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 상철아 그거 아니다
* * *
클레어와 소피아를 따먹은 다음 날.
난 개운한 마음으로 운영단 여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검투단 조로 돌아왔다.
“서방님, 어디 있다가 이제 오신 거예요!”
“멍멍! 링링 외로웠다멍!”
“주인님, 저랑도 오랜만에…”
셰릴과 링링, 엘리샤가 차례로 나와 밤을 보내지 못한 걸 아쉬워하며 은근한 눈길을 보낸다.
“나도 너희와 사랑을 나누고 싶지만, 우리는 해야할 일이 있지 않아?”
“리그전이요? 어차피 우리가 긴장할만한 상대는 안 보이던데요?”
내 생각도 그렇다.
엘리샤도 레벨이 40에 근접했고, 링링은 40대 초반, 그리고 셰릴과 에밀리는 50에 근접하고 있다.
중소규모의 검투단 에이스 레벨이 40대 초반이고, 내 여인들이 제대로 셰릴에게 배워서 평균 레벨보다 훨씬 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느 검투단의 에이스를 만나도 쉽게 처치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물론이다멍!”
“저희만 믿으세요.”
“보여드리겠습니다…영주님.”
에밀리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을 보니 믿음이 가는군.
소드마스터도 이긴 년이니깐 알아서 잘하겠지.
“리그전을 시작~하겠습니다.”
리그전의 시작을 알리는 진행자의 싸인이 울렸다.
…솔직히 말해서 이후 리그전은 내 예상대로 흘러갔다.
퍽 서걱 퍽
“으헉! 어디서 이런 강한 년이!”
“검투 창녀 아니었어? 왜 이렇게 강한 거야!”
“으아악!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게 무슨 대사냐고?
리그전에서 내 여인들을 만난 상대들의 단골 대사다.
오늘 리그전에서는 검투대회 규칙 때문에 셰릴이 나오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셰릴만 현무단의 비장의 무기라고 생각했던 다른 중소 검투단에서 대거 에이스를 내보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링링과 엘리샤, 에밀리에게 차례대로 맞는 중이다.
후우웅 서걱
엘리샤의 구르카는 자비가 없었다.
여자가 보지를 보이지 않고 복면을 쓰고 다닌다고 조롱했던 남자는 그대로 양팔이 잘렸다.
그러고 보니 엘리샤는 양팔을 잘라버리는 게 특기인가?
전에 현무단 숙소에서 군기 잡으려고 했던 놈도 양팔을 잘랐던 것 같은데.
양팔 절단 패티쉬 같은 게 있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모두 나와라멍! 나 없는 사이에 요새 검투사들 수준 낮아졌다멍!”
날아다니기는 링링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원래도 강한 수인족 출신.
수인족은 기본 피지컬이 좋아서 같은 레벨 대에서도 높은 스테이터스를 보인다.
그뿐 아니라 검투장에서 오래 굴러먹어서 경험치까지 대단한 링링은 결투장을 종횡무진 휘저으며 상대를 농락했고, 날쌘 그녀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칼을 휘두르던 전사는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져 버린다.
“빌어먹을 년…좀 잡히란 말이다!”
“그래? 그럼 이번엔 내가 들어간다멍!”
완전히 지친 상대에게 들어가서 제대로 정권을 꽂아넣는다.
나이와는 다르게 굉장히 노련한 대련 방식.
앞으로도 종종 일대일 결투에서는 링링을 믿고 써도 될 것 같다.
“…현무단 링링, 승리!”
“현무단이 이렇게 대단했나?”
“오히려 예전 전사들보다 더 강한 것 같은데?”
“게다가 모두 굉장한 미인이야!”
관중들도 처음에는 검투창녀나 내보내는 줄 알았던 현무단이 연전연승을 거두자, 색안경을 벗고 잘 싸우는 예쁜 암고양이들을 덕질하는 분위기.
내가 원했던 분위기가 딱 이거다.
여자가 어중간하게 강하면 남자들의 질시와 추파를 받지만, 압도적으로 강해버리면 여신으로 추앙받거든.
내 여인들아.
이대로만 가자.
마지막으로 에밀리의 차례.
상대는 전갈단의 에이스 후챠라는 놈이었다.
할짝 할짝
“큭큭큭. 아이야, 어디서 젖비린내 안 나느냐?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이런 곳에 서다니. 오늘 아저씨가 남자가 뭔지 알려주마.”
역시나 한눈에 봐도 어려 보이는 에밀리에게 저질스러운 음심을 내보이는 상대편 전사.
삐이익
경기 휘슬이 울리자마자 에밀리의 검이 화려하게 춤을 춘다.
백화일검 제12무.
혈우화(血雨花)
그녀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빛 검기가 꽃 모양으로 쏟아져 내렸고, 그 아름다운 광경을 모두가 숨죽여 바라보았다.
딱 한 명, 그 후챠라는 막돼먹은 놈 빼고 말이다.
