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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화 〉마녀회의 부흥





〈 66화 〉마녀회의 부흥

“이거 무척이나 곤란하게 되었군.”

새롬이 사라지고 나서 마왕 벨리알은고민이 많아진 느낌이다.
그렇겠지.
네 서열이60대 후반이라며?
그러면 72명 중에 하위권이니 마왕들 사이에서는 하꼬란 말이잖아?

마왕이 몇 등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렇게 말을 세게 하는 거로 봐서는 분명 상위 서열 마왕이 분명하다.
한 마디로 벨리알도 알아서 기어야 하는 거지.

죽기 직전에 지구에서 개인방송을 잠깐  적이 있었다.
BJ, 스트리머라고 하지?
그때는 자수성가 CEO, 뭐 이런 타이틀 달고 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불현듯 등장한 내 방송을 고의적으로 망치려는 악성팬들.
이런 분란유발자들을 내 열혈팬들이 사전에 막아주었다.
이것도 비슷한 느낌인 것 같다.

벨리알은 징그럽게도 에밀리의 온몸을 훑어대며 연신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에밀리도 소름이 돋는 듯 몸을 덜덜덜 떠는 게 눈에 보이네.

벨리알, 제발 좀 꺼져줄래?
옛날 대한민국에서는 미성년자 묶어놓고 그딴 눈빛으로 보는 것만으로 경찰서행이었거든?
여기가 판타지아고 네가 마왕이라서 다행인 줄 알아라.

“…후보자. 이번만큼은 물러나지. 나도 이 좋은 연극을 망치는 멋없는 관객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래.
제발 좀 꺼져줘.

“하지만 명심해라. 너는 후보자일 뿐. 그리고  벨리알의 눈에 찍혔다는 걸 말이다.”

그냥 가면 되지  저렇게 한마디 붙이고 가요.
저런 게 더 멋없어 보이는 걸 모르는 놈이구먼?

“설사 네가 유의미한 성적을 거두고 마계로 올라오더라도 조심해라. 그때부터가 정말 시작이니 말이다. 계속 주시하겠다. 두고 보자, 데이몬.”

스스스스

벨리알의 몸이 희미해지면서 차원 저편으로 사라진다.
악역이 퇴장하면서 할법한 대사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깨알같이 다 하고 가네.

두고 보자.
지켜보겠다.
뭐 이런 대사들 말이야.

진짜 멋없는 새끼.
치사하고 더럽네.
캭, 퉤.
다시는 보지 말자고.

결국, 밸런스 파괴자 벨리알이 사라졌다.
나는 서둘러 에밀리에게 가서 묶인 밧줄을 풀어줬다.

너무 오랜 시간을 묶여있었는지 온몸에 힘이  들어간 에밀리는 신체에 자유를 얻자마자 그대로  품에  안긴다.

오늘 낮에 이어서  번이나 공주님 안기 자세로 나에게 안긴 에밀리.
분명히 말하지만 얘는 날 죽이겠다고 벼르고 있던 계집이다.

“괜찮나?”
“…영주님.”

에밀리의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그런데도 애써 시선을 피하는 그녀.

큭큭.
지금 자기도 이걸 어째야 할지 모르는 거겠지.

나 죽이고 싶다고 큰소리 땅땅 치고 나왔는데 지금은 나한테 목숨을 구함 받고 이렇게 폭 안겨있으니 말이다.

 같아서는 너무 무서웠으니 날 껴안고 엉엉 울고 싶을 거다.
그런데 그 녀석이 자기가 원수라고 생각한 남자이니 그럴 수도 없는 거지.

“좀 울어도 된다. 오늘 모습은 못 본 걸로 하마.”
“훌쩍, 훌쩍.”

내 말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조용히 울기 시작하는 에밀리.
 가슴 앞섶이 그녀의 눈물에 서서히 젖어가는 게 느껴진다.
그런 그녀를 안고 조용히 동굴을 나가려고 했다.

“잠시만요! 어딜 가려는 거죠?”

그리고 여태까지 가만히구경하고 있던 녹색머리 여자가  붙잡았다.

“왜,  붙잡으려고? 할 테면 해봐.”

나도 오늘 이런저런 일 때문에 피곤했다고.
지금 기분 매우 좋지 않아.
한따까리 하려면 얼마든지 붙잡아보라고.

죽일 듯이 노려보니까 녹색머리 여자가 움찔하는 것이 보인다.
명백히 기가 눌린 거다 저건.

내 눈빛이 그렇게 날카로웠나?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기세를 쏘아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돌아올 거니까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어라. 도망가면 마녀의 숲을  뒤져서라도 널 찾아낼 거야.”

