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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화 〉내 육변기가 되어라





〈 31화 〉내 육변기가 되어라

초야권.
지구 기준으로 설명하려면 중세 유럽으로 가야 한다.

중세 유럽에서 장원의 주인은 휘하의 농노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농노들도 사람이니 결혼해서 자손을 늘려야 한다.

그런 이들이 결혼했을 때 신부는 첫날밤을 신랑이 아닌 자신의 주인인 영주와 보내서 처녀를 먼저 바쳐야 하는 아주 야쓰한 권리다.

평행세계 판타지아도 예전 중세 유럽과 굉장히 세계관이 비슷하다.

그러니 나도 이곳의 영주로서 정당하게 초야권을 행사할 생각이다.

이미 결혼해서 애가 있는 여인들도 있는데 무슨 초야권이냐고?

그냥 내 맘이다.
그러려니 하라구.

어찌 되었든 셰릴과 메이는 금세 마을 여인들을 깨워서 공터에 집합시켰다.

잠이  깬 눈을 비비며 비척비척 걸어온 여인들은 촌장네  마당에 줄줄이 묶여 있는 마을 남자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 이게 어찌  일이죠?”
“모두 조용!”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모두 조용해진다.
그러나 농노 여인들이 날 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당연하겠지.
갑자기 귀족으로 보이는 놈이 나타나서 마을 남자 때리고 묶어놨는데 좋은 눈으로 보면 그게 이상한 거지.

“일단 노인들과 애새끼들은 모두 들어가.  볼 꼴 볼 수도 있으니깐 말이야.”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늙은이들도 귀족 나리께 무슨 일인지 들어야겠습니다!”

내 말에 마을에 명 있지도 않은 노인들이 발끈하면서 입을 연다.

“촌장, 어떻게 할래? 이대로 쭉 말할까?”
“...어르신들, 애들 데리고 먼저 들어가 있어 주세요.”
“아니 그래도 무슨 상황인진 알아야….”
“부탁드립니다.”

촌장의 참담한 심경이 전해졌는지 결국 노인 몇 명이 애들을 이끌고 자기네 집으로 들어갔다.

하긴 자기들이 인간말종이었다는 사실을 최대한 적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지.

특히 애들한테는 죽어도 알리고 싶지 않을 거다.

노인과 아이들이 들어가자 남은 사람은 20명의 20대에서 40대 여인들뿐이었다.

날 습격한 젊은 축에 속한 마을 남자들은 15명인데 비해 여인들은 21명으로 6명이 더 많다.

역시 옛날에는 전쟁을 하도 많이 해서 징용이다 뭐다 하느라고 마을마다 남자보다 여자가  많았다고 하더니 사실인가 보네.

“귀족 나리, 이제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왜 제 남편과 아들을 저렇게 짐승 묶어놓듯 묶으셨는지 알려주시지요.”

곱지 않은 말투로 여인이 대표로 나서서 허리에 양손을 짚은 채로 말을 한다.

“자네는 이름이?”
“엘리샵니다. 저기 있는 사람이 제 남편이자 이 마을 촌장이지요.”

아하, 네가 그 촌장의 아내이자 촌장 아들의 어머니구나?

확실히 마을 대표 여자라 그런지 이런 깡촌에서 그나마 봐줄 만한 얼굴이다.

햇볕에 그을린건강한 갈색 살결에 뚜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관리를 잘한 40대 초반의 농익은 가슴과 몸매가 묘하게 꼴린다.

약간 인디언 여자처럼 생겼네.
지구에서 지나가다 힐끗 봤던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 여주인공 느낌이다.

“긴말 할  없겠지. 여기 있는 이 남자들은 너희를 수면제로 재운 사이에 나를 독살하고  여인들을 돌려가며 겁탈하려 했다.”



내 충격적인 말에 여인들이 혼란에 빠진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본다.
그리고 엘리샤가 다시대표로 나서서 소리쳤다.

“그럴 리가 없어요! 저희 마을 남자들이 얼마나 착한데 그런 짓을 했겠어요?”

역시나 믿지 못한다.
하기야 여태까지 잘만 지냈던 남자들이 사실 짐승 새끼들이었다는데 믿기 힘들긴 하겠지.

“꺄아아악! 샘! 샘이 죽었어!”

이제야 발견했구나.
마을 여자 한 명이 꽥꽥 소리를 지르며 내가 할복시켰던 남자 근처에 가서 안절부절못한다.

그리고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날 노려본다.
얼씨구?

“왜 샘을 죽인 거죠?”
“그 녀석은 이중 유일하게 칼을 들고  뒤를 찌르려던 놈이다. 덕분에 난 옆구리가 찢어졌지.”
“그래도 용서해 수 있었잖아요! 제 하나뿐인 아들이 흑흑! 귀족 나리 정말 너무하시네요.어쩜 그렇게 자비가 없으십니까!”

