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 박수를 치는 용사와 성녀
* * *
검투창녀를 격렬하게 강간하면서 한 손으로는 루나를 가리키는 요한의 의도는 명백했다.
다음 차례는 너.
루나 너를 지금 눈앞에서 나한테 볼썽사납게 자지 박히고 있는 요 계집처럼 만들어주마.
제대로 된 도발이었고, 이런 도발을 모를 검투장의 관중들이 아니었다.
“요한! 요한! 요한!”
“와! 요한이 루나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렇게 루나의 처녀도 요한에게 따이는 건가?”
“저 콧대 높은 수인녀가 인간 남자한테 알몸도게자로 박히는 걸 빨리 보고 싶어!”
역시나 자극적인 장면을 원하는 관중들도 대부분이 요한의 편인 듯하다.
슬쩍 루나의 반응을 보았다.
아무래도 관중들의 이런 반응에 기가 죽지 않으려나 싶어서다.
“…프로군. 싸구려 도발에는 응할 가치도 없다는 건가?”
관객석에서 팔짱을 끼고 검투경기를 관람하다가 갑자기 지목당해서 당황할 만도 했지만, 그녀는 시종일관 침착하게 요한의 도발에는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요한은 그런 루나의 무반응에 기분이 나빠졌는지, 틸다를 더욱 강하게 강간한 후 보지가 찢어져서 피가 흐르는 그녀를 아무렇게나 바닥에 집어 던졌다.
“승자! 요한!”
“와아아아!”
“요한! 요한!”
첫 번째 4대 검투단 경기가 성황리에 끝났다.
하지만 관중들과는 달리 내 아내들은 그리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
“상당히 야만적인 경기예요.”
“이건 무인과 무인 간의 경기가 아니었어요. 그냥…여자가 불쌍해.”
“정말 남자들은 이게 뭐가 좋다고 열광하는지 이해가 안 돼.”
그러게 말이다.
이렇게 저급한 경기를 좋아하면 안 되지.
물론 난 틸다라는 검투 창녀가 강간당했을 때 저절로 고간이 섰지만, 내 아내들에게 그 사실을 딱히 말하진 않았다.
“검투 경기를 순수한 무의 겨룸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멍! 그냥 관중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쇼라고 생각해야 된다멍! 진짜 대결은 토너먼트 넘어가서야 보통 나온다멍!”
그래도 검투장에서 구른 가닥이 있는 링링은 이런 광경을 자주 지켜봤는지, 제법 담담한 표정으로 내 여인들에게 설명해준다.
“다음 경기는 누구지?”
“다른 검투단 경기다멍.”
“4대 검투단은 안 나오는 건가?”
확실히 4대 검투단이 나오지 않는 경기는 볼 것도 없고 재미도 없었다.
그나마 검투창녀를 던져주는 경우만 조금의 호응을 얻고 마는 게 보통.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또 다른 4대 검투단의 차례가 왔다.
“백호단이다멍! 루나 족장 나온다멍!”
오래 기다렸다.
우리를 모나스 시티에 온 이유 그 자체인 여인이 천천히 결투장의 무대 위에 섰다.
…그런데 관객들의 반응이 조금 이상하다.
“우우우!”
“우우! 옷 벗어라! 보지 보여라!”
“레이프! 레이프! 레이프!”
루나에 대한 호의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들의 반응.
관중들은 오로지 루나가 남자에게 박혀서 개처럼 빌기를 바라는 듯했다.
“링링, 관중들 반응이 왜 이래?”
“우우…왜냐면 여기 인간들은 수인족들을 하등하고 열등한 동물이라 생각한다멍. 그런 수인이, 게다가 여자가 제일 강한 검투사로 인정받고 있으니 아니꼬운 거다멍.”
이전 세계 지구로 치면 능력 있는 흑인 여성을 기존의 부르주아 계급 백인 남성들이 질투하는 격인가?
아무튼, 이곳 모나스 시티가 루나에게 맞지 않는 장소라는 건 알겠어.
그나저나 진짜 예쁘긴 하네.
전에도 봤지만, 눈송이를 얹은 듯한 백색 털에 시선을 뗄 수가 없다.
게다가 운동으로 다져진 완벽히 형성된 개미허리와 항아리 골반, 그리고 빵빵한 젖가슴까지.
무엇보다 수인녀 특유의 삐죽거리는 동물 귀와 살랑대는 꼬리!
루나가 검투창녀처럼 헐벗고 나왔으면 오히려 팬이 많아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인간들에게 알몸을 보일 수 없다는 듯 얼굴을 제외한 온몸을 칭칭 싸고 나오니 남자들이 좋아할 리가 있나.
“그럼 백호단 vs 자칼단.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시작하자마자 루나의 순수한 스텟을 알고 싶은 나는 악마의 눈을 발동했다.
스팟
상태창
이름: 루나
칭호: 울프문의 딸
직업: (전)울프문 부족 족장
LEVEL: 55
힘: 150 민첩: 150 지력: 12 행운: 120
보너스 스탯: 0
카르마 수치: 310
스킬: 환수화
상태: 절망, 우울, 슬픔.