깡 깡 깡 깡
곡도를 정신없이 휘둘러서 어떻게든 검화를 쳐냈지만, 애초에 어설픈 실력자가 막을 수 있는 수준의 검격이 아니었다.
외부에서부터 야금야금 베이더니만 결국 복부를 관통하는 한 송이의 꽃.
“쿨럭! 쿨럭! 이건 말도 안 돼…내가…저 어린년에게…”
원래 세상엔 말도 안 되는 일투성이니깐, 다음 생에는 그걸 알도록 하려무나.
“역시나 전통강호인 것인가! 현무단 리그전 전승! 토너먼트에 진출합니다!”
리그전을 성황리에 마쳤다.
물론 다른 조에서도 백호단과 청룡단, 주작단이 무난하게 다른 조들을 모두 누르고 올라왔다.
“호오, 현무단주. 전사들과 함께 마녀를 물리쳤다니 허풍이 아니었나 보군. 그 조합으로 토너먼트까지 올라올 줄은 몰랐어.”
청룡단주와 백호단주가 놀라운 눈빛으로 현무단주를 바라본다.
“어차피 우승은 현무단이니 에이스 선수라도 건지려면 지금이라도 기권해.”
“푸하하합! 그것참 재미있는 농담이구먼? 백호단주가 그 말을 했으면 진심이라 생각했을 거야.”
아직까지도 현무단은 전혀 가망이 없을 거로 생각하는 다른 4대 검투단주들이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게, 내 여인들이 리그전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는 하나, 넘어야 될 산이 너무 많았다.
주작단의 대천사 강신으로 힘을 쓸 수 있는 사기적인 성녀와 아직 힘을 공개하지도 않은 용사.
청룡단의 사람 하나를 순식간에 곤죽을 내버리는 전직 팔라딘 출신 요한.
그리고 백호단에 1년 동안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는 작년 검투대회 우승자 울프문 부족 전 족장 루나까지.
이들에 비해서는 내 여인들의 이름값이 한 끗발 밀리는 것은 사실이다.
“…너희는 진짜 무서운 게 뭔지 몰라. 진정한 악마가 뭔지 모른다고…”
“아까부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악마라니? 마녀를 만나더니 정신이 매우 아프기라도 한 모양이군.”
이봐, 스탑.
그 이상 말하면 나도 고독충을 어떻게 다룰지 장담 못 한다.
그렇지 않아도 매튜는 자기도 위험 수위로 발언했다 싶은지 내 눈을 바라보았고, 정면으로 나와 눈이 마주쳤다.
“크흑! 농담일세! 토너먼트전에서 보자고.”
“싱거운 건 여전하구만 그래? 하하!”
결국, 울며겨자먹기로 자연스럽게 상황을 넘기는 매튜.
그래, 말 잘 들어야 해.
조금만 수틀리면 바로 딸칠 때 속도로 고독충 흔들어버릴 거거든.
리그전을 마치고 검투장에 들어온 나는 내 여자들을 칭찬해 주었다.
“잘했다. 물론 이길 줄은 알았지만, 관중들의 호응까지 이끌어냈어.”
“헤헤, 저희 잘했죠?”
“주인님, 그런 의미에서 저랑…♥”
“서방님, 나도 보상이 필요하다멍!”
벌써부터 김칫국 마시려는 내 여인들을 한 번 다잡아준다.
“여기에 온 진짜 목적을 잊지 마. 우리는 루나 족장을 구하려고 온 것이다. 토너먼트전은 어디까지나 루나와 접촉하기 위한 발판이야.”
“주인님, 그런데 검투장에서 루나님을 만난다고 해도 뭔가 메시지를 전하는 게 가능할까요?”
나도 그게 고민이긴 하다.
결투장에서는 수많은 관중이 다 보고 있는 자리.
지든 이기든 간에 그들에게 위화감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탈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더 좋은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
솔직히 여태까지 나와 올리비아의 정체가 들키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기적이다.
“이게 누구야! 주작단주랑…성녀와 용사 아닌가?”
그때, 현무단 숙소 쪽이 시끄럽다.
의외의 손님이 찾아오셨군.
주작단주가 왜 용사와 성녀를 끌고 우리 숙소로 온 거지?
다행히 메튜가 동행하고 있었기에 대표로 나와서 주작단주를 맞이해 주었다.
“매튜, 얼굴 좋아 보이네? 솔직히 리그 광탈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날 뭘로 보는 거야? 내가 그랬잖아. 내 팀이 현무단의 이름값에 어울리지 않았다면, 진작에 사신단에서 탈퇴했을 거라고.”
자연스럽게 응대하는 매튜.
왜 이들이 왔는지 궁금하다.
매튜가 바로 내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다.
“무슨 일로 왔는지 알려주지? 지금 우리는 대회 중이라는 걸 알고 있는 거지?”
“당연하지. 너에게 제의할 것이 있어서 왔어. 아, 그리고 이쪽 성녀와 용사님은 따로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나와는 다른 목적으로 오신 거야.”
