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화 〉 이제부터 네가 페이튼 영주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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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조상님들은 우스갯소리를 즐겨했었는데, 그런 농담 중 하나엔 이런 말도 있었다.
가장 맛있는 여자는 새로운 여자라는 말.
나 데이몬은 이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한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내 정실부인이자 좆을 맛나게 빠는 메이도.
패배기사 역을 자처하며 내게 정복감을 심어주는 셰릴도.
빈유민둥보지를 가지고 오나홀처럼 쓰이는 올리비아도.
밀프 특유의 농염미를 발산하는 엘리샤도.
수인녀의 색다른 육체미를 느끼게 해주는 링링도.
G컵 폭유로 온갖 기예를 다 보여주는 클레어도.
평상시에 도도하다가도 내 좆만 보면 겸손해지는 소피아도.
밧줄로 온몸을 결박당한 채로 씩씩대며 기가 죽지 않은 이 발랑 까진 빨강머리 소녀보다는 못할 것이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이 젊은 여자의 온몸을 훑고 있을 때, 동생과는 달리 겁에 잔뜩 질린 오빠가 횡설수설한다.
“데, 데이몬 백작님 저희가 뭔가 잘못 생각했나 봅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십쇼. 지금이라도 풀어주신다면 어떠한 대가도 원하지 않고 제임스 백작…제임스 도련님에게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테니 제발…”
와, 이 와중에 제임스 백작이라 말실수하는 거 봐라.
제정신이 아니구만?
망설이지 않고 뺨을 한 대 올려붙였다.
짜아악!!
평생 떠받들어 살아온 귀족 나으리가 언제 맞아봤겠는가?
신체에 가해진 통증에 대한 내성도 없을 것이 분명하고.
부어오른 볼을 부여잡으며 공포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제임스 백작이라니. 너도 네 아버지처럼 시원해지고 싶냐?”
“아, 아닙니다. 제임스 그놈을 처단하는데 페이튼 영지가 앞장서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살려주십시오!”
지금 이놈은 아직도 본인이 페이튼 영지를 물려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김칫국을 심하게 마시니 현실을 알려줘야겠지.
“이봐, 앞장서서 돕겠다는 말은 영주나 할 수 있는 말이야. 넌 아직 영주놈의 아들일 뿐이고 말이야.”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말꼬리를 흐린 첫째 아들놈이 슬쩍 눈을 돌려 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온몸의 피부 껍질이 다 벗겨지고 숨만 간신히 쉬고 있는 중늙은이가 살아봐야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게다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이성이 마비되어 미쳐버리기까지 했으니.
사실상 영지는 첫째아들인 자기 것이라 여기고 나한테 이리 말하는 거겠지.
“제, 제가 이제 곧 영주가 되지 않겠습니까?”
역시나 내 생각이 맞았군.
이 녀석은 제 아비가 뒤지고 있는데도 살려달라면서 영지 먹을 생각부터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첫째놈의 말을 들은 둘째 아들놈이 옆에서 발끈하여 소리를 친다.
“형님,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아버지는 아직 돌아가시지도 않았습니다.”
“사실상 돌아가신 거나 다름없잖느냐?”
“형님, 그거 아십니까? 아버지는 예전부터 형님을 후계자로 여기지 않고 계셨습니다.”
얼씨구?
갑분 형제싸움 되어버렸다.
마치 우리 집안을 보는 것 같구먼.
흥미진진해서 가만히 있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데 얼마나 자기들끼리 치고받을지 궁금해서였다.
“둘째야, 원래 영지는 첫째가 받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이니라.”
“주변에서도 쉬쉬하고 있었을 뿐, 형님의 유약함은 이미 다들 알고 있었습니다.”
“네놈! 평상시엔 조용하던 놈이 이제 와서 갑자기 이빨을 드러낸단 말이냐!”
“애초에 형님이 제대로 된 사람이었다면 이럴 일도 없었습니다!”
큭큭큭.
이게 남의 집 불구경이 더 재밌는 법이라고.
나 또한 당장 가문 후계싸움으로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는 처지지만.
제삼자가 자기들끼리 저러고 있는 걸 보니 솔직히…꿀잼이었다.
“제대로 됐다는 놈이 아버지가 저 지경이 될 동안 나서지도 않았단 말이냐!”
“그건 형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피차일반이면서 저한테만 도덕적 잣대 들이대지 마시죠.”
“이게 뚫린 입이라고 못 하는 말이 없구나. 어쨌든 영지는 내가 물려받을 테니 그리 알거라.”
