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 한 번 움직여보자구
* * *
에밀리.
그녀가 왜 여기에 있을까?
방문 밖에서 나와 마누라들 간의 뜨거운 섹스 토크를 엿들으라는 명령을 내리진 않았는데.
정말 들은 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크흠흠, 여긴 어쩐 일이지?”
당황한 티를 최대한 억누른 채로 최대한 근엄하게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15살의 풋풋한 느낌이 살아있는 어린 소녀는 팔짱을 낀 채로 상당히 불만스러운 표정.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말만 하렴.
아조씨가 혼내줄게.
물론 여기서는 영주님이지만.
“또 언니들이랑 이모들이랑 그 우, 운동을 한 건가요?”
요새 왜 자꾸 운동 언급을 하는지 모르겠네.
이럴 거면 예전에 날 죽이겠다고 이 박박 갈던 때가 좋았을지도.
부끄러워서 귀뿌리까지 새빨개진 그녀의 신체변화는 일부러 무시하고 대답해주었다.
“네가 알 필요 없는 일이다. 여긴 어쩐 일이냐고 물었어. 아무리 그래도 내가 영주인데 두 번이나 물어보게 할 참이냐?”
내 말에 정신을 차렸나 보다.
에밀리가 속 안을 뒤적거리더니만 고급스러운 문양이 그려진 함 하나를 꺼냈다.
달칵
함을 열자 자색의 고운 비단보로 포장된 작은 유리병.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광채로 미루어보아서 보통 물건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건 뭐지?”
“이번 검투대회 우승 상품이요. 아무도 수령하러 가는 사람이 없어서 제가 대신 받았어요.”
아, 맞다.
그게 있었구나.
원래라면 운영단 조에 속하는 클레어나 소피아가 가져왔어야 하는 건데.
둘 다 온종일 침대 위에서 보지 토닥토닥 받았으니 시간이 있었을 리가 없다.
“천신의 눈물이라는 건가?”
“네, 우승 상금도 있었는데 그건 매튜 아저씨가 가지러 갔어요.”
설마 우승 상금을 빼돌리는 등의 어처구니 없는 짓은 안 하겠지.
어차피 그놈의 전 재산을 다 빼돌린 마당에 우승상금 1만 골드 따위 버릴 수도 있는 돈이지만.
그래도 괜히 뒤통수 맞으면 기분 나쁜 건 사실이다.
“수고했다. 바쁜 와중에 네가 큰일을 해주었구나.”
스윽 스윽
그녀의 부들부들한 밤색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혹여나 내 칭찬의 제스처를 거부하면 어쩌나 했는데 기우.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걸 얌전히 기다려준다.
“그럼 저는 가볼게요.”
“조금 있다가 어차피 다 모일 거니깐 어디 멀리 가진 말아라. 오늘이 그날이다.”
“네, 알고 있어요.”
뭐, 막내니깐 알아서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리라고 본다.
그리고 내가 궁금한 건 지금 그게 아니다.
“잠깐.”
“또 말씀하실 게 있나요?”
“혹시…들었나?”
들었냐고.
나랑 내 여자들 떡 치는 소리 말이야.
돌직구에 꽤 당황했던 탓일까.
목덜미부터 이마까지 순차적으로 빨개지는 게 눈에 보인다.
신체 변화가 참 솔직한 타입.
에밀리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 무슨 소리요?”
“그 소리.”
돌려서 말한다.
짝짓기하는 소리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에밀리도 아이큐 한 자리가 아닌 이상은 알아들었을 거다.
그 정도 이해 못 할 나이도 아니고.
“못, 못 들었어요.”
“정말이야? 문 바로 앞에 있던데?”
“…진짜로 못 들었다니깐요! 왜 사람 말을 못 믿으세요! 실망이네요, 영주님.”
못 들었으면 못 들은 거지.
왜 화를 내는지.
쌩하고 사라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정말로 못 들었을 확률을 속으로 계산해본다.
“서방님은 참 짖궂으셔요.”
“맞아요, 저 나이 때 애들이 얼마나 섬세한데요.”
“아직 어린 나이잖아. 괜히 청소년 정서에 안 좋은 영향 끼치면 안 되니까 확인 차 물어본 거야.”
내 옆에 있는 여인들이 에밀리를 감싸주려고 한마디씩 하는 걸 대충 얼버무렸다.