그러면서 내 앞에서 통곡하며 운다.
어이가 없네.

씨발 그럼 내가 죽게 생겼는데 그 와중에 살려주리?

그냥 아들이죽은 게 싫은 거지?
 아들이  죽이고 내 여자들을 강간하고 말고는 상관도 없고 말이야.
이런 년들을 지구에서 부르던 은어가 있다.

맘충.

이런 맘충들이 한국에서도 사회를 좀먹는 녀석들이었다.
제 자식에겐 한없이 관대하고 남에게는 끝도 없이 엄격한 계집들.

이런 년들이 기르는 자식들이 크면 어떤 연놈들이 되겠냐?
딱  같은 연놈들 키우는 거다.
아주 제대로 악순환이지.

판타지아에서는 이런 맘충들을 단죄할  있어서 참 다행이다.

“젊은 남자들이 혈기가 치솟아서 순간 실수를  수도 있는 거죠. 대체  이러신 거예요?”
“...안 되겠다. 메이, 지금 촌장의 집에 가서  녀석들이 나에게 건네준 포도주잔을 들고와라.”
“네,주인님.”

메이도통곡하는 여인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가 내 말에 헐레벌떡 집에 들어가서 포도주가 담긴 나무잔을 들고 나왔다.

난 그 나무잔을 들고 아들을 잃고 날 원망하는 여인에게 내밀었다.

“이걸 마셔라. 이 포도주가  아들이 나에게 권했던 술이다. 10년 동안 묵혀둔 특등급 포도주라 하더군.”

여자는 갑자기 내가 술을 권하자 이해가 안 간다는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만약에 이 술을 네가 마신다면난 너에게 사죄하고 아들을 죽인 죗값을 네 앞에서 치르겠다.”
“...정말인가요?”
“귀족이 한 입을 두말하는 것 봤나? 책임지고 사죄하고 물질적인 보상이라도 해주겠다.”

마을 여자는 의심하는 눈빛으로 내 위아래를 훑어본다.

어쭈?
농노 계집 따위가 귀족 남자를 그렇게 평가하듯 쳐다봐?
이거 진짜 건방진 노답 년이네.

“저기 리나, 그건 마시면 안 돼….”
“이봐, 목에 바람구멍 나고 싶어?”

촌장의 입을 열었다가 셰릴의 레이피어가 목 끝에 닿아서 피가 송골송골 맺히자 끝내 입을 다물었다.

“어서 마셔라. 어차피 천한 네년의 신분으로는 평생 마셔볼 일 없는 술이야. 좋은 경험 한다고 생각해.”
“...귀족 나리가 사죄한다고 해도 아들을 잃은 제 마음의 슬픔은 어떤 물질로도 보상할 없을 겁니다. 그나마 사과라도 받아야 제 마음이 편해지겠지요.”

아주 지랄을 하시네요.
여인은 마침내 포도주를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한다.

원샷 원샷 원샷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내 어깨를 봐.
탈골되잖아.

크흠흠.
다시 제정신을 차려보자.
포도주를 말끔하게 비운 그녀가 다시 나를 노려본다.

“자, 나리의 말대로 포도주를 다 비웠으니 약속대로 사과하시지….”
“왜 말을 끝내지못하지?”
“...꺼억, 꺼어어억!”

땡그랑

나무잔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러다닌다.

그리고 마을 여인의 얼굴이 새빨개졌다가 새하얘졌다가 새파래지기를 반복한다.

오우.
사람의 얼굴색이 저리 다양할 수 있었구나.

“리나!”
“끄에억! 끼아아으억!”

괴상한 소리를 지르던 여인의 눈이 확장되며 안구가 튀어나올 듯이 돌출한다.

충혈된 두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벅 벅 

목이 타는지 그녀가 손톱으로 목을 긁어댄다.

얼마나 강하게 긁어대는지 손톱이  나가고 목의 살이 다 찢어져 살갗이 손에 묻어나고 피가 줄줄 흐르는 광경.

너무나 끔찍한 참상에마을 사람들 모두가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아그아악! 살려아아악! 끄어억!”

아니 엄마들.
대체 아들에게 뭘 먹이시려고 한 겁니까?

저건 청산가리나 황산 수준이 아닌 거 같은데?
무슨 시멘트라도 섞었냐?

진짜나중에 베르너 백작가 돌아가면 봅시다?
우리 상큼한 어머니들?

털썩

결국, 여인은 칠공에 피를 줄줄 흘리다 쓰러지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이런. 사죄하려 했는데 죄를 청할 상대가 사라져 버렸군.”

뇌가 우동사리로 되지 않는 한 무식한 마을 농노들도 방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것이다.

