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BER

MENU

〈 103화 〉 4딸라



〈 103화 〉 4딸라

* * *

“소피아, 들어가자마자 매튜의 집안 장악을 맡는다. 클레어? 그 여자를 치울 수 있겠지?”

“맡겨만 주세요.”

“매튜, 소피아가 어려워하면 네가 알아서 잘 처신해라.”

“흐흐흑…”

“대답이 없군. 올리, 흔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매튜에게 행동하라는 건 뻔하다.

다른 사람 앞에서 소피아를 총애한다는 걸 보이라는 거겠지.

그렇게 되면 집안의 다른 사람들도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테고, 자연스럽게 그녀를 따라온 내 세력도 현무단을 휘어잡을 수 있게 되는 거다.

“그리고 엘리샤, 셰릴, 링링.”

“네, 주인님.”

“너희는 나와 함께 검투사가 된다.”

“알겠습니다.”

대답은 즉각 나왔다.

이들은 나와 함께 모나스 검투장으로 들어갈 인원들이다.

일단 셰릴은 엘리트 검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가파르게 성장하는 여자다.

모나스 검투사 놈들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녀 정도는 어디서 맞고 오진 않을 거다.

만약에 그럴 일이 발생하게 된다면 판 깨지는 걸 감수하고 난입하면 될 일이고 말이다.

엘리샤는 내 호위무사이니 나를 따라서 검투사가 되는 게 맞다.

게다가 구르카를 패용하고 근접전투에 능수능란한 그녀는 충분히 검투장에서도 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링링.

이 여자는 말할 것도 없다.

원래도 검투사 출신이었다가 노예로 팔려서 나에게 온 신세.

나에게 보지가 개통되었을 때 그녀에게서는 분명히 처녀혈이 나왔었다.

검투장에서 한 번이라도 지면 이런 링링 같은 귀여운 수인의 능욕쇼를 진행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녀가 처녀였음이 링링이 검투장에서 수위를 다투는 전사였음을 보여주는 셈이지.

“잘 들었지? 이 셋은 나를 따라서 검투사 행세를…”

“저도 가겠어요.”

누구야.

누가 지금 내 말을 끊었는가?

네 머릿속에 마구니가…

이건 아니지.

마치 한쪽 눈을 안대로 가려야 했을 것만 같은 대사를 치다가 나는 갑자기 끼어든 소녀를 보았다.

“에밀리?”

“영주님, 부탁드립니다. 그 검투장에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놀랍게도 자원을 한 여인은 바로 에밀리.

그렇지 않아도 고민을 좀 했는데 말이지.

내가 가진 카드 중 가장 빛나는 새싹.

천무지체의 소녀.

아마 이 여자를 검투장에 세우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선풍이 불 것이다.

“에밀리, 너는 아직 어리다. 검투장은 생각보다 만만한 곳이 아니야.”

“목숨을 걸고 서로의 검을 겨루는 곳이라 들었습니다. 그곳에서 저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습니다.”

으음.

완전히 결심이 선 것 같은데.

사실 나도 에밀리를 세우고 싶었다.

하지만 눈치를 보고 있었지.

어쨌든 에밀리는 일행 중에서 내 마음대로 배치할 수 없는 유일한 여자이니 말이야.

“좋다. 그러면 에밀리까지 검투사로 넣는다.”

먼저 들어와 준다니 땡큐지.

그럼 검투사 조는 데이몬, 셰릴, 엘리샤, 링링, 에밀리로 정해졌다.

“서방님, 그럼 저는 무엇을 할까요?”

“메이, 너는 원래 하던 역할을 하면 돼.”

“원래 하던 역할이라면…”

“너 잘하는 거 있잖아. 하녀 역할.”

그건 역할이라고도 할 수 없지.

원래 메이는 본성 하녀였으니 말이다.

“너는 윌렛 왕국 베르너 백작가의 하녀 메이 역할을 맡는다.”

“…그건 원래 저인걸요?”

“맞아. 크래스 장원 영주의 횡포를 이기지 못하고 마녀의 숲 쪽으로 도망갔다가 마녀에게 붙잡혔다는 스토리다.”

이후 감옥에서 소피아와 만나서 친해졌고 그녀가 매튜의 첩이 되자 그녀의 전담 하녀로 보살펴 준다는 스토리지.

“그건 잘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연한 거다.

우리 중에서는 네가 가장 본래 역할과 흡사하니깐 말이야.

“그리고 올리는 메이와 소피 근처에서 잠복한 채로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그녀들을 지켜줘.”

올리는 전면에 내세우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그녀는 마녀.

아무리 모나스가 전통 귀족이나 왕족으로부터 자유로운 도시라고는 하나,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곳이다.

그리고 올리비아 같은 마녀의 정체가 들통이 나면 그 즉시 모든 작전은 취소되겠지.

