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더한 쓰레기도 될 수 있어
툭 툭 툭
차가운 흙바닥에 사람의 생니가 쓰레기처럼 굴러다닌다.
여자는 비명을 지를 힘도 없는 듯 꺽꺽거릴 뿐.
더욱 잔인한 점은 그런 그녀가 출혈로 죽지 않도록 중간중간 포션으로 치료를 해주었다는 거다.
포션은 상처를 아물게는 하지만 빠진 이빨을 자라게는 못한다.
결국, 모든 이빨이 뽑히고 아물어버린 여인은 입을 뻐끔대며 공허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레인저들, 이제 이 계집의 이를 모두 뽑았으니 입보지를 써도 된다.”
“취익! 주군은 역시 대단하다. 취익!”
“우리도 이런 생각은 못 했다! 역시 주군이다. 취익!”
기뻐하는 고블린들은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흉물스러운 물건을 여인의 입에 억지로 욱여넣는다.
그렇게 3 구멍이 모조리 점령당한 채로 윤간당하는 여인.
나는 그저 차가운 눈으로 그 여인을 바라보았다.
“흑흑…너무해…”
“뭐가 너무하다는 거지? 원래 저 여인이 맞이할 운명이었다. 내 여인이 되길 거부했으니 원래의 운명으로 돌려놨을 뿐이다.”
10명의 여자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눈앞의 처참한 현장을 1초도 빼놓지 않고 확실히 지켜보았다.
이제 그들이 나를 보는 눈빛에는 혐오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압도적인 공포.
그저 공포만이 나를 보는 눈에 가득 담겨있다.
“서방님. 언제까지 저 여인을 저렇게 두실 건가요?”
“오늘 저녁까지. 저녁까지 둔다.”
“!”
지금은 아침 7시.
오늘 저녁까지 끝없이 돌림빵을 당한다면 저 여인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난 거기서 더한 주문을 한다.
“나머지 10명의 여인도 끝까지 저 여인의 최후를 눈뜨고 지켜보게 해라.”
그 명령만 내리고 그대로 집으로 들어갔다.
쿠웅
집 문이 닫히고 문가에는 셰릴과 메이가 복잡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지? 이러기로 했잖아.”
“…그랬죠.”
솔직히 이번 스타일은 평소에 내 행보랑 조금 다르긴 하다.
난 여태까지 성적인 고문이나 수치심을 줄지언정 목숨을 빼앗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독하게 마음먹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저 여인들의 출신 때문이다.
메이와 셰릴.
그리고 육림대원들.
이들은 어쨌든 내 아버지 윌렛 백작 휘하의 영지민들이었고 그렇기에 아무리 망나니라 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눈치를 아예 안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갈리아 제국민들인 저 여인들에게는 월렛왕국 귀족이자 백작의 도련님이라는 타이틀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
두 번째는 구속력이다.
일단메이는 내 전담 하녀로서 늘 내 곁에 있기 때문에 좋으나 싫으나 운명공동체다.
셰릴 또한 천사의 계약으로 나와 맺어진 관계.
반대로 육림대는 악마의 계약으로 나와 맺어졌다.
그런데 이번 이 여인 10명은?
아무런 구속력이 없다.
지금 나한테 성노예를 하겠다고고개를 숙여도 당장 이 숲 바깥으로 나가서 입장을 바꿔버리면 나로서는 이 여자들을 구속할 수 있는 어떠한 수단도 없다.
악마의 계약서는 이미 20장을 다 썼고 마왕 A가 다른 악마들의 눈치를 보고 또 나에게 그런 비밀 지원을 해줄 것 같지도 않다.
천사의 계약은 이런 한 사람의 인권을 짓밟는 비윤리적인 계약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여인을 포기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렇기에는 이 여인들의 능력이 너무 탐난다.
갈리아 제국 아카데미 졸업생.
거대상단의 행정업무를 맡았던수재들.
이런 머리 좋은 여자들을 내 곁에 둘 수 있다면 현재 인재에 목마른 나에게는 가뭄의 단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런저런 생각이 합쳐져서 나온 결과물이 이렇다.
본보기를 보이고 압도적인 공포심을 통한 복종심을 끌어내는 것.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잘 통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저 여인은…저렇게 고통 속에 죽어가야 하는 건가요?”
“그래. 내가 그렇게 정했다. 나란 남자가 밉나? 혐오스러워?”
메이를 똑바로 보고 말한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뇨. 데이몬, 당신은 저에게 멈출 기회를 주셨잖아요. 하지만 저는 당신의 결정에 동의했죠. 저 장면은 제가 만든 거나 다름없어요. 만약에 혐오해야 한다면 저 자신을 혐오해야겠죠.”