“어디 한 번 해보시지요. 제가 비밀리에 키운 사병들이 이참에…”
“오빠들!!”
날카로운 고음이 형제간의 다툼을 멎게 했다.
타이밍 좋은걸?
나도 슬슬 지겨워지던 참이라 개입하려 했었는데 말이야.
끼어든 사람은 페이튼 영지의 막내 여동생 레이첼이었다.
“그만 해요. 지금 그게 문제예요? 우리 가문의 불구대천의 원수가 눈앞에 있는데 영지 물려받겠다고 싸우는 게 최선이냐고요.”
“어허! 평상시에 귀엽다고 해주니 이런 자리에까지 말을 올리는 것이냐!”
“레이첼, 설마 너도 페이튼을 원하는 건 아니겠지. 어차피 계집은 영주가 될 수 없으니 꿈 깨거라.”
“맞다. 최근에 뉴몬성의 남작 한 명이 너의 미모를 가상히 여기고 있다고 하니 신부수업이라도 받는 걸 추천하마.”
두 오빠의 말을 들은 레이첼은 분노가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차올라 온몸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붉은 머리인데 피부까지 붉은빛이 은은하게 도니 그냥 불덩이 하나가 둥둥 떠다니는 거 같네.
“아니, 지금 영지가 문제가 아니잖아요!”
“레이첼 말이 맞다.”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자기들끼리 추한 꼴을 보이던 형제 놈들은 내가 끼어들자 일제히 입을 다물고 눈알을 뒤룩뒤룩 굴렸다.
“난 참 궁금해. 왜 페이튼 영지가 너희 소유라 생각하는지 말이야.”
“그야 저희가 대대로 통치해온…”
“그건 이유가 못 돼.”
둘째놈의 웅얼거리는 말을 끊었다.
대대로 통치해왔다고 그 주인이 될 거였으면 애초에 판타지아 대륙이든 지구든 나라가 망하고 왕조가 바뀌고 세상이 개벽할 일은 없었겠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100% 믿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모든 것은 힘의 논리에 따라 변해왔다고 여겨왔다.
우월한 자는 생존해왔고 열등한 자는 도태됐다.
여기서 우월은 단순히 힘이 세다는 말이 아니고, 시대와 상황이 요구하는 특출함이다.
그리고 판타지아 대륙에서의 특출함은 바로 레벨과 스테이터스.
비록 난 레벨은 낮지만, 스테이터스는 이런 시골 영지 귀족들이랑 푸닥거리하기에도 과분할 정도.
이런 내가 영주의 교체를 바란다면, 자연선택설에 의해 교체되어야 하는 게 맞는 거다.
“내가 볼 때 너나 네 형님이나 페이튼을 이어가기엔 부족해 보인다.”
“!”
“!”
내 폭탄 발언에 첫째와 둘째 모두가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그리고는 격렬하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데이몬 백작님이라도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됩니다.”
“맞습니다. 충성을 다하는 대신 자치권을 온전히 유지해줘야 하는 게 봉신 계약의 요체 아니었습니까?”
“동생의 말이 맞습니다. 계약은 지켜주시지요, 백작님.”
대단한 녀석들이다.
눈앞에서 제 아비의 껍질이 벗겨줬으니 내가 어떤 놈인지 알 텐데.
그런데도 나에게 화를 냈다는 말은 생체 표본이 되는 것보다 영주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 무섭단 이야기.
가족보다 영지를 우선시하는 그 모습에 사악해지려고 항상 노력하는 나도 순간적이나마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뻔했다.
“봉신 계약이라…잘 생각해봐라. 너희가 내 힘을 목도하기 전에 그 계약을 잘 지켰는지를.”
내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놈들.
꼴도 보기 싫은 녀석들이다.
“나도 힘을 보여주지 않았으면 역으로 잡혀서 너희가 그렇게 좋아하는 제임스 백작님에게 산 채로 바쳐졌을지도 모를 일이지.”
“그,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는 데이몬님을 진정한 베르너 백작가의 후계자라고 생각…”
“그만.”
더는 저놈들 아가리에서 나는 똥내를 맡기 싫었다.
저들은 지금 인간이 아닌 금수의 말을 내뱉고 있기에, 들어줄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링링, TS1알약을 가지고 있나?”
“있다멍. 올리 언니가 혹시 몰라서 챙겨가라고 해서 챙겨왔다멍.”
“내가 뭘 원하는지 알겠지.”
“알고 있다멍!”
눈치백단인 링링이 품에서 알약을 꺼내고 첫째와 둘째놈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엇!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
“이거 놓아라. 천한 수인녀 주제에!”