“옆에서 메이와 소피를 보호해줘.”

“그건 어렵지 않아요. 명을 받들겠습니다, 서방님.”

올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을 했다.

소피와 메이 옆에 붙여두면 내가 부재하는 경우에 행여나 두 여인이 겪을지도 모르는 불상사를 막는 역할.

그녀의 레벨은 충분히 고렙이니 대처가 가능하리라 예상한다.

그렇게 우리는 두 조로 나뉘었다.

첫 번째 검투사 조

조장 데이몬

조원 셰릴, 엘리샤, 링링, 에밀리

두 번째 운영단 조

조장 올리비아

조원 메이, 소피아, 매튜

“저, 저도 조원으로 포함되는 겁니까?”

“그럼 손가락만 빨려고 했나? 올리비아 흔들어.”

“아닙니다! 충실히 작전을 수행하겠습니다.”

매튜가 기겁을 했다.

확실히 고독을 한 번 먹여놓으니 절대 저항을 못 한다.

혹여나 뒤에서 딴짓을 꾸민다 할지라도, 거리에 상관없이 24시간 유리병을 흔들어대면 이 녀석은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의 고통을 겪을 것이다.

현무단주까치 꿰찰 정도로 사회적 위치가 높은 놈인데도 레벨 10밖에 올리지 않은 의지박약인 놈이 절대 저항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매튜 저놈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이미 눈빛이 죽어있다.

“그럼 슬슬 조는 다 짰고 각 조가 해야 할 역할을 말해주겠다.”

그런데 조가 정말로 다 짜진 거 맞나?

뭔가가 빠진 것 같은데.

모르겠다.

“취익! 나 빼지 말아달라! 취익!”

아하.

티모 대위.

네가 있었구나.

잠깐 존재감이 없어서 까먹고 있었다.

“취익! 정찰대의 규율을 깔보지 마라! 취익!”

“뭐라는 거야?”

“취익! 아무 의미 없는 말이었다! 나도 조에 넣어달라! 취익!”

빌어먹을 오소리 같은 놈.

갑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졌다.

“너는 어느 조에도 넣을 수 없다.”

고블린인걸 들키면 안 되니깐 말이야.

검투장 안에서든 밖에서든 티모의 정체가 드러나면 매우 피곤해진다.

올리비아는 자신의 몸을 숨길 수단이라도 있지, 이놈은 그런 게 없다.

물론 수풀에 몸을 숨기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우리가 갈 곳은 숲이 아니라 도시다.

“넌 3조에 따로 편입된다. 조장은 너 하나. 조원도 너 하나다. 말 그대로 프리 포지션.”

“취익! 그럼 임무는 어찌하나!”

“도시에 잠입해. 그리고 일단 대기한다. 내 명령이 내려지면 그때 움직여.”

“알았다! 취익!”

티모에게는 대기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올리비아가 나에게 다가와서 조개의 진주만 한 자그마한 유리구슬을 준다.

“이게 뭐지?”

“마력을 이용한 원거리 통신기구입니다. 마탑의 현자들이나 저희 같은 마녀들은 가지고 있는 도구지요. 물론 거리가 아주 멀어지면 통신이 불가능하지만, 같은 모나스 내에서는 충분히 교신이 가능할 거예요.”

오우.

이런 곳에도 무전기 같은 게 있을 줄은 몰랐는데.

아주 좋아.

“티모, 너도 하나 갖고 있어라. 따로 행동해야 하니 주군의 명령을 받아야겠지.”

“취익! 고맙다! 마녀님!”

티모가 유리구슬을 품에 챙겼다.

그러면 조원들 간의 연락을 걱정할 필요 없겠고.

“서방님, 제안한다멍! 레벨 가리개 해야한다멍!”

좋은 지적이다.

갈리아 제국에 우리 정도 레벨은 당연히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여태까지는 숲이나 시골만 들렀지만, 이제는 도시에 도착하기 때문에 쓸데없는 관심을 피하기 위해서 레벨 가리개는 필수다.

“혹시 몰라서 해치웠던 검투사 놈들 가리개를 미리 수거해왔습니다.”

“잘했다, 엘리샤.”

엘리샤의 센스있는 행동으로 인해 우리는 전원 레벨 가리개를 착용할 수 있었다.

레벨 가리개는 작은 반지였는데 새끼손가락에 끼면 스스로 손가락의 맞춰 수축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로써 도시에 도착하기 전에 해둬야 할 것들은 미리 다했다.

“…각 조가 해야 할 역할은 가면서 설명하겠다. 일단은 이동!”

그렇게 내 계획을 들으면서 루나원정대는 모나스를 향해 달렸다.

다들 레벨이 고렙에 민첩이나 체력 스텟이 딸리는 사람들은 없었기에 이동은 신속했다.

