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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화 〉 10점 만점에 10점



〈 104화 〉 10점 만점에 10점

* * *

상인은 얼빠진 표정으로 날 본다.

남자가 그렇게 뻔히 쳐다보는 건 싫은데 말이야.

잠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인의 어색한 웃음.

“하하하! 장난이 심하신 나리시군요. 1골드를 불렀는데 4쿠퍼라니요.”

“장난하는 거 아닌데. 4딸라…4쿠퍼에 내놔라.”

그러면서 기세를 내뿜었다.

순간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도합스텟 600의 기운.

넓게 퍼트린 것도 아니었고 상인에게만 집중해서 쏘았다.

파앗

“흐어억!”

이미 거의 반쯤은 괴물 수준에 이른 내 기운을 무술조차 익히지 않은 평범한 인간이 견딜 수는 없다.

쿠웅

“어라? 이 아저씨 갑자기 쓰러졌어요.”

“빈혈기가 있나 보다. 그늘에 눕혀드려.”

메이에게 한마디를 하고 좌판에 진열된 알비온산 야관문주를 모조리 쓸어서 품에 챙겨 넣었다.

물론 난 양심적인 소비자이니 4쿠퍼를 올려놓았음은 물론이다.

다음번에는 손님 봐가면서 양심적으로 장사하라고.

“…주인님, 설마.”

“쉿!”

뭔가를 눈치챈 올리비아에게 조용히 검지를 입가에 대서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야관문주 소동 이후로도 1시간 정도를 시장구경에 썼다.

내 여자들은 오랜만에 마주한 문명에 신이 나서 여기저기를 쏘다녔고 오늘만큼은 나도 딱히 그녀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어차피 어디 가서 쥐어터질 레벨들은 아니니 안심하고 내보낸 것도 있다.

한가로이 뒷짐을 쥐고 시장구경을 하다가 갑자기 저 너머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린다.

“용사님이다! 용사님이 모나스에 오셨어!”

“성녀님도 같이 오셨다!”

그 소리를 들은 시장의 손님들이 이목이 확 쏠린다.

“뭐라고! 용사님이라고?”

“세상에, 나 용사님 처음 봐!”

“엄마, 나 용사님 보러 가고 싶어!”

구경꾼으로 돌변한 시장의 손님들이 소리가 들린 쪽으로 우르르 몰리는 게 느껴졌다.

대부분이 여성과 아이들인 걸로 봐서 용사가 주로 어떤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흐흐, 우리도 구경가세.”

“성녀님이 그렇게 예쁘다던데.”

“신이 점지해주신 여인이니 당연하겠지. 그런 성녀님과 같이 다니시는 용사님이 참 부러워.”

남자 녀석들은 또 성녀에게 관심이 있구나.

썰물처럼 빠지는 사람들에 의해서 순간 내 주변을 텅 비어버렸다.

“서방님, 우리도 구경 갈까요?”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딱히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애초에 목적이 있어서 이곳에 잠입한 상황.

용사나 성녀는 72대천사를 뒤에 두고 있는 사람인데 내가 생각지 못한 수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바로 매튜의 집으로 가자.”

내 명령은 절대적인 것이기에 여인들은 용사와 성녀에 대한 호기심을 접고 원래 가려던 목적지로 향했다.

유일하게 아쉬워하지 않은 여인은 바로 올리비아.

“용사나 성녀나 다 똑같은 족속들이에요. 오히려 또라이들이 더 많았죠.”

백 년도 더 전에 일어난 마녀전쟁의 선봉장인 올리비아는 그 시대의 용사와 성녀도 많이 만나보았던 모양이다.

“천사놈들이 내려준 쭉정이 같은 힘으로 오만하기가 이를 데 없던 놈들이었어요. 그 와중에 착한 척 정의로운 척은 다 하는 역겨운 연놈들이었죠.”

그때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는 듯 올리비아의 눈빛에서 정광이 번뜩인다.

모르긴 몰라도 그들에게 쌓인 게 많았나 보군.

내가 보기에는 마녀도 그닥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이다.

용사나, 성녀, 마녀 모두 상위의 존재들의 힘에 취해 사는 놈들.

물론 이런 말을 굳이 올리비아의 앞에서 대놓고 꺼내지는 않았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현무단주 매튜의 집.

…이건 집이 아니라 자그만 궁전이군.

내 여자들도 믿기지 않아서 매튜를 바라본다.

“여기가 네 집 맞아?”

“네…네 맞습니다.”

“뭐야, 제법 부자였잖아?”

이런 대도시에 평수만 해도 1천 평이 넘어 보이는 넓은 면적을 가진 저택 전체가 다 매튜의 집이란다.

확실히 대단하긴 하네.

