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괴물들을 길러낸 것 같군
슬슬 고블린 녀석들을 사냥하려고 할 때였다.
피슛
“으응?”
아까부터 왠지 모르게 뒤통수가 간질간질하긴 했다.
깜짝 놀라서 고개를 뒤로 젖히자 내 머리통이 있던 곳에 날카롭게 갈아놓은 쇳조각이 지나간다.
“뭐지?”
핏 피핏 핏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두운 숲 속에서 연달아 쏘아지는 철침들.
내가 민첩스텟이 높지 않았다면 절대 피하지 못할 속도의 철침들이었다.
푹 푸푹
“뀌엑!”
“뀌이엑!”
이런.
오크들은 면적이 넓어서 벌써 침을 여기저기 맞았다.
피를 흘리는 건 문제가 아니다.
맞은 오크들이 움직임이 확연히 둔해진다.
아마 마비 비슷한 종류의 독을 철침에 발라놓은 것 같았다.
[고블린 레인저들이군요.]
“뭐야, 새롬? 너 안 자고 있었어?”
[자려고 했는데 상황이 재밌어서요. 일어난 김에 야식 먹으면서 구경하고 있습니다.]
이런 썩을 년.
넌 진짜 나중에 내가 마계에 가면 24시간 일만 시켜줄게.
하지만 지금은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고 지식을 구걸한다.
“그래서 레인저들이 대체 뭔데?”
[고블린 전사 중에서도 정예라 보시면 됩니다. 기동성이 좋고 은밀하며 게릴라전에 능하죠. 치고 빠지면서 철침을 쏘아대면 아주 골치 아픕니다.]
그래.
골치 아픈 거 이미 충분히 겪고 있다.
핏 피핏
“뀌에엑!”
“이런 쓸모없는 놈들! 기껏 데리고 있더니 그냥 고기 방패밖에 안되네.”
진짜 거대한 덩치의 오크들은 그저 내가 철침을 피해 숨을 수 있는 방패일 뿐.
느려터져서 고블린들을 따라갈 수 있는 기동력이 안 되었다.
결국,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
여기서 고블린에게 죽어서 22명의 여자들을 청상과부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 네까짓 것들이 강해 봐야 얼마나 세겠어. 그래 봐야 레벨 30도 안 되는 것들이겠지.”
내 레벨은 1이지만 스텟은 45가량.
물론 레벨 20대 몬스터들 수십이 달려들면 데미지 중첩으로 위험할 수 있다.
그러니 일단은 내가아껴두고 있었던 보너스 스텟 먼저 아낌없이 찍는다.
[힘/민첩에 각각 50 투자하셨습니다.
힘/민첩스텟 총합이 각각 100이 되었습니다.
보너스 스텟 8을 행운에 투자하셨습니다.
행운 스텟 총합이 10이 되었습니다.]
빠르게 스텟창만 확인!
-상태창-
이름: 송길준
힘: 100 민첩: 100 지력: 5 행운: 10
보너스 스탯: 2
큰 맘 먹고 힘/민첩골고루 50 뿌렸다.
이제 100/100이 된 나.
어마어마한 힘이 몸속에서 올라온다.
운은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 10까지는 맞춰놨다.
그렇게 아껴뒀던 보텟을 모조리 찍었다.
그러니 지금부터 제대로 된 승부다.
대가리 먼저 잡는다.
피잇 퍽
나를 감싸주던 오크가 철침을 우수수 맞았다.
가만 지켜보니 저 철침이 비처럼 쏟아지는 것 같지만,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
기관총도 장전하는 시간이 있는데 저런 철침은 당연히 장전 시간이 더 길겠지.
나는 그동안 그 틈을 세고 있었던 거다.
한번 철침이 비처럼 쏟아지고 잠시 소강상태가 되는 이 몇 초간.
이 순간을놓치지 않고 발을 박차며 어두운 풀숲을 향해 쇄도한다.
타앗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나가는 나에게 고블린 녀석들 따위가 반응할 수는 없었다.
