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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2화 〉 성녀의 눈앞에 나타난 초거대육봉



〈 132화 〉 성녀의 눈앞에 나타난 초거대육봉

* * *

“그래서 불만이야?”

내가 청일점 하는데 뭘 보태준 것도 아니면서 이 여자가 말이 많네.

“당신과 요한의 결투를 보았습니다. 정말 차마 말도 못할 정도로 잔인하게 요한을 죽이더군요.”

“나 그 사람 안 죽였어.”

엄밀히 말하면 죽이진 않았다.

살가죽을 정밀하고 미세하게 모두 벗겨놓았을 뿐.

정말 솜씨가 좋게 잘라내서 피도 별로 안 났고 요한도 죽지 않았을 거다.

물론 몇 시간 후엔 죽었겠지.

살가죽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어쨌든 내가 결투장 위에서 죽인 건 아니잖아?

“당신의 윤리관은 어딘가 뒤틀려 있음이 틀림없어요. 72대천사께서 당신은 검투장의 우승자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시는군요. 지금이라도 기권하고 내려가신다면 목숨은 건지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말만 점잖게 했지, 서렌치고 퇴장하라는 거 아니야?

이놈들은 걸핏하면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신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 같아.

천신의 눈물은 가지고 싶고, 데이몬이라는 아직 바닥이 드러나지 않은 미지의 상대는 거슬리니깐, 신의 이름을 빌려서 치우겠다는 말을 참 고상하게도 돌려 말하신다.

“한유림.”

“지금 제 이름을 부른 건가요?”

“그래. 너 나 기억 안 나?”

우리 지구에서 그렇고 그런 사이였잖아?

아직도 내 자지를 블랙홀 같은 보지로 조여대면서 침대에서 헐떡대던 게 엊그제 같다야.

“우리가 전에 만난 적이 있었나요?”

“응, 전에 봤잖아. 침대 위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눴던 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니 섭섭하네.”

싸아아

오우.

내가 뭐 말실수한 거 있었나?

성녀의 얼굴이 이 이상 안 좋아질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하게 굳었다.

“아무리 검투상대라지만 성녀를 모독하다니. 원래라면 바로 홀리엔 법국으로 압송 후 재판을 받아야겠지만, 여기가 검투장인 상황을 고려, 즉석에서 심판하겠습니다.”

성녀란 참 이상한 족속이야.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이렇게 화를 내다니.

그럼 나도 슬슬 움직여볼까?

“마음대로 해. 어차피 우리 둘 중에 한 명은 여기서 못 내려갈 테니까 말이야.”

“그건 바로 당신일 겁니다. 제가 다치기라도 했다가는 홀리엔 법국에서 가만있지 않을 거거든요.”

어우, 유치해.

그러니까 자기는 뒤에 빽있으니 알아서 잘 처신하라 이거잖아?

“그럼 경기~시작하겠습니다!!”

검투사들 간의 대화가 어느 정도 일단락이 되었다고 여긴 진행자가 쩌렁쩌렁 목소리를 키우며 경기의 시작을 알렸다.

“72대천사 중 일 좌에 앉으신 라파엘이여! 여기 미천한 종이 당신의 편린을 바라나이다!”

하늘을 보며 소리를 지르는 성녀.

그와 함께 하늘이 갈라지기 시작한다.

쩌적 쩌저적

예전에도 한 번 봤던 장면.

강신이나 강림은 언제 봐도 새로운 것 같다.

파앗

갈라진 하늘에서 내려꽂히는 빛이 성녀를 감싸자, 그녀가 하늘로 날아오르며 광휘에 휩싸인다.

성녀 한유림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번쩍이는 빛이 은하수를 이루고, 등 뒤에는 순백의 날개가 넓게 펼쳐져서 상대를 압도하는 것만 같다.

일단 시각적인 효과는 저렇다는 말이다.

중요한 건 저 강신이란 스킬의 효과겠지.

초반은 일단 돌면서 탐색전을 해보도록 할까?

“시작부터 깔끔하게 끝내드리지요! 내려쳐라! 스카이소드!!”

성녀가 영창을 하자 하늘에서 빛으로 이루어진 무형의 검이 수십 자루가 생겼다.

각각이 품고 있는 에너지가 심상치 않은 수준.

이거 생각보다 만만치 않겠는데?

“징벌의 비가 당신을 단죄할 것입니다! 대천사의 품에서 영혼의 정화를 이루시지요!”

쐐애액

하늘에서 검우(?雨)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나하나가 숫제 미사일에 버금가는 위력.

어찌 보면 올리비아가 아룬마을 전투에서 급하게 캐스팅했던 다크레인과 비슷한 종류의 마법이다.

물론 그때는 내 괴랄한 지력 스텟을 믿고 생으로 맞았지만, 이번에 저 광휘의 검들을 생으로 맞았다가는 골로 가겠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타압!”

쾅 콰광 쾅 쾅

빛의 검이 떨어지는 곳에는 폭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이 들리며 바닥이 깊게 패였다.

