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 설마 들켰나?
* * *
“올리비아 옷 입어.”
“힝, 한 번 더 하면 안 돼요? 주인님 자지 제 민둥보지에 넣고 싶어요.”
평균적인 여성과는 조금 다른 털 거의 없는 민둥보지까지 어필하며 나에게 삽입을 구걸했지만 내가 거절했다.
“이제 일할 시간이야. 움직여.”
대 성녀용 신성력 제한 마법진을 그릴 시간이라는 거다.
“검투장으로 이동한다.”
“히잉, 알았어요.”
올리비아가 내가 진심인 걸 깨닫고 더는 섹스를 구걸하지 않고 옷을 입었다.
슈우욱
인비져빌리티(투명화)마법을 사용한 올리비아는 날아서 이동했고, 민첩스텟이 극에 달한 나는 최대한 몸을 숨기면서 걸음을 옮기자, 검투장 1층에 도착하는 동안 나의 존재감을 느낀 사람은 없었다.
결국 도착한 콜로세움 1층.
보통이라면 여기서 지하로 내려가서 현무단 숙소로 내려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1층에 볼 일이 있다.
“하아암~”
하품을 연신 하며 지키는 문지기들.
나름 유명한 검투장의 경비원들이다.
이들의 임무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혹시라도 콜로세움 지하로 들어오는 어중이떠중이들을 막는 역할.
두 번째는 탈출하는 검투노예들을 발견한다면 검투사 범죄 대응팀에 연락하는 역할이다.
죽기 전 지구로 치자면 일반 경찰이라고 보고, 검투사 범죄 대응팀은 S.W.A.T 팀 정도로 보면 되겠다.
그래도 모나스 검투장을 지키는 놈들이라서 기본 레벨 20은 된다.
도합스텟은 대충 100 정도.
저 정도만 되어도 베르너 백작가에서는 거의 기사생도 수준이었는데 말이야.
새삼 얼마나 윌렛왕국이 시골이었는지 깨닫는다.
“하암~요새 근무 너무 심심하네.”
“퇴근하고 노예시장 옆에 있는 로즈 갈까? 거기 새로운 년들 들어왔다던데?”
“처녀도 있대?”
“몰라. 맨날 처녀들은 있다고 하는데 막상 쑤셔보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라.”
“빌어먹을 노예상인 놈들! 사기도 작작 쳐야지. 손님들은 처녀값까지 내고 쑤시러 간 건데, 이미 다 돌려먹은 년들을 처녀라고 속이는 건 어디서 배운 장사법인지! 쯧쯧!”
아무래도 경비병들이 근무에 지루해져서 자기들끼리 수다를 떠는 상황.
저 대화만 들어봐도 모나스 시티의 노예들의 인권이 바닥이라는 걸 알겠군.
루나만 탈출해서 나가면 되는 나에게는 크게 상관없는 이야기다.
“얼굴 좀 동안이고 나이 좀 어리면 무조건 처녀라고 속여 파는 그놈들이 제일 문제야!”
“손님들을 호구로 아는 거지. 이제 로즈 말고도 다른데도 사창가 생긴다던데? 거기 성노예 계집들 어떤지 좀 확인해보고 괜찮으면 가게를 바꾸든지 해야지 원.”
투덜대는 경비원들의 목소리 사이로 낯선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좋은 가게 있으면 나도 좀 알려줄래?”
이 시간에 갑자기 근무지를 이탈한 경계 근무병이 있다고?
경비병들은 의아한 얼굴로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본다.
“알려줄 수야 있는데…넌 누구지?”
“나? 노예검투사.”
“…!!”
원래 검투 노예는 아예 탈출이 불가능하지만, 평민이나 귀족 출신의 검투사는 외출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콜로세움 책임자의 허락하에 대낮에 이동이 가능한 거지, 지금 같은 밤에 돌아다니는 건 엄연한 규칙위반.
그리고 그 규칙위반자가 버젓이 검투장 바깥에 나와서 경비병의 대화에 끼어든 상황이다.
“빨, 빨리 검투사 대응팀을 호출…”
“이미 늦었어.”
퍽 퍼퍽
상황을 파악한 자들이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눈에 보이지도 않을 빠르기로 뒷목을 쳐서 기절시켰다.
“생각보다 침입이 쉽네?”