각설하고.
에밀리가 건네준 천신의 눈물을 품에 챙겼다.
나중에 어떤 상황에서든 쓸 일이 있으리라고 본다.
“이제 곧 밤이 오니깐 다들 나가기 전에 마지막 준비들 해라.”
“네, 주인님.”
일제히 대답한 여인들이 알아서 흩어졌다.
그때, 자지에 느껴지는 여인의 부드러운 손길.
스윽
갈 때 그냥 가면 되는데.
꼭 가면서 내 육봉을 슬쩍 건드리고 가요.
범인은 바로 첫째 부인 메이.
어이가 없어서 보니깐 히죽 웃는다.
“그냥 만져보고 싶었어요.”
종일 보지 뚫리고도 또 자지에 헐떡이고 싶었던 건가.
정말 여자들이 성욕 터지면 남자들보다 더하다는 건 괜한 말이 아니다.
그건 그렇고.
여자들을 일부러 보낸 이유는 따로 확인할 것이 있어서였다.
이제 혼자가 되었으니 개인 시간을 가져볼 차례다.
“새롬? 듣고 있어?”
오랜만에 불러보는 그 이름.
또 드라마 보느라 답장 안 하는 거 아냐?
화르르륵
눈앞에서 불타오르는 글씨를 보니 다행히 오늘은 날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무슨 일입니까?]
“뭐 하고 있었어?”
[당신 지켜보고 있었는데요?]
나 오늘 종일 떡 친 거 밖에 한 일 없는데.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새롬에게 확인 차 다시 물어본다.
“그러면 오늘 나랑 여자들 섹스한 것도 다 봤다는 거야?”
[네, 7명이랑 아주 재밌게 노시던데요? 그래서 언제 마계로 올라오시겠습니까?]
마계로 올라간다라.
간만에 정신이 번쩍 드네.
생각해보면 내 진정한 목표는 판타지아 대륙 최후의 악인이 되는 거였다.
그 후에 승급하든지, 승단하든지 해서 마계로 올라가는 것.
요새 여러 일이 많아서 본 목표를 살짝 잊고 지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당신의 여인들이 놀랄 정도로 강해졌다는 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몇몇 여인들은 당신이 판타지아 대륙에서 생존하는 데 유용한 팻감이 되겠더군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빙빙 돌리지 말고 본론을 말해.”
[레벨업 관련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레벨업이라.
내 레벨은 늘 1이었는데 이제 와서 무슨 새삼스러운 일이 있다고 확인하라는 걸까?
의아한 표정을 확인했는지 다시 화르륵 불타는 글씨가 올라온다.
[쯧쯧, 전혀 이상함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점에서 지금 데이몬 님이 문제라는 겁니다.]
어쭈, 너 지금 혀 찼냐?
물론 요새 내가 목적 없이 단순히 즐기는 섹스를 좀 많이 하긴 했어.
그렇다고 이렇게 갈구는 거야?
내로남불 쩌네.
너는 드라마 봐도 되고, 난 여자랑 떡 좀 치면 안 돼?
“…생각하기 귀찮으니깐 그냥 말해.”
[에휴, 이런 놈을 보고 내가 뭘 믿으려고 한 건지.]
“이런 놈한테 한 가지 가르침 좀 내려주시죠, 새롬님.”
마지막 인내심을 쥐어짜며 그녀에게 말했다.
어찌 되었든 그녀는 갑이고 나는 을.
나중에 마계에서 보자.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넌 자지의자에 박힌 채로 24시간 일만 하게 될 거야.
[당신 레벨 말입니다! 아직도 레벨 1이잖아요.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레벨 1?
나 원래 힘순찐 모드하려고 레벨 1하고 있었는데.
이게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진짜 모르는 눈치군요. 그렇게 둔해서 여태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신기하네. 당신 요새 직접 죽인 사람이 몇 명이야?]
이제야 이상한 점을 파악했다.
생각해 보니 그러네?
난 요새 사람을 좀 많이 죽였다.
그것도 ‘직접’ 말이다.
판타지아 세계에서는 몬스터든 사람이든 동물이든 간에, 생명체를 해치면 일단 기본적으로 레벨이 오른다.
평민들이라도 사냥꾼이나 처형꾼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의 평균레벨이 10을 웃도는 이유가 있다.
