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BER

MENU

〈 125화 〉 예술가 데이몬



〈 125화 〉 예술가 데이몬

* * *

다음날 아침.

항상 모나스 콜로세움은 사람들의 뿜어내는 열기로 뜨겁긴 했지만, 오늘은 유달리 더 열정적이었다.

이유는 드디어 리그전이 끝났고, 토너먼트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4대 검투단들은 대진표가 잘 맞으면 만나서 자웅을 겨뤄볼 수 있었는데, 많은 관중들은 바로 이 순간을 기다려 왔다.

“와아아아!”

“현무단! 현무단! 아름다운 여기사 셰릴이 나왔으면 좋겠다!”

모나스 검투대회의 규칙은 각 선수가 리그전에 한 번, 토너먼트전에 한 번, 그리고 결승전은 무제한.

따라서 리그전이 끝난 지금, 한 번 나왔던 선수들이 또 나올 수 있었다.

“나는 에밀리! 그 천재 소녀의 검에서 피어나는 꽃을 보고 싶어!”

“엘리샤와 링링도 만만치 않아! 이번에 현무단의 리빌딩은 성공했다고 봐야할 것 같아.”

관중석에 앉아서 귀의 안력을 키우자 현무단에 대해 떠드는 모나스 시민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나저나 제법 현무단의 인기가 올라온 것 같네.

하긴, 리그전에서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이 화려한 검무를 추는 것을 보여줬으니 당연한 일인가?

반면에 현무단에 회의감을 가지고 청룡단의 무난한 승리를 점치는 관중들의 의견도 귀에 들어왔다.

“셰릴과 에밀리가 예쁘긴 하지만 결국에는 보기 좋은 꽃일 뿐이야. 다들 팔라딘 요한 못 봤어?”

“하긴, 요한은 엄청난 거구에 덩치도 빠르고 전투경험도 많지. 싸우면 결국 무참히 꺾일 거야.”

“밑에 깔려서 암컷처럼 신음이나 내겠지? 셰릴은 기사 출신이라고 했는데 만약 그렇게 되면 여귀족으로써 시집은 다 간 거겠군.”

여러 관중이 모여서 오늘 승부에 대한 예측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셰릴과 에밀리가 이겼으면 좋겠지만, 결국은 요한이 이길 거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이거 어쩌냐?

너희의 예측은 오늘 하나도 맞지 않을 예정이야.

애초에 나올 선수부터 틀렸어.

“그럼 오늘 대망의 첫 토너먼트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아!!”

“어서 시작해라!!”

진행자의 우렁찬 목소리에 열광하며 환호하는 시민들에는 광기의 에너지가 가득하다.

확실히 이런 도시에서 평민으로 살면 윌렛 왕국 같은 깡촌은 재미없어서라도 못 돌아갈 것 같다.

“네! 바로 들어가죠! 현무단 대 청룡단! 청룡단 대 현무단! 출전할 선수는~청룡단의 에이스 팔라딘 요한!!”

“요한! 요한! 요한!”

“나 너한테 올인했다! 보여줘라, 요한!!”

쿵 쿵 쿵

경기장에 들어서는 요한.

그의 2m가 넘는 거구가 장 내에 엄청난 존재감을 뽐냈다.

남들이 보기에는 두 손으로도 들기 힘든 엄청난 크기의 배틀엑스를 한 손으로 쉽게 들고 있는 전사.

얼굴에는 칼자국과 화살 자국이 가득하여서 마냥 정석적인 무술이 아닌 전쟁터의 아귀처럼 피를 마시며 살아왔다는 걸 한눈에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에 맞서는 현무단!! 선수 소개하겠습니다! …응?”

진행자야, 왜 말을 못하냐?

사람들 기다리잖아?

빨리 빨리 좀 말하자.

“으음…저도 의외지만 현무단에서는 뉴비를 내보냈습니다. 저도 처음 듣는 이름이군요! 데이몬!! 데이몬 나와주세요!”

예상치 못한 상황에 검투장에 순식간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갑자기 나온 뜬금없는 이름에 관중들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모른 탓이다.

그도 그럴 것이, 토너먼트전은 리그전과는 다르게 한 번 지면 그 팀은 검투대회 탈락이고 끝이다.

“주인님~파이팅!!”

“멍멍! 이겨줄 거라 믿는다멍!”

“서방님, 이기고 오시면 오늘 보지 오픈할게요!!“

낯뜨거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내 여인들의 자그마한 응원 소리만 들릴 뿐.

슈우욱 탓

관중석에서 결투장으로 뛰어내렸다.

내 앞에는 콧수염을 손가락으로 빙빙 꼬고 있는 요한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우우우우!!!”

“말도 안 돼! 에이스를 내보내도 모자란 데 웬 듣도 보도 못한 잡놈을 내보냈냐!”

“당장 현무단 대진표 다시 짜라! 이 경기는 무효야! 나 현무단에게 돈 걸었단 말이야!!”