“주인님이 워낙에 괴물 같은 스텟을 가져서 그렇죠.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다른 곳도 더 들러야 해요.”
올리비아의 말이 맞다.
콜로세움은 제법 넓어서 구역마다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뒤적 뒤적
올리비아가 품속에서 괴상한 녹색 액체에 꺼내더니만 경비원의 입에 흘려 넣었다.
끈적거리며 입에 들어가는 녹색 액체에 본능적인 역함이 느껴졌다.
“그게 뭐야?”
“오블레앙의 씨앗즙입니다. 1시간 정도의 기억을 사라지게 만들어주죠.”
그러면 우리가 이들을 기절시켰다는 사실도 경비원들은 기억을 못하겠군.
치밀하고 꼼꼼한 준비성이네.
새삼스럽게 올리비아의 가치가 느껴지면서,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애정어린 시선을 보냈나 보다.
“…뭘 그렇게 쳐다보세요? 여기서 섹스했다간 큰일 나요.”
“넌 왜 기승전 얘기가 다 그리로 가냐? 섹스하려고 본 거 아니었어.”
“눈빛이 이상하니깐 그렇죠. 주인님 때문에 제 보지가 또 젖었잖아요.”
앙탈을 부리며 칭얼대는 올리비아.
이제는 마녀인지 타락한 암컷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나도 헷갈릴 지경이다.
퍽 퍽 퍼퍽 퍽
섹스하는 소리 아니다.
나와 올리비아가 돌아가면서 경비원을 제압하는 소리다.
콜로세움 1층의 모든 경비원 제압은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제압은 10분 정도 걸렸고, 나머지 20분은 오블레앙 즙을 먹이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기절한 놈들을 치우는 시간이었다.
“휴, 이것으로 끝났군.”
땀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이마의 땀을 훔치는 척을 하면서 일처리를 끝냈다.
“다음 시간대 경비대가 올 때까지는 2시간 정도 남았어. 가능하겠어?”
“물론이에요, 주인님. 저 마녀회주 올리비아라고요.”
자신감 넘치는 그녀의 말을 들으니 한결 안심이 된다.
바로 결투장에 선 우리 둘.
야밤에 텅텅 빈 관중석들과 허허벌판인 결투장을 보니 굉장히 을씨년스럽다.
“혹시 귀신 나오는 건 아니겠지?”
“…귀신이 뭐죠?”
판타지아 대륙 사람이라서 귀신이라는 개념이 없구나.
“죽어서 혼이 된 인간.”
“…그런 것도 있나요? 그런 영혼은 천사든지 악마가 바로 잡아갈 텐데.”
역시나 아예 이해를 못 하는 모습이다.
나도 정말로 무서워서 귀신을 언급한 건 아니었으니 그냥 넘어간다.
“아무튼, 타일을 벗겨내야 해요. 그래야 아래에 마법진을 그릴 수 있습니다.”
“그건 나에게 맡겨둬.”
힘스텟 380 남겨서 어디다 써?
바로 이런 데다가 쓰는 거다.
우드득 우드드득
돌바닥이었지만 마치 예전 문방구에서 샀던 스티커처럼 예쁘게 뜯어지는 결투장 타일들.
얼마나 깔끔하게 뜯었는지 끄트머리가 부서져서 돌가루가 흘러내린다든지 타일이 부서진다든지 하는 불상사는 없었다.
정확히 네모난 모양 그대로 뜯어버린 나.
“…가끔은 주인님이 얼마나 괴물 같은지 잊을 때가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잘 알아둬. 물론 나랑 섹스할 때는 늘 깨닫겠지만 말이야.”
“진짜로 자꾸 섹스섹스하지 말아요. 나 보지 젖는단 말이야.”
투덜거리면서 올리비아가 가져온 배낭을 풀고 주섬주섬 여러 가지 도구를 꺼내 놓는다.
“그게 마법진을 그리기 위한 도구야?”
워낙 여러 가지 도구가 잡다하게 있었는데, 솔직히 동물의 피로 보이는 새빨간 액체 말고는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어서 그냥 한 번 훑어보고 말았다.
“그러면 마법진을 그리겠습니다.”
“마법진의 효과는 정확히 어떻게 되는 거야?”