…레벨 55?
올리비아랑 레벨이 똑같네?
이 대륙의 소드마스터의 입문 레벨이 45라는 걸 생각하면, 루나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강한 거다.
게다가 수인은 인간보다 레벨 1 기초 스텟이 높아서인지 레벨 60도 안 되었는데 도합 스텟이 400을 가뿐히 초과.
물론 내 도합스텟은 600을 넘어 700에 가까이 가고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약해 보일 순 있지만, 루나 정도만 되어도 그녀에 비빌만한 강자는 판타지아 대륙에 그리 많지 않았다.
괜히 모나스 검투장 넘버원을 맡은 게 아니군.
보아하니 전투 경험도 풍부해서 내 여자 중에서는 올리비아 외에는 상대할만한 사람이 없겠어.
각설하고.
그녀의 스킬 부분에 주목했다.
자잘한 스킬이 많을 줄 알았는데 달랑 하나의 스킬만 있다.
“링링, 환수화가 뭔지 아나?”
“그게 뭐냐멍! 먹는 거냐멍!”
스킬에 환수화가 적혀있긴 하는데 무슨 스킬인지를 모르겠다.
링링도 무슨 고개를 갸웃하는 게 무슨 스킬인지 모르는 모양.
아마 저 루나라는 여자가 족장급의 전사라 가지고 있는 특수한 스킬이라 짐작한다.
아직도 링링이 모르는 거로 봐서는 환수화를 쓸만한 위험한 결투도 없었나 보군.
정말로 상당히 강한 여자야.
그 밖에 주목할 점이라 하면 그녀의 심리 상태 정도?
절망과 우울, 슬픔인 건 현재 생활에 대해서 굉장히 불만족한 상태라는 걸 보여줬다.
겉으로는 저렇게 도도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지만 속은 이미 썩어 문드러진 모양.
하긴 나 같아도 부족 전멸하고 자기가 무너지기만 바라는 수많은 인간의 광대 노릇을 하는데 정신이 멀쩡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루나 족장 움직인다멍!”
슈우욱
뭐, 승부는 제법 일방적이다.
루나의 신형이 휘리릭 사라지고 상대의 뒤에 나타났다.
압도적인 민첩스텟 때문에 완벽히 뒤를 내주고도 알아채지 못하는 상대의 뒷목을 가볍게 쳤다.
퍼억
“끄으윽!”
털썩
“…루나 승리!”
경기가 싱겁게 끝나버렸다.
역시나 관중들은 실망스러운 장면에 야유를 보내는 상황.
“우! 우우! 재미없다!”
“내가 이런 경기 보려고 돈 낸 줄 알아? 당장 환불해줘!”
“저 루나라는 년 언제 치울 건데? 빨리 요한이랑 붙여라!”
이제 보니깐 검투 경기는 상대가 약하면 최대한 질질 끌어서 약자를 능욕하는 게 전통인가 보다.
그런 것도 안 하고 깔끔하게 제압만 했으니 욕을 먹는 거구나.
저렇게 야유를 등에 지고도 전혀 표정 변화 없이 다시 자리에 돌아가 앉아서 팔짱을 끼는 루나.
저렇게 별다른 티를 내지 않아도 나는 이미 악마의 눈을 통해 그녀가 심리적으로 얼마나 힘든 상태인지 알아버렸다.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구해주마, 루나.
물론 구해줬으니 그 보상도 좀 받고 말이야.
“여러분! 진정해 주세요! 다음 경기는 바로 4대 검투단이 나옵니다! 바로 현무단 대 황소단!”
벌써 우리 검투단 차례인가?
검투선수를 누굴 보낼지는 전적으로 운영단에 속해있는 소피아와 클레어에게 맡겼다.
아무래도 소피아는 똑똑하고 갈리아 제국 사정에 밝은 데다가, 클레어 또한 검투단주의 아내로써 웬만한 해설가 수준으로 검투 지식이 많기 때문이다.
“제가 첫 번째 순서군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소피아와 클레어가 퍼스트 픽으로 셰릴을 고른 것은 제법 합리적 선택이었다고 본다.
셰릴은 모난 데 없이 모든 능력치가 준수한 여인이었고, 최근에는 소드마스터와의 생사결을 통해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으니 말이다.
파팟
몸을 날려 결투장 위에 선 백갑의 여기사 셰릴.
모두가 그녀의 미모를 살피느라 순간 검투장에는 적막이 내려앉았다.
찰랑거리는 은발 머리.
루비를 박아넣은 것 같은 짙은 붉은색 눈동자.
가녀리지만 나올 때 나오고 들어갈 때 들어간 환상적인 보디라인.
무엇보다 최근 일 년 간 내 자지를 겪어서 은은하게 살결에서 묻어나오는 암컷의 페로몬까지.
모든 스캔이 끝난 관중들에게서는 압도적인 환호가 터져 나온다.
“와아아!”