무슨 제의를 한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들어봐야겠네.
그리고 내 눈앞에는 익숙한 얼굴이 들어온다.
이전세계 지구에서 나와 껍데기뿐이었지만, 그래도 그럴듯한 우정을 나누었던 이상철.
남편을 그리워하다가 내 좆맛을 보고 침대에 깔려 정신을 못 차리던 한유림.
특히 한유림은 지구에서의 그 모습 그대로였는데, 하얀 피부에 갈색 눈동자, 찰랑거리는 긴 흑발 머리가 허리까지 늘어져 있었고, 잘록한 개미허리와 풍만한 젖가슴이 그녀의 여성적인 매력을 돋보이게 했다.
아무튼, 두 남녀가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고 현무단 검투사 숙소로 왔다.
“오오오! 용사님! 영광입니다!”
“성녀님! 아아! 성스러워…”
현무단에 나와 내 여자들이 살려주었던 떨거지들이 우르르 나와서 이들을 찬양하는 거 봐라.
용사와 성녀가 판타지아 대륙의 보통 사람들에게는 어떤 존재인지 대충은 알만하네.
“반갑습니다. 데이몬이라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내가 대표로 나서서 이상철에게 악수를 건넸다.
내가 여기 암묵적인 방장이자 리더이기도 하거니와, 오랜만에 보는 옛 친우가 반가워서였다.
스으윽
하지만 자연스럽게 내 악수를 피하는 이상철.
뭐지?
혹시 전생의 기억이 돌아온 건가?
그랬다면 악수를 피하는 정도가 아니라 날 죽이려고 덤벼들었어야 정상 아니야?
“여기 있었군요! 고귀한 레이디 셰릴! 찾고 있었습니다!”
…이거 무안하네.
용사 이상철은 내가 마치 여기에 없는 사람 취급하면서 셰릴의 손을 억지로 잡고 악수를 나누었다.
나를 사랑하는 셰릴으로서는 면전에서 내가 무시당한 것을 보았으니 표정이 좋을 리가 없다.
단숨에 똥 씹은 표정으로 대충 대꾸하는 그녀.
“…무슨 일이십니까?”
“검투경기는 무척이나 인상적으로 잘 봤습니다. 어린 나이에 정말 대단하시더군요.”
생각해보니깐 검투장에서도 셰릴이 상대를 쓰러트렸을 때, 관중들 중에서 용사와 성녀가 가장 먼저 환호를 해주긴 했다.
“…그래서요?”
“별일은 아니고요. 셰릴양을 저희의 식사자리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식사초대라.
그런 건가?
한마디로 용사와 성녀는 세릴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는 거네.
셰릴이 힐끗 나를 보았다.
당연히 이런 중요한 결정에 관해서 내게 의견을 묻는 거다.
잠시 생각해보자.
용사와 성녀가 셰릴을 탐내는 이유가 뭘까?
…당연한 건가?
어린 나이에 무력도 출중하고 기술도 좋은 데다가 예쁘기까지 하지.
하지만 내 여인들 모두가 그래.
그런데 셰릴에게만 접근한 이유는 셰릴의 신분이 귀족이어서겠군.
에밀리와 엘리샤는 농노 출신으로 검투장에서 소개됐었고, 링링은 어쨌든 수인족이니깐 말이야.
일단은 내게 암묵적으로 의견을 구하는 그녀에게 조그맣게 입 모양을 뻥긋거렸다.
거절해.
두 눈 뜨고 셰릴을 뺏길 순 없지.
특히나 이상철에게는 더더욱 뺏길 수 없다.
“어머! 용사님과 성녀님과 식사자리를 함께할 수 있다니! 정말 영광이죠. 하지만 이걸 어쩌죠? 전 검투 대회에 집중하고 싶어서요.”
셰릴의 완곡한 거절.
이유도 정당했기에 뭐라 할 말이 없을 거다.
사실 이 시기에 라이벌 검투사가 식사제의를 하는 게 이상한 거지.
그러자 아쉬운 표정을 짓는 이상철과 한유림.
셰릴을 설득하기 위해서 말이 길어진다.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시죠. 어차피 저희가 참가한 이상, 현무단은 우승이 불가능합니다. 그럴 바에는 기권하시고 이번 기회에 저희랑 가까워지는 게 어떻습니까?”
“글쎄요? 이건 저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현무단주님과 얘기를 해봐야…”
“현무단주님은 지금 주작단주님과 다른 얘기 중일 겁니다. 주작단주님은 셰릴님을 제외한 에밀리, 엘리샤, 그리고 링링을 스카우트하려고 거액을 준비하고 현무단을 방문했거든요.”
일이 그렇게 된 거였구나?
기껏 열심히 내 여인들 키워놨더니 눈독을 들이겠다고?
나 데이몬이 힘들게 키워놓은 여자들을?
상철아, 그거 아니다.
너 사람 잘못 건드렸어.
남의 여자 건드리면 어찌 되는지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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