현무단에 돈을 걸었다고?

그러면 오늘 많이 따겠네.

고마워해라.

“…현무단주 매튜님이 드디어 미친 건가? 그 셰릴이나 에밀리를 따먹고 싶었는데 말이야.”

대놓고 내 앞에서 내 여자들을 따먹겠다고 말해?

오늘 그 한마디로 네 운명은 정해진 거다.

“할 수 없지. 죽여달라고 애원해도 소용없을 거야. 관중들이 보고 있으니 그들이 만족할 때까지 가지고 놀아주마.”

요한의 표정에는 오만함이 가득했는데, 자신이 질 거라는 상상은 전혀 하지 않는 듯했다.

흐음…

그럼 이 참에 내 스테이터스를 다시 한 번 확인해볼까?

­상태창­

이름: 송길준

LEVEL: 1

힘: 225 민첩: 225 지력: 130 행운: 100

보너스 스탯: 1(+180)

카르마 수치: 4500/20000

아직 보너스 스텟이 180이나 남았고, 굳이 이걸 찍지 않더라도 도합스텟 600이 훌쩍 넘는다.

요한 저 녀석이 레벨 50도 안 되었으니 잘해봐야 도합스텟 400도 안 된 상태겠지.

그런데 여기서 내가 스텟 포인트를 모두 쓴다면?

힘에 모든 스텟을 투자한다.

피지컬 괴물이 되어주겠어.

새롬이 일해라!

[힘스텟에 180을 투자하셨습니다. 힘스텟 총합이…405이 되었습니다.]

이건 괴물이다.

내가 생각해도 괴물이야.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피지컬이 안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보여줄게.

“그, 그럼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땡 땡 땡

종이 울렸다.

드디어 현무단과 청룡단의 첫 토너먼트 대전이 시작된 것이다.

투웅

시작과 동시에 빛살같이 쇄도해오는 요한.

승부를 길게 끌고 싶은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스팟

바로 민첩 스텟 225을 이용해서 움직이자 내 잔상이 쭈욱 늘어났다.

허공에 멧돼지처럼 박는 요한.

콰아앙

그건 제 잔상입니다만?

헛손질을 한 요한의 눈길이 가라앉으면서 서서히 스산해진다.

“그래도 4대 검투단에 있으니 한 수 정도는 있다는 건가? 스피드는 상당히 빠르군.”

역시나 경험이 많은 놈이라 그런지 공격이 적중하지 않았다고 흥분하는 초보적인 실수 따위는 하지 않는군.

“아마 나에게서 도망치면서 무승부를 이끌 생각인가 본데, 그딴 초보적인 술책 따위에 걸릴 것 같으냐!”

후웅

기다란 팔을 이용해서 도끼를 크게 휘두른다.

피하기 어려운 공격은 아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여서 피하자 눈앞에 들어오는 요한의 니킥.

이게 진짜였구나.

예상 못 했다.

어쩔 수 없네.

그냥 맞아야지.

콰아앙

엄청난 폭음.

신체와 신체가 부딪혔다고는 믿을 수 없는 화약 터지는 소리가 검투장을 울렸다.

“으윽!”

“내 귀!”

“귀가 안 들려.”

앞쪽에 있는 관중들이 충돌의 여파에 고막이 상했는지 레벨이 낮은 몇몇이 귀에 피를 흘리거나 기절해 있다.

이 정도의 충격이었으니 맞은 사람은 즉사했을 거로 생각하는 사람들.

그런 지금 내 상태는?

조금 어지러웠다.

코끼리코 다섯바퀴 빡세게 돈 정도?

몸이 약간 휘청하긴 했는데, 고개를 좀 흔드니까 좀 나아졌다.

그럼 요한의 상태 좀 확인해 볼까?

“으아악! 으으윽!”

이게 무슨 소리냐고?

요한이 제 무릎을 감싸는 소리다.

데굴데굴 구르며 통증을 못 참는 거구의 사내.

“넌 왜 네가 박아놓고 아파하냐?”

요한은 자기가 내 머리에 무릎을 박아넣고 뼈가 박살이 나버린 것이다.

이것이 도합 스텟 800의 위엄인가?

아마 내 힘스텟 하나만으로도 요한의 도합스텟을 능가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환골탈태까지 한 내 몸은 거의 금강불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괴물같이 단단했던 것이다.

“끄아악! 무슨 치사한 수를 쓴 거냐?”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면 다들 꼼수를 쓴 게 아니냐고 의심하곤 하지.”

콰지직

그대로 그의 발목을 밟았다.

수수깡처럼 부러지는 그의 발목.

요한의 눈이 뒤집히면서 경기를 일으킨다.

“끄아아악! 아파! 그만!”

“아직 안 끝났어. 감히 내 앞에서 내 여자들을 탐내?

쉽게 끝내줄 생각은 없다.

어차피 검투장에서는 패자를 능욕하는 게 하나의 문화라며?