“대 성녀용 신성제한 마법진은 발동 시에 신성력을 30% 이상 줄여줍니다.”
상당히 괜찮은 효과다.
신성력만을 이용해 싸우는 성녀에게는 거의 약점 공략이나 마찬가지.
“지속 시간은?”
“잠시만요. 이거 집중해야 해서 나중에 대답해 드릴게요.”
…내 말을 씹네?
바로 자지로 참교육 좀 해줄까?
순간 충동이 일어났다가 참았다.
나름 나를 위해서 애써주고 있는데 지금 건드릴 이유는 없겠지.
그리고 내 자지를 참교육이 아니라 포상으로 여길 것 같다.
슥 슥 슥
동물의 피로 바닥에 복잡한 룬 문자를 그리는 올리비아.
아마 1시간 동안 초집중하여 땅바닥만 쳐다보면서 거대한 원형의 마법진을 그리는 그녀의 얼굴선이 괜스레 섹시해보인다.
“후! 이제 기초 도안은 대충 끝났습니다. 나머지는 모양만 내면 돼요.”
“예전 마녀 전쟁 때는 이런 마법진을 매일 그렸었던 거야?”
“그래서 마녀 전쟁 초기에는 꽤 많은 성녀와 용사를 잡았었어요. 재미 좀 많이 봤죠.”
그녀가 씩 웃으며 나에게 미소를 보였다.
“이다음 작업은 정말 오래 안 걸려요.”
“지속 시간을 말해줘야지. 이거 그리기만 하고 효능을 말 안 해주면 되겠냐?”
“맞다! 아마 성녀의 신성력의 따라 다르긴 한데, 평균점을 내면 대충 10분 정도 효과가 지속된다고 보면 돼요.”
10분.
짧다면 짧은 시간이겠지만 전투를 해 본 사람은 안다.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지는 전장에선 10분이면 모든 결과가 나올 시간이다.
좋아.
그 10분 만에 성녀를 완전히 전투불능으로 만들어주마.
웅 우웅 웅
마법진의 완성이 임박했나 보다.
룬 문자가 올바른 배열과 조합을 거치자 문자가 함유한 마력이 맞물리면서 스스로 진동하기 시작한 거다.
“끝났어요, 주인님! 이제 타일로 마법진을 가려주세요.”
이제 내가 나설 차례.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아까 드러냈던 타일을 모조리 바닥으로 원위치시켰다.
쿠웅
“이렇게 하면 되려나?”
감쪽같이 결투장 바닥 아래에 마법진이 스톤타일로 가려졌다.
아마 마법진이 있다는 걸 미리 알고 있는게 아닌 이상, 감춰진 마법진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올리비아, 수고했다.”
찰싹
그녀의 포동포동하고 귀여운 엉덩이를 찰싹 쳐줬다.
그러자 내 옆구리에 착 파고드는 올리비아.
“주인님, 특별히 마법진까지 그려드렸으니깐 내일은 꼭 이기셔야 해요?”
“왜, 걱정되냐?”
“아무래도 성녀잖아요. 저랑 제일 친한 마녀도 별명이 성녀학살자였는데 결국 잡혀서 화형당했었거든요.”
역시나 평탄한 삶을 살아오진 않았구나.
삶의 굴곡이 느껴지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 나는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는다. 애초에 질 싸움은 하지도 않아.”
내가 이길만한 근거는 충분해.
애초에 도합스텟 800인 사람은 판타지아 대륙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고, 용사와 성녀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절대 도합스텟 800은 안 될 거다.
“정 안되면 너에게 썼던 그 후보자용 스킬을 쓰면 된다.”
루나를 구하기 위해서 왔다가 괜히 봉변이라도 당하면 소 읽고 외양간도 불타는 격.
만약에라도 위험 상황이 발생한다면 정체의 발각을 감수하고 진실의 방서부터 시작해서 모든 악마의 기술을 아낌없이 사용할 생각이다.
“…물론 그게 사기긴 하죠. 여차하면 그냥 쓰세요.”
직접 분신술과 진실의 방을 겪었던 올리비아는 그 악랄한 기술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럼 돌아가자. 내일 걱정은 하지도 말고.”
“알겠어요, 주인님.”
다정하게 손을 잡고 콜로세움을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거기 누구냐! 멈춰라!”
우리의 등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