마법사들은 마나를 자신의 발에 휘감고 바람의 힘으로 이동하거나 마법 빗자루를 타고 이동했다.

저러니까 정말 마녀 같긴 하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드디어 자유도시 모나스에 도착한다.

“…장관이군.”

“대단해요!”

“이게 진짜 도시죠.”

자유도시 모나스.

이곳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도시였다.

살고 있는 거주 인구만 20만.

인근에서 왔다갔다하는 유동인구까지 포함하면 30만이 훌쩍 넘는다.

물론 지구에서는 그 정도면 서울의 일개 구 하나만도 못한 도시지만, 실제로 20만이란 숫자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무엇보다 활기.

도시 전체에 엄청난 에너지가 내재되어 있다는 게 느껴졌다.

“오션스 연합에서 직수입한 건어물포 세트가 단돈 1실버! 쌉니다 싸요!”

“특제 오비뇽 팝니다. 입에서 살살 녹아요!”

“마물의 뼈 판다! 용병이나 검투사 놈들 관심 있으면 와라! 이걸로 제련한 무기는 절대 부서지지 않을 거다.”

도떼기 시장이군.

골목마다 상점이 가득 차있었고, 장사하는 상인들과 그걸 구매하는 소비자들로 가득한 도시.

적어도 이 도시에 한해서는 신분제가 별로 영향이 없다는 소피아의 말이 일리가 있어 보였다.

다들 자기 볼일 바쁜데 귀족 나으리 눈치 볼 새도 없어 보였다.

간간이 귀족들도 보이지만, 그런 귀족들조차 온갖 신기한 문물을 구경하며 정신없어하기는 매한가지.

“이게 진짜 도시였군요. 제가 살던 본성은 여기에 비하면 진짜 작은 동네 수준이에요.”

메이도 신기한지 주변을 둘러보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고, 셰릴도 옆에서 작게 감탄했다.

“윌렛왕국은 정말 작은 나라였습니다. 왜 귀족들이 갈리아 제국으로 유학을 가는지 알 것만 같군요.”

아무래도 셰릴이 베르너 백작가에 머물던 시절에는 유학생들도 꽤 있었나 보다.

그러다가 여자들을 우르르 끌고 다니는 내가 눈에 띄었던 것일까?

몸이 건장한 젊은 남자가 이마에 흰 띠를 질끈 동여맨 채 나를 붙잡는다.

“그쪽 나으리! 알비온산 특별 야관문주! 재고 얼마 안 남았어요! 남자들이 이것만 먹으면 가라앉질 않습니다! 아내들 대만족!”

“어이, 그게 정말인가?”

“나으리, 알비온 연맹 여자들이 왜 애를 다섯씩 낳는지 잘 생각해보시죠! 한 번도 안 마신 사람은 없어도 한 번만 마신 사람은 없습니다요!”

그러면서 부럽다는 눈빛으로 메이와 셰릴을 훑어본다.

확실히 메이와 셰릴은 이런 사람 많은 대도시에서도 눈이 번쩍 뜨일 미인들이다.

그뿐인가?

비록 후드를 뒤집어쓰기는 했지만, 링링이나 엘리샤, 올리나 소피아 모두 드러나는 몸매만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의 침을 꼴깍 삼키게 만든다.

“특히 귀족 나으리는 거느리신 레이디 분들도 많으신데 이 술이 아주 직빵일 겁니다. 저만 믿으세요.”

정력에 좋다니 마다치 않겠다.

물론 환골탈태 이후로 정력이 쇠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다다익선, 유비무환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지.

“얼마지?”

“하하! 잘 생각하셨습니다. 한 병에 1골드!”

1골드라고?

판타지아 대륙에서 1골드를 지구 세계의 한국 돈으로 계산하면 100만 원이다.

고작 이거 술 한 병이?

무슨 발렌타인 N년 산이라도 되냐?

지구의 고급 와인 뺨치는 고가의 술을 이런 도떼기 시장에서 대놓고 떨이를 한다고?

내 안면 근육의 경직을 느껴서일까?

바로 혀의 기름칠을 하는 장사꾼.

“아이고! 1골드가 결코 비싼 게 아닙니다요. 일단 한 번 마셔보세요. 밤에 가라앉지를 않아요. 확실한 효능이 보증된 술입니다. 물론 두 병 이상 사시면 깎아드릴 수도 있습니다. 두 병 사시면 한 병당 80실버. 세 병은 병당 50실버…”

더는 못 들어주겠네.

데이몬식 협상 들어간다.

“4딸라.”

“…네?”

“여긴 달러가 없나? 그럼 말을 바꿔주지. 4쿠퍼. 한 병 사겠다.”

* * *




사상 최악의 주인공〈 103화 〉 4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