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BER

MENU

〈 198화 〉 크래스 폴리스에 방문한 록펠



〈 198화 〉 크래스 폴리스에 방문한 록펠

* * *

록펠은 베르너 백작가 휘하의 자유기사이다.

레벨은 32로 상당한 베테랑.

전 베르너 백작이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백작가 본성에서 근무했었다.

백작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후계전쟁이 심각해지자, 그는 기사에 대한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한 로이 공자님 곁에서 충성을 다했다.

그로부터 1년.

후계싸움은 점점 치열해지고 기사들은 서서히 지쳐갔다.

처음에 록펠은 로이가 승산이 있다고 보았다.

비록 첫째 제임스가 인구가 많은 베르너 성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머릿수만 많은 농노병들 따위 철갑 기마병 열댓 명이 달려들면 늑대를 본 양떼마냥 흩어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의외인 건 몬두르 기사단장이었다.

모두가 동경하고 있었던 아름다운 여인 셰릴 몬두르의 아버지였던 그는 후계전쟁이 시작하자마자 별안간 제임스 베르너 쪽으로 붙었다.

예전부터 기사 우선주의, 기사 중심주의를 부르짖던 그와는 너무 상반되는 움직임에 한때 그를 따랐던 많은 기사가 혼란스러워했다.

첫 영지 전쟁에서 그를 만날 때만 해도 서로 아는 사이여서 손속에 사정을 두려고 했으나.

몬두르는 버서커 전사라도 된 듯 망설임 없이 과거 자기 부하들을 사정없이 베어서 제임스에 대한 충성을 증명했다.

일이 이렇게 되니 로이 베르너 쪽에 투신한 기사들도 뒤가 사라졌고.

이젠 둘 중 하나가 완전히 죽어야 끝나는 싸움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전황은 그다지 유리하지 않았다.

몬두르 기사단장은 몬두르 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장원을 제외한 캐슬만 세어 보면 2대 1 상황.

따라서 로이 도련님은 백작령 북부에 있는 뉴몬 성주에게 사절을 보내 포섭하려 했다.

성주가 이쪽으로 돌아선다면 캘리알+뉴몬 vs 베르너+몬두르 구도의 세력균형을 유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뉴몬 성주는 철저한 중립을 표방하며 성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상황이 이러니 장원들도 하나둘씩 넘어가고.

중립을 선언한 가신들도 내심 제임스 쪽으로 무게가 기울었다고 판단했는지 그쪽으로 줄을 대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이제 끝인가 싶었을 때.

북쪽에서 희한한 소문이 들렸다.

과거 망나니로 유명했던 막내아들 데이몬 베르너가 마녀의 숲에서 생환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도 그 소식을 믿지 않았다.

믿더라도 지금 와서 그 망나니가 뭘 할 수 있겠냐고, 지금이라도 전 재산을 들고 튀는 게 목숨이라도 유지할 길이라 조롱하곤 했다.

그런데 이후 1년.

북쪽에 거대한 세력이 생겼다는 소식이 베르너 백작령에 퍼졌다.

템프강 북부를 아우르는 엄청난 도시가 말이다.

마녀의 숲에서 나오는 몬스터들로 인해 불가능할 거라고 여겨지던 일이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마녀의 숲 몬스터들이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몬스터만 없다면 마녀의 숲만 한 곳이 없다.

각종 산업에 필요한 자원들이 즐비하고 외적의 침입을 막기 수월하며 갈리아 제국과 교역까지 할 수 있는 지역적 요충지.

소문의 진위에 대해서 긴가민가하고 있을 때, 로이가 그를 소환했다.

품 속에 서신을 하나 넣어주면서 했던 말은 이렇다.

‘템프강 북부를 살피고 와. 정말로 저들이 세력을 이루고 있는지 말이야.’

‘만약에 헛소문이면 어찌합니까?’

‘헛소문이면 데이몬 녀석은 죽이고 혹시나 셰릴 몬두르가 있으면 생포해라. 네 레벨이면 충분할 거야.’

‘소문이 진짜면요?’

‘진짜면…서신만 전달해. 거기에 데이몬에게 할 말을 적어놨으니까.’

지금 그의 품속에는 로이 도련님이 써 준 서신이 고이 모셔져 있었다.

복장은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허름하지도 않은 정복.

다만 오른쪽에 검을 착용해서 모르는 사람이 보이기에는 용병과 비슷해 보였다.

백작가 후계싸움이 치열해지면서 자유기사가 단독으로 움직이긴 위험한 시기였다.

