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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화 〉잘난 스텟으로 막아보시지





〈 67화 〉잘난 스텟으로 막아보시지

“마녀회의 부흥?”

금시초문이다.
애초에 마녀회라는  있긴 있었던 거였어?

“역시나 잘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마녀는 홀리엔 법국의 마녀사냥 당시에 모두 사라진 것 아니었나?”

예전에 셰릴에게 주워들었던 걸 마치 잘 알고 있는 양, 몇 마디 주워섬긴다.

괜히 이 여자한테 무식하게 보이고 싶지 않아.

그렇지 않아도 정신적으로 성숙해 보이는 여자한테 무식하게까지 보이면 완전히 나를 애 취급할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물론 대부분의 마녀가 그 당시에 세상을 떠나긴 했지만, 아직 저를 비롯한 소수의 마녀는 대륙 곳곳에 남아서 마녀회를 근근이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마녀회의 회주이고요.”

아하.
그리니까 올리비아 네가 패잔병 잔당의 수장이었구나?
어쩐지 그 50살은 훌쩍 넘어보이던 돼지녀가 스승님이라고 할 때부터 범상치 않아 보이긴 하더라.

“그렇군. 그런데 내가 마녀회를 도와줄 이유를 찾지를 못하겠는걸?”
“마계 쪽과 긴밀한 연관이 있으신 것 같았습니다. 마녀들은 악마님들의 종속입니다. 같은 마계의 권속들끼리 힘을 합치는 게 어떻습니까?”

올리비아의 말을 들어보니 이 여자도악마연합의 후보자 시스템에 관해서는 자세히 모르는 모양이다.
그저 내가 모종의 수를 써서 간신히 마왕을 물러가게 했다고 믿고 있는 셈.

“너와 내가 같은 마계의 권속일 것 같은가?”
“그런 것 아닙니까? 어찌 되었든 인간은 결국 마족님들의 부속품이나 마찬가지니깐요.”
“아니, 너와 나는 다르다.”

올리비아의 말은 부분적으로 맞을 수도 있다.
아까 자신의 권속인 미셸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벨리알을 보며 느꼈다.

마녀란 그저 악마들이 인간 세상에 내려올  유희 거리로 섹스한 여인.
인간세계에서야 마녀가 강하고 무서운 존재로 치부되지만, 현실은 그저 마족용 육변기다.

더 최악인 건  여자들이 악마 놈들의 성욕해소도구가 된 것도 모자라서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점.

악마 놈들이 자궁에 정액 싸갈기고 기분 내켜서 준 얼마되지도 않는 힘에 취한 미셸 같은 여자가 대다수일 것이다.

저러니까 대륙 공적이 되어서 대대적인 마녀사냥을 당했겠지.
굳이 자세히 알아보지 않아도 알만하다.

무협지로 치면 하룻밤 사내의 욕정을 받아주는 홍루의 기녀들.
젖통 사이에 끼워주는  푼의 돈에 헬렐레하는 여자들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나 또한 후보자이긴 하지만 마왕님들의 관심이 사라지면 언제든지 지위가 박탈당할 수 있는 광대.
이러니 올리비아의 말이 어느 정도는 타당하다.

그러나 마녀와 후보자 간에는 가장  차이점이 있다.

나는 이곳에서 일정 성과를 올리고 나면 마계로 올라갈  있다.
즉, 악마나 마족이 될 수 있는 셈.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있다.

반면에 마녀는 그저 하룻밤 성욕 해소의도구가 되고 버려지면 영원히 그 남자와의 밤을 그리워하며 사는 비운의 여인들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일일이 설명해줄 이유는 없지. 그리고 내가 너를 도와줄 이유도 없고 말이야. 내 영지민을 악마에게 바치려고 했는데 무사히 넘어간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라.”

드르륵

용건은 끝났다.
정확히 말하면 진짜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단지 올리비아를 애태우기 위해서 이야기에 전혀 흥미가 없다는 제스처를 취한 거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동굴 바깥으로 나간다.

두근두근

이 여자가 과연 날 잡을까?
어쩔까?
궁금하네.

기대  호기심 반으로 나는 동굴을 나가려고 했고 올리비아는 역시나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끼이이익 쾅

내 눈앞에서 봉쇄되는 동굴의 입구.
두꺼운 쇠창살이 절대 나가지 말라고 외치는 듯하다.

“…이게 무슨 짓이지?”
“그래도말이 좀 통하시는 분인 줄 알았습니다. 제가 사람을 잘못 봤군요.”
“네 제안은 권유 아니었나?”
“통보였습니다. 거절은 없었죠.”

올리비아의 진녹색 눈동자에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재밌는 년.
어디   해보라고.
절로 미소가 지어지네.

“왜 웃는 거죠?”
“내가 내 마음대로 웃는 것도 못하나?”
“제 레벨이 몇인지 알아도  웃음이 나오는지 볼까요?”

투둑

그리고 여자는 자신의 목걸이를 떼었다.
저 목걸이가 레벨 가리개였구나.
어쩐지 미셸이든 올리비아든 레벨이 안 보이더라고.

