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너 좆된 것 같다야
탓 타닷
풍령보(風靈步)를 극성으로 발휘하여…가아니라 난 경신공이나 보법을 모른다.
여긴 무협세계도 아니니 상관없지.
열심히 민첩스텟을 활용해서 뛰고 또 뛰었다.
근데 말이야.
“얘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보이지가 않는다.
그래도 도망간 지 얼마 안 되어서 쫓아온 건데 그새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안 보이네.
내가 추종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쪽 세계에 천리/만리추종향이 있는 것도 아니니 막막하다.
가뜩이나 오늘 그믐날이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상황.
나는 슬슬 걱정되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집 나간 딸내미를 걱정하는 아비의 마음일까?
“내 천무지체 어디 갔어! 어디 갔느냐고! 그년한테 투자한 게 얼만데! 이렇게 튈 거면 내가 투자한 비용, 노력, 시간 다 토해내고 가라! 이 빌어먹을 년아!”
음.
난 그 정도 성인군자는 아니거든?
아까워서 절대 못 버린다.
에밀리.
어디에 있든 반드시 잡는다.
바스락 바스락
“응?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바로 안력을 돋우어서 찾아보았다.
그리고 겨우 토끼굴 비슷한 걸 발견했다.
에밀리.
네가 무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냐?
토끼 따라서 딴 나라라도 간 거야?
“어휴, 시발. 이놈의 굴은 왜 이리 비좁아?”
간신히 포복 전진해서 자그마한 굴을 통과했다.
입구만 비좁았지, 조금만 들어가고 나니 제법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흙투성이가 된 옷을 털어내고 일단은 살금살금 걸음을 옮겨서 그늘진 곳 위주로 이동했다.
내가 아무리 스텟이 높다 하더라도 누가 사는지도 모를 이런 동굴에서 대놓고 광역 도발하는 사람은 아니다.
“호호홋! 이게 웬 월척이야?”
“살려, 살려주세요! 저는 단지 이 숲을 나가고 싶을 뿐이에요.”
“안 되징~허락도 없이 남의 집에 들어온 나쁜 어린이는 벌을 받아야 한단다?”
동굴에 가득 울려 퍼지는 뾰족한 목소리.
대가리 아이큐가 한자릿수가 아닌 이상 누구 목소리인지는 너무나 분명하다.
하아.
이런 미친년.
에밀리 이 나쁜년.
개가튼련.
난 이런 식으로 단독으로 마녀와 만나고 싶지 않았다고!
일단 멀리서나마 악마의 눈을 발동해본다.
[상대의 아티팩트에 의해 기감이 차단되었습니다.]
홱
한눈에 보기에도 100Kg 넘을 것 같아 보이는 파오후 마녀가 홱 고개를 돌리고 사방을 둘러본다.
“방금뭐지? 악마님의 기운이 느껴진 것 같은데?”
어휴.
확실히 마녀라 그런지 악마력 계열 스킬이 잘 안 먹히는군.
근데 쟤 왜 이렇게 못생겼냐?
마녀들은 보통 악마들과 성교를 통해 계약을맺어 힘을 얻는다고 들었다.
그럼 악마는 저런 년이랑 섹스했다는 거야?
아무리 마족이 잡식성이라도 저건 박을 게 아니라 먹을 것 같은데.
“오랜만에 들어온 신선한 영혼이야. 요새 세상이 힘들어서 악마님께 영혼도 제대로 못 바치고 힘들었는데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설마…당신은 저를 악마에게 제물로 바친다는 말인가요?”
“그래. 똑똑한 아이구나. 나는 너를 제물로 바치고 악마님과 눈부신 밤을 보내고 더 큰 힘을 얻을 거란다. 얼마 만에 악마님과 보내는 밤인지…참향수 뿌리는 걸 깜빡했네.”
100kg 파오후 마녀의 몸은 어찌나 비대한지 계속해서 땀이 흘러내리고 있다.
쟤랑 섹스할 악마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쯤 되니 불쌍해지는데?
일단은 나서지 않는다.
악마의 눈으로 살피질 못했으니 저 마녀의 전력을 알 수가 없다.
물론 저 비대해 보이는 마녀가 나보다 강할 것 같지는 않지만, 어찌 되었든 [마녀]잖아?
게다가 에밀리는 레벨이 무려 37레벨에 달하는 여검사다.
그런 여검사가 저렇게 아무것도 못 한 채로 무력화되어 있다면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고약한 수를 숨기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때였다.
동굴의 한편에서 가느다란 듣기 좋은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미셸, 걔는 누구야?”
“아, 스승님. 오셨어요? 이거 보세요. 운 좋게도 숲을 헤매고 있는 싱싱한 여아를 발견했지 뭐예요? 바로 공양준비 하고 있었어요.”
나는 구석에 숨어서 스승님이라 불리는 새롭게 나타난 마녀를 감상했다.
드루이드인가?
나뭇잎의 자연색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매끄러운 초록색 머리카락.