순간 풀숲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풀숲 사이사이에 온몸에 군대에서 바르던 위장크림마냥 진흙으로 떡칠하고 기다란 풀을 엮어서 위장헬멧처럼 쓰고 숨어있는 고블린들이 보인다.
어찌나 놀랐는지 제대로 비명도지르지 못한 모양.
그들의 손에는 대나무 비슷한 재질의 기다란 대롱이 쥐어져 있었다.
저걸 입으로 불어서 철침을 쏘아냈던 거구나?
“췩, 취이익. 인간! 빠르다!”
“인간! 잡아라! 취익!”
고블린은 멍청한 오크와 달리 어느 정도는 사람 말이 가능한 놈들이었구나.
뭐, 이게 중요한 건 아니지.
뒤늦게 상황 파악이 된 고블린들.
이들이 재빠르게 철침을 장전해서 일제히 나를 노린다.
하지만 나는 이미 너희 대장이 누군지 파악해뒀거든?
내가 들어오자마자 삿대질을 하면서 날 가리킨 덩치 큰 놈.
네 놈이 내 목표다.
핏 피핏
나에게 쏘아지는 수십의 철침들.
절체절명의 순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어그로를 뺄 수 있는 개사기 스킬이 하나 있거든.
“…진실의 방 발동!”
스팟
[진실의 방이 발동되었습니다.]
오우.
육각링 오랜만이고.
내 앞에는 고블린 레인저 대장이 보인다.
순간 동료들이 사라지고 나와 단둘이 있게 되자 당황한 모양이다.
“췩, 이게 어찌 된 일? 취익!”
“헬로우? 우리 통성명이나 해볼까?”
“췩! 인간!췩! 죽인다!”
설명이 필요 없다.
진실의 방 유지시간 10분.
스텟 반으로 깎인 레벨 33짜리 고블린 대장 조지기는 충분한 시간이다.
잠시 후.
“췩! 살려달라! 췩!”
“달라? 말이 짧다?”
“살려주세요! 취익!
레벨업하기 싫어서 죽이진 않았다.
그래서 죽기 전까지 패버렸다.
어차피 거리 유지하면서 대롱에서 쏘아내는 마비침이 귀찮은 것이지, 이런 제한된 공간에서 인파이트하면 내가 끌고 온 오크 한 마리도 못 이길 놈들이다.
이런 ㅈ같은 티모 같은 놈들.
티확찢하니까 속이 다 시원하네.
응? 내가 방금 뭐라고 한 거지?
각설하고.
이제 진실의 방 제한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눈탱이 밤탱이 된 녀석에게 몬스터로드를 사용했다.
[스텟차이 확인되었습니다. 몬스터로드가 발동됩니다.]
“…췩, 주군, 명을 내려달라.”
고블린 레인저 대장이 내 부하가 되었다.
부하가 된 기념으로 깔쌈한 이름하나 지어주자.
“네 이름은 지금부터 티모, 계급은 대위다. 알긋냐?”
“취익! 티모 대위…알겠다, 취익.”
이름을 지어줬으니 첫 명령을 내려보자.
“이곳에 나가자마자 날 공격하지 말라고 해라. 그리고 일렬로 줄 세워. 너네 레인저 몇명이야?”
“30명이다…취익!”
너희도 30명이냐?
오크 전사 30명.
고블린 레인저 30명.
나쁘지않네.
“좋아, 티모 대위. 이제 진실의 방을 해제할 테니 똑바로 하도록.”
“알겠다, 취익!”
슈슈슉
진실의 방이 해제되었다.
순간 나랑 같이 사라진 대장을 걱정하던 고블린 레인저 대원들은 갑자기 눈앞에서 둘이 나타나자 혼란스러운 눈빛이다.
“취익! 대원들! 사격 중지! 우리 대장님이다! 취익!”
“…취익? 인간이 대장? 취익! 이해 안 간다!”
“안 가면 나한테 맞아라! 내가 그쪽으로 간다!”
“이해가 간다! 인간 우리 대장 맞다! 취익! 취익!”