악마의 눈을 쓰지 않아도 레벨은 보여야 하는데 왜 안 보였는지 이상하긴 했었다.
내 눈이 이상해진 건가 했는데 그건 아니었어.
그리고 나타나는 올리비아의 레벨.

[LEVEL: 54]

…54?
생각보다 높네.
난 40대 중반생각했었는데.
마법을 부릴 줄 아는 여자가 레벨 50대 중반이면 레벨 60대 전사도 쉽게 보면 안 된다.
그러니 스테이터스가 60대 초반인 나도 이 여자를 가벼이 보면  된다는 말이다.

제기랄.
생각보다 어렵게 되었는데?

“역시 제 레벨을 보니 웃음이 사라지시는군요.”
“하나만 묻자. 여기서 날 제압한다고 뭐가 달라지지? 내가 결국 너의 제한을 거절하면 모두 소용없는 일 아닌가?”

내 말은 합당한 의견이다.
네가 날 이긴다고 해도 내가 싫다 하면 끝이잖아?
날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너무 마녀를 쉽게 보시는군요. 세상에는 악마의 힘에 취해서 자아가 변질된 마녀만 있는  같습니까? 저처럼 순수한 마도 학문을 추구하는 여자도 있습니다.”

그런  같긴 해.
단순히 악마랑 섹스 잘하는 순서대로  세우기 해서 회주직 맡진 않았을 거 아니야?
올리비아 네년이 귀엽고 예쁘장하긴 하지만 섹스를 잘할 것 같지는 않거든.

“제가 20년 전, 미셸을 제자로 받아들일 당시에 혹시 몰라서 만들어놓은 마충(魔蟲)이 있습니다.”

올리비아는 젖의 윤곽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품속에서 유리병을 꺼내 든다.
유리병 안에는 징그러워 보이는 검은색 지네 같은 것이 두 마리가 꾸물꾸물거린다.

“참고로 이 마충은 모자(母子) 관계입니다. 혼(魂)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의 생사를 원거리에서도 알 수 있죠. 자충(子蟲)을 먹인 후에 모충(母蟲)을 죽이면 숙주의 뇌로 파고든 자충은 어미가 죽었다는 충격에 뇌를 남김없이 파먹고 자신도 죽음에 이릅니다.”

뭐야.
저거 그거 아니야?

무협지의 고독(蠱毒) 말이다.
웹소설 사장이니 무협지도 꽤 많이 읽었었다.

거기서 남만 쪽 주술사들이나 혈교 녀석들이 자기네신도들이 배반하는 걸 막기 위해 심어놓은 벌레로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자고독과 모고독.
판타지아 대륙에서는 올리비아가 만들어놓고 있었군.

“그렇다면 넌 네 제자에게 고독을 먹였다는 건가?”
“어찌 될지 몰라서요. 물론 미셸이 죽은 시점에서 고독은 의미 없게 되긴 했습니다만, 내가 믿고 있는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기는 싫었습니다.”

 여자도 자기가 무슨 마녀들의 선구자 어쩌고 하더니만 역시나 제정신은 아니네.
주변 사람 못 믿고 이런저런 장치해두는 게 딱 나랑 비슷해.
사람이 나이가 들면 원래 다 주변을  믿게 되는 건가?
 수 없는 일이다.

“그럼 순순히 고독을 드시지요. 그런 후에 마녀회의 부흥에 앞장서는 겁니다.”
“잠깐.”
“왜, 갑자기 저의 제안에 응하고 싶어지셨습니까? 늦었습니다. 저는 이미 당신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거든요. 이제는 당신이 원한다고해도 고독을 먹인 후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개소리야.
아까부터 자기 말만 하는 게 진짜몇 살인지 궁금하네.
이런 동굴에서 제자랑 둘이서 수백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 내 용건도 들어봐야 하지 않나?”
“호호, 저에게 역제안을 하신다고요? 그것도 나름 재미있군요. 한  해보시죠.”

나는 심호흡을 하고 마음속에 쭉 담아왔던 내 생각을 그녀에게 말한다.

“올리비아,  여자가 되어라.”

두둥

마치 일본의 해적 만화인 [한조각]에서 동료를 영입하는 주인공의 마음으로 비장하게 말했다.
만화에서는 모자 쓴 녀석이 이렇게 말하면 다들 울면서 고개 끄덕이던데.

“…농담이 지나치신 분이군요.”
“나 농담하는 거 아니야. 처음 봤을 때부터 네가 마음에 들었다. 내 여자가 되어라.”

이상하다.
올리비아는 내가 예상했던 반응이 아닌데?
실실대던 웃음이 어느새 가라앉고 완전히 정색을 했다.

아름다운 진녹색 눈동자에는 살기까지감도는 상황.
얘 뭐지?
첫 술부터 배부를 생각은 없었지만 내 생각보다 반응이 싸늘하다.

“내가 싫나? 남자로서 별로야?”

물론 내가 키 작고 외모 별로인  알고 있어.
그런데 내 침대에 한번 들어갔다 나온 여자들은 다시는 외모 안 보더라?
그 불기둥을 맛본 여자들은 남자의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지.