[최근 데이몬 님은 아룬 마을에서 현무단 소속 검투사 10여 명가량을 직접 잡으셨고, 모나스에서도 우연히 마주친 취객 한 명을 죽이셨죠.]
저 말이 맞다.
레벨 1 때는 사람 하나 잡아도 폭렙하는데 난 아직 레벨이 오르지 않았을까?
“잠깐, 나 검투대회 팔라딘 요한도 잡았는데?”
[그러니깐요. 그 정도 고렙 유저를 잡으셨으면 저렙 때는 레벨 3개가 한꺼번에 올라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껍질만 벗겨놓았지.
어찌 되었든 이후에 요한이 치료를 받다 죽었기에 내가 죽인 것으로 카운팅 되었나 보다.
죽음의 주요한 원인을 제공하면 경험치를 주는 식인가?
자세히 물어보고 싶지만, 또 권한 외라고 둘러댈까 봐 묻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제 좀 대답을 해주지? 나야 레벨 1 힘순찐 노릇할 수 있어서 좋기는 하다만.”
[방해가 들어왔습니다.]
“무슨 방해?”
[마왕 벨리알이 당신의 경험치 묶기를 제안했고 최종 수락이 되어서 레벨이 오르지 않은 겁니다.]
마왕 벨리알이라면 마녀의 숲에서 직접 만난 그 마왕이다.
그 속 좁은 놈이 참지 못하고 치졸한 수를 썼나 보네.
15살 풋풋한 소녀에게 음심을 드러내려던 것도 고까웠는데 내 앞길까지 막다니.
마계에 올라가면 할 일이 꽤 많겠군.
“근데 말이야, 이런 식으로 막 후보자를 겁박해도 되는 거야? 이건 부정행위라고. 아니면 다른 후보자도 다 똑같은 제재를 받았어?”
적절한 항변이라고 본다.
또 하나 이상한 점.
나에게는 지지자 측의 마왕들도 꽤 있었던 거로 기억한다.
특히나 나에게 악마의 계약서를 보내준 마왕 A.
벨리알보다 두 끗발은 높아 보였는데 이런 건 왜 안 막아줬던 거야?
물론 일방적으로 내가 뭘 요구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말끝까지 들어주세요. 경험치 묶기는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라고 볼 수 있죠.]
귀가 솔깃하다.
역시나 후보자를 구속하는 행동을 마구잡이로 할 수는 없겠지.
그만한 보상이 있다면 이해한다.
“그래서? 그 조건이 뭐지?”
[바로 조건 띄우겠습니다.]
파팟
[경험치 묶기가 발동되었습니다.
해당 후보자는 다음의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경험치를 얻어도 레벨이 오르지 않습니다.
해당 임무 – 판타지아 대륙 성녀 3명의 순결을 취하라.
임무 완수 시 – 임무 수행 중 묶이게 되는 경험치가 X10 되어서 들어옴.]
큭큭큭.
어이가 없네.
성녀가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괴물 같은 여인들을 세 명이나 범해야 한다고?
이걸 미리 알았으면 용사는 좆까고 검투장에서 한유림 보지에 자지 박아버렸을 거다.
내가 요새 바빠서 새롬과 대화를 나는 적이 없으니 뭐라 할 말은 없다는 점이 아쉬울 뿐.
그보다는 보상이 좀 군침이 돌긴 한다.
성녀 세 명 보지 구멍 뚫어버리는 동안 얻은 경험치의 10배?
이러면 폭렙 가능할 것 같은데.
[참고로 경험치 배율은 마왕 A님이 강하게 주장하셨습니다. 후보자의 동의 없이 경험치 묶기가 진행되는 만큼, 고배율이 책정돼야 한다면서요.]
역시 절 버리지 않으셨군요.
감사합니다, 마왕 A.
이쯤되니까 마계에 올라가면 A부터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경험치 묶기.
내 추측으로는 벨리알과 마왕 A 모두 이에 동의했을 거다.
하지만 두 마왕의 생각은 달랐겠지.
벨리알은 나 물 먹이려고 했을 거고.
반대로 마왕 A는 이를 발판으로 성장하라는 건가?
하긴, 성녀 세 명한테 절절매서야 애초에 판타지아 대륙 정복도 불가능하다.
좋아.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었어.
그럼 퀘스트도 받은 마당에 제대로 한 번 움직여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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