오우.
티모 대위.
생각보다 아랫사람 굴리는 게 나랑 비슷한 타입이었구나?
마음에 들었어.
티모 녀석은 아무래도 부하들에게 신임이 돈독한 대장이었나 보다.
나머지가 다 레벨 20대인데 자기혼자만 레벨 33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결국, 내 앞에 일렬로 얌전히 서서 예방접종을 기다리는 아이들.
“조금 따끔해요~ 3, 2…”
마지막 숫자 1까지 세지 않고 주삿바늘 넣는 게 국룰이지.
[몬스터로드가 사용되었습니다.]
[몬스터로드가 사용되었습니다.]
[몬스터로드가 사용되었습니다.]
[몬스터로드가 사용되었습니다.]
[몬스터로드가 사용되었습니다.]
…30명의 정예 고블린 레인저를 획득해버렸다.
“취익! 주군! 명령을!”
“일단 너희 철침에 발라놓은 마비독 해독제 있어?”
“취익! 있다!”
“그럼 저 덩어리 놈들부터 해독해 봐.”
“알겠다! 취익!”
힘들게 끌고 온 오크 30마리는 결국 해독제를 먹고 다시 쌩쌩한 상태가 되었다.
“뀌이이익!”
“줘 털려놓고 이제 와서 힘센 척하지 말아라.”
“뀨우~?”
“뀨는 선 넘었고. 네 얼굴이 돼지 상인데 뀨는 아니지.”
“뀨우우…”
아무튼 귀여운(?) 오크들과고블린들을 모으자 벌써 60명의 정예부대가 되었다.
오크들도 지금이야 산속이니까 저렇게 당했지만, 평지에서 인간들이랑 힘 싸움하면 볼만할 것 같다.
가장 작은놈도 2m가 넘어가니 말 다했지 뭐.
“근데, 티모. 너희 고블린들은 다 너희같이 다 잽싸고 철침을 쏘아대냐?”
그러면 좀 곤란할 것 같은데.
눈앞에 보이는 부락은 엄청 커서 인원수만 대충세어봐도 이천은 되어 보인다.
그러면 부족 내 전사급 고블린은 적어도 300명은 된다는 말인데.
그들이 일제히 300개의 철침을 쏘면 아무리 내 병력이 60명이나 된다 해도 조금 곤란할 것 같다.
“취익! 우리가 특별한 부대다! 취익! 우리는 레인저! 취익! 부족 내 가장 강한 전사들이다!”
“맞다, 취익! 레인저 아닌 전사들. 취익! 다섯 명이 덤벼도 나하나 못 이긴다. 취익!”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300명가량되는 고블린 전사들이 모조리 레벨 20대에 철침 쏘아대는 건 말이 안 되긴 하지.
아마 부족 전사들은 레벨 10대임이 분명하고 이 레인저 놈들이 레벨 20대.
그리고 티모가 레벨 33으로 최고 고수였던 모양이다.
“취익! 레인저 아닌 놈들은 우리처럼 침을 쏘지 않는다. 그냥 몽둥이랑 검 들고 덤빈다!”
“육탄전 위주?”
“그렇다! 취익!”
한마디로 붙어서 싸우는놈들이라 이거지?
그럼 덩치 큰 놈이 유리하겠네.
오크들아, 드디어 밥값할 시간이다.
“얘들아, 레벨업해야지? 가서 쓸어버려라.”
2천 마리의 고블린.
물론 아무런 은원 관계도 없다.
하지만 난 애초에 데이몬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송길준.
난 최강의 악마가 되기 위해서라면 2천이 아니라 2만도 죽일 수 있다.
“…전원 돌격!”
“뀌이이이익!”
“취이익!”
쿵 쿵 쿵 쿵 쿵
지축을 울리며 거대한 오크 30마리가 모두가 잠든 고블린의 부락을 습격한다.
그리고 그 뒤로는 이미 내 수족이 된 고블린 레인저들이 대롱을 입에물고 오크들의 지원사격을 한다.
