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화 〉 당신이 날 이렇게 만들었잖아
* * *
“새롬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왜 이렇게 스텟이 하강해있지?”
[저야말로 묻고 싶군요. 72대마왕을 소환해놓고 스텟이 멀쩡하길 바란 겁니까? 그것도 상위 서열의 마왕 아유나님을요?]
“대충 절반 정도 깎일 줄 알았지. 이 정도로 심한 스텟하강은 예상 못했는데?”
내 말을 들은 새롬은 한동안 불타는 글씨를 띄우지 않았다.
속에서 나는 화를 참는 건지, 아니면 할 말을 고르는 건지.
잠시 기다리고 있자, 다시 새롬이 연락을 해왔다.
[상위서열 마왕은 별다른 힘을 쓰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 판타지아 대륙의 균형을 무너트릴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건 나도 아는 거야.”
[알면 납득하시지요. 저희 측은 아유나님이 강림하는 동시에 천계의 눈을 모조리 막고 그 지역을 봉쇄하려 했으나, 하필 또 용사와 성녀가 대상인 바람에 천계가 알아버렸습니다.]
상위서열 마왕의 강림을 알아차려 버린 천계.
그다음이 어찌 될지는 짐작이 갔다.
그쪽에서도 72대천사를 강림시키려고 했겠고, 그랬다간 정말로 전쟁이니까 서로 입씨름을 엄청나게 했겠지.
[다행히 모든 상황이 끝나고 알아차렸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정말 어떻게 되었을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군요.]
대충 들어보니까 본인이 일을 잘했다는 거 같은데.
애초에 내가 아유나에게 강림해달라고 요청한 것도 아니고, 그 여자가 자기가 오고 싶대서 온 건데 생색을 심하게 내는군.
솔직히 두 쪽이 싸우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데 말이야.
“그보다 내 스텟 회복은 언제쯤 되는지 알려줘.”
[스텟 회복은 아마 포기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원치않은 대답을 듣자 나도 모르게 눈썹 끝이 꿈틀거렸다.
“왜 이런 말을 미리 안 해줬지? 강림 시 스텟회복이 이 정도로 느리다면 사전에 말해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내 물음은 합당하다.
새롬은 전에 나에게 무언가를 걸어보겠다고 했었다.
그 말은 단순히 나를 관리해주는 매니저가 아니라 그 이상의 역할을 해주겠다는 말.
그랬다면 이런 강림스킬의 패널티에 숨겨진 독소조항 정도는 집어줬어야 한다.
아니면…내가 새롬을 너무 믿었나?
사실 악마를 믿는다는 게 웃긴 일이지만, 낯선 세계에 떨어지고 나서 유일하게 내 비밀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나도 모르게 한 발자국 더 그녀를 울타리 안쪽에 들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원래라면 회복이 그렇게 느린 스킬은 아닙니다. 보통 1~2년 정도면 완벽 회복이 되지요.]
그 정도도 매우 느리다.
역시 마족이라서 그런지 시간 개념이 완전히 어긋나있어.
앞으로 새롬에게 꼼꼼하게 물어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여태까지 받은 스킬이 워낙 사기여서 이번 스킬도 그러겠거니 하다가 피 본 느낌.
[다만 아유나님이 강림하시고 데이몬님의 스텟 하강을 최대한 막기 위해서 있는 스텟을 쥐어짜셨습니다. 그런 바람에 스텟 자체가 말소되었고요. 회복은 거의 100년 이상 걸릴 겁니다.]
아유나가 내려와서 딱히 뭔가를 많이 한 것도 아닌데 그 정도의 스텟이 날아가다니.
만약에라도 조금 더 긴박한 전투가 벌어졌으면 그녀가 제대로 휘두르는 한 방에 내 모든 스텟이 증발했겠네.
“사실상 스텟은 회복 불가능이란 말이군.”
새롬의 답은 없었다.
무언의 긍정이리라.
그러면 할 수 없지.
지금부터 대책을 생각해봐야 한다.
“일단은 보너스 스텟을 모두 힘/민첩에 골고루 찍어줘.”
[네, 이번 보너스 스텟은 검투대회에서 팔라딘 요한을 죽이면서 얻은 500 카르마와 성녀 한유림을 굴복시키면서 얻은 1000 카르마로 총 1500으로 정산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아무래도 이번 모나스 시티에서는 나보다는 내 여자들이 많이 뛰어서 그런 것 같다.
클레어와 매튜에게서도 이미 뽑아낼 만큼 뽑아냈고, 실질적으로 내가 한 일은 요한의 피부 껍질을 벗긴 것과 한유림의 보지를 개통시키는 일뿐이었지.
“잠깐? 용사는? 용사를 이겼는데 왜 카르마가 안 들어오지?”
