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화 〉 조금만 기다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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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슈슉
마유에게 질내사정을 함과 동시에 그녀를 심상 세계의 힘으로 삼켜버린 후, 족자 공간에서 빠져나왔다.
“힘이 증가한 느낌은 아닌데.”
삼켰다 뿐이지 그 힘을 내 것으로 만들 순 없는 건가.
내심 무협지에서 많이 등장한 흡성대법을 기대한 나는 조금 아쉬웠다.
뭐, 그래도 신력에 대해 알았으니 그것만 해도 큰 수확이지.
게다가 아유나는 마유의 죽음은 알아차렸어도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모를 거다.
“새롬?”
[부르셨습니까?]
“내가 얼마나 사라졌었지?”
[…더위 먹었습니까?]
하여간 말본새하고는.
원래라면 새롬을 악마 중에 1등으로 먹고 싶었는데, 예기치 않게 마유를 먼저 따먹게 돼서 조금 아쉬웠다.
[아무래도 족자 안에 따로 공간이 있었나 보군요. 아무튼 당신은 족자를 찢자마자 저를 불렀습니다.]
예상대로 족자 공간은 판타지아 차원과는 시공간적으로 완전히 유리된 장소였다.
시간을 들이지 않고 누구나가 경악할만한 성장을 이뤄냈으니 나로서는 엄청난 이득.
이래서 주인공들이 시간과 정신의 방을 그렇게나 좋아하나 보다.
“상태창 좀 불러줄래?”
[그러죠.]
상태창
이름: 송길준
LEVEL: 1
힘: 70 민첩: 70 지력: 10 행운: 10
보너스 스탯: 60
카르마 수치: 1500/21500
달라진 건 크게 없네.
레벨도 똑같고 스텟도 동일하다.
다만 달라진 점은 보지방에서 수많은 무공서들과 S급 무기들을 다뤄본 탓에 기본적인 무술 실력이 늘었다는 점과 심상 세계의 각인으로 인한 신력 사용이 가능해졌다는 정도?
“스텟을 조금 올릴 필요는 있겠군.”
신력 사용이 가능하다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필살기 개념이다.
애초에 주시자의 눈을 피해 힘을 사용하기도 까다롭거니와, 지나친 신력 사용은 마계와 천계의 불필요한 관심을 끌게 될 테니까.
어쨌든 간에 다시 카르마를 수확해서 스텟을 올릴 필요가 있었다.
예전과 달리 무술 실력도 크게 늘었기에 스텟만 올라가면 실력자와의 전투에서 허무하게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저런 상념에 잠긴 사이에 셰릴이 쭈뼛대면서 내 천막으로 들어왔다.
“주인님! 훈련 시간이에요!”
힘차게 들어온 그녀는 기대감에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좋아. 훈련을 받아보지.”
“그러면 바로 기초체력단련부터…”
“아니? 대련부터 간단하게 한다.”
셰릴에게 대련을 제안한 이유는 족자 공간에서의 수련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서였다.
“주인님, 그래도 훈련 교관은 저인데 제 말을 따라주심이 좋지 않을까 싶은데…”
“침대에서 숨도 못 쉬게 해줄까?”
“아뇨…주인님 뜻대로 하세요.”
역시 섹스로 반쯤 죽여놔 준다니까 결국 의기소침해져서 검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훈련 때만큼은 날 아래에 두고 굴리고 싶었나 본데, 어림없는 소리다.
바깥에 나가서 반갑게 다가오는 여인들에게 대충 인사하고 대련장에 셰릴과 단둘이 섰다.
셰릴은 여전히 눈부신 은발에 루비수정과 같은 적안을 번뜩이며 아름다운 모습을 과시했다.
손에는 고유 무장인 레이피어를 들고, 몸에는 움직임에 가벼운 경갑을 입고 있었다.
그에 맞서 나는 오로지 주먹을 말아쥘 뿐.
족자 공간 내에서 여러 가지 무기를 다뤄보았으나, 어디까지나 상대의 무기를 체험한다는 심정으로 연습을 한 것이지, 두 주먹만큼 나에게 잘 맞는 무기는 없었다.
그래서 이참에 완전히 전문 권사로 방향을 잡은 거다.
“이러니까 옛날에 베르너 백작가에서 결투했던 일이 생각나는군.”
“그때 일은 말해주지 마세요. 너무 창피하니까요.”
굳이 암컷 타락한 기억을 꺼내지 말아 달라는 말이군.
그럼 나도 어쩔 수 없지.
“그러게 말이야. 간이공간에 가둔 다음에 앙칼지게 소리치는 너의 손목 발목을 꺾고 아프다고 징징대는 너의 보지를 쑤실 때는 정말이지…”
“먼저 선공할게요!”