재방문하겠다는 예고를 한 후 에밀리를 안고 동굴 밖으로 나갔다.

휘이잉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분명 잠깐 있었는데 동굴에 거의 3일은 있었던 것 같네.
그만큼 짧은 시간에 많은일이 있었단 말이겠지.

“저기…이제 됐어요. 내려주셔도 돼요.  발로 걸을게요.”

한참을 울고 있던 에밀리는 이제야 수치심이 올라왔나 보다.
하지만 넌 오늘 나를 너무 곤란하게 했어.
그러니  나름의 소소한 벌을 더 줘야겠어.

“난 너를 내려줄 생각이 없다. 캠프에 도착할 때까지는 이렇게 [아기]처럼 나한테 안겨서 가도록.”

큭큭.
아기라고 대놓고 말해버렸다.
이건 돌려 말하면 네가 복수 어쩌고 해도 결국 내가 보기엔 넌 아기 같다는 말이다.

똑똑한 에밀리는 내 말에 포함된 뉘앙스를 모를 리가 없다.
입술을 깨물지만 결국 손으로 내 옷섶을 꼭 쥐고 얼굴을 파묻는다.

그리고 다시 우는 에밀리.
이거 완전 울보였네.
아마 그동안의 서러움이나 외로움이 터진 거겠지.

“울고 있는 동안 대답하지 말고 들어라. 에밀리, 네가 나를 싫어하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나도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그런 행동을 했다는  알아줬으면 한다.”

그녀를 공주님 안기 자세로 안은 채 캠프까지 뚜벅뚜벅 걸으며 독백하듯이 말한다.

“물론 어린 너와 십동대 아이들에겐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 아직 행복한 가정이 세상 전부라고 생각할 때이니 말이다.”

딱히 미안하진 않다.
하지만 십동대 너희를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번이고 미안하다 말할  있지.

“그러니 마음껏 원망하고 조롱해라. 난 묵묵히 견뎌주겠다. 나는 나쁘고 사악한 영주이고 너의 원수이다. 그러니 매일 날 미워하며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거라. 그것만이 내가 유일하게 원하는 일이다.”
“흐흑!”

에밀리는 내 말을 듣다가 또 터졌는지 내 가슴 섶을 눈물로 적신다.
야, 그만 좀 울어.
이쯤 되니 옷 찢어지겠네.

“그래도 이건 알아줬으면 좋겠다. 난 내 주변 사람들을 사랑한다. 특히 에밀리, 내 유일한 약점이자 아픈 손가락. 난 너를 특별히 여기고 있다.”

천무지체 에밀리.
널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내 매끄러운 혀를 얼마든지 놀려주마.

오늘 같은 날 말을 잘해놔야 한다.
십대의 감수성은 미칠 듯이 예민하다.

이때 한 번 잘해주면  녀석은 평생  기억을 좋게 가져갈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번 잘못하면  또한 평생 나를 원망한다는 이야기지.

그러니 오늘은 최대한 달달한 말을 폭격해서 이미 활짝 열려버린 그녀의 마음에 꿀물을 사정없이 투척한다.

“사랑하는 에밀리. 난 네가 성인이  때까지 끝까지 지원하고 응원해주겠다. 성인이 되고나서도 말이다. 그러니 어디 가서도 기죽지 말아라.  판타지아 대륙 최고의 보석이자 원석이다. 스스로의 가치를 잘 알고 그에 자부심을 느끼거라.”

얘기하는 동안 어느새 캠프에 도착했다.
내가 없으니 잠을  잔 여인들이 다크서클이 싶게 내려온 눈으로 우르르 나와서 나와 내 품에 안긴 에밀리를 보았다.

“서방님! 괜찮으세요?”
“나는 괜찮다. 그보다 에밀리를 보살펴다오. 이 아이 오늘 겪지 말아야 할 일을 너무 많이 겪었어.”

여인들이 에밀리를 보는 눈에는 걱정도 있었지만,  사고뭉치를 어떻게 하지? 라는 느낌이 더 커 보였다.
그런 여인들 앞에서 나는 의도적으로 에밀리를 감싼다.

“그만! 에밀리는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마. 혼내지도 마라. 그저 격려해주고 토닥여 주도록."

에밀리를 무사히 엘리샤에게 인도했다.
드디어 큰 짐 하나 덜어낸 것 같네.

에밀리.
방금 너의 별명을 정했다.
큰아기.
너의 별명은 큰아기다.

몸은 다 자랐는데 속 알맹이는 영락없이 아기니까 별명이  맞는  같다.

“서방님도 피곤하신데 들어와서  쉬세요.”
“메이, 난 아무래도 일이 있어서 다시 나가봐야 할 것 같아.”
“이 야밤에 또 어딜 나가신다고요. 괜히 저희 걱정시키지 말고 들어오세요.”

