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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6화 〉 넌 도대체 누구냐?



〈 176화 〉 넌 도대체 누구냐?

* * *

론은 스스로 운이 좋은 사내라 생각했다.

베르너 본성에서 평민으로 태어난 그는 날 때부터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동네에서 자기를 따르는 몇 명의 똘마니들과 함께 별의별 짓을 다 했다.

돈이 없을 때는 띨빵한 놈의 주머니를 거덜 냈고, 배가 고플 때는 시장에서 과일을 훔쳤으며, 여자가 땡길 때는 가난한 집 딸년들만 골라서 강간했다.

인생 이 정도면 살만하다고 생각했을 무렵, 될 놈이 더 잘 된다고.

그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여느 때처럼 자신에게 매일 맞는 놈의 여동생을 불러 옷을 벗기고 배를 맞대는 중이었다.

울면서 시끄럽게 찡찡대는 년의 뺨을 때려 얌전히 시킨 다음 열심히 보지를 넓혀주고 있는데, 친구 놈이 급하게 들어와서 말했다.

“론!”

“뭐야, 떡 치는 중에는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아.”

“그게 아니야! 빨리 나와. 귀족이 널 찾고 있어.”

“…뭐?”

안하무인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론도 이 바닥에서 절대 건드려선 안 되는 존재가 있다는 것쯤은 알았다.

특히나 이곳 본성은 베르너 백작님이 거주하시는 곳이고 그분의 가솔들도 있으니, 론은 온갖 패악질을 부리면서도 절대 그분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런데 귀족이 자신을 먼저 찾아오다니.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자신이 건드린 사람 중에 귀족과 연관된 사람이라도 있는 걸까?

업보가 하도 많으니 어디서 실수가 났는지도 모른다.

대충 바지춤을 올린 론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바깥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화려한 정복을 입고 있는 사내를 보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넙죽 엎드렸다.

“론이라고 합니다. 마이로드.”

평민이라고는 하나 일자무식이었기에 예전에 주워들은 예법을 아무거나 주워섬겼다.

그러자 머리 위에서 헛웃음을 짓는 소리가 났다.

“큭큭, 큰일 날 소리를 하는군. 그냥 나으리라고 불러라.”

깨끗한 남자 목소리.

론은 순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살짝 고개를 들어 자신을 찾아온 특별한 손님을 보았다.

타는 듯한 붉은 머리.

피가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눈동자.

키는 크지만 깡말랐고 피부는 어찌나 하얀지 피부가 보일 정도.

매일 같이 햇빛을 보며 일을 해야 하는 평민이나 농노들에게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외모였다.

“네가 론이라고 들었다.”

“마, 맞습니다! 나으리!”

저 남자가 자신을 어째서 찾아왔는지 몰랐으니 론은 몸을 덜덜 떨었다.

그런 론의 심정을 알았을까?

사내의 어조가 조금 누그러졌다.

“너를 벌하려고 온 것이 아니니 그리 굳어있을 필요 없다.”

“그러면 어째서 저를…”

“시킬 일이 있어서다.”

귀족이 자신에게 무슨 일을 시킨단 말인가?

어떤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거절할 수 없음은 분명했다.

“그전에 한 가지 확인할 게 있어. 자경단장이 네가 이곳 뒷골목의 대장 같은 거라는데. 맞나?”

“네! 네! 그렇습죠.”

그 말만 하고 가만히 서서 생각에 빠진 붉은 머리의 귀족을 론이 불안한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뒤편에서 문이 벌컥 열렸고, 다 찢어진 거적때기로 중요 부위만 대충 가린 처녀가 울면서 나왔다.

“나, 나으리! 살려주십시오!”

아차.

미처 정리를 못 한 계집이 있었지.

영지에서도 강간죄는 중벌로 다스린다던데.

론의 얼굴이 자신을 찾아온 귀족만큼이나 창백해진 순간이었다.

붉은 머리의 귀족은 자신 앞에 엎드리며 눈물을 쏟는 알몸이나 다름없는 여인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남자 경험이 별로 없거나 처음임이 분명한 젊은 여자는 탱탱한 젖가슴과 보지가 그대로 노출되었고, 살집이 통통하게 붙은 허벅지에는 론이 조금 전에 싸지른 정액 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이 여자는?”

