗겨진 머리 신기하다고 만질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크흠흠, 셰릴. 그건 너무 갔다. 조금은 진정하는 편이 좋을  같다.”

셰릴의 아버지인 기사단장 핀돌프가 먼저 자제를 시킨다.
솔직히  따위가 이 말을 듣고 열이 받든, 받지 않던 신경도  쓰겠지.

그보다는 괜히 아버지한테 이런 소문 들어가면 눈치가 보여서인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영주한테 버림받은 아들은 아니니 말이다.

“아빠는 가만히 있어봐요. 지금 딸이 어떤 수모를 겪고 있는지 보셨잖아요! 제가 알아서 할거에요.”
“아니, 그래도 말이다…”
“아 쫌!”
“…그래.”

와, 성깔 뭔데.
그리고 핀돌프 기사단장 소드 마스터 맞냐?
내가 아는 그 강한 기사가 아닌데?
진짜 딸 앞에서 꼼짝을 못하네.
완전 딸바보였구나.

큭큭, 그렇다면 더더욱 이 셰릴이란 년을 교육을 해줘야겠군.
기사단장, 걱정하지 마라.
내가 자네 딸 확실히 교육해서 얌전히 만들어 놓을 테니 말이야.

“좋다, 만약에 내가 너와의 팔씨름에서 지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엎드리고 내가  잘못을너에게 사과하지. 앞으로 모든 여기사를 존중해줄 것도 맹세하겠다.”
“그 말, 책임질 수 있으시죠?”
“물론이다. 여차하면 지금 72대천사 앞에서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지겠다고 맹세하겠다.”

물론 난 72대천사가 뭔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이쪽 세계인들이 믿는 신 같은 건가?
나를 이쪽 세계에 빙의시켜준 악마연합과 뭔가 관련이 있을 듯도 하다.

그렇지만 뭐 지금 그걸 신경  때는 아니긴 하지.
주변을 둘러보니 기사들이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을 한다.
멀리서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둘째 형 로이도 눈이 반짝반짝하다.

그렇겠지.

아무리 망나니라지만 윌렛 왕국에 손꼽히는 백작가의 아들이 소속 기사의 딸에게 무릎을 꿇고 엎드린  사과를 했다는 소문이 돌면, 걔는  날로 귀족생활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어디 창피해서 사교계도 못 나갈걸?
게다가 망나니는 레벨 1인데 셰릴은 레벨 20이니 절대 이길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다들 어떻게든 망나니가 망신당하는 꼴을 보고 싶겠지.

“맹세까지는 필요 없습니다. 그보다는 도련님의 명예를 믿죠.”
“좋아, 그러면 바로 시작하지.”

나무로  책상을 어디서 구해왔는지 기사 두 명이 나와 셰릴 사이에 그 책상을 두었다.
판은 만들어지고 기사들은둥글게 원을 그려 이 장면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한다.
어차피 승패는 명약관화하고 다들 그 다음을 보고 싶어하는 분위기.
그런데 이 사람들, 내가 무드 파괴범인 건 모르나 보네.

내가 지금은 이렇게 말라보이지만, 이전 세계의 송길준은 이렇지 않았다.
항상 세심한 케어를 받으며 트레이닝을 했었다고.
내가 3대 운동 중량 500kg까지는 아니더라도 450kg은 쳤었다.
3대 450이면 감이  잡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냥 몸짱이라고 보면 된다.

심지어 팔씨름 대회까지 참가해서 우승권까지 갔는데 기술이 없어서 이런 계집에게 질까?
오히려 승률은 내 쪽이 백 할이다.
게다가 굳이 기술 안 써도 내가 셰릴보다 힘스텟 거의 두 배야.
그냥 이겨.

“이거 참 재미있어 보이는군. 그러면 둘의 심판은 내가 맡아도 되나?”

왜 안 들어오나 했다. 로이야.

“물론입니다. 형님.
“…그러시죠, 로이님.”
“크핫하하, 내가 아끼는 아우와 아름답기 그지없는 장미꽃 같은 우리 셰릴 양이 하는 이런 재미있는 이벤트를 주재하게 되어서 영광일세.”