오우.
메이가 말하는 게 영락없이 남편 걱정하는 마누라 멘트다.
하지만 난 정말로 할 일이 있거든.
메이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춰준다.

“에밀리를 이 꼴로 만든 녀석에게 볼일이 있어서 말이야. 잠깐만 다녀올게.”
“그럼 저희도 같이…”
“안 돼, 아직도 주변이어두워. 괜히 날 따라오다가 희생자라도 발생하면 그건 배보다 배꼽이  큰 짓이다.”

내 말에 허점은 없다.
그리고 내가 지금 나가야 할 이유도 충분히 논리적이지.
결국, 메이와 셰릴을 포함한 내 여자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볼 뿐 날 제지하지 못한다.

“저, 저기…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응? 방금 누가 말한 거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거기엔 옷깃을 여민 에밀리가 날 쳐다보고 있다.
하도 울어서 퉁퉁 부은 눈이 새삼스레 강조된다.

“방금 뭐라고 했지?”
“…몸조심하세요, 영.주.님.”

영주님이라 또박또박 끊어서 말했다.
그리고는 후다닥 달아나는 에밀리.
방금 나에게 이 말을 한 게 무척이나 창피했나 보다.

그래도 에밀리가 조금이나마 나에게 마음을 열었다는 걸 알았으니 오늘 야행은 대성공이네.
남은  그 귀엽고 예쁘장한 녹색 머리 여자를 찾아가는 것뿐이군.

돌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아까는 에밀리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헤맸을 뿐.
나는 길치가 아니니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달할  있었다.

다시 나타난 동굴.

아까의 난장판은 내가 다녀온 사이에 깨끗이 치워져 있다.
미셸이라는 제자의 시체도나름대로 묻었는지 어쨌는지 처리를 했나 보다.

동굴의 넓은 공터에는 뜬금없이 의자 두 개와 탁자 하나가 있었고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찻잔이 두 개 놓여있었다.

“말한 대로 다시 오셨군요.”
“…이건 뭐지?”
“와서 앉으세요. 차도 한 잔 드시고요. 차에 독은 타지 않았으니안심하세요.”

갑자기 준비된 티타임.
나는 이 여자의 속셈이 뭔지 몰라서 일단은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로 그녀의 맞은편에 앉는다.

“이런 환영식을 기대한  아니었는데 말이야.”

일부러 차는 마시지 않았다.
적이 될지도 모르는 여자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바보는 아니다.

“우선 사과를 하고 싶군요. 제 제자가 당신의 아이를 납치해서 끔찍한 짓을 벌일 뻔한 일에 대해서 무척이나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고개를 깊이 숙이는 마녀.
이렇게 먼저   접고 들어오는 여자는 오랜만인데?
여태까지 여자들과는 다소 다른 스타일이라 조금 당황스럽군.

메이는 단순하고 순종적이었다.
셰릴은 영특하고 자존심이 셌다.
그리고 이 녹색머리 여자.
 여자는 몸뚱이는 작고 귀여운 것이 왜 이렇게 말하는 거나 행동하는 게 성숙하지?
마치 애늙은이를 보는 것 같아.

“우선 통성명이나 하자고. 나는 윌렛 왕국 출신 귀족 데이몬이라고 한다. 편하게 데이몬이라고 부르도록.”
“좋습니다, 데이몬. 저는 마녀 올리비아라고 합니다.”

올리비아.
이름이 예쁘네.
특히나 올리브(Olive)열매 특유의 녹색이 여자의 머리와 눈동자 색과 매치가 잘 되어서 어울리는 이름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올리비아, 단순히 사과하기 위해서 티타임을 마련한 건가?”
“그건 아닙니다. 레벨 1인 당신이 마왕을 물리치는 걸 보았습니다.”

정확히는 물리친 것이 아니라 열혈팬 아조씨의 힘을 빌려서 퇴장시킨 거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 그러려니 넘어가자고.

“레벨 1임에도 자신의 영지민을 위해서 용기 있게 나서는 영주. 마왕조차 물러가게 하는 능력. 당신은 단순히 레벨로만 따질 수 없는 대단한 남자입니다.”

아.
말 더럽게 끄네.
나이 많은 확실한 것 같다.
이 여자 본론 전에 서론이 너무 길어.

“본론만 말해.  한가한 사람 아니야.”
“제가 말이 너무 길었군요. 그럼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를 도와서 마녀회를 부흥시켜주십시오.”

올리비아의 용건.
그건 바로 마녀회의 부흥이었다.
 



사상 최악의 주인공〈 66화 〉마녀회의 부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