이 말을 하는 메이는 잠깐 새에 10년은 늙어 보인다.
이러나저러나 나를 제지하지 않았다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로 온 모양이다.
“언니…”
셰릴은 그제야 나와 메이 사이에 오간 얘기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메이가 어깨에 짊어진 책임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고 메이를 토닥토닥 해준다.
“흐흑, 셰릴 난 나쁜 년이야. 죽어 마땅한 년이야.”
“아니야, 그런 생각 하지 마. 언니는 언니일 뿐이야. 내가 언니였어도 서방님을 막지 않았을 거야.”
결국, 내 부인 두 명은 부둥켜안고 운다.
옛날 같았으면 내 앞에서 저리 울면 바로 치도곤을 내줬을 거다.
하지만 정실 부인이 되고 육체적인 관계를 넘어 정식적인 교감까지 나누는 메이와 셰릴에게 그렇게 막대하고 싶진 않다.
잠시 후.
나는 해가 져서 주변이 어두워지자마자 득달같이 집 밖으로 나섰다.
베이스캠프는 평소와 달리 무거운 분위기였다.
십동대도 자기 엄마들의 권유에 따라서 아예 오늘 아침부터 베이스캠프 바깥으로 소풍을 나갔고, 오크들의 보호를 받으며 1박 2일 후에 돌아올 예정이다.
이런 장면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으니 적절한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빙의되기 전 지구에서 송길준이던 나에게는 이런 장면은 사실 일상이었다.
속 편하게 세수도 하고 면도도 깔끔히 하고 나온 참이다.
“모두 괜찮나?”
다들 대답이 없다.
멀쩡한 사람은 없다.
눈물샘이 말랐는지 모두 벌겋게 충혈되고 퉁퉁 부은 눈으로 날 바라본다.
“그 계집은 어떻게 되었지?”
“취익! 몇 시간 전부터 움직임이 없다! 취익!”
티모가 다른 여자들 대신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힐끗 보니 이미 죽은 지 오래다.
눈도 감지 못한 채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여인.
어찌나 고통스러웠고 두려웠는지 그녀의 두 눈가에는 피눈물이 얼룩져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죽은 여인을 저렇게 강간하고 있는 건가?”
“취익! 이번 아니면 언제 또 여자를 안을 수 있을지 모르잖는가? 취익! 애들이 뽕을 뽑고 있다! 취익!”
여인은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간(屍姦)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 그만.”
“취익! 아주 좋다! 인간 여자 아주 좋다!”
퍼억
시체가 된 여자에게 박느라 정신이 없던 고블린 레인저 한 마리를 그대로 발로 차버렸다.
“키에엑!”
“내 말이 안 들리나?”
“죄송! 죄송하다! 주군!”
그제야 정신 차린 고블린들이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일렬로 섰다.
“전리품으로 여자를 상으로 내렸다. 어땠지?”
“취익! 좋았다! 주군께 충성한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 슬쩍 다른 여인들의 반응을 보았다.
적대감?
보이지 않는다.
오직 절대적인 공포.
나는 저렇게 안 되고 싶다.
그러한 감정만이 가득한 눈들이다.
“그럼 슬슬 다음 차례를 진행해야겠군.”
“서방님…혹시 또 생각하신 계획이 있나요?”
엘리샤 또한 저 처참한 광경을 보느라 피폐해진 눈길로 날 본다.
그래, 마지막 과정이 남아있다.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라, 엘리샤.
“그렇다. 생각해보니 저 10명의 여인도 괘씸해서 말이다.”
“!”
내 말에 여태까지 죽어가는 동태눈깔로 죽은 여자를 바라보던 여인들의 동공이 확장된다.
“그냥 다 티모 녀석들에게 줘버릴까 생각 중이야.”
“서, 서방님. 그건 너무 심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엘리샤, 지금 내 의견에 반대하는 거야?”
내가 날카로운 어조로 물어본다.
야, 너는 내 마누라긴 하지만 내 의견을 막을 짬밥은 아니지.
어찌 됐건 첩이잖아.
그리고 엘리샤는 자기 분수를 잘 아는 여자다.
“아, 아니요, 나머지 10명도 준비시키겠습니다.”
“언니! 제발 부탁드려요. 살려주세요!”
“저희가 잘못했어요! 성노든 뭐든 할게요. 저 괴물 같은 놈들에게만 던져주지 마세요!”
10명의 여인이 내 명령에 다시 절규한다.