하긴 지구로 치면 외국의 명문 구단주 같은 느낌이니깐 수천억에서 조 단위 부자나 마찬가지였겠지.

“…올리비아, 흔들어.”

이유는 없어.

그냥 배알이 뒤틀려서 말이야.

너 같은 놈이 배때기에 기름 두르고 사는 게 마음에 안 들었어.

쉐킷 쉐킷

“끄아아악! 제발! 멈춰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으아악!”

침을 줄줄 흘리면서 머리를 부여잡고 데굴데굴 구르는 메튜.

옷이 더러워지는 것조차 신경 쓰지 못하는 듯하다.

잠깐의 정신교육(?)을 당한 후 잔뜩 충혈된 눈동자로 엉금엉금 기어서 내 바짓가랑이를 잡는다.

“잘, 잘못했습니다.”

“너 잘못 안 했어. 내가 그냥 기분 나빠서 흔들라고 한 거야.”

“아닙니다. 마왕님의 기분을 나쁘게 한 제 잘못입니다. 그러니 제발 봐주십시오. 저 유리병은…흔들지 말아 주세요. 어흐흑!”

40대의 뚱보 아저씨가 즙 짜는 것도 좋은 그림은 아니길래 이쯤에서 봐줬다.

그래도 집에 들어가기 마지막으로 함부로 저항하면 어찌 되는지 보여줬으니 딴생각은 못 품겠지.

문 앞에서 벌어진 매튜의 시끄러운 비명을 들어서일까?

두꺼운 나무합판에 강철을 덧댄 흡사 성문 같은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린다.

끼이이익 쿵

그 안에서 나오는 온몸이 근육질인 사내.

곡도를 들고 있는 거로 봐서는 검투사로 보인다.

레벨 가리개를 해서 수준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20레벨 이상으로 추측된다.

“문지기인가?”

“너희는 누군데 감히 저택 앞에서 소란을 피우는…단주님?”

큭큭큭.

그래도 기르는 개라고 바로 주인은 알아보는구나.

바로 매튜에게 눈치를 보냈다.

그러자 아까의 비굴한 모습은 어디 갔는지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 거드름을 피우는 매튜.

저런 거만한 포즈가 자연스러운 것을 보니 평상시에 어떻게 생활했는지가 눈에 보이네.

“크흠흠! 내가 왔으니 문을 열어라!”

“네, 넷!”

문지기는 단주와 말을 섞을 짬도 아닌 듯 별다른 의문도 품지 않고 바로 활짝 개방했다.

끼이이익

“흠흠! 들, 들어와라!”

야, 말 더듬지 마.

순간 반말하려니까 차마 말이 나오지 않는 듯하다.

“단주님?”

“단주님이 오셨다!”

“모두 나와서 인사드려.”

우르르

거의 100명에 달하는 고용인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매튜에게 인사를 올린다.

진짜 이 드넓은 집에서 왕처럼 생활했구나.

괜히 속이 꼬여서 고독이 든 유리병을 흔들고 싶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니 일단은 참았다.

“단주님, 이게 어찌 된 일이십니까?”

단정하게 머리를 뒤로 넘긴 늙은 노인이 와서 자초지종을 묻는다.

“말하자면 사정이 길다. 내가 데려온 이 사람들에게 숙소를 내주어라. 추후에 설명해주겠다.”

전형적인 집사로 보이는 사내는 딱히 말하지 않고 그대로 나와 내 일행들을 방으로 안내하려 했다.

그때, 저 멀리서 다가오는 한 여인.

“여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클, 클레어! 나 왔소!”

갑자기 현무단주 놈이 눈물을 쏟으며 달려간다.

그리고 감격스러운 상봉을 하는 두 남녀.

“흑흑! 클레어, 나 큰일 날 뻔했소.”

“대, 대체 어찌 된 일인가요? 검투사들은 다 어디로 간 거예요?”

오우.

방금 달려온 여인이 바로 매튜의 아내라던 클레어인가 보네.

나이는 30대 초반 정도인가?

현무단주는 딱 봐도 40대가 넘어 보이는데 돈이 많아서인지 자기보다 한참 어린 아내를 들였나 보다.

메이와 비슷하면서도 약간 더 어두운 금발에 갈색 눈동자.

웨이브가 진 풍성한 머릿결이 허리까지 내려와 있었고, 피부는 햇빛 한 번 쐰 적 없는지 뽀얀 밀가루 같았다.

무엇보다 그녀의 가슴.

거의 G컵은 되어 보인다.

진짜 육덕녀라는 건 이런 걸 보여준다는 듯이 팔다리는 얇은데 가슴 하나만큼은 폭력적이다.