보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

나는 그런 검의 비를 요리조리 보법을 밟으며 피했다.

솔직히 팔괘의 보법을 밟고 싶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읽었던 수많은 웹소설의 설정이었지, 실제로는 복싱 스텝밖에 모르는 게 나다.

“으아아아!”

팡 파팡 팡

복싱 자세를 잡고 주먹을 내지르면서 쏟아지는 빛의 검들을 하나하나 주먹으로 맞춰서 떨궜다.

처음에는 피하려고 했지만, 수가 너무 많았고, 넓은 면적에서 떨어져서 주먹이 아파도 어떻게든 부서내야 할 것 같았다.

스스스

내 주먹에서 뿜어지는 오러로 간신히 빛의 검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진짜 나 환골탈태하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냐?

빛의 검 하나하나가 오러로 이루어진 검이어서 소드마스터급이 아니면 애초에 방어조차 불가능한 공격이었다.

괜히 용사와 성녀가 추앙받는 게 아니었군.

정말로 강한 힘을 갖고 있기에 그에 맞는 대접을 받는 거였어.

“제법이군요. 제 스카이소드를 버텨낸 사람은 법국 내에서도 몇 없는데 말이죠.”

여전히 밝은 빛에 휩싸이며 나를 노려보고 있는 한유림이 손을 들자, 이번에는 검이 아니라 기다란 창이 여럿이 소환되었다.

“라이트 스피어입니다. 검보다 훨씬 폭발력이 강하고 관통력이 높죠. 이것도 버텨낼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제기랄.

아무래도 강신 상태에서는 성녀의 MP가 어마어마한 양인가 보다.

“가랏!”

슉 슈슈슉

콰아앙

“어흐흑!”

이건…막아낼 게 아니다.

힘스텟 380의 괴랄한 나인데도 쳐내는데 부담감을 느꼈다.

일단은 피하고 정말 치명상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만 쳐내기로 한다.

팟 파팟

콰앙

피하고 막고 피하고 막고.

지루한 방어전이 계속된다.

한유림 쪽으로는 거의 접근도 못 하고 계속해서 날아오는 창을 피하기 바쁘다.

콰앙

또 하나의 날아오는 창을 주먹으로 걷어냈다.

어우 얼얼해.

창이 빛으로 되었으면 물리적인 형체가 없다는 건데 뭐가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네.

“…괴물새끼. 어떻게 창을 손으로 쳐내는 거지?”

성녀의 외침이 내 귓가에 들린다.

하긴, 너도 이런 놈은 처음일 거야.

애초에 스텟이 엄청나지 않고서야 강신 걸린 상태에서 소환한 창을 쳐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거든.

“진짜 후보자 스킬 마렵네.”

솔직히 지금 후보자 스킬 쓸 수 있었잖아?

바로 분신으로 몸빵해서 빛의 창 걷어내고 근접해서 진실의 방 걸어버렸다.

그렇게 옥타곤 링 안에만 들어가면 한유림 스텟 절반 뺏어오고 게임 오버다.

하지만 지금 수만 관중이 지켜보는 검투장에서 대놓고 악마 후보자 스킬을 쓸 수는 없는 노릇.

힘겹게 빛의 창을 쳐내면서 기회를 엿보려고는 하는데…

“아오 씨발! 창 좀 작작 날려!”

“당신이야말로 그만 좀 버티고 얌전히 단죄를 받아들이시죠!”

성녀도 대충 내 스텟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높다는 걸 알아차린 것 같다.

그리고 내 주력 무기가 권투라는 걸 안 이상, 절대 근접거리를 내주려 하지 않겠지.

지금도 보면 강력한 한 방의 성광마법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투사체 위주의 잔잔바리 공격을 한다.

이대로 지구전으로 내 정신력과 체력을 갉아먹은 후에 치명타를 날리겠다는 전략.

정말 재미없게 싸우는 년이네.

그럼 이쯤 돼서 슬슬 준비해놓은 필살기를 준비해야겠다.

퍼엉

맹렬하게 날아오는 빛의 창을 오러가 감긴 손날로 쳐낸 나는 관중석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위치한 곳에는 내가 언제쯤 신호를 보내올지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올리비아가 있었다.

녹색 눈동자와 내 흑안이 맞부딪치는 순간, 그녀가 주저하지 않고 입술을 달싹이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옴 마니 반메 홈~”

뭐 대충 이런 주문을 말했겠지.

나는 멀리 있어서 올리비아가 정확히 어떻게 영창을 하는지 알 수 없으니깐 말이야.

사실 날아오는 분당 십수 개의 창을 신경 쓰는 걸로도 충분히 바쁘다.

스스스스

드디어 결투장 타일 사이로 미세한 검은 빛이 번쩍였다 사라졌다.

너무 미미한 빛이라, 성녀 한유림이 연신 쏘아내는 화려한 빛의 창을 침 흘리며 구경하고 있던 관중들은 당연히 알아차리지 못했다.

마침내 대 성녀 신성력 제한 마법진 발동!

