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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화 〉대만족이다





〈 65화 〉대만족이다

미소를 마주한 자는 하나같이 죽느니만 못한 꼴을 당했었다.

난 에밀리가 벨리알에게 넘어갔다간 어떤 꼴이 될지 예상이 갔다.

“그렇다면 말이다. 내 특별히 너를 살려주지.”
“정, 정말요?”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저 아이는 제물입니다! 어서 제물을 취하시고 제게 은총을 내려주소서!”
“아, 거 참  시끄럽네.”

촤아악

한 방.
단 한 방이었다.
 한 방에 미셸이라는 여자는 눈도 감지 못하고 목과 몸이 분리되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눈으로 움직임을 잡지도 못했다.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눈앞에서 미셸의 목이 몸에서 달아난 것이다.

진짜 이건 말도 안 돼.
얼마나 스테이터스 차이가 나면 이렇게 될 수 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미, 미셸! 안 돼!”
“거기 녹색머리여자. 너도 죽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해. 난 미녀를 죽이고 싶지는 않거든.”
“흡!”

결국, 입을 틀어막고 미셸의 시체를 보며 꺽꺽 울어대는 녹색머리여자.
인제 보니 제자를 많이 아끼는 스승이었구나?

저 벨리알이라는 마왕.
여자를 밝히는 마족임이 틀림없다.
게다가 예쁜 여자 위주로 밝히지.

돼지녀는 자신의 종복임에도 가차 없이 참(斬)하고 에밀리와 초록머리 여자는 살려두는 것만 봐도 알  있다.

에밀리는 눈앞에서 자신을속박했던 마녀가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 걸 보고 두 눈이 공포심에 잠긴다.

어찌 되었건 아직 15살밖에 되지 않은 소녀였던 것이다.

“사랑스러운 소녀 에밀리.  권속이 되렴. 그러면 너는 단순히  수 있는 게 아니라 무한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양심 없는 새끼.
지금 저 씨부럴 놈이 뭐라 한 거냐?

악마가 평범한 인간을 권속으로 삼으려면 물론 구두계약만 맺을 수도 있겠지만, 저 마왕 놈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닌 것 같다.

 파렴치한이 지금 20살도 안 된 미성년자인 에밀리를 노리고 있는 거다.

에밀리도 15살이면  건 다 아는 나이라 지금 마왕이 뭘 원하는 건지는 안다.
하지만 그게 결코 자신에게 좋을 일 없다는 것도 알고 있지.

“그, 그건 싫어요. 제발 저를 그냥 풀어주시면 안 될까요?”
“에밀리, 나는 지금 네 가능성을 보고 아량을 베풀어주는 거란다. 마계에서 이런 내 모습은 100년에 한 번 볼까 말까지. 그러니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스스스

벨리알이 심사가 불편해졌는지 거친 마기가 그의 등 뒤에서 나와 동굴을 뒤덮었다.

“…크윽!”

나도 모르게 신음이 나온다.
무슨 기운만 버티는데 숨이 턱턱 막히냐?

예전에 이런 느낌을 받은 적 있다.
셰릴과의 팔씨름 내기 전에 소드마스터 핀두르 기사단장의 투기를 받았을 때도 이렇게 몸이 떨리고 숨이 막혔다.

그런데 이 마왕의 마기는 기사단장에 비할 바가 아니다.
기사단장의 기운이 시냇물이라면 이 마왕의 기운은 그야말로 거친 해일.

진짜 내 스텟이 낮았더라면 그대로 숨이 막혀 질식사했을 거다.
그런 벨리아의 기운을 정면으로 받은 에밀리는 어땠겠는가?
기절하지 않은  용하다.

“호오, 내 눈빛을 마주하고도 정신을 잃지 않는다니. 과연 천무지체는 천무지체인가? 탐나는 영혼이로다.”
“제발, 제발요…전 그저 집에 가고 싶을 뿐이에요.”
“하지만 판단이 아쉽군. 마왕을 너무 쉽게 보는 경향이 있어. 세상에는 네가 저항할  없는 압도적인 힘이 있다는 걸 알려주지.”

그러면서 에밀리의 이마에 살포시 손가락을 대는 벨리알.
그리고 동굴에는 에밀리의 찢어지는 비명이 들린다.

“꺄아아아악!”
“어떤가? 이제야 좀  권속이 될 마음이 생기는가?”

 저게 어떤 건지 안다.
악마의 계약서.
크래스 장원 육변기들이 정신력에 의한 영혼의 구속을 당했을 때 반응이 딱 저랬다.

일단 저거에 한 번 당하고 나면 저항은 꿈도 못 꾸지.
영혼에 직접 타격을 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참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싫…싫다고요!”

