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화 〉 정말 기대되는구만
* * *
긴장과 공포의 실이 팽팽하게 당겨져 병사들의 몸을 경직시켰다.
꼴깍침을 삼키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적막에 휩싸인 실내.
내가 원하던 그림이긴 했다.
그러려고 일부러 손속을 잔인하게 가져갔으니까.
“뭐, 뭣들 하는 게냐? 저런 미친놈을 당장 죽이지 않고!”
귀족 녀석들은 산 채로 심장이 뜯기는 병사를 봤는데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본인이 병사였어 봐라.
동료가 심장 먹방 당했는데 달려들 수 있을까?
절대 그렇게 못 한다.
예상대로 병사들은 영주가 재촉하는데도 머뭇거리기만 했고, 그 모습을 본 릭톤 영주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기껏해야 레벨 1이다. 다 같이 덮치면 잡을 수 있어. 잡는 놈에게는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주마.”
계속해서 주춤대던 병사들도 영주의 말을 듣고 내 이마 위에 선명히 뜬 레벨 1을 보았고.
동료들의 머리통을 부수고 심장을 빼낸 내 무위를 단순한 우연이라 치부한다.
무기를 꼬나잡고 조금씩 다가오는 녀석들.
돼지 한 마리를 얻으려고 목숨을 던지는 불나방 같은 놈들이다.
잔뜩 긴장한 채 천천히 다가오는 녀석들이 답답해서 내 쪽에서 먼저 움직이기로 했다.
타앗바닥을 박차고 최고 속도로 쇄도하자, 쪼렙 병사들은 당연히 반응조차 하지 못한다.
“어엇!”
“어디 갔나!”
눈앞에서 갑작스럽게 사라진 신형에 병사들이 당황할 때, 이미 나는 목표한 놈의 뒤에 서 있었다.
바로 발을 들어 녀석의 무릎을 걷어차 준다.
콰지직!!
단번에 무릎이 꺾여선 안 될 방향으로 꺾였고, 통증을 느낀 병사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구른다.
“끄아아아!! 내 다리! 내 다리!”
안쪽이 아닌 바깥쪽으로 꺾인 다리를 본 사람들의 동공엔 선명한 공포심이 어렸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아직도 상황 파악 못하는 병사 놈 앞에 서서 입 안에 손을 넣었고,
“에, 에에?”
멍청하게 에에거리는 놈의 혀를 잡고 그대로 뽑아버렸다.
콰직!!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던 녀석은 입가에 폭포수처럼 흐르는 피를 주체 못 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아, 악마야…악마다! 악마!!”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몸을 돌려 도망치려는 다른 병사 놈의 뒤를 노리고 내 손이 여지없이 파고든다.
푸욱!
근육을 찢고 들어가자, 수줍게 안에 숨어있는 말랑말랑한 내장의 감촉이 내 손에 느껴졌다.
“크헉, 살려…”
“그럴 순 없지. 먼저 간 동료들이 심심해하니까 같이 놀아줘라.”
자비 따윈 없다.
등을 파고든 손이 녀석의 내장을 잡고 그대로 뽑았다.
손안에 들린 3m에 달하는 내장.
내 몸은 이미 혈귀(血?)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피투성이다.
“남은 놈은 한 명인가?”
레벨 15짜리 놈.
이 영지의 자경단장 내지는 경비대장 같은 우두머리로 보인다.
다른 놈들보다 입은 것도 많고 레벨도 높고 덩치도 더 크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벌써 봐라.
녀석의 사타구니 사이는 축축하게 젖어있고 다리는 낮술이라도 거하게 마신 듯 끊임없이 휘청거리고 있다.
누가 봐도 전의를 상실한 녀석이니 빠르게 마무리해주기로 한다.
“천국 가라.”
데이몬식 추모를 해주며 이전 병사 놈에게서 뽑아낸 내장으로 녀석의 목을 졸랐다.
“컥! 커컥!”
버둥거리면서 처절하게 문밖으로 기어나가려고 했지만, 내 힘을 감당하지 못한 채 점점 얼굴에 핏기가 가시더니.
털썩입가에 거품을 문 채로 이내 고개를 떨궜다.
완벽한 교살이었다.
“대충 끝났군.”
중얼거리면서 주변을 바라보았다.
바닥은 피바다가 되었고, 나에게 죽은 병사들의 장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단 한 명도 목이 잘리거나 심장이 찔리는 형식의 깔끔한 죽음은 없었고, 모두가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잔인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래서인지 생기를 잃은 저들의 표정에는 끝없는 절망이 잘 드러나 있었다.
“우웩, 우웨에엑!”
누가 이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 불결하게 구역질을 하는 거지?
고개를 돌리니, 산만 한 덩치의 론이 벽에 손을 짚고 조금 전 저녁 식사 메뉴를 재확인하고 있었다.
“론, 비위가 너무 약한 거 아닌가?”
한마디 넌지시 말해주자, 이 눈치 빠른 놈은 입가에 묻은 불순물을 정리하더니, 피와 내장 조각이 잔뜩 엉겨 붙은 내 신발에 정신없이 입을 맞췄다.