내 입을 막으려는 의도로 셰릴이 땅을 박차고 쇄도했다.
그녀의 접근 방향에 맞춰 보지방에서 보았던 수많은 무공서적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스스로 책장이 넘어간다.
촤르륵 소리와 함께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적합한 움직임이 저절로 검색되어 나타났다.
“지금!”
단호한 기합과 함께 찔러오는 그녀의 레이피어를 가볍게 손목으로 쳐서 방향을 바꾸고 진각을 밟는다.
쿠웅
땅의 울림과 함께 원형의 충격파가 퍼지며 흙먼지가 나와 셰릴 사이로 자욱이 피어오른다.
진각을 통해서 중심을 잡은 나는 허리를 꼿꼿히 세운 채로 망설이지 않고 촌경을 날렸다.
쩌어어엉
셰릴의 가슴을 보호하기 위해 덧댄 경갑 부분이 벽에 받은 자동차 범퍼마냥 찌그러졌다.
순간적으로 몸의 기운을 담아서 방어는 했지만, 내심 방심했었는지 반응 속도가 다소 느렸던 것이다.
“어어?”
몸의 자세가 무너진 그녀를 향해 이번엔 내가 빛살처럼 날아갔다.
그리고 틈을 주지 않고 무시무시한 연격을 퍼부었다.
퍼버버버버벅
얼핏보면 마구 내지르는 주먹들은 절묘하게 하나의 방위를 형성하며 그녀의 요혈을 노렸고, 이를 느낀 셰릴은 이를 악물고 레이피어를 화려하게 휘둘러 내 연격을 막아냈다.
깡 까강 깡
수강이 섞인 내 주먹들이 계속해서 아슬아슬하게 빗나갔으나, 예전처럼 힘 조절 못하고 마구 날뛰는 주먹이 아니었기에, 그녀의 얼굴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주인님, 원래 이렇게 강하셨나요?”
고개를 갸웃하는 셰릴에게 틈을 주지 않고 더욱 인사이드 스텝을 밟으면서 거리를 좁혔지만, 결국 거기까지였다.
쩌어엉
그녀가 대충 휘두른 팔꿈치를 강기까지 담아서 막았는데도 스텟차이로 인한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고.
이어지는 그녀의 뒤돌려차기에 복부를 제대로 맞았다.
퍽
“크허억!”
뒤로 한참을 날아가서 대련장 나무 울타리를 수수깡 부러트리듯이 박살 내놓은 후에야 충격량이 상쇄되었다.
“쿨럭! 쿨럭!”
“괘, 괜찮으세요?”
“괜찮아.”
여기까지군.
대충 데이터는 다 뽑았다.
방금은 단순히 스텟차이에 의해서 진 거지, 싸움을 못 해서 진 게 아니었다.
셰릴 정도의 숙련된 검사와 맞붙어도 순간적으로 몰아붙일 정도의 전투 스킬이라면, 순수 권사로서의 내 실력은 이미 충분히 입증된 거나 마찬가지.
셰릴도 이를 느낀 듯 아름다운 루비 눈동자에 의혹이 가득 담겼다.
“도대체 어찌 된 거죠? 주인님이 이상하게 강해졌어요. 물론 예전에도 약한 건 아니었는데…스텟이 80%나 하강한 것치고는 엄청 강한 게 맞아요. 이 정도면 어디 가서 맞고 다니시진 않겠는데요?”
그녀라면 나를 예전부터 쭉 지켜봐 왔으니 이렇게 물어볼 만도 하지.
웬만해선 대답을 해주려 했는데, 방해꾼이 와서 마음이 바뀌었다.
“뭐라고? 스텟이 80%나 하강했다고멍?”
하얀 눈꽃이 내린 듯한 꼬리를 살랑거리는 아름다운 수인녀가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기랄, 이래서 말조심을 해야 한다고 메이와 셰릴에게 그렇게 말했는데.
마녀의 숲에서 가장 위험한 여자 둘 중의 한 명에게 내 약점을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내가 들은 말이 사실이냐멍?”
“아하하! 제가 주인님께 장난친 거예요! 스텟이 80%나 하강했다니! 절대 그럴 리가 없죠!”
씨알도 안 먹힐 소리를 하네.
과장된 태도로 팔을 허우적대는 셰릴의 말은 누가 봐도 이 상황을 무마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그건 내가 직접 확인해보면 될 일이다멍. 어차피 그때 이후로 한 번 더 제대로 붙고 싶었다멍.”
쾅 쾅
두 주먹을 강하게 맞부딪치며 나를 보는 은색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셰릴이 급하게 내 앞을 가로막으며 입을 열었으나,
“미안한데, 루나님. 저희 주인님은 지금 용사와 성녀와의 전투로 몸이 조금 불편하시니까 그런 대련은 나중에 하죠?”