와.
대단쓰.
에밀리가 저렇게 강단 있는 앤 줄 몰랐네.
저거에 당하고 저항하는 애는 첨 봤다.

그리고 저런 순수하고 굳건한 아이의 영혼을 타락시키는 건  같은 놈이 제일 좋아하는 일이지.

아니나다를까.
에밀리를 눈앞에 두고 있는 벨리알의 미소가 진해진다.

이 재미있는 장난감을 어떻게 가지고 놀지 안달이 나 있는 상태라는 건 열 살배기 아이도 알아챌 것이다.

“흐흐흐, 나야말로 부탁하마. 최대한 오래 버텨라. 길고도 지루한불멸의 삶에 잠시나마 유희 거리가 되어주길 바란다.”
“아아…”
“언제든지 마음이 바뀌면 말하거라. 나는 너를 권속으로 삼을 마음이 충분하니 말이다.”

그러면서 다시 손가락을 이마에 갖다 대는 벨리알.
이대로라면 에밀리는 끔찍한 고문에 시달리다가 영혼이훼손되거나 끝내 굴복하고 그의 종복이 되어버리고 거다.

에밀리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미성년자에게  더러운 손가락 치우는 게 어때?”

저질러버렸다.
나도 내가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냥 일단 나왔다.
도저히 참지 못해서였다.

벨리알은 구석탱이에서 갑작스럽게 나온 나를 보고 의아한 표정이다.

“흐음? 아까부터 숨어있는 건 알았다만 아름다운 소녀 에밀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내가 그 아이의 영주님이다. 주인이라고 할 수 있지.”

피식

솔직히 벨리알에게  방에 죽을 줄 알았다.
미셸처럼 말이다.

그런데 의외로 벨리알은 나를 죽이지 않는다.
입가에 미소를 띠며 흥미로운 눈빛으로 나를  뿐이다.

하긴.
레벨 1짜리 영주가 레벨 37짜리 소녀 구하겠답시고 단독으로 나서는 게 쉽게 볼  없는 장면이긴 하지.

보니까 이 마왕이나 마족이란 놈들은 죄다 관음증 환자들이다.
하도 오랜 세월을 살다 보니 특이하거나 특별한 스토리에 환장을 하는 거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자기 수백, 수천 년 인생을 뒤져봐도 없었던 상황이거든.
날 최대한 살려둬서 이 순간의 즐거움을 극대화할 생각이 분명하다.

“흠, 그래? 그러면 에밀리에게 물어보면 되겠군. 에밀리, 방금 나온 저 레벨 1짜리 약골이 너의 주인이자 영주님이 맞는가?”

에밀리는 묶여있는 상태에서 나를 본다.
눈이 커진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다.

그래.
지금은 바깥이니까 가출한 건 넘어가 주마.
혼은 집에 가서 내줄게.

“에밀리? 어서 대답을 해봐라. 저 남자가 네 영주님이냐? 아무리 봐도 너를 품을만한 그릇은 아니군. 만약 저 남자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 거라면 그 즉시 죽일 생각이다.”

어쩌다 보니 그녀의 대답 하나에 내 생사가 달려버린 셈이 되었다.
에밀리라면 어떤 대답을 할까?
이건 나도 궁금하다.

그동안 나를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던 에밀리.
지금이라면 자신의 말 한마디에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아마 모르는 사람이라 부정하겠지?

제기랄.
이렇게 허무하게 내 판타지아 인생이 끝날 줄은 몰랐군.

“…저분은 제 영주님이 맞습니다.”
“정말이냐? 저 남자가 네 주인이라고? 똑바로 말해봐라. 두 번 다시 말할 기회를 주지 않을 테니 말이다.”
“저분의 이름은 데이몬. 제가 속한 크래스 장원 영주님이시며 저의 주인입니다.”

뭐, 이제 영주 때려치우긴 했다만.
전직 우대해주는 게 고맙긴 하네.
에밀리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동안 날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게 아니었나?
어째서 나를 감싸주고 본인이  주인이라고 한 거지?

“그렇군…정말로 저 레벨 1짜리 남자가 네 주인이었어.  말은 저 남자만 죽이면 내가 너를 취할 수 있다는 말이겠군.”
“안 돼요!”
“이미 늦었어.”

나에게 뭔가가 날아올 것이 분명하다.
속전속결.
일단 진실의 방부터건다.

“진실의 방 발동!”
[상대와의 스텟 차이가 심해 진실의 방 발동이 취소됩니다.]

이런.
진실의 방도 무적스킬은 아니었군.
어느 정도 급이 맞는 상대만 데려올 수 있는 거였어.

하긴 저런 무지막지한 놈의 스텟을 반이나 훔쳐왔다간 내 몸이 감당을 못해 터져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으음? 이건…진실의 방?  정체가 뭐지?”

