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BER

MENU

〈 56화 〉큰 그림 그려보지 않을래





〈 56화 〉큰 그림 그려보지 않을래

홀리엔 법국을 대하는 입장 차로 유리아 황비와 피에른 대공의 사이는 극도로 나빠진다.

9살짜리 황제는 아무것도 모르고 수수방관.

그래서 유리아 황비는 피에른 대공에게 해결책을 묻는다.

‘이대로 가면 제국은 파산이에요, 법국 감싸기는 그만하고 무슨 해결책이라도 내놔보세요.’
‘정복 전쟁을 하지요. 울프문 부족과 윌렛 왕국에게 선전포고하고 전쟁에서 발생한 포로들을 알비온 연맹에게 노예로 넘기는 겁니다.’
‘지금 설마 국가 차원에서 노예 사업을 하자는 건가요?’
‘마마, 이미 대세는 변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우물 안 개구리로 살 겁니까? 윤리, 도덕 따지다가는 나라 전체가 망하는 겁니다.’

이런 대화가 오갔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대공은 나라 재정을 정복 전쟁을 통한 노예사업으로 해결하자는 거였고 황비는 법국과의 헌금량 조절로 해결하려고  것이군.

“그래서?”
“피에른 대공의 말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죠. 황비 마마 입장에서는요.”
“언니 말이 맞아요, 왜냐하면 울프문 부족 족장인 웨어울프 루나님은 유리아 님의 절친한 친구이시거든요.”
“그리고 황비님은 윌렛 왕국, 울프문 부족, 동쪽의 바다 인근의 오션스 연합국까지 해서 4각 무역블록 협정을 한다고까지 황비가 되시면서 제국민들에게 대대적으로 발표하셨죠.”

이러면 말이 되네.
피에른 대공과 유리와 황비는 거의 철천지원수였겠군.
정책 색깔이 달라도 이리 다를 수 있나?

4각 무역.
울프문 부족, 윌렛 왕국, 오션스 연합국, 마지막으로 갈리아 제국.

4개 나라 사이의 무역에 대해서는 관세 면제와 각종 특혜를 붙여서 수입, 수출량을 늘리는 정책이다.

그런데 피에른 대공이 무역 같이하자는 나라에 선전포고 때리고 전쟁하고 걔내 나라 국민들 포로 잡아서 알비온 연맹에 노예로 판다는데 황비가 이걸 묵과할 리가 있나?

당연히 나같아도 결사반대한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좀 이상하긴 하군. 한눈에 봐도 대공이 억지를 부리는 듯한데 어째서 대공이 권력을 유지할  있는 거지?”
“대공은 제국 내에 마법사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어요. 애초에 마법 강국인 갈리아 제국에서 마법사의 지지를 받는다는 건 그 나라 핵심 인력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과 동일한 결과죠.”

그뿐만이 아닐 거다.
피에른 대공의 아내는 홀리엔 법국 사람.

게다가 유리아 황비가 헌금량을 줄이는 정책을 펴고 있다니 홀리엔 법국 또한 황비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하겠지.

대공을 지지하는 건 당연한 얘기겠고.

또 알비온 연맹도 노예 사업을 하면 큰 이득을 노릴 수 있으니 갈리아 제국의 피에른 대공에 힘을 실어주겠지?

“알비온 연맹+홀리엔 법국을 등에 업은 피에른 공작 vs 울프문 부족+윌렛 왕국+오션스 연합국을 등에 업은 유리아 황비인가?”
“오! 이해가 빠르시군요!”

아놔.
누구를 돌대가리로 보나?
이렇게 자세히 설명을 해줘 놓고 이해를 못 하면 시발 어쩌라는 거야.

근데 말투에 약간씩 무시하는 기질이 있는 게  계집들 천성이네.
자기들이 고등 교육을 받다 보니 무식한 놈들 무시하는  말투에 배어있어 아주.

이건 평생에 걸친 습관 같은 것이기 때문에 고칠 수도 없을 것 같다.
이게 정말로 나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말투가 원래 저런 걸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말이야.

그래.
똑똑한 년들 내 사람 만들려면 그냥 감수하자.
아니면 존나 똑똑한데 겸손한 년을 데려와서 이녀석들 기를 죽여놓든가 해야지.

그리고 똑똑한 년들 다루는 마지막 방법.
내 우람한 가운데 다리로 꼼짝을 못하게 하면 된다.
괜히 지구에서 여자 아나운서들이 운동선수랑 많이 결혼하는 게 아니야.
 이유가 있는 일이더라고.

“…그래서 지금 누가 이기고 있는 거야?”
“안타깝게도 황비님은 지금 열세에 몰려 있어요.”
“왜? 3대 4잖아?”
“그렇기는 한데 황비님의 동맹들은 알맹이가 없어요.”

오션스 연합국은 거리가 멀어서 바닷길이 아니고서는 갈리아 제국에 개입 불가.

울프문 부족은 수인족으로 이루어져 있고 폐쇄적인 집단이라서 굳이 제국 내 권력다툼에 끼어들기도 싫어함.