“마이 로드! 마이 로드!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뭐든지 할 테니 제발…”
“알았으니 좀 떨어져.”
“가, 감사합니다!!”
중세시대 교황에게서 면죄부라도 받은 양 환한 얼굴로 뒤로 물러서는 론.
그런 그를 무시하고 릭톤 영주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식탁의 맨 상석에 앉은 영주놈과 내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
벌써 이놈의 얼굴은 헌혈 5번은 한 것처럼 핏기가 전혀 없었다.
“릭톤 영주.”
“말도 안 돼…”
“릭톤 영주.”
“레벨 1이 어떻게…”
“한 번 더 부르면 세 번째다. 릭톤 영주.”
싹수없는 놈이 상급자가 세 번을 부르는 데도 관등성명을 안 대네.
군대에서 신병이 저랬으면 바로 집합이었는데 말이야.
내가 부르거나 말거나.
영주놈은 당황해서 연신 횡설수설한다.
“시, 실수하신 겁니다, 이웃 영지의 경비병들을 잔인하고 살해하고 영주를 겁박하다니. 이 소식이 제임스 백작님의 귀에 들어간다면…”
더는 못 들어주겠다.
녀석의 목을 콱 잡고 들어 올렸다.
드르륵소리와 함께 영주놈의 무거운 엉덩이를 받치고 있던 의자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너무나도 쉽게 내 한 손에 들린 영주가 두려움에 떨며 돼지처럼 꽥꽥댔다.
“컥, 커억! 놓아라! 이거 놓아라!”
“영주님을 놓으시오! 채신머리 없게 이게 무슨 짓이란 말입니까?”
“당신은 같은 귀족으로서 최소한의 자각도 없는 건가요?”
옆에서 덜덜 떨던 남작 내외가 나를 말리려고 하는 걸 보니, 아직도 이 연놈들은 본인들의 귀족 신분을 믿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보여줘야지.
세상에 신분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악마가 있다는 사실을.
“릭톤 영주, 정당한 베르너 백작가의 후계자로서, 봉신 계약을 지키지 않은 너에게 사형을 내린다.”
“그게 무슨 망발이오. 어서 영주님을 내려놓…”
남작 나부랭이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서 손수 형의 눈을 뽑아주었기에.
“아까부터 날 꼬치꼬치 쳐다보는 이 눈이 마음에 안 들었단 말이지?”
“어어억! 어억! 어어어억!”
엄지와 검지를 영주놈의 눈 안에 넣은 뒤 망설이지 않고 뽑아버린다.
우드드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시신경이 집약된 혈관이 안구와 분리되었고.
“으아아아! 내 눈! 내 눈!”
목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자 털썩 쓰러진 영주는 극심한 고통에 피눈물을 흘리면서 땅바닥을 엉금엉금 기었다.
“크, 큰아버지!”
“영주님!”
정말로 영주에게 손을 대리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는지 지켜보던 귀족들이 경악했으나 이제 시작일 뿐이다.
엎드린 채 사라진 눈을 잡고 끙끙대는 녀석의 멱살을 잡고 끌어올렸다.
“릭톤 영주, 아직도 내가 후계 경쟁에서 뒤처진 망나니 놈으로 보이는가?”
“아, 아닙니다. 제가 잘못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릭톤 영주를 만난 이래로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대답이 나왔다.
이렇게 되기 참 오래 걸렸네.
그리고 영주놈은 내 인내심을 시험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아직도 제임스형을 베르너 백작으로 생각해?”
“아, 아닙니다! 백작님은 바로 데이몬 님이십니다.”
“뭐라고? 그렇게 생각한다고?”
분명 괜찮은 대답을 들었는데도 못 들은 척한다.
왜냐면 저 녀석도 내 말을 씹었으니까.
역지사지의 기분을 느껴보라는 의미에서 일부러 이러는 거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오호라, 나는 망나니에 레벨 1짜리 끈 떨어진 연이고 제임스는 능력 있는 백작이라고?”
“아닙니다! 예전부터 저는 데이몬님이 언젠가는 진정한 가치를 드러내실 거라고…”
“안타깝네. 제임스 형님을 좋아하는 놈은 나에게 필요 없어.
그리고는 그나마 제 기능을 하는 반대쪽 안구에 손을 집어넣는다.
내가 무슨 짓을 할지 예상이 되어서일까?
영주놈이 기겁하면서 애원해보았지만,
“죄, 죄송합니다! 자비를!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뭐라고? 끝까지 제임스 형님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제임스 형님께서 좋아하시겠군.”
귀를 막아버린 나는 웃으면서 그놈의 마지막 안구를 뽑아냈다.
콰지직!!
“으아아아!!!! 으아아!!”
장님이 된 놈을 대충 내던지니 100이 넘는 힘스텟에 힘입어 총알처럼 날아간 영주가 돌벽에 강하게 부딪힌 후 정신을 잃었다.
텅 빈 안구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에 조그만 샘을 만들 정도니 얼마 지나지 않아 과다출혈로 죽겠지.