심지어 그렇게 무서워하던 엘리샤에게 달라붙어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하는 여자들도 있다.
하지만 엘리샤도 결국 고개를 돌리고 외면할 뿐.
그렇게 내 무정한 명령이 실행되기 직전이었다.
짜아악
살과 살이 맞부딪치는 소리.
내 뺨이 돌아갔다.
볼따구가 화끈하다.
난 믿기지 않는다는 눈길로 내 뺨을 때린 여자의 신원을 확인한다.
그녀는 바로 내 첫째 부인 메이였다.
“메이…이게 무슨 짓이지?”
“그 정도 했으면 충분하잖아? 더 이상은 하지 마.”
“아니, 나는 끝까지 해야겠…”
짜악
다시 한 번 내 뺨이 돌아간다.
메이의 폭주.
이미 육림대원을 포함한 이 자리의 모든 여자는 어찌나 놀랐는지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메이를 쳐다본다.
그렇겠지.
그동안 나라는 존재는 이 여자들에게 악마와도 같았을 거다.
그런데 그런 악마의 뺨을 때린 용감한 혁명가가 처음 나타났으니 말이다.
“정신 차려, 데이몬. 여기까지야. 이제 애들 들어가서 쉬게 해.”
“…너 미쳤냐? 감히 내 결정을 방해하는 것도 모자라서 뺨을 때려?”
“왜? 나도 고블린에게 던지게? 던져 봐. 난 각오했어.”
그러면서 양팔을 좌우로 벌리고 어디 해볼 테면 맘대로 해보라는 표정.
눈가에는 독기가 잔뜩 서렸고 절대 나에게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잠시 숨을 씩씩대던 나.
그러다가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늘어트린다.
누가봐도 기싸움에서 패배한 느낌.
“…너니까 참는다, 메이. 다른 년이었으면 안 참았어.”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내 뒤로 메이가 여인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다들 고생했어요. 일단은 들어가서 쉬어요. 힘들었을 텐데 최대한 아무런 생각하지 말고요.’
‘흑흑, 고맙습니다, 메이님.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아뇨, 절 원망하세요. 아내가 되어서 남편의 폭주를 막지 못했으니깐요.’
‘저 악마를 멈출 사람은 메이님 밖에 없어요. 저흰 믿어요.’
내가 꼬리를 내린 모습을 보자 메이를 구원의 사도처럼여기며 여인들이 우르르 달라붙어 그녀를 흠모의 눈길로 바라본다.
끼이익
잠시 후, 나무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땀에 젖은 메이가 들어왔다.
“메이, 왔어?”
“…서방님, 저 왔어요.”
“연기 잘하더라.”
그랬다.
메이가 내 뺨을 치는 행위.
내가 결국 기싸움에 져서 내린 명령을 철회하고 집에 들어간 일.
모두 사전에 계획된 일이었다.
애초에 내가 10명의 지식인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일 리가 없잖는가?
필요 없었으면 진작에 죽였지, 이렇게까지 번거로운 짓은 하지 않는다.
방금의 연기는 어디까지나 내 정실 부인 메이의 권위를 다른 여자들에게 각인시키고통솔력을 기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어찌 되었든 여자는 여자를 따르게 되어 있어. 내가 아무리 두려운 존재여도 한계가 있다. 메이, 앞으로 내 여자들의 관리를 잘 부탁해.”
“…자신은 없지만 노력해볼게요.”
메이는 다크서클이 짙게 진 눈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는 십동대랑 육림대 무술이랑 지식 가르치느라 셰릴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면, 이제는 메이가 늘어난 여인들의 육체적, 정신적 케어를 해주느라 더 바쁠지도 모른다.
어찌보면 아무 생각 없이 내 명령만 수행하면 되는 셰릴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피곤하면 좀 자.”
“네, 서방님, 좋은 밤 되세요.”
메이는 정신적 스트레스로 금세 곯아떨어졌고 셰릴도 곧 얼마되지 않아서 메이의 뒤를 따라 숙면에 들었다.
난 잠든 그녀들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생각에 잠긴다.
오늘 일을 통해서 귀녀대원들에게 반항하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줬다.
정신 제대로 박힌 계집이라면 앞으로 함부로 개기진 않겠지.
비록 내 아내들과 육림대원들은 충격에 빠진 것 같지만 내가 원래 이럴 수 있는 사람인 거 알고 있었잖아?
필요하다면 난 더한 쓰레기도 될 수 있다.
아주 끝장을 보여주겠어.
악당이 뭔지 제대로보여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