머리카락 색과 똑 닮은 에메랄드 빛깔의 아름다운 눈동자.
키는 작다.
150cm 정도?
그것보다도 작을 수 있어 보인다.
몸이 완전히 말라서 완전 꼬마 같다.
가슴은 당연히 빈유.
A컵도 안 된다.
피부가 하얗다 못해 창백할 지경.
햇빛을 거의 받지 않고 산 것 같다.
얼굴이 어찌나 조막만 한지 내 손바닥으로 가려질 듯하다.
보자마자 느꼈다.
저 여자.
내 세 번째 정실 부인이다.
왜냐고?
내가 그렇게 정했거든.
풍만한 느낌을 주는 꽉 찬 B컵 가슴 메이.
윌렛왕국 대표 A컵 미녀 셰릴.
그러면 빈유도 한 명쯤 있어 줘야 하지 않겠어?
그리고 저 여자애.
애인지 할머니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쉰은 족히 넘어 보이는 파오후가 스승님이라 부르는 것을 보니 나이는 제자보다 많은데 주름살 하나 없고 피부는 팽팽하다.
솔직히 팽팽한 정도가 아니라 그냥 보송보송한 게 솜털이 나 있다.
말 그대로 아기 피부.
무언가 노화를 늦추는 특별한 수단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이제 단 한 가지 시험만 더 통과하면 내 정실 부인에 알맞은 조건을 가진다.
바로 가서 물어보고 싶다.
“하이염. 님 아다임?”
물론 실천해 옮기진 않았다.
저 제자라는 파오후 년도 37렙 에밀리를 제압했는데 스승님은 얼마나 강할지 짐작이 가지않는다.
일단은 계속 관망하기로 하면서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본다.
“셰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악마가 아니라 사람이야. 그 여자애 하나 바친다고 마왕님이 얼마나 더 힘을 내려주시겠니?”
“서큐버스와 계약한 스승님이 제 마음을 이해할 리 없죠. 그분과 섹스를 할 때의 그 쾌감. 그 황홀함! 30년 전 일이어도 전 마치 어제와 같답니다?”
아하.
섹스 굶은 지 30년 된 파오후였구나.
30년 전이면 저 못생긴 년도 20살 즈음이었을 테니 최소한 따먹을 만은 했겠네.
그건 그렇고.
방금 중요한 단서를 들은 것 같은데?
저 스승님이란 여자.
서큐버스란 계약을 했다고?
서큐버스.
즉, 몽마.
내가 알기로 여성체로 된 마족이고 남자의 꿈에 나타나서 성적 행위를 통해 정기를 갈취하는 악마다.
남자는 인큐버스라 부르고 여자는 서큐버스라 부르지.
보통의 마녀들은 악마와 성교를 통해 힘을 얻는다고 들었는데 왜 여자가 같은 여자인 서큐버스와 계약을 맺은 거지?
그리고 만약에 서큐버스와 계약을 맺은 거면 악마와 섹스를 하지 않았으니 처녀일 확률이 더 올라간다는 이야기겠군.
점점 더 녹색 머리 여자에게 마음이 쏠린다.
“미셸, 이건 아니야. 저 여자애 레벨을 봐. 저렇게 어린앤 대도 레벨이 37이야. 저 여자애는 재능 있는 아이야. 저런 애를 마왕님께 바치는 건 너무나 안타까워.”
“그러니까 더더욱 마왕께서 제물을 좋아하시겠죠. 양질의 영혼이니깐요. 절대 마왕님께서는 이여아의 영혼을 그냥 넘기지 못할 겁니다.”
저 미셸이라는 돼지녀는 이미 반쯤 이성이 나간 상태인 것 같다.
에밀리를 바치고 마왕과 성교를 하면서 얻을 힘에 취한 마약녀나 다름없는 상태.
그에 비해 스승이라는 녹색 머리 여자는 생각보다 이성적이다.
서큐버스라고 해서 음란한 느낌의 여자를 생각했는데 조선 시대 정숙한 양반집 규수 저리가라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저 녹색 머리 여자가 더 골칫거리다.
나는 이곳에서 마녀들을 제압하고 에밀리를 구출해야 하는 입장.
일이 이렇게 되니 더욱 나서기 망설여지네.
“미셸, 그래도…”
“아이참! 스승님! 좀 조용해 주실래요? 이 애를 발견한 것도 저이니 어떻게 다루든 제 맘입니다. 왈가왈부하지 말아 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녹색 머리 여자는 더는 말을 맺지 못하고 구석에서 우려스러운 눈빛으로 이 광경을 지켜본다.
에밀리는 계속해서 미셸에게 사정하는 상황.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떨어진다.
“제발요! 네? 저는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요. 할 일이 많다고요.”
“쉬쉬, 착하지? 너는 죽는 게 아니란다? 위대하신 분과 하나가 되는 거야. 남들은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걸 너는 이 어린 나이에 하니 얼마나 축복이니?”
시발.
저게 말이야 방구야.
그러면 지가 대신 제물이 되든지.