큭큭큭, 끼어들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구나.
그리고 같은 영주의 아들 신분인 자신이 지켜봐야지 나중에 내가 딴소리 못 한다 이건가?
 단순한 놈이 거기까지는 생각하지는 못한 것 같네.
그냥 재밌어서  거였어.

“로이님, 그런 미사여구는 붙이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빨리 시작해주셨으면 좋겠군요.”
“그, 그러마.”

큭큭, 콧대 높은 거 봐. 저거.
저 거만한 로이가 아주 꼼짝을 못하네.

둘째 형님. 걱정하지 마소.
 아우가 형님을 대신해서 아주 이년을 꼼짝도  하게 할 테니 말이우.
물론 그게 둘째 형님이 바라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흐흐흐.

드디어 나와 셰릴이 서로를 마주 보며 손을 잡는다.
막상 승부가 시작되자 기사들이 흥분해서 소리를 친다.

“우! 우! 우! 우! 우!”

쿵 쿵 

각자 자신의 무릎을 치고 박자에 맞춰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 원시시대 원시인들의 전통춤을 보는 것 같다.
그녀의 반짝이는 루비색 눈동자가 불타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다.
 그런 그녀의 귀여운 얼굴을 보며 씩 웃는다.

“셰릴, 손이참 부들부들하네. 기분이 좋아.”

우드드득

오우, 열 받아서 손에 힘 들어가는 거 봐라.
아예 내 손부터 부숴놓고 시작하려는 건가?
일단은 여기서 엄살  스푼 들어갑니다.

“아, 아야야야! 팔씨름 시작도 하기 전에 이렇게 손에 힘을 주는 법이 있나?”
“으하하하! 아우야, 원래 팔씨름은 악력 싸움부터 시작인 거란다. 그것도 모르면서 팔씨름을 하자고 한 건가? 너도 참 요지경이구나.”
“그래도 이건 좀 심합니다, 형님. 아예 손에 힘을 못 주겠잖아요.”
“징징대지 마라, 동생아. 이걸 하자고 먼저 제안한 건 너다. 모든 승부가 끝나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너고 말이야.”

아예 내가 진다는 걸 기정사실로 했구나.
내가 빠져나갈 구멍을 아예 막아버린다.

흥분으로 번들거리는  얼굴 봐라.
저런 얼굴을 짓밟아줄  가장 즐거운 법이지.

적당히 손이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악력을 넣는다.
역시 셰릴은 시작부터 내 손을 부러트리면 승부가 흐지부지될까 봐 힘의 최대치를 불어넣지는 않는다.

야 이년아, 그렇게도 내가 무릎 꿇는 걸 보고 싶으냐?
그럴  없을 거다.
지금도 앞으로도 말이야.

“그럼 3초를 세고 승부를 시작하겠다! 삼!”
“삼!”

구경하던 기사들이 신나서 로이와 같이 숫자를 카운팅한다.
순간 연무장이 쩌렁쩌렁 울렷다.
이제 쇼타임이다.

우드드득

인정사정 봐줄 것 없다.
그대로 손에 힘을 줘버린다.
셰릴의 귀여운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이!”
“이!”

다시 한  울려 퍼지는 함성.
깜짝 놀라서 힘을 주는 셰릴.
소용없어.
내가  콧대를 꺾어주마.
그녀가 준 힘의 정확히 두 배로 손아귀를 부숴버릴 것마냥 쥐어짠다.

우드드드득

“일!”
“아아아아악!”
“일!”

셰릴이 손이 부서질 것만 같은 고통에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흥분한 기사들의 함성에 그녀의 비명이 묻혔다.
이상함을감지한 것은 그녀의 아버지 핀돌프 기사단장뿐이었다.

“잠까…”
“시작!”



승부가 났다.
애초에 손아귀가 완전히 내게 잡힌 셰릴은 힘조차 제대로 주지 못했다.
바로 넘어가서 나무바닥과 키스하는 셰릴의 부드러운 손등.