[용사는 절망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그가 데리고 온 성기사들도 죽는 순간까지 절망감을 느끼지 않아서 카르마가 수확되지 않았습니다.]
하여간 광신도들이란.
보통 사람들은 죽음의 위기가 오면 극도의 절망감을 느낀다.
그런데 이놈들은 죽는 와중에도 신에 대한 찬양을 부르짖으면서 죽으니까 실속이 전혀 없는 놈들이다.
강가에서 낚시할 때 가끔 보이는 먹을 건 하나도 없고 비늘만 날카로운 물고기들이 이러할까?
오히려 한유림처럼 신을 믿는 성녀로서의 자긍심을 무너트릴 때 카르마가 더 많이 들어왔다.
앞으로 법국 쪽 인간들을 작업할 때는 신앙심을 무너트리는 쪽으로 더 신경을 써봐야겠군.
상태창
힘: 100 민첩: 100 지력: 10 행운: 10
보너스 스탯: 0
어찌어찌 힘/민첩 100/100은 맞췄다.
태초마을로 돌아가 버리다니.
이제부터 이 스텟으로 어찌 움직일지 막막했다.
그동안 내 여자들을 통솔하고 제멋대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게 다 무지막지한 스텟 덕분이었는데.
일단 루나부터 감당이 안 될 게 뻔하다.
물론 악마후보자 스킬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스텟 차이가 심하게 나는 데다가 기량 차이까지 나면 의미 없는 법이다.
[조심하세요. 아유나님이 직접 강림한 순간부터 마계의 일부 마왕들도 데이몬님을 곱게 보지 않고 있습니다.]
마계측도 천계의 입을 막기 위해 무언가 대가를 치렀겠지.
젠장, 지금 생각하니까 아유나가 내려온 게 나한테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그녀는 단순히 자기가 좋아하는 악마후보자를 직접 보고 싶어서 왔겠지만, 고위 공무원이나 국회의원의 사소한 행동 하나가 의미 부여가 되고 일파만파 영향력이 퍼지는 것처럼, 그 행동 자체가 논란거리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아직 먼 훗날 일이긴 하지만, 마계에서도 나름의 파벌이 있을 텐데, 이렇게 되면 난 싫으나 좋으나 아유나 라인을 타야 하는 것이다.
선택권조차 가지지 못한 채로 말이다.
강림 때 봤던 아유나는 무척이나 강하고 한 파벌을 이끌 능력은 능히 있어 보였지만, 무척이나 즉흥적이어서 그 행동을 예상하기가 어려웠다.
굳이 따지자면 자유롭고 제멋대로인 악덕영애 스타일이랄까?
아무튼, 마계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어차피 그 전에 판타지아 대륙에서 죽으면 아무런 의미 없는 고민일 테니까.
“알았어. 교신은 이만하지.”
[알겠습니다. 건투를.]
짧은 대답과 함께 허공에 맴돌던 글씨가 스르륵 사라져버렸다.
그와 함께 내 고민도 깊어졌다.
당장 굴복시켜놨다고 생각한 내 여자들.
내가 약해졌다는 소식이 들리는 순간 이빨을 드러낸다면?
머릿속에 상처 입은 사자가 무리에서 쫓겨나는 장면이 재생된다.
“저…주인님?”
상념에 잠기고 있어서 누군가가 들어왔는데도 인지를 못 했다.
아니면 내 도합스텟이 낮아져서 상대적으로 레벨이 높은 여자들의 기척을 못 잡아낸 걸 수도 있고.
고개를 돌리니 금발머리가 치렁치렁한 메이가 푸른 눈동자를 깜빡거리는 걸 볼 수 있었다.
“무슨 일이지?”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경계 태세를 갖추고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스텟 100/100이면 물론 낮은 건 아니지만, 예전과는 달리 내 여자들이 모두 힘을 합쳐서 반기를 든다면 감당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쭈뼛거리던 메이가 검지 두 개를 서로 맞부딪치며 몸을 배배 꼬더니 자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저…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안쪽에서 주인님의 대화를 엿들었어요.”
목소리가 조금 컸나?
마침 볼 일이 있어서 내 천막을 방문한 메이가 나와 새롬의 대화를 엿들었나 보다.
물론 새롬의 말은 채팅 형식으로 나만 볼 수 있는 글자로만 떠오르니 모르겠지만, 나는 육성으로 말했으니 가장 숨기고 싶은 정보들은 낱낱이 그녀의 귀에 꽂혀 들어갔겠지.
“어디까지 들었지?”
“우웅…주인님이 공개를 원치 않아 하는 정보까지 모두요.”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어떻게 할까?
지금이라도 입을 막아야 할까?
메이는 궁수니까 근접전투는 약할 거야.
순간적으로 다가가서 목을 그은 다음에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고 하자.
여태까지 내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여자지만 어쩔 수 없지.
내 목숨이 가장 소중하니까.