레인저들은 자신의 부족원들을 공격하는 것임에도 몬스터로드에 단단히 세뇌된 탓인지 거리낌이 없는 모양이다.
콰앙
“취익! 이게 대체 무슨 일!”
“취이이익!”
콰앙 콰앙 콰앙
오크가 들고 있는 거대한 나무 몽둥이는 고블린 몸뚱이만 하다.
평균 신장이 150cm가 되지 않는 이 자그마한 땅요정들은 오크의 무지막지한 몽둥이질에 아무것도 못 하고 날아가 버린다.
“취익! 레인저들! 경계근무를 서고 있던 레인저들은 어디 있나! 취익!”
“취익! 여기 있다! 요기요!”
핏 피핏
철침이 날아가서 방금 레인저를 찾는 고블린의 머리통을 꿰뚫는다.
레인저들은 더 악랄한 게 기존 부족원들의 정보를 다 알고 있다 보니 지휘관 우선으로 저격해서 처리해버린다.
그렇지 않아도 자던 중에 습격을 받아 정신도 없는데 명령권자 우선으로 사라지니 부족 전사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쾅 콰아앙
“취익! 살려… 취이이익!”
퍼억
고블린의 머리통에 오크의 나무방망이가 작렬하자 푸른 피가 온 사방에 튄다.
이미 대부분의 전사는 제대로 저항조차 못 하고 궤멸했고 등을 돌리고 도망가는 녀석들에게는 레인저들의 자비 없는 철침이 날아가 박혔다.
푹 푸푹
“취이이익!”
“어째서! 레인저가 어째서!”
“주군의 명이다! 취익!”
오우.
근데 이 레인저들.
확실히 제대로 스나이퍼다.
명중률 100퍼.
생각해보니 아까 나랑 싸울 때도 내가 오크 뒤로 숨어서 그랬지, 내가 있는 곳을 정확하게 맞추긴 했다.
적군이었을 땐 귀찮았는데 아군이 되니깐 이리 든든할 수가 없네.
1시간 후.
화르르륵
밤하늘에 불길이 치솟는다.
2천 마리가 있던 고블린 부락의 곳곳이 불타고 있었다.
사방이 고블린 시체였다.
2천 마리의 고블린은 결국 단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럼 오크들의 레벨 감정 좀 해볼까?”
애초에 이 고블린 사냥은 내가 거느리고 있는 오크 전사들의레벨업을 위한 것이었다.
물론 이젠 고블린 레인저도 얻었으니 같이 레벨업을 했겠지.
악마의 눈 발동!
-상태창-
이름: 오크 1
칭호: 데이몬의 권속
직업: 오크 전사
LEVEL: 25
힘: 85 민첩: 50 지력: 2 운: 5
보너스 스탯: 0
카르마 수치: 752
스킬: 무(無)
상태: 통쾌함, 흥분.
오우.
많이 올랐다.
예전에 너 레벨 5 아니었냐?
얼마나 죽였길래 레벨 20이 올랐냐?
보니깐 다른 오크들도 지금 살펴본 오크와 비슷한 능력치로 레벨 20대 중반에서 왔다 갔다 한다.
하긴 그전에도 사냥을 많이 시키긴 했었다.
몇 달 내내 쉴 새 없이 굴렸더니 이번 고블린 부락 습격을 기점으로 레벨 25 달성했나 보다.
근데 오크가 확실히 피지컬이 다르긴 하네.
난 레벨 45쯤되어서야 힘스텟이 100이 되었는데 얘는 아직 레벨 30도 안 되었는데 힘이 100을 향해 달려간다.
그 와중에 민첩스텟은 또 50.
아마 고블린 레인저들에게 당해보니 느려터진 기동성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 듯 나름대로 생각해서 투자한 모양이다.
근육 돼지가 민첩하기까지 하면?
난 드넓은 평원에서 중갑을 입고 인간 병사들을 휩쓰는 평균신장 2m 30cm의 괴물들을 상상해 보았다.
“아무래도 이거 괴물들을 길러낸 것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