윌렛 왕국은 지원은 하고 있지만 애초에 국력이 그리 강하지 않음.

그에 비해 알비온 연맹과 홀리엔 법국은 피에른 대공에게 전폭적인 지원.

“뭐야? 그러면 황비는 어떻게 지금까지 권력 유지했던 거야?”
“제국민들에게 압도적인 인기가 있으시니깐요.”
“맞아요, 젊고 아름다우신 데다가 마음씨도 곱고 정치능력까지 있는 유능한 여인을 누가 안 좋아하겠어요?”
“일부 마법사들과 남성 우월주의에 빠진 무능한 고위 관리직들을제외하고는 모두가 황비님을 좋아해요.”

황비를 얘기하는 이 여자도 눈빛이 맛이 가 있다.
확실히 유리아 황비인지 공주인지가 인기가 있긴  모양이구나.

“대충 제국의 사정은 알았어. 그럼 너희 리만 표국 상단 일로 넘어가 보자고.”

리만 표국은 대표적인 친황비파 거대 상단.
한마디로 황비의 돈줄이었단 말이지.

그리고 의문의 마법사들이 안전하다고 검증된 상단의 길에서 습격을 했고 타이밍 좋게 대형 고블린 부락이 거기를 덮쳤어.

이건  나온  아니냐?

“그 마법사 놈들이 어디 출신인질 알아야겠네?”
“네…저희는 피에른 대공 쪽 마법사가 아닐까 생각은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니깐요. 증거도 없이 사람을 매도할 수는 없죠.”

이녀석들 좋은 머리 놔두고 뭐하냐?
내 능력이 뭔지 감을 못 잡았나 보네.
 바깥에 대기하고 있는 고블린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소리를 지른다.

“티모! 들어와 봐!”
“히익! 살려주세요!”
“저희가 너무 재미없는 얘기만 했나요? 웃겨드릴게요!”

큭큭.
개그맨도 아니고 웃겨드릴게요는 뭐야.
진짜 귀녀대원들은 고블린 PTSD 장난 아니구나.
하긴 내가 봐도 그럴 것 같긴 하다.

티모는 들어오자마자 쇠사슬 구속구에 묶인 전라의 여인 10명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취익! 주군! 부럽다!”
“응, 부러워만 해라.”
“칫! 주군 치사하다!”
“혹시 너 일주일 전에 습격했던 상단 있잖아. 마법사들의 도움을 받았나?”
“아!”
“그런 방법이!”

이제야 내가 고블린에게 자기들을 던져주려는  아니라 단서를 캐내려는 의도임을 깨달은 여인들이 박수를 친다.

후훗.
내가 한 건 했군.
똑똑한 년들 사이에서 1점 넣었다.

“취익! 인간들, 갑자기 우리 부족에 왔다!  우리 부족 최고 전사라서 직접 대화했다! 취익!”
“무슨 대화를 했지?”
“취익! 길을 알려줄 테니 상단을 습격해달라고 했다. 평상시에 거래하던 노예상인과 같이 왔다. 취익!”

귀녀대원들을 보니 마법사들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 티모에게 질문을 하고 싶지만 고블린 PTSD가 있어서 끙끙대는 것 같다.

내가 너희 궁금한 것까지 다 질문해줘서 가려운 곳 긁어주마.

“그래서?”
“취익! 노예상인은 약속 어긴 적 없다! 취익! 우리는 전사들을 준비했고 인간들은 주술사를 준비했다, 취익!”
“그 주술사들에게서 뭐 특이한  없었나? 복장은 어땠지?”
“취익! 자세히 보지는 않았다!”

아.
여기서 막히나?
하긴 고블린이 굳이 인간 녀석들을 자세히 살필 필요는 없긴 하지.

“취익! 그래도 녀석들의 대화를 들었다. 무슨 대화를 했는지 똑똑히 기억한다! 취익!”

응?
대화를 기억한다고?

“취익! 리만 표국도 여기서 끝이다! 피에른 대공님도 만족해하실 것이다. 황비도 궁지에 더 몰릴 것이다. 취익!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취익!”

오우.
녹취록이 아주 제대로네.
제국 마법사들 입 싼 건 알아줘야겠어.

하긴, 생각해보면 누가 몬스터들이 자기 말을 기억했다가 다른 인간에게 전해줄지 알았겠냐?

고블린 앞에서 무방비하게 저런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내 몬스터로드 스킬이 사기인 거야.
솔직히 나도 이 스킬을 받고 어벙벙했으니  다했지.

“정말로 피에른 대공의 짓이었어!”
“죽일 놈!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겠다고 아무 상관도 없는 내 가족을 죽이고 내 신세를 망쳐놓다니…흑흑.”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리겠다고!”

한동안 교육실은 피에른 대공을 성토하는 자리로 변해버렸다.

“조용!”

내가 소리를 치자 다시 조용해지는 교육실.

“티모, 수고했고. 나가 봐.”
“취익! 부럽다, 주인. 취익!”
“당장 나가지 않으면 지하실에서 고문한 고블린처럼 만들어주겠어.”
“취익! 나간다! 빨리 나가겠다!”