그리고 지금 내 손아귀에서 인형 신세가 된 매튜가 아내를 만나서 그 드넓은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쏟고 있는 것이다.

매튜의 머리에 의해 클레어의 가슴이 압박을 받자, 젖소를 방불케 하는 그녀의 어마어마한 빨통이 금방이라도 옷을 찢고 튀어나올 것 같다.

사실 지금도 워낙 크기가 커서 젖통의 대부분이 노출되는 상황.

판타지아 대륙 전통 의상인 가슴 쪽이 패인 원피스는 클레어라고 불리는 여인의 젖가슴의 꼭지, 즉 유륜과 유두 부분만 간신히 가려주고 있는 실정이었다.

“일단은 들어가서 얘기하겠소.”

내 무언의 눈짓을 알아들은 매튜가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클레어를 안쪽으로 들였다.

응접실 겸 현무단주 매튜의 개인 공간.

그곳에서 두 부부는 마주 앉아서 우아하게 차를 마셨고, 우리는 매튜가 데려온 전사 신분이니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이렇게 있으니 메튜가 무슨 상전이라도 된 것 같지만, 그의 등 뒤가 땀으로 축축이 젖어있음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 일행 중에 유일하게 앉아서 우아하게 차를 마시는 여인 한 명.

바로 소피아였다.

거친 강간 때문에 몸이 상했던 그녀는 모나스 시티로 오는 보름 동안 아내들의 세심한 케어로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히 회복되었다.

물론 내 주먹에 깨진 앞니가 조금 문제였지만, 올리비아가 마녀 특유의 비법이라면서 하얗게 빛이 나는 인공 치아를 잇몸에 심어줘서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아무튼 매튜와 클레어, 그리고 소피아까지.

이렇게 세 명이 자리에 앉으면서 어색한 티타임이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현무단이 마녀를 만나서 전멸했다고요?”

“그래, 정말 어마어마하게 강한 여자였어. 다행히도 그곳에 갇혀있던 소피아와 이쪽 전사들이 아니었으면 난 죽은 목숨이었을 거야.”

미리 짜놨던 스토리를 클레어에게 자연스럽게 말해주었다.

목격자가 우리뿐이니 누가 증명할 수도 없는 이야기였고, 조금 특이하긴 하나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클레어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군요…내 여보를 구해줘서 참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매튜님은 마녀를 눈앞에 두시고도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용감하게 싸우셨어요. 정말 레이디라면 반할 수밖에 없는 용맹함이었죠.”

매튜 놈이 올리비아 앞에서 오줌을 몇 번을 지렸는지 셀 수도 없지만, 일단은 좋게 포장을 해주는 소피아.

혀에 기름을 칠한 것마냥 매끄럽게 대화를 이어나갔고, 누가 봐도 매튜에게 사심을 품은듯한 그녀의 발언에 클레어의 순진무구한 얼굴이 단숨에 의혹에 찬다.

“저기…누구시라고 했죠?”

“갈리아 아카데미 졸업생이자 지금은 마녀에 의해 사라진 리만 표국 국주의 딸 소피아라고 합니다.”

애초에 소피아를 면전에 내세운 이유가 이거다.

우리 중에는 유일하게 갈리아 제국에서 먹히는 신분을 가지고 있다.

나와 셰릴이 귀족이라고는 하나 여기 같은 곳은 시골 왕국 귀족은 쳐주지도 않는 분위기.

그렇다고 하녀나 농노출신 메이, 엘리샤, 에밀리가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검투사이자 눈에 띄는 수인녀인 링링도 당연히 제외.

마녀 출신인 올리비아도 몸을 숨겨야 함이 마땅하다.

마지막으로 티모는…

‘취익! 나 마녀의 숲에 갇혀있던 고블린이다, 취익!’

이랬다간 바로 난리가 나고 티모 녀석은 티확찢 당할 게 분명하다.

“아…리만 표국.”

역시나 클레어도 리만표국이 어딘지 아는 모양이다.

확실히 소피아의 말대로 리만이 대기업은 대기업이었군.

“아카데미 졸업생이었죠. 마녀를 만나 이렇게 신세를 망칠지 몰랐어요. 정말 매튜 님이 아니었다면 전 영원히 지옥 속에서 고통받았을 거랍니다?”

그러면서 매튜를 구원자처럼 바라보는 뜨거운 눈빛.

매튜 또한 싫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붉힌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던가?

본부인을 앞에 두고 아이컨택을 하는 맹랑한 젊은 여자와 남편.

큭큭큭.

여자라면 속이 안 뒤집힐 수가 없겠지.

완벽한 연기다.

연기점수 10점 만점에 10점 줄게.

* * *



사상 최악의 주인공〈 104화 〉 10점 만점에 10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