“예쁘다!”
“레이프! 레이프! 레이프!”
일단 여자가 나오면 레이프를 외치고 보는구나.
마음 같아서는 내 아내를 강간하라고 외치는 저 관중들을 모조리 도살하고 싶지만, 루나를 구해야 하는 목표가 우선이니 참기로 한다.
“선수 설명 간단하게 하겠습니다. 현무단이 마녀 때문에 리빌딩을 했다는 건 모두 아실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 처음 얼굴을 내보인 이 여기사의 이름은 셰릴! 변방 윌렛왕국의 고귀한 여기사 출신입니다!”
시골 왕국의 고귀한 귀족이자 미녀 여기사.
관중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는 모두 갖추었다.
남은 건 저 고귀한 여자가 남자에게 깔려서 자비를 구걸하는 장면뿐.
물론 내 여자가 그런 일을 당하게 놔두진 않을 거지만 말이다.
“상대 선수는 황소단의 에이스 쿠만! 그럼 경기~시작하겠습니다!”
황소단의 에이스?
4대 검투단을 상대로 에이스를 내보내다니.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다.
쿠만이라 불리는 사내는 190cm의 장신이었고 셰릴과는 머리 두 개가 차이 났다.
역시나 그녀의 몸매를 훑어대며 군침을 삼키는 사내.
“큭큭큭. 이게 웬 떡이야. 현무단도 망조가 들었네. 마녀한테 정예 전사가 모조리 쓸렸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이런 검투창녀나 내보내고 말이야.”
셰릴의 미모를 보고 검투 창녀로 착각했나 보다.
하긴 내 아내가 그 정도로 예쁘긴 하지.
“넌 싸움을 말로만 해? 어서 덤벼.”
“이런 건방진 년이 돌았나!”
검투 창녀답지 않게 상대를 도발하는 언사에 바로 눈이 회까닥 뒤집혀서 쿠만이라는 사내가 달려든다.
빠르게 레벨 스캔.
레벨 42.
역시나 중소 검투단의 에이스를 맡을만한 레벨이다.
거의 마스터에 근접했군.
쿵 쿵 쿵
“울면서 내 자지를 빨게 해주마!”
“그럴 일은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거다.”
스팟
둘 간의 격돌.
선공은 쿠만이 먼저였다.
너클을 낀 권사 출신인 거구의 사내가 자신의 긴 팔을 이용해 주먹을 휘둘렀다.
후우웅
살벌하게 들리는 공기 갈라지는 소리에 몇몇 관중들이 간담이 서늘해졌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런 무식한 주먹엔 스쳐도 중상이다.
그러나 셰릴은 이미 그 자리에서 사라진 지 오래.
쐐액 푹
“크으윽! 이 쥐새끼 같은 년이!”
“네가 자라처럼 느린 거다. 멍청한 놈!”
셰릴의 전매특허.
스텝 밟으면서 레이피어로 빈틈 찾기가 나왔다.
탓 탓 탓
특유의 갈지자를 그리며 기묘한 동선이 펼쳐지자 눈이 어지러웠는지 연신 쿠만의 주먹이 허공을 가른다.
“…정말 많이 늘었군. 그새 레벨업한 건가?”
“셰릴은 전보다 더 강해졌습니다. 예전에는 그나마 버틸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거의 상대가 안 되더군요.”
내 뒤에서 호위무사처럼 딱 붙어서 시립하고 있는 엘리샤가 셰릴의 성장을 증명해 주었다.
옆의 에밀리는 그런 셰릴을 보고 눈을 불태우는 중.
셰릴과 에밀리는 이미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호적수이자 라이벌의 관계로 바뀐 듯하다.
“크아아악! 이 비겁한 년! 정정당당히 힘 대 힘으로 붙으란 말이다!”
생각대로 판이 풀리지 않자 심리적으로 무너져서 발광하는 쿠만.
시종일관 냉정한 마음가짐으로 전체 판을 주시하고 있던 셰릴은 그런 쿠만에게 마지막 마무리 일격을 날렸다.
“격투술의 기초도 안 쌓여있는 녀석. 그동안 너보다 약한 상대만 만나서 싸워왔다는 게 여실히 느껴지는구나. 그러면 잘 가라!”
푸우욱
심장에 꽂히는 레이피어.
분명 40대의 고렙 선수였지만 셰릴에게 힘 한 번 못써보고 무력하게 제압당했다.
“승, 승자는 셰릴!”
검투장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녀의 능욕쇼를 보고 싶었던 관중들이 생각보다 셰릴이 너무 강하자 할 말을 잃은 것이다.
그때, 박수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탄성.
짝 짝 짝 짝
“대단해요! 정말 강한 여자야!”
“홀리엔 법국에서도 저 정도 수준급의 기술을 가진 여자는 없을 거예요!”
제법 보는 눈이 있는 관중이 있구만?
박수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보았다.
그곳에는 용사 이상철과 그 옆에 앉아있는 아름다운 외모의 성녀가 셰릴을 향해 열렬한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