지하실에서 나에게 온몸이 해부 당해 죽은 고블린을 기억하고 있던 티모는 부리나케 나간다.

“자, 이제 너희를 이렇게 만든 녀석이 누군지 밝혀졌어.”

다들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원흉을 알았으니 행동에 옮기고 싶겠지.

“너희는 복수하고 싶겠지. 그런데 말이야.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자면  너희의 복수에 관심이 없다.”

그렇다.
이 여인들은 한때는 갈리아 제국의 지식인들이지만 지금은 내 성노예일 뿐이다.
그리고 난 월렛 왕국 국민이라고.
왜 제국 노예년의 사정에 일일이 반응해줘야 하지?

“저기…”
“왜.”
“도와주세요!”

털푸덕

내 앞에서 알몸 도게자를 하는 여인.
 여인을 기점으로 하나둘씩 내 앞에 부채꼴을 그리며 도게자를 하는 여인이 늘어난다.

장관이네.
10명의 여인이 널따란 침대에서 나를 기점으로 하이얀 맨살을 보이며 부채 모양으로 엎드려 있다.

“제발! 복수하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마스터.”
“그 빌어먹을 대공에게 죗값을 치르게 하고 싶어요.”
“저희 상단은 좋은 마음으로 황비님께 매년후원금을 드리고 있었던 것뿐이에요. 대공에게 어떤 위해도 가한 적 없다고요. 그런데 대공은 그런 우리가 거슬린다는 이유만으로…흑흑…”

귀녀대원들의 울음소리가 점차 커진다.

이녀석들  울라 그러네.
여인들아, 좀 그만 좀 울어줘.

잠시 고개를 모로 기울이고 생각을  해본다.
갈리아 제국, 알비온 연맹, 홀리엔 법국, 울프문 부족, 오션스 연합국.
마지막으로 윌렛 왕국까지.
지금 나는 윌렛 왕국의 백작가 하나 잡아먹기도 힘들어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귀녀대원들의 이야기로 내 시야가 트였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네.

이럴 때는 송길준의 감을 믿고 가야 한다.
지구에서도 이런 순간이 있었다.

그때도 나를 영혼의 파트너라 생각했던 이상철이 이런 식의 질문을 했었지.

‘길준. 우리가 해외 쪽을 신경 쓸 여력이 있을까? 국내 웹소설 시장만 먹기도 빠듯할  같은데.’
‘정말? 해외와 국내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정말이군! 자네의 말대로 되었어! 정말 대단해! 길준 자네는 내 최대의 보물이야! 으하하!’

옛 친구의 웃음소리가 아련하게 내 귓가에 울린다.
그 녀석은 죽어서 어디로 갔으려나.
편안한 안식을 취하고 있을까?
아니면 죽어서도 날 원망하고 있을까?

잠시 감상에 젖었다.
감성팔이는 이쯤하고.

칠룡코퍼레이션을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으로 만들었던 경영가 송길준이 이제는 평행세계 판타지아 대륙의 데이몬이 되어서 팔뚝을 걷어붙인다.

“너희, 나와 일 하나 같이하자.”

예전에 재밌게 봤던 영화.
‘구세계’의 경찰 역할을 맡았던 배우였던 김민식의 대사를 따라 해본다.

“일…이요?”
“그래, 계약을 하나 하자는 거야.”
“무슨 계약을 말씀하시는 거죠?”

여자들이 궁금한 표정으로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래도 엘리샤에게 기합받은 게 있어서 함부로 고개를 들거나 알몸 도게자 자세를 풀지는 않는다.

“내가 백작가를 먹고 윌렛 왕국의 실력자가 되는 걸 도와줘. 그렇게 한다면 나도 유리아 황비를 도와서 피에른 대공에게 죗값을 치르게 해주지.”

어차피 윌렛 왕국은 유리아 황비만 붙잡고 있어야 하잖아?

피에른 대공은 윌렛 왕국민을 노예 삼아 장사하려는 나쁜 놈이고 만약 두 나라 간 전쟁이 벌어진다면 왕국은 갈리아 제국의 전력을 막을만한 수단이 없으니깐 말이야.

“나도 내 나라를 지켜야겠어. 그러려면 일단 왕국에서 내 영향력이 커져야겠지. 어때? 너희는 대공을 단죄해서 원수를 갚고 나는 왕국의 권력자가 되는 거지.”

물론 내가 윌렛 왕국에 애국심은 없다.
몸은 데이몬이지만 영혼은 대한민국 사람인 내가 무슨 왕국에 애국심이 있겠는가?

물론 판타지아 대륙의 다른 나라보다야 정이 가긴 하지만 오직 그뿐.
내 궁극적인 목표는 어디까지나 최후의 악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사회적 지위가 낮은 것보다는 높은 것이 좋은 그림이 나올 확률이 높겠지.
단지 이를 위해 포석을 미리 깔아두는 거다.

귀녀대원들아.
우리 같이 한번 큰 그림 그려보지 않을래?

 



사상 최악의 주인공〈 56화 〉큰 그림 그려보지 않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