여차하면 여자를 버릴 수도 있는 쓰레기가 나니까.
새삼 놀라울 일도 아니다.
그렇게 종아리에 힘을 주고 박차려는 찰나, 난데없이 메이가 하녀복을 훌렁 벗었다.
“뭐지?”
이런 상황은 예상을 못했기에 그녀를 향해 달려들려던 내 행동을 잠시 멈추었다.
눈앞에 드러난 메이의 나신.
여전히 매력적이다.
꽉 찬 B컵의 풍만한 유방이 끊임없이 출렁대고, 그 밑에 잘록한 허리선, 그리고 농염한 허벅지 사이에 수줍게 닫힌 꽃잎이 들어올 남자를 애타게 찾는 듯했다.
“왜 갑자기 옷을 벗는 거지? 섹스라도 해달라는 거냐?”
완전히 나체가 된 메이는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무슨 목적인지 알 수가 없다.
보통 섹스를 원한다면 부끄러워하면서 자기 손으로 보지를 벌리곤 하는데.
평상시와는 패턴이 달라서 조금 낯설었다.
“주인님…”
이제는 완전히 지척으로 다가온 메이는 섬섬옥수를 내뻗어 내 양 손목을 잡았다.
물론 강하게 잡은 건 아니어서 마음만 먹으면 바로 뿌리칠 수 있을 정도.
실제로도 나는 여차하면 그렇게 하려고 신경줄을 팽팽히 당기면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런데 메이의 행동은 의외였다.
벌거벗은 채로 다가온 그녀는 내 두 손을 자기 목에 갖다 대게 했다.
이건 마치 내가 그녀의 목을 조르는 모양새.
그녀 스스로 내 손을 움직여서 그렇게 만든 것이다.
“뭘 하자는 거냐?”
예전에 조교할 때만 하더라도 내 손아귀를 빠져나가려는 발버둥 하나하나가 다 파악되었건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그녀의 생각을 전혀 읽을 수가 없다.
직설적으로 물어보자 메이가 방긋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아는 주인님이라면, 원치 않은 정보를 들은 여자를 살려두실 리가 없잖아요. 적어도 어떻게 죽을지만큼은 제가 정하고 싶어서요. 주인님에게 목 졸려 죽는다면…그건 제 나름대로 영광이에요.”
예전 지구에서 베트맨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솔직히 식상해서 극장을 나오려고 했을 때, 유일하게 흥미를 끄는 캐릭터가 있었다.
바로 조커. 그리고 그를 짝사랑하는 여자 할리퀸.
연인마저도 믿지 못한 조커는 할리퀸에게 죽음을 명하고, 망설임 없이 무엇이 들었는지도 모르는 약품 통에 뛰어든 할리퀸은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다.
그리고 지금 메이의 모습이 할리퀸과 겹쳐 보였다.
“나에게 죽겠다는 건가?”
“네, 절 죽여주세요. 믿지 못하시잖아요. 당신의 손에 죽는다면…기쁘게 죽겠어요.”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한 채로 날 바라보는 하녀 메이.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게 아니다.
나에 대한 복종심이 그보다 더 강한 거다.
완벽하게 조련이 끝나다 못해 나를 신처럼 모시고 숭배하는 수준.
그 눈에 깃든 진심을 확인한 후에야, 나는 살며시 그녀의 목에서 손을 풀었다.
그러자 그녀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왜 살려주시는 거죠? 죽이기 전에 제 몸이라도 사용하고 싶으신 건가요?”
어찌나 내공이 쌓였는지 한 번 풀어줬다고 희망에 젖어 희희낙락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
계속해서 얌전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
언제 어디서든지 내가 무엇을 저질러도 다 받아내겠다는 그녀의 모습은 과연 정실부인다웠다.
“내 생각과 행동을 다 파악당하니까 흥이 식었다.”
내 말을 들은 메이가 살포시 웃었다.
그리고는 다리를 벌려 그 안의 소중한 부위를 나에게 보였다.
“그럼 이쪽으로 흥을 찾으세요.”
분명히 나에게 목이 졸려 죽기 직전이었고, 생명이 갈취당하기 직전이었을 텐데.
놀랍게도 그녀의 육립은 잔뜩 젖어서 구멍 안쪽이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설마 나에게 목 졸려 죽으면서 오르가즘을 느낄 생각이었나?”
얼굴울 붉히며 대답을 하지 않는 그녀를 보며, 내 예측이 맞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또라이 같은 년.”
“당신이 날 이렇게 만들었잖아…그러니까 책임져.”
더는 주저할 이유가 없으니 잔뜩 솟은 육봉을 힘차게 돌진시켰다.
완벽하게 준비된 금발 하녀의 비밀장소가 거침없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탐험을 멈추지 않았다.
깊숙이, 더욱 깊숙이, 그 끝이 보일 때까지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