잘됐네.

오랜만에 송길준 봉인 해제다.

“꺼져! 꺼지라고!”

두 다리는 불능이 되었지만, 아직 양팔이 남아서 도끼를 허우적대며 내 접근을 막는다.

“일단 성가신 도끼부터 치우자.”

콰앙

마치 축구공을 차듯이 도끼 자루를 발로 뻥 깠다.

바로 하늘 높이 날아가서 점이 되어 사라지는 도끼.

저러다 어딘가로 떨어지겠지.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이제 마지막 무장도 사라진 요한.

그의 저항을 무시하고 손가락을 하나 잡는다.

“손가락 하나부터 시작할게.”

가슴 속에서 비수를 꺼낸다.

내가 뭘 할 거냐고?

그건 보면 안다.

사각 사각

섬세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의 손가락의 가죽을 벗겨내기 시작한다.

우선은 손톱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죽을 벗기는 데 방해가 되거든.

푸칵

“끄아아악! 아아악!”

“좀만 참아라, 아직 9개나 남았어.”

들썩 들썩

차례로 손톱을 모조리 드러냈다.

내 힘이 어마어마해서 거구의 요한도 내 밑에 깔려서 꼼짝도 못 하는 상황.

그저 무력하게 내가 꺼낸 칼에 도축 당하기 시작한다.

주륵 주륵

손톱을 다 들어내고 손의 가죽을 모두 벗겨냈다.

그다음은 팔, 그리고 다리를 차례로 모두 벗겨낸다.

“저, 저게 뭐야…”

“말도 안 돼.”

검투장이 왜 이렇게 조용하지?

보통 이렇게 능욕하면 사람들이 엄청나게 환호해 주던데?

나만 차별당하는 것 같아서 좀 그러네.

사각 사각 사각

딴생각하는 사이에 어느새 복부의 가죽을 벗기고 있었다.

피는 별로 나오지 않았다.

정말로 얇게 포를 뜨듯이 가르고 있었다.

“오랜만에 작업인데 이 정도면 무난하네.”

너무 얇게 뜨면 중간에 가죽이 끊겨버리고, 그렇다고 너무 두껍게 뜨면 피가 많이 흘러서 가죽 벗겨지는 사람이 죽어버린다.

그 중간점을 아주 잘 찾아야 한다.

그리고 죽기 전 이전세계에서 수많은 사람을 작업했던 송길준은 이 분야에 프로페셔널.

털썩

드디어 모든 가죽을 해체했다.

눈앞에 있는 요한은 피부가 완벽히 벗겨져서 시뻘건 근육을 드러내며 쌕쌕대고 있다.

“악…악마…당신은 악마야…”

역시나 내 해체실력이 완벽한 탓인지, 요한은 온몸의 가죽이 다 벗겨졌는데도 멀쩡히 말을 한다.

내심 뿌듯해지는군.

그런 요한의 앞에서 내가 그의 가죽을 뒤집어썼다.

환골탈태해서 나름 키가 컸는데도 XL 크기의 옷을 입은 느낌인데?

나중에 재단 한 번 제대로 해야겠어.

“심판 판결 안 내려? 아니면 아직도 승부가 정해지지 않은 것 같나?”

요한의 가죽을 모조리 벗겨서 쓴 나와 보기에도 징그러운 모습으로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요한.

아마 모든 피부가 벗겨졌으니 누가 건들면 발작을 할 정도의 통증이 올 거다.

천천히 이 경기장에 누워서 최후를 맞이하겠지.

“…승, 승자 데이몬! 현무단의 승리입니다!”

침묵의 경기장.

다들 이 장면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이상한 사람들이네.

그동안 사람들 팔다리 다 자르는 건 열광했으면서 가죽 벗기는 건 왜 싫어하는 거지?

이게 더 고급 기술인데 말이야.

짝짝 짝짝

그때, 어디선가 들리는 박수 소리.

관중 한 명이 일어나서 기립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그러자 한 명 두 명 따라 일어나서 치는 기립 박수.

짝 짝 짝 짝 짝

아무런 환호도 없이 박수만이 계속된다.

이게 하나의 예술이라는 걸 깨달은 거구나.

번쩍

손을 한 번 들고 퇴장해 주었다.

아마 이 경기를 기점으로 검투 경기의 개념이 변할지도 모르겠다.

위풍당당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자, 나를 기다린 여인들이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날 기다리고 있다.

“너희는 별로 안 놀라는 거 같다.”

“주인님이시잖아요. 이런 모습 많이 봐서요.”

큭큭큭.

그래도 내 여자들은 제법 경험치가 많이 쌓였네.

“주인님 저희는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승리하셨으니 전리품을 취해주세요.”

대결 승리 기념으로 알아서 보지를 벌려주겠다는 내 기특한 암컷들.

그럼 사양하지 않으마.

* * *



사상 최악의 주인공〈 125화 〉 예술가 데이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