“너 말을 참 열받게 하는 재주가 있다멍!”
그렇지 않아도 나라가 망하고 인간 밑에서 검투사로 있으며 오랜 기간 노예 생활을 했던 수인녀들에게 저런 말을 지껄이다니.
링링의 두 눈에 살기가 살짝 스쳤지만 내 명령 때문인지 죽이지는 못하고 억지로 입을 벌려 알약을 쑤셔 넣었다.
“웁! 우우웁!”
“살고 싶으면 먹어라멍!”
“맞다멍! 안 그러면 우리가 죽일테니까멍!”
수인녀들의 경멸의 시선을 받으며 알약을 먹은 첫째와 둘째.
이들뿐만 아니라 페이튼 영지에서 목소리 좀 크게 낼 것 같은 고추 달린 놈들에게 모조리 TS1알약을 먹였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머리카락이 길어지고 피부가 반들반들해졌으며, 유방이 봉긋하게 솟아 나왔다.
무엇보다 툭 튀어나왔던 생식기가 평평하게 변해버렸으니, 가랑이 사이에 습습한 일자 균열이 생겼음이 분명했다.
“마, 말도 안 돼!”
“여자가 돼버렸어.”
“내가, 내가 고자라닛!”
누군가 지구에서 유행했던 대사를 읊었던 것 같지만, 착각이었겠지.
어쨌든 놀라서 소리 지르는 음역대 마저도 하이소프라노.
명백히 여자가 되어버린 귀족놈들, 아니 년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보다시피 이제 계집이 되었다. 본래 남자였으니 반푼이 계집이라 봐야겠지. 어찌 됐든 보지 달렸으니 계집은 계집. 그러니 이제 영지는 누구에게 줘야 할까?”
모두가 내 말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고, 그저 허무한 눈빛으로 사타구니 사이의 빈공간과 출렁대는 젖가슴을 응시했다.
“똑같은 계집이라면, 조금이라도 당차고 정신 똑바로 박힌 년에게 줘야겠지.”
내 시선은 어느새 밧줄에 포박된 상태에서도 눈빛에 힘이 실려있는 레이첼을 향해 있었다.
“나 데이몬, 윌렛 왕국의 백작이자 베르너의 정당한 통치자로써, 레이첼 페이튼을 페이튼 영지의 정당한 영주로 임명한다.”
판타지아 대륙의 어떤 사람도 여성을 영주로 임명하는 경우는 없었으니.
이는 지구 출신인 나만이 할 수 있는 사고방식이었다.
역시나 격렬하게 반항하는 첫째와 둘째 딸년들.
“말도 안 됩니다!”
“어떻게 여자가 영지를 통치한단 말입니까?”
“그럼 너희가 통치할래? 바지 벗어 봐. 그거 달려있나 보자.”
내 말에 얼굴을 붉힌 그녀들이 더는 말하지 못했다.
이제 남성도 아닌 저 여자들은 내 대업을 위한 보지도구들이 될 예정이다.
“더는 말 섞을 필요 없겠지. 저년들을 지하 감옥에 가둬놔라.”
“알았다멍!”
수인녀 몇 명들이 강제로 이들을 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새된 목소리로 저항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남자일 때도 저항할 수 없었던 놈들이었는데 여자가 됐으니 결과는 뻔하다.
질질 끌려서 페이튼 영지에 따로 지어진 뇌옥으로 들어갔다.
“오빠들을 놔주시죠.”
“오빠 아니야. 언니들이야.”
“…어찌 됐든요. 제 가족이거든요.”
역시나 이년은 아까부터 봤는데 유일하게 정상이라 말할 만하다.
리더쉽도 있는 것 같고 기도 세고 옳고 그름이 명확하다.
내가 천성 악인이라 옳고 그름이 불명확할 거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건 오해다.
나 같은 악인일수록 주변에서 끊임없이 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대기에 이런 쪽으로 더 민감하다.
게다가 도덕적인 기준을 파악하고 있어야지 여기에 목숨 거는 유교보이나 유교걸들을 타락시킬 때 두 배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원래 싸이코패스들이 겉으로 볼 때는 되게 친절하고 멀쩡해 보이는 놈들 많잖아?
이와 비슷한 경우라 보면 되겠다.
아무튼, 난 저 예쁘장하고 머리색 특이한 계집이 마음에 들었으니 영주로 임명하련다.
“이제부터 네가 페이튼 영주해라, 알겠냐?”
내 말을 들은 레이첼.
그녀가 망설이지 않고 내 말에 대답했다.
“싫어. 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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