“우리가 본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여자 운운하시는 거죠? 전 당신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해요.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고요.”
“그런 거 일일이 다 따지면 결혼은커녕 연애도 못 한다. 일단 마음 맞으면 입술 맞대고 배도 맞대고 하는 거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어.”

틀렸다.
올리비아는 이제 증오스러운 표정으로 날 본다.
보니까 올리비아, 이 여자는 평생을 여자들 틈바구니에서 살아온 마녀다.

원래 여자들끼리 있을  맨날 나오는 말이 뭘까?

남자친구 욕, 남편욕이다.
물론 연애 초기에는 좋다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지.

그런데 그것도 잠깐이다.
연 단위로 사귄 여자들에게 남친 욕, 특히 남편 욕이란 진리다.

그렇다고 그 여자가 자기 남친이나 남편을 싫어하냐?

당연히 그렇진 않다.
오히려 자기 말 동조해서 친구가 같이 그 여자 남편이나 남친까다가는 의리 상한다.

그냥  남자까면서 스트레스 푸는 거다.
왜 그러는진 도저히 이해가 안가지만 말이야.

문제는 이 올리비아 같은 여자.

주변 친구들은 그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싸지른 말들에 천생모쏠녀인 이 여자는 과몰입을 해버려서 남자에 대해 일단 부정적이고 방어적인 시선을 갖게 된다.

특히나 올리비아는 그 오랜 세월을 이렇게 살아왔으니 내 고백에  경기를 일으키며 거부감을 느끼는 게 확실하겠지.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원래는 고독을 먹이더라도 당신이 저항하지 않는 선에서는 정중하게 대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미리 예고하죠. 당신에게 고독을 먹이고 제 애완견으로 삼을 생각입니다. 목줄에 메여서 여자의 감정을 소홀히 생각한 자신에 대해 반성하세요.”

하.
여자들 왜 이렇게 강아지 좋아하냐?
수컷 강아지가 그렇게 좋아?
남자를 애완견  삼아서들 안달이네.

“좋아, 그럼 나도 이참에 예고하지. 널 제압하고 강제로 아내로 삼겠다. 거부권은 없어.”
“좋습니다. 어디 한번 해보시죠. 제가 당신의 아내가 되는지 당신이  애완견이 되는지 말입니다.”

뭔가 내가 손해인 것 같지만, 어차피 내가이기면 되니깐 상관없지.
그리고  아내가 되면 초반에는 애완견보다 못한 생활을 한다.
메이도 그랬고 셰릴도 그랬지.

올리비아, 너도 기다리렴.
곧 그렇게 만들어줄게.

일단은 탐색전부터 시작해볼까?
올리비아가 목걸이를 벗었으니 악마의 눈이 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악마의 눈 스킬 발동!

스팟

-상태창-
이름: 올리비아
칭호: 마녀, 7급 마도사
직업: 마녀회 회주, 흑마법사
LEVEL: 54
힘: 1 민첩: 2 지력: 300 행운: 40
보너스 스탯: 0
카르마 수치: 240
스킬: 7서클 이하 [목(木)+암(暗)]속성 마법
상태: 증오

아.
얘 스텟 좀 되는구나.
일단 지력 몰빵캐다.

지력만 300.
한 종목이 300인 걸 난 처음 본다.
도대체  여자 정체가 뭐야?

힘이랑 민첩은 절망스러울 정도로 낮으니 그쪽을 노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칭호에 적혀있는 7급 마도사.

갈리아 제국에서 손꼽히는 마탑의 탑주인 피에른 공작이 7급 현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 이 녹색머리 여자가 그 대공이란 사람과 같은 급의 마법사인가 보다.

상상 이상의 거물이군.
이 정도 인간이 숲에 숨어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서로 간의 기세가 공기에서 팽팽히 맞붙는다.
기세란 도합스텟에서 자연스럽게 풍겨나오는 분위기.
한 마디로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고 보면 된다.

지금 이 여자와 나의 도합스텟은 350~400 사이.
비슷하다.

올리비아도 나에게서 풍기는 기세가 나랑 백중지세(伯仲之勢)라는 걸 느낀 모양이다.

그녀의 얼굴에 퍼지는 당혹감.

“뭔가 수를 숨기고 있을 줄 알았지만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지?”
“이건 결코 레벨 1짜리가 낼 수 있는 기운이 아닙니다. 1초라도 빨리 당신을 내 애완견으로 만들어서 그 비밀을 모두 제 것으로 만들어야겠군요.”

 수 있으면 해보라고.
어차피 판타지 소설에서 절대적인 불문율이 있다.

대인전에서는, 즉 전쟁에서는 똑같은 실력이라면 마법사>기사이다.
일대 다수의 전투에서 더 높은 파괴력을 보이는 것이 마법사이기 때문.

반면에 일대일에서는 기사>마법사이다.
근접전투에서 순간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기사를 마법사가 막아내기는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균형캐이긴 하지만 어찌 되었건 힘과 민첩스텟이 100/100이고 상대는 고작 1/2.
이건 피지컬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 잘난 300짜리 지력스텟으로 막아보시지.
 



사상 최악의 주인공〈 67화 〉잘난 스텟으로 막아보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