“그, 그게…”

“저 론이라는 불량배가 저를 억지로 끌고 가서 순결을 취했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저항하려 했지만, 저 우악스러운 놈이…흑흑흑…”

처절하게 우는 처녀를 보고 동정심을 가지지 않을 남자는 없을 것이다.

론은 모든 것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귀족은 론과 울고 있는 처녀를 번갈아서 쳐다보더니 질문했다.

“론, 저 여자를 어떻게 잠자리에 들이게 된 거지? 솔직하게 말해주면 좋겠군.”

솔직하게 말하라는 의미는 거짓을 말했다간 죽는다는 의미도 함축되어 있다.

론은 이미 다 끝장난 거 사실대로 이실직고했다.

적발에 홍안을 가진 귀족은 차분히 론의 얘기를 듣고 정리했다.

“한마디로 가난한 계집들 위주로 물색을 해서 필요할 때마다 성폭행을 했다?”

“죄, 죄송합니다. 저도 그러고 싶지는 않았는데 태생이 글러 먹은 놈이라…죄송합니다!!”

쿵 쿵

이마가 부서지도록 땅에 박으며 용서를 구하던 론.

그런 론의 머리 위로 귀족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좋아, 합격이다.”

“…네?”

“합격이라고.”

이후에 론은 붉은 머리 귀족으로부터 기이한 임무를 받았다.

“네가 만만하다고 생각한 계집들을 따로 모아서 보름달이 뜬 밤마다 내가 지정한 장소에 보내 놓아라. 중간에 범해도 상관없으나, 얼굴이 반반한 2명 정도는 건들지 말고 반드시 따로 빼놓고.”

어차피 거부권은 없었고, 론은 그날로부터 필사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한 번이라도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자신은 쓰다 버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노예처럼 일하기를 거진 1년.

그동안 베르너 영지에도 많은 일이 생겼다.

우선 기존의 백작님이 건강 악화로 돌아가셨고, 남은 두 형제가 백작의 자리를 놓고 본격적으로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붉은 머리 사내가 론을 다시 찾아온 것도 그쯤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론이 가방끈이 짧다지만, 이제는 그 남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마, 마이로드…”

바로 돌아가신 베르너 백작님의 장남이신 제임스 베르너.

현재 백작 위 계승 1순위인 분이셨다.

둘째 로이 도련님이 본성을 나가셨기에, 론을 포함한 대부분의 영주민은 제임스 도련님을 새로운 백작이라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그 일을 확장할 생각이라 네 녀석이 필요 없을 듯하군.”

필요 없다는 말에 론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그 말은 곧 죽여 입을 막겠다는 소리처럼 들렸기에.

“아, 아닙니다! 제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믿고 맡겨만 주십시오!”

“아냐, 널 어떻게 하려는 게 아니야. 그래도 수고한 놈 뒤통수치는 성격은 아니다.”

이후에 론은 영주로부터 믿기지 않는 말을 들었다.

“그동안 수고가 많았으니 너에게 훈작사의 지위를 내리마. 장원도 따로 배정할 생각이다.”

“저, 정말이십니까?”

얼떨떨했다.

무지렁이 평민으로 시작했는데 일 좀 거들었더니 무려 한 장원을 이끄는 훈작사가 되다니.

이건 영지도 없는 껍데기만 귀족인 놈들보다도 자신이 더 앞설 수 있단 얘기였다.

“물론 그다지 좋은 장원은 아니야.”

“가, 감사합니다! 뼈가 가루가 되도록 하사해주신 백작님의 영지를 잘 다스리겠습니다!”

그 날로 당장 짐을 챙겨서 옛날부터 자신을 따르던 몇몇 부하들과 함께 크래스 장원이란 곳으로 떠났다.

그리고 도착한 장소에서 론은 왜 제임스 백작님이 그곳이 좋지 않은 장원이라는지 깨달았다.

“…여자는? 없나?”

“죄, 죄송합니다.”

초야권을 발동해서 영지의 모든 젊은 여자부터 따먹고 볼 생각이었던 론은 대로하여 고추도 없는 늙은 촌장 놈의 목을 베었다.

이후 빌리라는 고자 놈의 아들을 새로운 촌장으로 임명해서 자초지종을 들었다.

“그…예전에 영주셨던 데이몬님이 저희 마을 여자를 모조리 끌고 마녀의 숲으로 들어가 행방불명되셨습니다.”