어느 쪽이든 진영을 정해야만 했고 반대 측 진영이라면 가차 없이 제거당하는 건 예삿일.

사실 록펠이 여기까지 오는 것조차 쉽진 않았다.

캘리알 성은 템프강 중하부에 자리 잡고 있었고 템프강 북부까지 오려면 뉴몬성을 거쳐와야 했는데.

현재 뉴몬성은 중립을 선언했기에 제임스 측 뻐꾹새들이 사방에서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상황.

그건 로이 측도 마찬가지여서 아군쪽 뻐꾹새의 협력을 받고 어렵게 템프강 북부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목적지에 다다른 록펠은 진귀한 현상을 보았다.

“이게 도대체…”

수많은 사람이 길게 줄을 늘어서서 강을 건너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평민들이 대부분이었으나 딱 봐도 탈주한 게 분명한 농노들도 있었고, 값비싼 옷을 걸친 상인, 병장구를 패용한 용병까지 다양했다.

보통 이런 다양한 계층 사람들이 우르르 섞여 있으면 용병이나 상인들 우선하여 보내줄 만도 한데도 새치기를 하거나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 하나 없다는 게 신기했다.

록펠은 호기심을 느끼고 주황색 옷을 맞춰 입은 상단의 인물 하나를 불렀다.

“크흠흠! 내 저기 물을 것이 있네만.”

상단의 인물은 록펠의 복장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신분이 어느 정도 있다고 여겼는지 선선히 대답했다.

“네, 무슨 일이시죠?”

“왜 다들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 건가? 그냥 따로 배를 빌려서 건너면 안 되는 건가?”

록펠의 말을 들은 상인의 고개를 내저었다.

“어디서 오셨는데 이런 기본적인 소식도 못 들은 겁니까? 허가 없이 템프강을 넘어가려다가는 강 너머의 병사들에게 즉시 추살당합니다.”

“추살? 강 너머에 무슨 병사가 있다고.”

록펠이 알기로는 강 너머에 그나마 봐줄 만한 곳은 페이튼 장원 정도.

성급 영지와 비교하면 시골 깡촌이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만약에라도 그곳 병사들이 자신을 방해한다면 그에 걸맞은 대가를 치르게 해주면 되는 일이었다.

이런 록펠의 자신감이 은연중에 드러나서일까?

상인이 펄쩍 뛰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 소리 하지 마십시오! 얼마 전에도 라이너 자작령의 한 기사가 무단으로 강을 건넜다가 발각돼서 일주일 동안 기둥에 걸려있었습니다.”

“기사면 귀족일 텐데. 일주일 동안 그런 수치를 당하는 걸 순순히 받아들이던가?”

“고분고분했지요. 몸 없이 목만 달려있었으니깐요.”

“……”

북부에 이런 야만적인 일이 자행됐는데도 전혀 몰랐단 사실에 록펠은 충격을 받았다.

“템프강 너머에 새로운 기사 집단이라도 생긴 건가?”

“아뇨. 기사가 아닙니다. 용병단입니다.”

“…용병단?”

“네, 수인녀들로 이루어진 용병단과 온몸을 시커먼 후드로 감싼 용병단인데 어찌나 강한지 레벨 30대 기사들도 꼼짝을 못한단 소문입니다.”

록펠은 상인의 말에 과장이 섞여 있다고 믿었다.

레벨 30대 기사가 어디 흔한 것도 아니고.

자신만 해도 동급의 기사 3명이 포위해와도 충분히 도망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왜 귀족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땅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건가?”

이 질문에 상인도 진심으로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록펠은 속으로 아차 했다.

본인도 강을 건너려고 줄을 섰으면서 같은 목적으로 줄을 선 사람에게 이유를 물어보다니.

“떠돌이 방랑가 용병이라서 그러네. 여기도 요새 뭐가 있다는 말만 풍문으로 들어서 말일세.”

그의 말을 들은 상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겠죠. 지금 판타지아 대륙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가 여기 크래스 폴리스입니다.”

“크래스 폴리스?”

“그럽죠. 템프강 북부 전체를 통치하시는 데이몬 베르너 님께서 엄청난 성과를 일궈내셨습니다.”

그러면서 떠벌대는 상인의 말을 들은 록펠은 매우 놀랐다.

북부 전체를 아우르는 자유도시를 세우고 강력한 용병단이 이를 수호하고 있으며, 새로 입주를 희망하는 자들에게 특기와 기술을 고려해서 일자리와 주거지를 배분한다는 말이었다.