내 심사를 뒤틀리게 한 것 치고는 편안한 죽음을 맞게 해줬으니 그의 부탁대로 자비를 베풀어준 셈이다.
이렇게 물렁해서야 언제 대륙 최고의 악인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아무튼, 릭톤 영주는 그렇게 요단강을 건넜다.
남은 건 영주놈의 동생인 남작 나부랭이와 그의 가족들.
“아아…안 돼! 형님! 형님!”
“흐, 흐흐흑…”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던 남작은 제 형님의 시체를 잡고 오열했고, 두 모녀는 겁을 잔뜩 집어먹고 서로를 껴안은 채 울어댔다.
가족 간의 단란하고 행복한 장면을 감상하다가 남작놈에게 다가갔다.
내가 가까워지자 남작은 지레 겁을 먹고 방금까지 꼭 껴안고 있었던 제 형님의 시체를 내팽개친 채 어떻게든 도망가려 했다.
“론, 붙잡아라.”
“예스, 마이 로드.”
어쨌든 론은 덩치도 좋고 레벨도 낮지 않기에 나이 많은 시골 남작 하나 제압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내 말을 거부하는 순간 끔찍한 일을 당한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은 론은 명령을 내리자마자 주저하지 않고 남작을 붙잡았다.
“아버지를 놔줘요!”
“그이를 놓아요!”
두 모녀의 애타는 비명을 귀로 음미하면서 남작놈에게 손을 내밀었다.
뜬금없는 행동에 놀라서 내 손을 쳐다보던 남작.
그런 놈에게 주먹을 펴서 내가 뭘 쥐고 있었는지 보여주자 반응이 아주 신선하다.
“히긱! 히그으윽!!”
손 위에 놓인 죽은 영주놈의 두 개의 안구.
아직도 끄트머리에 거미줄 같은 혈관이 남아있는 그 눈알을 남작에게 들이밀었다.
“너도 이렇게 되고 싶나?”
도리도리
필사적으로 고개를 젓는 남작 나부랭이를 보고 씩 웃으며 말했다.
“이봐, 남작. 너는 어느 쪽이야?
넌지시 묻자, 바로 대답이 나온다.
“다, 당연히 데이몬 백작님께 충성합니다! 반란수괴 제임스와 로이는 제가 앞장서서 처단하겠습니다!!”
큭큭큭, 태세 변환 봐라.
아까까지만 해도 나에게 망나니 어쩌고 하던 놈이 이젠 제임스 형을 반란수괴라 부른다.
웬만하면 이놈도 제 형처럼 처단하려 했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그래도 형과는 다르게 조금은 융통성이 있어. 그렇지?”
“마, 맞습니다. 저는 백작님에게 모든 걸 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다 맞춰줄 수 있어?”
순간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남작이 대답을 망설였지만, 내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는 것을 보고 냉큼 대답했다.
“무, 물론입니다. 제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든지 하겠습니다. 굼벵이처럼 기라면 기고 개처럼 짖으라면 짖겠습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나이 많은 아저씨가 그러는 모습 딱히 보고 싶지도 않고.”
말이 끝나자마자 일어서서 남작놈의 딸에게 다가갔다.
밀라라고 했던가?
론의 약혼녀로 내가 없었다면 장차 크래스 장원 마나님이 될지도 몰랐던 년이다.
“왜…왜…”
내가 다가오자 너무 무서워서 연신 왜라는 말만 반복하는 밀라의 드레스 위쪽 부분을 손으로 꽉 쥐고 단숨에 찢었다.
찌이이익!
입고 있던 상의가 걸레짝이 되어버리자 처녀의 속살이 모두에게 훤히 드러났고.
남자의 손길이 닿지 않았음이 분명한 탱탱한 유방을 우악스럽게 쥐었다.
“왜, 왜 이래요! 이러지 마세요!”
이에 질겁한 밀라가 손을 저어서 나를 밀어내려 했으나, 애초에 레벨도 높은 남자의 힘을 저항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내 딸한테 손 떼!”
그래도 어머니라고 딸을 지키기 위해 일어난 건가.
덤벼드는 남작 부인의 복부에 발차기를 날려주었고,
“아아악!”
정통으로 얻어맞은 그녀가 벽쪽으로 날아가 머리를 부딪쳐 기절하였다.
“부인!”
“지금 부인을 신경 쓸 때가 아닐 텐데.”
아직도 내 손에는 잡티 하나 없이 봉긋하고 하얀 밀라의 젖가슴이 잡혀있었다.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다시 남작을 쳐다보고 말했다.
“남작, 지금 이 시간부로 너를 새로운 릭톤 영주로 임명한다.”
난데없는 인사발령.
그리고 이어지는 말.
“너는 분명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서 어떤 짓이라도 감수하겠다고 했다. 아직도 그 맹세에는 변함이 없나?”
“그, 그건…”
바보가 아니라면 지금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거다.
눈앞에서 딸을 범하려는 나를 막는다면 파국인 거고.
그대로 묵과하면…적어도 생명의 보전과 함께 릭톤 영지를 다스릴 권한은 주겠다는 말.
과연 남작놈은 어떤 선택을 할까?
정말 기대되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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