그 말을 하는 빌리놈은 피를 토하는 듯한 표정이 되었지만, 론이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여자도 없고, 마을 남자 거의 30명 정도밖에 없는 빈 깡촌.

오히려 본성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론이었다.

“늬들 말이야, 죽고 싶지 않으면 오늘부터 눈만 뜨면 바로 밭으로 나가라.”

최대한 농사라도 짓게 해서 본전을 뽑게 할 생각.

장원에서 최대한 뽕을 뽑고 떠날 생각이었던 그는 어느 날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건 바로 옆 동네 릭톤 장원의 봉토 없는 귀족이 자신의 여식과의 혼례를 제안한 것이다.

세상에!

내가 귀족 여자와 결혼할 수 있다니!

농사일에 찌들어버린 농노년도, 돈밖에 모르는 평민 계집들도 아닌 매일을 자신을 가꾸는데 열심인 상류층 영애를 말이다.

그제야 이런 거지 같은 장원도 어떤 귀족들에게는 눈독을 들일만한 땅임을 깨달은 론은 이곳에 눌러앉기로 결심했다.

혼례를 핑계 삼아 릭톤 장원에서 열리는 사교계 파티도 몇 번 참석했다.

귀족들만의 연회장에 처음 갔을 때 론은 심장이 터지는 듯했다.

자신의 아내 될 여자도 봤는데, 솔직히 미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는 아니다.

예쁜 여자가 고프면 나중에 따로 사서 먹으면 될 일이니.

저 여자로 인해 반푼이 귀족이었던 자신이 더러운 평민의 때를 벗기고 진정한 귀족이 된다는 게 더 중요한 일이었다.

“으음.”

아침에 일어난 론은 오늘도 빈 침대를 보고 혀를 끌끌 찼다.

성인이 되고 나서 잠자리에 여자 없이 잔 적이 없었는데.

이곳에서 하도 여자를 못 먹었더니 머리가 어떻게 될 것만 같다.

빨리 결혼해서 그 귀족 여자라도 어떻게든 먹어야지.

자신의 아래 깔려서 앙앙댈 고귀한 여인을 상상하자 아침 발기와 맞물려 성욕을 주체하지 못한 론이 자연스럽게 손을 그곳으로 갖다 대고 수음을 시작했다.

알싸한 쾌감이 머리를 서서히 퍼지려던 찰나, 갑자기 문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이로드! 마이로드! 큰일났습니다!”

빌어먹을 빌리 놈.

노동력 하나가 아쉬운 게 아니었다면 저놈도 진작에 죽였을 텐데.

바지를 올리고 투덜거리며 문을 연 론이 퉁명스럽게 묻는다.

“왜, 무슨 일이야.”

“그, 그게…직접 나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론은 이런 식의 두루뭉술한 보고를 제일 싫어한다.

그가 제임스 나으리의 임무를 수행했을 당시 눈앞에 빌리처럼 했다면 장원 영주는커녕 템프강의 물귀신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에 나가봤는데 별다른 일이 없다면 빌리 너는 각오해야 할 거야.”

거칠게 말하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서 문을 활짝 연 론은 눈 앞에 펼쳐진 기이한 광경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어…”

멍청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론.

그의 눈앞에는…족히 3m는 되어 보이는 건장한 체구의 오크들과 그보다 머리 하나는 커 보이는 트롤들이 보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다란 죽통을 입에 물고 있는 고블린들.

날카로운 곡도를 들고 있는 시커먼 후드의 무사들.

말로는 많이 들었지만 머리털 나고 처음 보는 동물 귀의 수인들.

고급진 로브를 걸치고 마법스태프를 든 아리따운 여성들.

마지막으로 커다란 대궁을 든 하녀복 금발여성과 풀 플레이트 메일을 걸친 은발의 여기사까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세력을 거느린 채 유일하게 맨 앞에 서 있는 남자가 있었다.

떡 벌어진 어깨와 대륙 평균보다 월등히 큰 키를 가진 흑발흑안의 남자.

황소보다도 커다란 백색 늑대를 탄 그가 론을 보고 사납게 웃으며 말했다.

“넌 도대체 누구냐?”

* * *



사상 최악의 주인공〈 176화 〉 넌 도대체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