“말 그대로 기회의 땅입죠. 팔다리만 있어도 농사지을 땅을 내어주고 비를 피할 집을 내어주니깐요.”

록펠과 상인과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 평민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쥐상에 한쪽 볼에 커다란 점이 나 있는 장년 남자는 과히 좋은 인상이라고 볼 수 없었다.

기사 신분이었던 그는 갑작스럽게 끼어든 평민을 불쾌하게 여기며 한소리를 했으나,

“지금 평민이 대화에 끼어드는 게냐?”

바로 쥐 상의 사내에게 들려오는 대답은 이러했다.

“어차피 자유도시에 들어가는 순간 다 같은 ‘시민’입니다. 도시 안에서도 그렇게 목 뻣뻣하게 세우시다간 큰일 납니다.”

록펠은 당장 검을 뽑아 무례한 녀석의 목을 치고 싶었지만, 여기 온 목적이 따로 있었고 괜한 소란을 일으키기 싫어서 속에서 치미는 화를 꾹 눌러 담았다.

그런 록펠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쥐 상의 사내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가까이 와서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앞서 상인 분께서 말한 것들이 크래스 폴리스의 장점이 맞지만 진정한 장점은 따로 있습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무언가 비밀을 말하려는 제스처에 록펠도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였다.

궁금해하는 그를 보며 히죽 웃은 쥐 상의 사내가 오른손에 주먹을 쥐고 왼손에는 손바닥을 펴더니 탁탁 부딪치기 시작한다.

음양의 조화를 뜻하는 저속한 손짓에 록펠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붉어졌다.

“지금 이게 뭘 하는 짓인가?”

“뭘 하긴요. 저기만 넘어가면 마음대로 공짜떡을 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공…공짜떡?”

“그렇습니다. 남자가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다리를 벌려줄 계집들이 저 너머에 가득하단 얘기지요.”

록펠은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쥐 상의 사내도 그가 이해 못 했음을 알고 추가로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저 너머에는 TS녀라는 여인들이 존재합니다.”

“TS녀? 그게 뭐지?”

“저도 모릅니다. 다들 그렇게 부르니까 저희도 그렇게 부르는 거죠. 그녀들은 도시에서 지정해준 창관에 머무는데, 돈을 받지 않고 손님들을 받습니다.”

“뭐, 뭣이!”

돈을 받지 않고 다리를 열게 한다니.

그건 패배한 반란군 수괴의 아내 혹은 딸에게나 할 가혹한 처사였다.

심지어 성노예들도 그렇게 굴리진 않는다.

그랬다가는 몇 년을 못 버티고 보지가 망가져서 죽어 나갈 테니까.

성병으로 죽든지 보지가 찢어져서 죽든지 정신병으로 죽든지.

어떤 식으로도 몇 년 이상 못 살 가능성이 컸다.

“야만적이네. 그 여인들에게 무슨 죄가 있어서.”

“죄가 있는 여인들만 그렇게 굴리는 겁니다. 도시에서 공표한 중범죄를 저지른 여인들만 TS창관에 넣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크래스 폴리스에 강간 범죄가 없다는 말도 덧붙이는 사내였다.

“형벌이 무겁습니다. TS여자는 어떻게 다루든 상관없지만, 길거리에 지나가는 일반 여자를 건드렸다가는 도시 수비병들에게 잡혀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데, 이들이 어떻게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답니다.”

몸을 부르르 떠는 쥐 상의 사내의 말을 듣다 보니 어느새 줄이 모두 줄고 록펠과 상인, 그리고 평민 사내의 차례가 왔다.

“크래스 폴리스에 온 이유는?”

사무적인 태도를 보이는 직원은 놀랍게도 여성이었는데, 놀랄 정도로 예쁜 미인이었다.

쭉 뻗은 각선미와 봉긋하게 솟은 하얀 젖가슴이 줄을 선 남성들의 시선을 끌었다.

록펠은 계집이 이런 외부적인 일을 맡는다는 것도 신기했다.

만약에 캘리알 성에서 저런 식으로 근무하려는 여성이 있으면 하루 만에 납치되어 윤간당한 뒤 골목길에서 시체로 발견될 게 분명했으니.

쥐 상의 사내가 인상은 좋지 않아도 거짓을 말한 건 아닌 듯했다.

* * *



사상 최악의 주인공〈 198화 〉 크래스 폴리스에 방문한 록펠