그러면서 날 자세히 살펴보려 한다.
아마 악마의 눈을 발동하는 거겠지.
보니까 이 탐색스킬도 스텟 차이가 나면 발동이 안 된다.
반면에  남자는 나보다 스텟이 압도적으로 우위니 내 정보를 샅샅이 봤음이 분명하다.

“너는…후보자였군!”

벨리알의 눈에 놀람이 서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지루한 표정.

“후보자가  명만 있는 것도 아니니 상관없겠지. 이만 내 눈앞에서 사라지거라.”

그러면서 손을 휘저으려는 벨리알.
이거 진짜 망한 건가?
저항은 불가능하다.
눈을 감고 최후를 맞이하려는순간이었다.

쩌저저적

차원에 균열이생긴다.
그리고 나타나는  명의 미녀.

키는 175cm 정도?
무척이나  키에 늘씬한 몸매다.
레이싱 모델이라도 해도 될만한 키.

물론 가슴은 A컵 같지만, 키가 크고 늘씬해서 그런지 딱히 작아 보이지도 않는다.
딱 대한민국 여성 평균 가슴 크기?

제비꽃이 핀듯한 보라색 머리카락과 그에 맞는 색깔인 자수정같이 빛나는 큰 눈동자.

무엇보다  뒤에 달린 검은색 악마의 날개와 이마의 양옆으로 휘어진 산양의 뿔은 그녀가 평범한 인간이 아닌 마족의 일원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늘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많이 보이는군. 넌  누구지?”
“위대하신 72 마왕   명이신 마왕 벨리알님을 뵙습니다. 저는 후보자 데이몬의 담당 마족 새롬이라고 합니다.”

새롬?
새로옴?
네가 새롬이었구나?

근데  진짜 예쁘다.
온라인 채팅으로 만난 여자 현실에서 만난 기분이다.

“후보자 담당 마족이면 하급마족이란 말인가?”
“그, 그렇습니다.”
“불경하군. 감히 하급 귀족 따위가 내 앞을 가로막고 뭐라도 의견을 제시하려는 게 말이야.”
“저는 어디까지나 대리자일 뿐. 윗분들의 의견을 전하러 온 것일 뿐입니다.”

오우.
새롬이 똑똑하군.
바로 윗사람 실드를 가지고 왔구나.
이래서 사람이 능력 있는 매니지먼트사를 만나야 한다니깐?

대리자라는 말에 벨리알의 두 눈이 가늘어진다.
계속해서 헛기침하는 것이 어지간히 심사가 불편한 모양.

“감히 어떤 놈이길래 직접 오지 않고 이런 건방진 짓을 하는지 말해봐라.”
“72 대마왕 중 [F], [U], [C], [K] 님께서 당장 후보자의 무대에서 퇴장해주실 것을 요청했습니다.”
“…FUCK?”

새롬아.
그거 맞아?

너 지금 벨리알 놀리려는 거 아니지?
왜 마왕 이니셜들이 다 저런 건지 모르겠네.
그리고 배치를 해놔도 하필 또 저렇게 해놨어요.

“그러니까 죽고 싶다고? 하급 마족?”
“저는 이니셜을 그대로 읇은 것뿐입니다. 무엇보다 마왕 [A]님이 당장 나가지 않으면 벨리알님의 영지는 오늘 내로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하시더군요.”
“!”

벨리알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마왕 [A].
이 사람은 나도 기억이 난다.
나에게 악마의계약서 20개를 갖다 준 고마우신 분이다.

이번에도 신세를 지게 되는군.
A 마왕은 아무래도 내 플레이에 단단히 매료된 열성팬 느낌이다.

지갑 두둑한 아저씨팬 하나 생긴 기분이네.
원래 지갑 두둑한 아재는 젊은 소녀팬보다 좋은 게 이 바닥 아니겠어?

고맙습니다, 땡큐.
허공에 인사 하나 날려준다.

여차하면 입키스도 날려주고 싶지만 같은 남자끼리 좀 징그러울 수 있으니 여기까지 할게.

“흐음. 그분께서 눈여겨보시는 후보자였단 말인가? 아무리 봐도 특별한 점이 없어 보이거늘.”
“그건 A 님께서 파악하실 일. 그럼 저는 이만 퇴장해보겠습니다.”

그러면서  뒤돌면서 나와 눈이 마주친다.
자수정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이 난다.

“당신처럼 손이 많이 가는 후보자는 처음입니다. 제발 사고  그만 치세요. 너 때문에 야근하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야!”

소리  번 빽 지르고 균열 안으로  사라졌다.
나타날 때처럼 사라질 때도 홀연히 사라져버린 새롬.
난 오늘 새롬의 진짜 모습을 확인한 것만 해도 대만족이다.
 



사상 최악의 주인공〈 65화 〉대만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