스팟

공중에 떠서 강신상태로 신성력을 뿜어내고 있던 한유림이 돌연 공중에서 휘청인다.

“어, 어라? 왜, 왜 이러지? 강신 상태가 불안정한데?”

큭큭큭.

공중에 뜨는 것조차 버거워하며 비틀대다가 이내 바닥에 착지한 한유림.

그런 그녀의 눈빛에는 혼란이 가득하다.

설마 하루 전날에 결투장 밑바닥에 대형 마법진을 설치했으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하겠지?

“왜? 네 뒤를 봐주던 파파맘마가 갑자기 용돈 안 주겠대?”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성녀가 본능적으로 내가 무슨 수를 썼음을 눈치챘나 보다.

“무슨 더러운 짓을 한 거죠? 당장 검투대회를 멈추고…”

“멈추긴 뭘 멈춰. 이제 쇼타임이다!”

스팟

민첩스텟 200을 극대화해서 그녀에게 달려나가자, 잔상이 주욱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이형환위가 펼쳐졌다.

“읏!”

한유림은 강신하기 전에도 꽤나 스텟이 높은지 얼추 반응은 했지만, 결국 내 눈에 느려 보이는 건 매한가지.

바로 그녀의 옆을 제대로 잡았다.

그럼 시작은 배빵 갈게요.

퍼억

“꾸엑!”

귀여운 비명소리 좋고요.

아주 천상의 플룻소리와 같군.

아니면 지옥의 뿔나팔소리라고 해야 하나?

내가 악마계열 쪽 후보자니 뭐라고 말해야 할지를 모르겠군.

팡 팡 팡

다시 한 번 그녀의 보드라운 복부를 정확하게 세 번 따다당 쳤다.

그러자 바로 뱃속에 든 걸 게워내는 한유림.

“우웩, 우우웩!”

“그러게 누가 그렇게 나대래? 응?”

“아아악!”

바로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올린다.

주변의 반응을 돌아보니 검투장은 적막에 잠겨있다.

원래라면 여자 검투사를 능욕할 생각에 환호성을 질러야 하는 사람들이, 그 대상이 성녀이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모르는 거다.

그러면 너희가 좋아하는 장면을 대령할게.

그걸 보고도 환호하지 않는지 보자.

찌이이익

“안 돼! 성복을 벗기다니! 대체 무슨 짓이죠?”

“시끄럽네. 일단 한 대 맞자.”

철썩

바로 성녀의 뺨을 강하게 한 대 갈기자, 그 고운 입술이 찢어지면서 새하얗고 갸름한 턱을 타고 한줄기 혈선이 그어졌다.

평생 누구한테 이렇게 맞아봤겠는가?

한유림이 눈물을 줄줄 흘리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흑! 아파…”

“아직 아픈 건 시작도 않았는걸? 좀 더 맞아라.”

퍽 퍽 퍽

일방적인 구타였다.

그냥 무지막지하게 팼다.

여자를 저렇게 때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쓰레기처럼 성녀를 마구 때렸다.

“아아악! 그만! 그만요! 제가 졌어요! 그만 때려주세요!”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쓰러진 채로 애처롭게 두 손을 휘저으며 자비를 바랐지만, 내 주먹에는 자비가 없었다.

항복 싸인 따위는 무시하고 다시 개패듯이 팼다.

퍽 퍽

“아아악! 잠깐만요! 아파요! 그만 때려주세요! 흐흐흑!”

흐느끼는 한유림.

이미 승부는 났다.

난 마법 결계진이 발동되는 그 10분 동안 무지막지하게 그녀를 때려서 아예 전의를 상실시킨 거다.

“흐흐흑…”

그녀의 몸에서 잡히는 것은 다 잡고 때리는 바람에 순결을 상징하는 하얀 성복은 보지 부분만 가린 채로 죄다 찢어져 버렸다.

거의 거적때기나 마찬가지인 옷으로 간신히 가슴팍을 가리며 중요부위만 수호하지만, 그것조차 위태로운 상황.

이미 온몸이 멍투성이였고, 한 줌의 신성력조차 끌어올릴 생각도 못 하는 패닉 상태인 게 내 눈에 훤히 보였다.

꼴깍

적막에 휩싸인 검투장에는 관중들의 침 넘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하다.

세상 어디에서 성스러운 여신의 분신 그 자체인 성녀의 속살을 본단 말인가?

물론 중요부위는 대충 다 가려진 상태이긴 했지만, 평상시에 온몸을 꽁꽁 싸맨 성녀의 복장을 생각해보면, 지금 상태도 충분히 헐벗은 거나 마찬가지다.

“그럼 슬슬 하이라이트 시간인가?”

성녀의 하이얀 나신을 보자 이미 주체할 수 없는 내 똘똘이.

난 주저하지 않고 바지를 내렸다.

훌렁

30cm 초거대육봉이 수만 관중과 성녀 앞에서 첫선을 보이는 날이었다.

* * *



사상 최악의 주인공〈 132화 〉 성녀의 눈앞에 나타난 초거대육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