적막만이 가득한 연무장.
아무도 순간 일어난 일을 이해하지 못했다.
레벨 1짜리 망나니가 레벨 20짜리 기사단장의 딸과 팔씨름을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에 이겨버린 것이다.

“형님, 승부가 났습니다. 어서 판정을 내려주시지요.”
“…이건 말도 안 된다! 레벨 1짜리가 어떻게 이긴 것이지? 셰릴 양, 설마 져준 겁니까?”

큭큭큭,  횡설수설하네.
당황하셨어요?
근데 당사자 셰릴 표정도 넋이 나가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이다.
 표정을 보면 절대 져줬느냐는 질문은  던지지.

“네 이놈! 데이몬, 무슨 사술을 쓴 것이냐? 어떻게 셰릴 양을 이길 수 있었던 거야?”
“형님, 승패를 판정해주시려고  자리에 서신  아닙니까? 아니면 설마 영주님의 후계자 자리를 원하는 형님께서 한 입으로 두말을 하시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내가 서늘한 목소리로 말하자 로이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아니면 공정한 승부를 주관해야만 하는 심판관이 한쪽 편을 들어줄 생각이라도 있었던 겁니까? 어떻게 된 겁니까? 72대천사들께 떳떳하다면 어서 승패를 판정해 주시지요.”

나도 72대천사 이 기회에 써먹어 보자.
여기 녀석들에게 종교 쪽이 제대로 먹히는 것 같아 보이니깐 말이야.
로이가 반쯤 넋이 나간 상태에서 중얼거린다.

“데이몬 승리…셰릴 패배…”
“셰릴, 내기는 너도 잘 알다시피 나의 승리로 끝났다. 승패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져야 함은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터. 당장 씻고 짐을 챙긴 다음에  방으로 와라. 크래스 장원에 가기 전에 상의할 것이 있으니깐 말이야.

나에게 손이넘어간 자세 그대로 굳어있는 셰릴도.
구경하고 있는 기사들도.
입을 하도 크게 벌려서 침이 흐를 것 같은 로이도.
마지막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린 핀두르 기사단장까지 비웃으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연무장을 빠져나간다.

“말도 안 돼! 이건 있을  없는 일이야!”
“셰릴, 설마 져준 것이냐? 어찌 된 일이냐!”
“저도 몰라요! 도련님 힘이 상상 이상이었어요. 제가 이걸 왜 봐줘요.”
“이제 어찌한단 말이냐! 으아아악!”

큭큭큭, 다 들린다. 이것들아.
뒤에서 절규하는 저들의 목소리가 천상의 하모니로들린다.
그런 나의 귀에 기분 좋게 들리는 새롬의 목소리.

[카르마가 10 증가했습니다. 총합 40/940]
[카르마가 50 증가했습니다. 총합 90/990]
[카르마가 100 증가했습니다. 보너스 스텟 4로 전환됩니다. 총합 90/1090]

오호라! 대박이구나.
이것이 바로 일타삼피라는거겠지.
지금 누구누구한테 카르마가 들어온 거지?

일단 10은 로이 것이겠지.
지가 노리고 있던 여자를 내가 채가니까 속이 쓰려서 내가 카르마를 얻은 것이겠고.

50은 보나 마나 핀돌프 기사단장.
제 딸이 망나니 따라서 마녀들린 크래스 장원에 가게 되었으니 똥줄이 탔겠지.

그러길래 나한테 잘하지 그랬어.
네가 나 무시한 만큼 네 딸도 고생길이 열렸으니 인과응보라고 늙은이.

마지막으로 100은 굳이 알아보지 않아도 뻔하지.
 히로인이 된 것을 축하한다. 셰릴.
앞으로 내가 많이 귀여워해 주마.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 말이야.

와, 이러니까 이거 무슨 완전 소설 속 나오는 악당 같네.
 주인공 아니었나?
모르겠다.
세상 어딘가엔 이런 주인공도 있겠지. 뭐.



 



사상 최악의 주인공〈 13화 〉세상엔 이런 주인공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