까딱 잘못했으면 귀족 나리가  여인처럼 되었으리란 생각과 자신들의 남편과 아들들이 뭔가 큰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직도 못 믿겠는가? 엘리샤, 어때? 현실부정 중이야?”

촌장의 아내인 엘리샤는 어느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있다.
한참을 할 말을 고르던 그녀가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연다.

“그이한테 직접 듣고 싶어요. 어떻게  일인지 말이에요.”
“그래, 그것도 괜찮겠지. 촌장!”

내 말에 셰릴이 촌장의 뒷목을 번쩍 들어서 엘리샤 앞에 갖다놓는다.

둘 간의 눈 맞춤.
엘리샤는 간절한눈빛으로 촌장을 바라보고 있고 촌장은 어떻게든 그녀의 눈빛을 외면하고 있다.

“여보, 아니죠? 귀족 나리가 거짓말을 하는 거죠? 정말로 나리를 저렇게 독살하고 저 레이디들에게 그런 짓을 하려던 것은 아니잖아요. 그쵸?”

큭큭큭.
내가 촌장이었으면 지금 혀 깨물고 싶겠다.

하지만 촌장은 그럴 용기도 없는 사내다.
결국, 개미만한 목소리로 촌장이 조그맣게 말한다.

하지만 사위가 너무 조용해서 촌장의 목소리를  들은 마을 여자들은 없었다.

“미,미안해, 엘리샤. 면목이 없어.”
“아니잖아요! 아니라고 말해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당신하고 여기 있는 마을 남자들이 전부 가담을 했다고?”

믿기지 않는 목소리로 엘리샤가 소리쳤다.
그러자 옆에 있던 셰릴이 빈정거리며 한 손 거들었다.

“심지어 저기 묶여있는  남자는 날 범하기 위해서 며칠 동안 아내랑도 일부러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군.”
“뭐라고요? 자기! 그게 무슨 소리여요. 요새 피곤하다면서 피했던 게 정말 그런 이유 때문이었어요?”

셰릴의 말에 마을 여자 중 하나가 튀어나오면서 배신감에 얼룩진 눈으로 묶여있던 남자를 쳐다본다.

남자는 고개를 떨구고 아무 말도 못 한다.

분위기가 완전히 넘어왔다.

이제 마을 여자들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멍하니 이 상황을 이해하려 속으로 애써볼 뿐이다.

 기세를 몰아서 속으로 생각하던 판결을 마을 사람들에게 내렸다.

“너희도 알다시피 귀족 모욕죄는 즉결처형감이다. 그런데 너희 크래스 장원의 남자들은 모욕도 모자라서 날 독살하고 내 여인들을 윤간하려 했지. 이는 마을 전체를 없애도 무방한 일. 이의 있나?”

이의는 당연히 없겠지.
있으면 사람 새끼 아니고.
당연히 마을 사람들은 눈물을 질질 짜며 내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잘못했습니다, 나으리. 용서해 주십시오.”
“영주님, 저희가 머리가 무식하고 배우지 못해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신다면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제발요! 살려주세요! 죽고 싶지 않아요. 엉엉엉!”

아주 마을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었다.
이런 상황 예상했다.
그리고 이제부터 협상 시작이다.

번쩍

손을 들자 울던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울음을 멈추고 내 말에 집중한다.

“그래서 너희에게 제안을 하려 한다.”
“무슨제안 말씀이십니까?”
“솔직히 여인들. 너희 또한 피해자다. 그렇지 않은가?”

그건 맞지.
얘내들은 수면제 먹고 아무것도 모르고 잠들어 있었잖아?

만약에라도 내가 독살당하고 셰릴과 메이가 강간당했더라면 결국 이 여자들도 지네 남편이나 남자친구가 바람을 핀 거니 피해자가 되는 거겠지.

여인들이 내 말에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너희에게 제안한다. 사내들은 주동자니 살려줄 수 없다. 그러나 여인인 너희는 살려주겠다.”
“안돼요! 저희 남편도 살려주세요!”
“제 아들은 어떻게 하고요.”
“마이클을 살려주세요! 차라리 제가 대신 죽을게요!”
“조용! 아직 내 말 안 끝났다.”

와, 진짜 착한 년들.

남자 새끼들은 자기들 내버려두고 다른 여인 강간하고 살인까지 저지르려고 했는데 이걸 대신 죽어주겠다고 하네.

이렇게 마음씨가 된 계집들을 보니 소유욕이 불끈 치솟는다.

“둘 다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그게 뭐죠? 무슨 말이든 따를게요.”
“제발요! 방법만 알려주신다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여인네들을 보며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말한다.

“내 육변기가 되어라. 그러면 모두를 살려주겠다.” 



사상 최악의 주인공〈 31화 〉내 육변기가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