하여간 자기는 못할 거면서 남 떠미는 건 좆나게 잘하는 연놈들 이 세상에 참 많아요.
파오후 마녀는 능숙하게 바닥에 몬스터의 피로 된 복잡한 마법진을 그린다.
고대 룬 문자로 보이는 복잡한 글자가 가득 새겨져 있는 마법진은 무슨 의미인지하나도 이해할 수 없다.
몸은 돼지 같아도 나름 실력은 있는 마녀구나?
이런 걸 보니 마법사는 레벨로 함부로 재단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내가 레벨 높다고 개기다간 골로 갈 수도 있겠어.
“신성한 어둠을 지배하는 72좌 중 1좌에 계신 나의 주인이시여. 미천한 종복이 살찐 어린 양을 준비했나이다. 친히 강림하여 수확하여주소서.”
일 났다.
마왕소환.
그것도 72 대마왕 중 한 명이다.
전에 셰릴과의 결투 중에 72대천사 중에서 서열 69위인 라나엘을 본 적이 있다.
악마의 눈으로 감정하진 못했지만 정말 어마무시하게 강해 보이는 천사였다.
그러니 그 대척점에 있는 72 마왕도 그 정도의 강함은 당연히 지니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게 맞다.
하다못해 내 전담 매니저인 새롬조차 인간인 나를 무시하는 실정인데 72 마왕은 말할 것도 없네.
이걸 어떻게 막냐?
벌써 눈앞이 깜깜하다.
마왕이 강림하면 그로부터 에밀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
절대불가.
견적도 나오지 않는다.
움직이려면 지금 움직여야 한다.
소환을 막아야 해.
발에 힘을 집어넣고 땅을 박차려는 순간이었다.
쩌저저적
차원벽이 갈라지며 균열이 보인다.
망했다.
이미 강림은 시작된 것이다
균열 바깥으로 서양식 정장을 입고 중절모를 쓴 채 손잡이가 휘어진 지팡이를 짚은 팔자 수염에 외알 안경 사내가 나온다.
“오오, 나의 주인님! 미천한 종 미셸이 위대하신 72좌 중 1좌 벨리알님을 뵙사옵니다.”
“…너는 누구냐? 내 종복 중에 너같이 못생긴 여인은 없는 거로 기억한다만.”
큭큭.
너는 누구냐래.
하마터면 숨어있는데도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접니다, 미셸. 30년 전에 당신께 충성을 맹세했던 그 미셸입니다.”
“30년이라…인간은 참 빨리도 늙는군.”
미셸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자 서둘러 본론을 꺼낸다.
“나의 주인이시여. 여기 미천한 종복이 마왕님을 위한 양질의 영혼을 준비했습니다.”
“…고작 한 명? 한 명 때문에 나를 부른 것이냐?”
뭐, 택시비도 안 나온다 이런 말이겠지.
마왕의 심사가 불편해진 듯 벨리알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선다.
“주, 주인이시여. 단순히 인간 한 명이 아닙니다. 이 여아를 자세히 살펴봐 주시옵소서.”
그제야에밀리를 훑어본 벨리알.
그런 그의 눈에 크게 확장된다.
“천, 천무지체!”
아, 시발.
나만 알고 싶었던 비밀이었는데.
저 빌어먹을 마왕 놈이 알아버렸네?
“게다가 젊고 아름다워. 그런데도 재능 넘치는 소녀라니. 이 어찌 마신의 축복이 아니랴!”
“어떤가요? 제가 준비한 어린양이 마음에 드십니까?”
“마음에 들다마다! 게다가 레벨도 제법 되는군. 네가 직접 이 양을 살찌운 것이냐?”
“그건 아닙니다. 우연히 발견했을 때 이미 이렇게 살쪄있었습니다.”
살은 미셸이라는 돼지녀가 찐 것 같은데.
악마 쪽에서 살쪘다는 건 레벨이 오르거나 재능이 개화했다는 식인 것 같다.
“좋아, 아주 좋아…”
“주인이시여. 어린 양이 마음에 든다면 미천한 종복에게 은총을 내려주소서.”
“살려, 살려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살려만 주시면 마녀의 숲은 다시는 안 들어올게요. 애초에 들어오고 싶어서 들어온 것도 아니었어요!”
에밀리는 계속해서 목숨을 구걸한다.
하지만 미셸과 마왕 벨리알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다.
멀리서 바라보는 초록 머리 여자만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볼 뿐.
에밀리의 말을 들어서일까?
벨리알이 묶여있는 에밀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려서 눈을 맞추었다.
“이름이 뭐지?”
“에, 에밀리예요.”
“젊고 아름다운 소녀 에밀리. 살고 싶나?”
“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흐음?”
벨리알이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난 저 미소의 의미가 뭔지 안다.
왜냐면 이전세계 지구에서 내가 작업실에 납치한 인간들을 바라보며 짓는 미소가 딱 저랬거든.
에밀리야.
어떡하냐?
너 좆된 것 같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