오히려 루나는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비웃는다.
“도축가로 불리던 너의 별명은 모두 허명이었냐멍? 계집 뒤에 숨어서 벌벌 떠는 꼴이라니.”
하찮은 도발인데도 적절한 단어 선택 때문인지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다.
처음 만나자마자 콧대 세우고 도도하게 굴 때부터 느꼈지만, 저 여자는 확실히 내가 열받는 스위치를 켤 줄 아는 년이다.
저러다 나한테 굴복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건지.
“루나, 네 부족원 계집들은 내 휘하 씨받이로써 보호받는 처지다. 네가 이런 식으로 삐딱선을 탄다고 해서 좋을 게 있나?”
자신이 사랑하고 아끼는 부족원들이 나에게 한낱 ‘씨받이’라는 걸 강조하자 그녀의 얼굴이 욹그락붉그락해졌다.
루나 이 년도 여기 와서 자신의 호위대였던 여전사들이 어떻게 나한테 복속되었는지는 모두 들었을 터.
인간 남자에게 한두 명도 아닌 전원이 가랑이를 벌리고 첩실도 아닌 육노예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찾아왔을 게 눈에 훤히 보였다.
“데이몬, 너에게 결투를 요청한다멍.”
“루나, 이건 좀 심하군요. 우리 주인님은 아직…”
“결투의 조건은!!”
나를 생각해서 어떻게든 이 상황을 좋게 해결하려는 셰릴의 말을 그대로 끊고 루나가 강하게 말했다.
“수인족들의 독립이다멍. 그동안 보호해준 건 고맙지만, 하찮은 인간 따위와 몸을 섞게 둘 순 없다멍. 난 널 이기고 정당하게 이곳을 빠져나가겠다멍.”
시선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불길이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내 몸을 자연스럽게 위축되게 만든다.
이것이 아마 도합스텟 차이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압박감.
그동안은 내가 압도적인 스텟을 갖고 있기에 알 수 없었던 느낌들이다.
원래라면 나는 루나를 이길 수 없으니 협상을 해서 억지로라도 머무르게 하거나, 정말로 수인족 여자들을 보내줬어야 할지도 모른다.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수인족 여자들은 나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기도 하거니와, 막말로 자기들끼리 외딴 산골짜기에서 오순도순 살아도 무방하니까.
하지만 족자 공간에서 심득까지 얻고 나왔는데 굳이 내 여자 15명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
손가락으로 턱을 괴고 고개를 모로 기울여 잠시 고심하는 척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아. 그 결투라는 걸 해보지.”
“주, 주인님! 안 돼요! 루나님은 주인님이 정상일 때도 힘들었는데…”
“셰릴, 조용히 해. 결정은 내가 한다.”
카리스마 넘치는 행동을 마주한 셰릴이 잠시 나를 살펴본다.
정실부인인 그녀는 내가 함부로 이런 대결을 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여자.
입꼬리 끝에 살짝 매달려있는 사악함을 확인한 그녀가 몸을 흠칫 떨더니 몸을 돌려 루나를 막던 걸 그만두었다.
“네, 주인님의 뜻대로 하세요.”
“좋아. 방해꾼은 사라졌고, 당장 시작하자멍.”
“잠시만.”
흥분해서 몸이 달아오른 그녀에게 손바닥을 내밀며 잠시 멈추게 했다.
“무슨 일이냐멍? 이제 와서 말을 바꾸면 재미없다멍.”
“아니, 여기서 말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해야지 확실하지 않겠나?”
내 말에 루나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날 재단해본다.
어디서 이런 자신감이 나오나 싶겠지.
하지만 아무리 가자미눈을 쳐 뜨고 알아보려고 해도 내가 심상 세계를 깨우쳤다고는 당연히 짐작조차 못 한다.
“셰릴, 십동대원들을 제외한 모두를 결투의 증인으로 불러라. 결투의 방식은 모나스 검투대회랑 똑같이 한다. 승자가 모든 걸 갖고, 패자는 승자에게 유린당한다. 이의 있나?”
제국 최고 검투사가 이 룰에 이의가 있을 리가 있나.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사납게 웃는 그녀의 팔에서 성난 근육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해서 움찔거린다.
“드디어 그 잘난 척하는 면상을 드디어 부숴줄 수 있겠다멍. 기왕 이렇게 된 거 널 이기고 마녀의 숲은 내가 먹는다멍.”
“마음대로 해.”
모든 것을 걸고 싸우기로 한 이상, 더 이상의 말은 의미 없다.
앞으로는 몸으로 보여주면 될 뿐.
처음부터 이 정신 나간 강아지를 참교육 해야 했었는데, 어찌 보면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지금이라도 비 오는 날 개 패듯이 때려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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